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 인류 역사는 '질병과 약의 투쟁 역사'다! 사로 겐타로 저, 서수지 역 ㅣ 사람과 나무사이 ㅣ2018.05.10.
BRIC
(2019-04-23 10:13)
연구소 내에 “Take-back Drug Day”라는 포스터가 하나 붙었다. 전국적으로 매년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사용하지 않은 처방약을 수거하는 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DEA) 행사에 동참하는 포스터였다. DEA 의 집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Take-Back Day를 통해서 수거한 처방약은 900,000 파운드에 달했으며, 2010년 가을부터 수거한 처방약은 10,878,950 파운드에 달한다고 한다.[1] 건강보조제와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over the counter) 약까지 포함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약이 넘치고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일본의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유기화학합성을 전공한 사로 겐타로는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을 통해 ‘질병’이라는 창과 ‘약’이라는 방패의 투쟁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인류의 공통적인 소망이 있다면 장수의 삶 일터,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과 환경으로 인해 항상성이 무너진 인류의 몸은 죽음이라는 끝이 보이는 삶을 살아야 했다. 고대부터 시작된 질병을 향한 인류의 투쟁은 때로는 자연에서 그 답을 찾아왔으며, 때론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에 의지해 생명연장의 꿈을 꾸어왔다.
저자는 이러한 인류의 생명연장의 의지는 과학자들의 발견과 노력을 통해 ‘의약품’을 개발하게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던 여정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영국이 대영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역사의 뒤엔 괴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비타민C가 있었으며, 바티칸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던 데는 말라리아를 치료할 수 있는 페루에서 온 퀴닌이 있었다.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의약품 중 가장 오래 사용된 모르핀은 통증에서 인류를 구원했으며, 해리포터에도 등장한 맨드레이크 뿌리에서 유래한 마취약과 구강청결제 ‘리스테린’의 기원을 품고 있는 ‘조지프 리스터’의 소독제의 발견은 수술을 통한 인류의 생명연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청교도혁명의 뒤에는 매독이 있었고, 매독은 염료를 기반으로 한 화합물인 살바르산을 통해 치료가 가능해졌으며, 2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승리 뒤에는 독일인이 발견한 설파제가 있었다. 플러밍은 어느 날 우연히 날라든 푸른곰팡이 포자로 인해 20세기 가장 위대한 발견인 ‘페니실린’을 발명했으며, 버드나무 껍질과 이파리에서 유래한 ‘아스피린’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약이 되었으며, 악마가 놓은 에이즈의 덫에서 인류를 구한 에이즈 치료제가 불치의 병인 에이즈를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바꾸어 놓았다. 인류는 식물과 세균에서 의약품을 추출하거나, 화학적 합성을 통해 새로운 의약품을 만들어 냈으며, 그 의약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대사과정을 연구함으로 처음의 발견과 발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10가지 약의 역사에는 그 약을 발견하고 개발하기 위해서 애썼던 과학자들의 발자국이 녹아있다. 누군가는 약을 통해서 노벨상을 받기도 했고, 누군가는 가족을 잃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주류에 반하는 발견으로 인해 홀로 쓸쓸히 인생을 마감한 경우도 있었다. 세균을 억제하는 살바르산을 발명한 에를리히와 시가 기요시는 가능성이 보이는 화합물을 발견하고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뒷받침할 증거를 통해, 화합물을 개량, 설계, 합성의 과정을 반복하는 “제약의 원형”을 세우며 606번째 화합물인 살바르산의 세균 억제를 발견했다. 저자는 그들의 연구과정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릇 연구자가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목표 지점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할 때가 가장 괴로운 법이다. 이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목표에 반드시 도달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난해도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다.”
새로운 약을 만드는 것, 새로운 치료법을 연구하는 것,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는 것 등 생명과학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누구에게나 저자의 이 말은 큰 울림을 주리라 생각한다.
역사의 첫 발견과 첫 발명이 쉬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획기적인 의약품의 개발이 없는 것은 아마 우리가 아는 것이 더 많아졌기 때문은 아닐까?
새로운 의약품의 개발은 동물실험, 임상실험을 통한 안정성을 평가하는 항목들이 늘어나고, 규제는 더 까다로워졌다. 한 가지 질병에 효과를 일으키는 의약품은 종종 다른 부분의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고, 국소적인 효과는 있지만 궁극적인 수명연장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의약품도 존재한다. 때로는 규제의 벽을 쉽게 넘기 위해 양심적이지 못한 과학자들의 모습도 있으며,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비해 의약품 시장에서 개발비용 회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 상품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과학자들의 ‘분신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의약품을 소비하고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는 선진국형 질병이 아닌 경우, 의약품을 연구하고 제조하는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그래서 과거의 역사에서 맴돌고 있는 질병도 계속 존재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인류는 의약품을 통해 생명연장의 꿈을 꾸며, 통증이 없는 질적으로 향상된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의약품이 어떠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은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와의[2] 전쟁을 선포했다. 역사에서 오래도록 인류의 통증을 덜어주었던 진통제는 이제 반대로 돌아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임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새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얼마나 마쳤을까?”
이 책을 통해서 생명연장을 위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로서 앞으로 다가올 ‘의약품’의 미래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