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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봤니? - 서평
삼체
류츠신 ㅣ 단숨 ㅣ 2013년 9월 15일
회원작성글 BRIC
  (2021-11-08 13:54)

 

휴고상

로버트 하인라인, 로저 젤라즈니, 어슐러 르 귄 ……. 모두 SF나 판타지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작가들의 이름입니다. 주 장르는 조금씩 달랐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요. 바로 휴고상 최우수 장편 부문 수상자라는 것입니다. SF계의 노벨상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권위 있는 상들 중 하나이기에 매년 수상작 선정 투표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데요. 문화와 언어의 차이 때문일지, 권역별 장르 문학계의 규모 차이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시아계 작품의 수상 기록은 없었습니다. (사실 비 영미권 소설의 노미네이션 자체가 월등히 적었습니다.) 때문에 2015년 중국 작가 류츠신의 최우수 장편상 수상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본 글에는 해당 소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지구의 과거’라는 이름 아래 출간된 ‘삼체 시리즈’는 3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중 1부인 ‘삼체문제’ 는 세 부 중 분량도 가장 짧고, 평소 하드 SF에 친숙하지 않은 분들이라도 보통 소설을 대하듯 읽을 수 있는 도입부입니다. 지구 문명 멸망 시나리오의 프리퀄이지요. 이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인류의 모습이 어떤지를 보여줍니다.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찾아내고 이들을 지구로 끌어들이는 주축이 된 사람의 과거와, 지구로 다가오는 위협을 목도하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가 교차되며 흘러갑니다.

지구에서는 물리학자들이 줄줄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자살한 이의 유서에서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어도 평생을 몸담았던 학문을 부정당한 과학자의 절망과 체념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물리학은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유수의 석학들이 자신의 평생을 부정하며 삶을 스스로 마감했을까요. 응용연구학자인 왕먀오는 이들과 한 컨소시움에서 접점이 있었다는 이유로 이야기의 중심 관찰자가 됩니다. 그리고 three bodies (삼체) 라는 제목의 VR 게임을 진행하며 게임 속 문명이 소멸하고 재생되는 동안 이 세계의 물리법칙을 찾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게임 속 세상이 세 개의 항성에 의해 조절되며, 생명체가 살기 가혹한 환경이 되면 게임 속 생명체들은 모두 스스로 탈수되어 다시 적절한 환경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리다 재생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치 곰벌레 같지요.

이 흥미로운 세계는 우주 저 편에 실제로 존재합니다. 세 항성이 존재하는 세계, 항성들의 위치와 관계에 따라 행성 위 문명이 멸망하고 재생되는 것을 반복하는 곳. 냉혹한 환경 속 이들은 생존을 위해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은 탈수시킨 후 소각합니다. 개인의 존엄 대신 문명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입니다. 모행성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에, 이들은 생존을 위한 다른 행성을 찾아내고 점령해야 합니다. 이들과 4광년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지구가 있습니다. 삼체 세계보다는 훨씬 뒤떨어졌지만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서로의 존재를 파악하기에는 아직 양측 모두 기술이 부족하기에, 상대방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신호가 필요합니다. 외계 문명을 찾아내기 위해 지구에서 보낸 전파를 수신, 삼체 문명이 지구 문명의 존재를 인식한 것이 이 긴 이야기의 서막입니다.

