인간은 누구나 그 처음의 시작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또 다른 생명체의 처음을 자신의 몸에 품게 된 어머니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눈으로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하루에 두 번씩 임신 테스트를 했다. 매직아이 수준으로 보이던 진단선이 날이 갈수록 진해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의심이 사라져 갔고, 폭풍 입덧이 시작되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졌었다. 수정이 되고 착상이 되고 내 몸의 호르몬의 변화가 시작되던 그 순간, 이미 내 아이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이야기]는 노르웨이의 세포생물학자 ‘카나리나 베스트레’가 화자의 입장으로 맨눈으로 보일까 말까 한 난자와 맨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정자의 만남에서부터 세상 밖의 빛과 마주치는 순간까지를 발생학, 세포생물학 그리고 유전학의 이야기로 흥미롭게 채워놓았다.
고대 과학의 아버지이자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2,300년 전 [동물의 출생 (Generation of animals)]이란 문헌을 통해 병아리를 이용한 발생학 연구를 남겼다. 수정된 지 3일 된 유정란에선 심장 박동을, 일주일 후에는 커다란 눈을 가진 생명체의 형태를 관찰했다. 그는 여성은 토양의 역할을 하고, 남성의 생식의 과정에서 사람 형태를 갖게 하는 지시를 내린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이런 발생학 이론은 꽤 오랜 시간 인간의 삶과 동행해 왔었다. 1600년대는 모든 생물체는 처음부터 지금 모습 “그대로” 크기만 축소된 형태로 자궁에서 자란다고 생각했다. 현미경을 발명한 '레이우엔훅'은 현미경으로 관찰한 올챙이 모양의 정자 안에서 ‘미니어처 인간’을 찾고자 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처음 몇 시간, 경주는 끝났다. ‘나’로 자라날 최초의 세포는 유유히 나팔관 아래로 떠내려간다. 벌써 나에 관한 아주 많은 것이 결정되었다. 내 첫번째 세포는 이 문장의 마침표보다 작지만, 내 몸을 짓는 데 필요한 모든 설계도가 넉넉히 들어간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신체 기관뿐 아니라 눈 색깔이나 코의 모양까지”
결국 마침표보다 작은 세포 안의 고작 A, T, G, C 4개의 알파벳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46개의 염색체”는 오랜 시간 인간이 그토록 알고자 했던 인간의 그 “처음”이었다.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세포들은 ‘분자’라는 화학적 언어를 통해 임무를 주고받으며 그 처음 첫 세포부터 세상 밖의 인간의 일생동안 분자를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새로운 기관을 만들고, 기관들의 항상성을 유지시키고, 보고, 듣고, 느끼고, 숨 쉬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모든 세포들의 역할을 저자는 “경이로운 상호작용”이자 “종이접기” 같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라는 언어를 통해서 그 처음부터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김영사 블로그
염색체가 복제되고 세포분열이 일어나며,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각기 다른 세포들이 만들어지는 그 모든 과정의 서술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임신, 출산 대백과] 수준의 정보나 고등학교 생물학 수준의 지식을 뛰어넘는다.
CSI에서 본 키메라 증후군에서부터, 초파리 유전체 연구를 통해 인간의 유전체의 역할을 밝히는 실험과정, 태아가 뱃속에서 부모에게 존재를 확인시켜주던 딸꾹질과 양서류 발생과정과의 유사성, 세 번의 시도 끝에 만들어진 콩팥을 통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연습하는 과정, 그리고 세 개의 작은 주머니에서부터 시작된 세포의 가장 “야심 찬 두뇌 프로젝트”의 가장 긴 발생의 과정을 저자의 탄탄한 과학적 서사로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나’의 생일, 즉 첫 공기를 마시는 순간을 담아냈다. 태아의 출산은 뇌의 신경세포가 분비하는 호르몬과 엄마의 태반의 호르몬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서 두 사람은 함께 출산을 준비한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나의 둘째 아이의 생일이다. 5년 전 오늘, 난 숨이 막힌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고, 숨 못 쉬고 소리 지르는 내 입을 산소마스크로 틀어막으며 간호사는 소리쳤다. “내가 숨 안 쉬면, 아기가 숨을 못 쉬는 거야!” 지금도 그 순간을 나는 고통으로 기억한다.
이 책의 마지막을 다시 읽으며, 그 순간을 되뇌었다. 내가 죽을 것 같던 그 순간, 나와 아이의 호르몬의 밀당이 깨어지던 그 순간, 아이의 몸은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을 비정상적으로 대량 분비하며 질식할 고통을 경험했었을 것을 생각하니 우리 둘에게는 5년 전 오늘은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었으리라.
“이것이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다. 이제 곧 두 개의 낯선 손이 내 머리를 잡고 끌어내면 눈부신 불빛이 눈을 때리고, 허파에는 처음으로 공기가 가득 찰 것이다. 나는 숨을 쉰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생일은 정의되었다. 첫 숨을 들이쉬기 위해 누구나 겪었으나 그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각자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서 찾아보길 권한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경이로운 과정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임을..
작성자: LabSooni Mom (필명)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