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만큼 우리 삶을 지배하는 학문은 없다.” - 『사이언스 빌리지: 슬기로운 화학생활』 추천사 中
물질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상, 인간은 수많은 물질과 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접하는 모든 물질의 성질은 화학이 결정한다. 그리고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이 접하는 물질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화학’이라는 대상은 일반적으로 그다지 기꺼운 대상은 아니다. 우리나라 교과과정에서도 화학을 중요 과목으로 다루고 있지만, 물리학이나 지구과학과 같은 다른 분과학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어렵고, 대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짙다. 어쩌면 이것은 ‘화학’과 ‘화학물질’이 주는 인공적인 느낌,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화학이라는 학문이 다루는 ‘물질’이라는 것은, 인류와 가까운 만큼,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일도 잦다. 그러한 인식이 ‘화학’이라는 학문 자체에까지 전파된 것은 아닐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화학을 두려워한다.
라돈이 함유된 침대, MIT와 CMIT가 검출된 슬라임(액체괴물),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난 화학사고. 바로 작년인 2018년 한 해만 하더라도, 화학물질과 관련된 굵직한 이슈가 몇 개나 터져 나왔다. 2011년의 가습기 살균제 사고만큼 피해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과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무턱대고 화학물질을, 나아가 화학 전반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작년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국민의무려 15%가 ‘케모포비아(chemophobia)’ 잠재군에 속했다. 스스로 ‘노케미족’을 표방하고 나서는 사람들 또한 많다.
그러나 이런 맹목적인 두려움과 회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십여 년 전, ‘은나노’가 건강에 좋다면서 온갖 가전의 광고에 유행하던 것이 떠오르면서 절로 씁쓸해지고야 마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적 현상이 극에 달했을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2017년 경 한창 화제가 되었던 ‘안아키’ 사태와 같은 것이다. 당시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를 표방하며, 현대의학을 거부하고, 민간•자연요법으로 아이의 질환에 대처하던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과학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안타깝다 못해 씁쓸해지기까지 하는 일이다. 엄연히, 수백 년의 시간동안 인류가 모색해온 고민과 과학적 발전을 그대로 허사로 만드는 일이다.
인간이 다루는 물질들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이 유해성을 가지고, 피해를 일으킨 사실도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무작정 화학과 화학 물질 자체를 두려워하게만 된다면, 그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다. 앞서 이야기한 반도체 공장의 화학 사고에서 사상자를 불러일으킨 물질은 다름 아닌 ‘이산화탄소(CO2)’였다. 자연적으로 존재하고, 심지어 인체에서도 발생하는 물질이다. 그러나 그 취급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재해를 일으킨다. 이처럼 어떤 물질이 미치는 영향이라는 것은 딱 잘라 어떻다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이 우리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에서 출간한 『사이언스 빌리지: 슬기로운 화학생활』은 그러한 앎에 대한 문을 열고자 하는 책이다. 화학을 어려워하는 청소년과 ‘과알못’들에게 화학의 눈을 뜨게 해주고 싶다는 저자의 열망이 가득 담겼다. 아빠와 아이의 대화를 토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질문을 거듭하던 아이는 아빠의 대답을 듣고 이렇게 외친다.
“세상이 정말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게 실감이 나요. 정말 아빠 말대로 주변 물질을 구성하는원자가 눈에 보이는 것 같은데요!”
화학을 알고, 원자를 안다는 것. 나아가 물질을 아는 것에서 자기가 무엇을 취사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들여다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것도 또 없다. 천문학에서 다루는 천체들이나 지구과학에서 다루는 자연 등도 몹시 아름답고, 탐구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들이지만, 화학과 물질들 또한 마찬가지다. 화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돈된 주기율표와 그 안에 숨어있는 세상의 법칙을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 아름답게 정돈된 원자의 구조와 배열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화학을 알게 되면 이처럼, 그제까지 무미건조하기만 하던 대상도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떤 물질을 대하는 태도가 왜 중요한지도, 사소해 보이는 소비습관과 환경 그리고 미래와의 관계까지도 알 수 있다. 종래에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책임도 개개인이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저자의 바람이다.
이 책은 완전히 체계적으로 화학과 물질에 대해 정리해놓은 책은 아니다. 그런 사전이나 교과서 같은 책과는 다른 역할을 표방한다. 아이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질문과 고민은 이 나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고민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궁금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화학이 결코 인간의 삶과 유리된 것이 아님을 깨닫고, 화학을 즐거워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쓴 책이다. 비록 ‘아이’라고 표현했지만, 반드시 아이만을 위한 책도 아니다. 생화학, 고분자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삶과 교접하는 부분을 확실하게 캐치하고 있으므로, 이는 화학을 낯설어하는 모든 이에게 화학으로 가는 문을 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