하나의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태양계, 그중에서도 태양과 세 번째로 가까운 지구.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기에 여러 기를 거치고 대멸종을 겪으면서도 지구의 생명체들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저 하늘 너머에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이며, 이들을 탐색하기 위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을 가려낼 수 있는 정도의 지식수준에 도달했죠. 이 넓은 우주에, 지구 이외의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없다는 것 또한 말이 되지 않으니까요. 많은 이들이 지구 밖에 사는 생명체를 찾아내기 위해 탐구하는 동안, 많은 이들이 그 생명체에 대한 갖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왔습니다. 세 발 달린 정복 식물 (트리피드의 날)부터, 문어발이 달린 채로 지구를 쓸어버리는 정복자나 (우주 전쟁) 머리는 크지만 마음은 착한 어린이들의 친구 (E.T.) 등……. 초기의 작품들이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의 정복자들에 대해 다루는 빈도가 높았다면, 그 후로는 지성과 다른 문화를 가진 외계 생명체들과 지구의 생명체들이 조우하고 서로를 탐색하는 모습들이 보여지기도 했죠. 그런데, 이런 생명체들이 있다면 왜 우리는 서로를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지구의 우리도 외계로 신호를 쏘아보내며 다른 생명체를 찾아내려 애쓰는데, 외계에 있는 생명체 중 적어도 한 행성에서는 우리보다 더 뛰어난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를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이탈리아 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는 우주에 무수히 많은 행성과 항성이 있다면 지적생명체 또한 우주에 널리 분포하고 있어야 하며, 그중 몇몇은 지구에 도달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묻는 페르미의 역설을 던집니다. 이에 응답하는 다양한 논의가 일어났는데요. 류츠신은 이를 보다 다듬어 ‘암흑의 숲’이라는 이론으로 작품에서 선보입니다. 우주는 지적 문명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철저히 숨긴 채, 열등한 문명이 발견되는 즉시 제거하는 어둠의 숲과 같다는 것. 서로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각 문명들은 서로를 찾아내고 교류하려는 대신 몸을 숨기며 사냥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이론에 도달하기 위해 중요한 공리 두 가지 역시 주창됩니다. 1. 생존은 문명의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2. 문명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되지만 우주의 물질 총량은 불변한다. 마치 아이작 아시모프가 말했던 로봇 3원칙을 떠올리게 하지만,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대신 인류 문명을 그저 잡아먹히거나 남을 잡아먹어야 하는 객체로 바라본다는 데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류츠신의 세계에서 외계 문명과의 조우는 지구 문명의 종말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외계와의 소통을 수행한 과학자는 지구 종말에 책임이 있을까요? 만약 그 과학자가 외계 문명이 지구 문명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통을 재차 강행했다면요?

‘삼체’ 가 비 영미권 소설 최초로 휴고상을 수상한 데에는 작품에 녹아난 역사적 배경과, 작가의 과학에 대한 통찰이 한몫했을 것이라고 강하게 믿습니다. 삼체 1부의 주 관찰자가 물리학자 왕먀오라면, 1부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물리학자 예원제입니다.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본인 역시 뛰어난 물리학도였던 예원제는 문화대혁명으로 아버지를 물리적으로 잃고 어머니를 정신적으로 잃었습니다. 학문이 부정되고 서로에 대한 불신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돌아온 후에도 참회나 인간적인 면모를 찾을 수 없는 세상에서 예원제는 전 인류에게 복수합니다. 외계 문명의 경고에도 재차 그들에게 신호를 송신, 지구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것으로요. 이 주인공이 겪어온 이야기와, 그 복수의 이유를 풀어나가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레 중국 근현대사의 큰 질곡인 문화대혁명과, 문화대혁명이 중국 사회와 한 개인에게 자행한 일들을 따라가게 됩니다. 예원제의 인류애가 송두리째 흔들리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가장 가능성 많고 빛날 수 있던 시기에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차오르던 희망마저 증발되었는데요. 어찌 보면 이 지구 종말 시나리오는 인류가 인류에게 저지른 일들에 대한 보속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보속이 용서를 보증하지는 않지만요.

삼체 문명의 순조로운 지구 정복을 위해 선택된 방식이 ‘인류 과학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라는 내용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폭발적인 속도의 인류 문명과 과학 기술 발전을 저지하기 위해 삼체 세계는 실질적인 무력행사나 첨단 기술 발전을 막는 대신 사람들이 기초과학은 (특히 물리학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혔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삼체 세계가 지구 발전을 막기 위해 보낸 지자 (개조된 양성자)는 실질적인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물질 기초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가속기 연구 결과에 섞여 들어가고, 균일하게 정립되어 가던 물리 법칙을 교란시킬 뿐입니다. 보편적인 물리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 이론물리학자들이 절망하고 삶을 스스로 끝낼 만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기초 연구에 종말이 찾아오면, 표면적인 기술은 진보하는 것처럼 보여도 더 이상 문명은 발전하지 않겠지요. 물질의 심층 구조를 더 깊이 탐구하는 이도, 기초 과학의 수준을 높이는 이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너희는 벌레다!” 라는 삼체 세계의 일갈에 할 말이 없는 건 책 속 인물들만은 아닐 겁니다.

