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서로로 이루어졌어
너는 내 우주야
난 널 우선으로 하고 싶어
넌 내 세상 속을 밝혀줘
콜드플레이 X 방탄소년단 (Coldplay X BTS), <My Universe>의 가사 (워너뮤직코리아 역)
지금으로부터 여러 해가 지나고, 어둠의 세력이 여러 행성을 장악하고는 음악을 금지시킵니다. 대화마저 단절된 암흑의 우주, 그런데 3개의 행성 3개의 밴드가 이 금지령에 저항합니다. DJ 라프리크가 홀로그램으로 이들을 묶어주죠. 침묵의 추격자들에게 쫓기는 동안에도 세 밴드는 함께 노래합니다. “너는 내 우주야.”
우정의 근원
방탄소년단과 콜드플레이의 신곡 <My Universe>의 뮤직비디오 속 스토리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10대를 기억해 볼까요? 나를 둘러싼 친구들을 상상해 보세요. 많든 적든 친구들은 나의 또 다른 세상, 우주였습니다. 영혼의 단짝이 멀리 이사라도 가는 날이면 그 세상은 무너집니다.

『우정의 과학』. 리디아 덴워스(Lydia Denworth) 지음. 안기순 옮김. 흐름출판 (출처 흐름출판)
『우정의 과학』의 저자 리디아 덴워스(Lydia Denworth)는 뇌과학이 밝혀낸 ‘우정’에 주목합니다. ‘우정은 왜 진화해왔는가?’ ‘우정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 두 가지가 이 책의 질문이죠.
우정의 뿌리를 찾으러 갓난아기 때로 거슬러 갑니다. 세상에 처음 나온 우리는 다른 사람과 주변 환경을 이해하는데 시각, 청각, 촉각과 같은 감각에 의존했습니다. 감각을 통해 누가 또는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가는데, 특히 유대감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였죠. 실제로 우리는 엄마가 아기를 쓰다듬는 것처럼 느리고 부드러운 촉각을 좋아합니다. ‘C-촉각신경(C-tactile afferents)’이라고 불리는 신경섬유 때문인데, 토닥거림과 포옹을 할 때 닿기 쉬운 신체 부위에 잘 발달해 있어요. 이 신경섬유가 적절히 자극을 받을 때 유대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죠.

“사회적인 인지 작용, 즉 타인을 보고 이해하고 상호작용하고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 뇌, 근본적인 본성이 하는 일이다.” - 낸시 캔위셔 Nancy Kanwisher | 신경과학자
애착 이론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정신의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친구를 포함한 사회적 관계는 개체 사이에 반복해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이 정의를 따르자면, 부모의 얼굴과 목소리, 사랑스러운 손길로 느꼈던 유대감부터, 아이가 성장하면서 상대방의 눈과 귀를 통해 세상을 보고, 누구에게나 고유의 생각과 관점, 정신세계가 있다고 인식하기까지, 이 모든 것이 우정이 생기기 위한 전제조건인 셈이죠.
유아기에서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협동하는 능력, 더 나아가 친구를 사귈 때 필요한 사회적 기술을 익힙니다. ‘공유된 지향성(shared intentionality)’이라 부르는 이 기술은 타인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협동할 때 필요한 정교한 감정과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한 살 무렵부터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돕는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보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문화적 맥락들을 이해하고 나아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우정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죠.
우정이 필요한 이유
인간에게는 어딘가에 소속되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누구나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싶은 보편적인 마음이죠. 그렇다면 ‘친밀하고, 서로 지지하고, 평등한 관계’, 즉 우정은 왜 지금까지 진화해왔던 걸까요?
2003년 세 명의 영장류학자가 놀라운 사실을 발표합니다. 조앤 실크(Joan Silk), 수잔 앨버츠(Susan Alberts) 그리고 잔 올트먼(Jeanne Altmann)이 개코원숭이들이 행동을 관찰한 결과, 더 좋은 ‘친구’를 더 많이 사귄 원숭이일수록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죠. 철저한 위계질서를 통해 강력한 유대관계가 만들어지는 원숭이 사회에서 서열보다는 친구관계가 번식에 더 유리하다니.

“사회적 유대는 강력하고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공평해야 한다. 우정은 협동을 수반하는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뜻한다.” - 리디아 덴워스(Lydia Denworth), 『우정의 과학』 중에서
연구진은 암컷 개코원숭이 중에서 원만하게 상호작용하는 원숭이일수록 공평하게 털 고르기를 해주며 다른 원숭이들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정감은 유대감과 맞물려 발달하는 경향이 있기에, 강력한 유대 관계가 안정적인 생존 환경을 만들고, 결국에는 갓 태어난 새끼의 생존율을 높이게 되는 것이죠. 단순히 아는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정과 같은 돈독한 관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정을 쌓는 유전자?
이제 유전자의 시선으로 우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정을 쌓는 능력을 지닌 유전자란 존재할까요? 사회학자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와 니콜라스 크리스태키스(Nicholas Christakis)는 인간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성향들의 유전율을 계산했습니다. 이때 일부 성향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밝혔죠. 특히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을 비교했을 때,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식의 차이가 상당 부분 유전적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친구가 몇 명인지는 어느 정도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죠.