인류의 완전한 멸종을 바랐던 삼체 일부 파와 다르게, 예원제는 보다 나은 외계 문명이 지구에 도달, 자력으로는 개진의 정이 없는 인류 사회를 개조하고 완전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삼체 문명이 그토록 과학이 발전했다면 문명과 도덕 수준 역시 더 높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았던 희망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절망에 빠졌던 물리학자들은, 기술 수준이 낮은 벌레라 할지라도 꼭 인류에게 정복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으며 다시 지구 문명에 희망을 겁니다.

삼체 1부가 우리가 있는 지구의 시점으로 프리퀄을 보여줬다면, 삼체 2, 3부는 점점 하드 SF에 가까워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보다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등장인물들은 삼체 세계의 침공을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인류는 번성하고, 쇠퇴하고, 재생되는 동안 마치 윤회하듯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같은 군상들을 보여주는데, 그럼에도 미약하지만 지속적인 발전이 인류의 갈 길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에 많은 생각이 듭니다. 겉보기에 근사한 첨단 기술이나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초와 사유, 그리고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인간들의 삶이 그 발전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것 또한 그렇습니다. 이런 작가의 전개는 삼체 세계가 지구 문명을 침략하는 데 가장 불리한 부분이 그들의 솔직함과 투명성이라는 데에서 방점을 찍습니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부분이 1부라면, 소설로서의 전개를 따라가는 재미는 2부에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연약한 지구 문명이 어떻게 훨씬 발달한 외계 문명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지금까지 보셨던 외계인들과의 격렬한 전투, 인류를 구하려는 영웅의 희생, 저도 모르게 울컥하게 되는, 삶의 마지막 기로에서도 볼 수 있는 인간들 사이의 굳은 신뢰와 애정……. 이 모든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작가 류츠신은 명실공히 중국 SF계의 대표 작가이며, 근 10여 년간 발표한 작품들로 중국 장르 소설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들이 실린 잡지 SF 세계의 성장 역시 중국 SF계의 발전을 보여주는데요. 책 앞에 놓인 SF 세계 편집장의 서문 ‘초석’에서 단순히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SF계에서 중국의 위상을 끌어올리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초석들을 놓겠다는 업계 종사자의 강인한 의지 또한 엿볼 수 있습니다. ‘큰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다양한 석재가 필요한 법이니, 초석의 종류든 형태든 그 무엇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는 편집장의 변에서 굳건하고 넓은 기상이 느껴집니다. 작가 류츠신의 중국 정부 옹호 및 소수민족 탄압 옹호 뉘앙스의 발언들, 그리고 작품 내외에서 엿보이는 중국 중심적 사고를 생각하다 보면 이들의 대국 굴기 사상을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기에, 씁쓸해지게도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분명, ‘삼체’는 동양적 세계관으로 새로운 우주를 풀어낸 걸출한 소설입니다. 꼭 3부 전체를 읽지 않아도 열린 결말의 소설처럼 1, 2부에 접근할 수 있기에,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1부만이라도 일독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윤하 작가

p.s. 한국계 작가 중에도 휴고상 최우수 장편 부문에 3년 연속 노미네이트된 작가가 있습니다. 이윤하 작가의 ‘나인폭스 갬빗’이 그것인데요. 동양과 서양, 억압과 자유로움 등 정 반대의 개념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한 분위기가 오묘한 작품입니다. SF를 좋아하시고, 영미권이 주류를 이루던 고전 SF계 외에 새로운 작품들을 접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목의 나인폭스는 우리가 아는 그 구미호입니다.

 

 

작성자: 예린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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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자의 서재_더 넓고 깊은 사유를 위한 전공 외 독서
더 넓고 깊은 사유를 위한 생명과학자들의 여유로운 책 읽기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람들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여행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여기, 익숙함에서 벗어나 세상을 넓고 새롭게 보기 위해 책을 읽는 과학자들이 있다. 생물, 분자생물, 약학, 줄기세포, 혈관생물, 암과학 등 생명과학의 여러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의 모임이 바로 ‘탐독사...
회원작성글 담앤북스
 |  07.07 17:27  |  조회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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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생존서" 『바이러스, 사회를 감염하다』
인플루엔자, HIV,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연대기..정보 홍수속 '교양과학' 넘어 "생존 필수지식" 사회가 감염되었다. 은유적 표현이 아닌, 정말로 병원체에 감염되어 사람들이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선포하는 감염병 최고 경고등급,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인 '팬데믹(Pandemic)'은 우리를 패닉으로 몰아넣었...
회원작성글 bios781
 |  07.06 17:06  |  조회 5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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