“유전자에 대해 우리가 배운 것은, 개인의 미래 모습을 확실히 결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에 대한 민감성을 좌우하기 때문에 개인의 유전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인간 단백질을 형성하면서 한 인간의 기본적인 구조를 배열한다. 하지만 나중에 실제로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떤 단백질이 만들어질지에 관련된 거의 모든 사항은 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세계, 유전 프로젝트가 펼쳐지는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 - 스티븐 콜 Steven Cole | 유전학자
하지만 특정 성향이 친구 관계에 유리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니까요. 누군가는 관심의 중심이 되고 싶어서 인기 없는 네 사람을 선택할 수 있지만, 또 누군가는 친구들이 모두 잘 연결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인기 있는 한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비록 네 사람의 관심을 모두 받진 못하지만 인기의 중심에 있는 친구와 동일한 친구 관계를 형성할 수 있죠. (2)
소셜 브레인, 우정의 뇌
다시 원숭이 사회입니다. 일종의 보상(reward) 게임으로, 원숭이들에게 상대방 또는 자신에게 보상을 주는 옵션과 누구에게도 보상을 주지 않는 옵션을 주었습니다. 눈치채셨나요? 원숭이들은 아무도 보상을 받지 않는 것보다는 다른 원숭이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것을 훨씬 선호했습니다. 뇌가 활성화되는 패턴을 읽으면 이러한 현상은 분명해집니다. 상대방의 문제를 인식하는 상측 두구(superior temporal sulcus), 상대방의 경험을 해석하는 전측 대상회(anterior cingulate), 그리고 감정을 일으키는 편도체까지. 아마도 원숭이들은 다른 원숭이가 보상을 받는 것을 보며 자신이 경험할 수도 있는 보상을 대신 받는다고 느꼈을지 모릅니다. (3)

“친밀감은 타인을 자신에게 포함시키는 것이다. 뇌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친구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일부분이다.” (4)
우리가 복잡한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생명체로 진화했다면, 서로의 마음을 예리하게 읽을 수 있는, 그래서 나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친구가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친구 관계인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낯선 환경에 놓고 위협을 가하면 실제로 위협을 받든 안 받든 비슷하게 뇌가 활성화되죠. (4) 나아가 동일한 클립영상을 보여주었을 때에도 두 사람의 활성화된 뇌 영역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습니다. (5) 우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을 아니지만, 친구는 나와 비슷한 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과장일까요?
우린 서로로 이루어졌어
“각자의 삶에는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든 상관없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확장, 해석, 영혼인 친구가 한 명 있다.”
이디스 워튼 (Edith Wharton), 『A Backward Glance』 중에서
뇌과학을 통해 우리는 우정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시각, 청각, 촉각과 같은 감각을 통해 사람과 환경을 이해하고, 이렇게 쌓아온 사회성을 토대로 우정을 키워갑니다. 그동안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변하죠. 우리는 우정을 쌓는 유전자를 지녔으며,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환경에 반응하며 그 유전자를 적절히 발현합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는 과정 속에 있는 신경 세포와 화학 분자들의 작동 원리도 알아가고 있죠.

우정이란 이름으로 수놓아진 별은 나의 어두웠던 세상의 빛이 되고 나의 우주가 된다. 사진은 콜드플레이 X 방탄소년단(Coldplay X BTS)의 <My Universe>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우리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다른 누군가와 상호작용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존재들이죠. 따지고 보면 우정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DNA를 통해 ‘우정’이라는 유산을 물려받고, 서로 관계를 맺으며 우정을 완성해갑니다. <My Universe>의 가사처럼, “우린 서로로 이루어졌습니다." 누군가가 나의 우주가 되고 별이 되어 내 세상을 환하게 비춰준다는 따뜻한 이야기. 어두컴컴한 두개골에 갇혀있는 우리의 뇌에게 친구라는 존재가 필요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주
1. Silk, Joan B., Susan C. Alberts, and Jeanne Altmann. "Social bonds of female baboons enhance infant survival." Science 302.5648 (2003): 1231-1234.
2. Fowler, James H., Christopher T. Dawes, and Nicholas A. Christakis. "Model of genetic variation in human social network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6.6 (2009): 1720-1724.
3. Tremblay, Sébastien, K. M. Sharika, and Michael L. Platt. "Social decision-making and the brain: A comparative perspective."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21.4 (2017): 265-276.
4. Beckes, Lane, James A. Coan, and Karen Hasselmo. "Familiarity promotes the blurring of self and other in the neural representation of threat." Social cognitive and affective neuroscience 8.6 (2013): 670-677.
5. Parkinson, Carolyn, Adam M. Kleinbaum, and Thalia Wheatley. "Similar neural responses predict friendship." Nature communications 9.1 (2018): 1-14.
곁들이면 좋을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지음. 박한선 옮김. 디플롯
『애착』. 존 볼비 지음. 김창대 옮김. 연암서가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살림
『착한 인류』. 프란스 드 발 지음. 오준호 옮김. 미지북스
『진화한 마음』. 전중환 지음. 휴머니스트
작성자: 뇌과학의시선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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