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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봤니? - 서평
젊은 과학자에게
피터 브라이언 메다워 저/조호근 역 | 서커스출판상회 | 2020년 01월 31일
회원작성글 BRIC
  (2021-03-31 15:58)

조직을 다른 개체에게 이식하면, 수여자는 비자기 조직을 거부합니다. 수여자의 면역계가 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요. 더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자신을 거부하고 공격하지 않기 위한 능력은 우리의 발생 과정 동안 학습된다는 것도 기억나실 겁니다.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고, 고등학교 때 배우기도 하는 면역계에 대한 내용이지요. 후천성 면역 관용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위원회는 1960년 프랭크 맥팔레인 버넷과 피터 메더워 경에게 공동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여합니다.
 

언제나 젊어야 할 과학자에게


그런데 이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 중 한 명은 학위를 받기까지 꽤나 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피터 메더워 경은 1941년 thesis 심사를 받았지만, 1947년이 되어서야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고 합니다. 급성 맹장염으로 인해 수술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박사 학위 지불금을 낼 돈으로 수술비를 충당하고, 교수가 되기 전까지 ‘그저 평범한 무명씨’로 남았다고 하네요.1) ‘다들 학위를 취득하는 유행과 상당히 동떨어진 행동이었지만, 내 은사인 J. Z. 영 역시 박사 학위가 없었다’는 말을 보니, 학위 미취득은 단순히 수술비가 모자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격에 불과할 학위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그는 디펜스 후, 학위 수여 이전부터 머들렌 칼리지의 펠로우였으니 연구 활동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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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메더워 경의 저서 ‘젊은 과학자에게(원제: Advice to a Young Scientist)’는 작가 공인 ‘내가 처음 연구를 시작하던 시절에 읽었으면 좋았을 이야기를 지면에 옮긴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이 대가가 들려주는 내용들은 목차만 봐도 모든 과학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지요. 과학 연구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고, 어떤 주제를 연구해야 하는지. 과학계 종사자의 일상과 예절, 그리고 업계에 만연하는 차별에 대해 어떤 의견인지. 발표, 실험, 연구법, 그리고 각종 상이나 보수와 같이 보다 실제적인 얘기들도 있습니다.

첫 장에서 저자는 명확하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매드 사이언티스트라 부르는 사악한 과학자는 허상이며, 개인의 복지나 보상은 개의치 않고 오직 진실과 숭고한 목표만을 추구하는 과학자상 역시 허상이라고요. 단일한 과학자 집단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직군들처럼 그 성질에 있어 실로 다양한 집단이라는 작가의 주장은 어쩌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성질을 갖고 있음에도, 우리가 과학자라는 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작가가 설파한 자질들을 갖춰야 하지요.

대학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해내야 될 일의 범위가 갑자기 변한 것이었습니다. 학부 연구참여생으로 실험실에 있을 때에는 분명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하면 됐고 어느 정도 실험도 손에 익었다고 생각했는데, 입학 후 따져보니 아직 내가 하는 일의 의미도 잘 숙지하지 못했던 데다가 문헌을 찾고, 논리를 세워가며 실험량도 달성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주제를 연구하거나 실험을 수행하려면 내용을 알아야 되는데, 매일 주어진 일만 급히 마무리하다 보면 새로운 내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준비가 덜 되었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뒤로 미뤄 놓기 일쑤였죠. 이렇게 밀린 일들은 꼭 결과를 봐야만 하는 예정 기한이 생기기 전까지는 손에 대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값비싼 시약을 사용하고 새 실험을 시도하다가 실패할까 두렵기도 했지요.

참 우스웠던 점은, 손에 파이펫을 잡고 새로운 실험을 수행하는 그 순간에도 제 자신이 준비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실험을 진행하기 시작하면, 왠지 모를 가속도가 붙으며 어떻게든 결과를 보게 되지요. (보통 꼭 결과를 봐야 하는 예정 기한은 지도교수님과 해당 결과를 이용해 연구 관련 논의를 진행해야 할 기한에 맞추게 되고, 데이터 정리는 미팅이 다가올수록 속도가 붙더군요.) 연구에 능숙해지고 싶다면 ‘준비 과정’을 열심히 수행하는 것보다 실제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글을 보며 많이 찔렸습니다. 설령 독창적이지 않더라도 일단 결과를 내면 자신감이 상당히 상승하게 되어 있다는 것, 실험실에 계셨던 분들은 다들 공감하시겠죠. 이런 적응 단계를 넘어서면 다른 이들과의 공동 연구에서도 조금씩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됩니다.

조직 활동의 동반 상승 작용을 통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남들 뿐 아니라 나 또한 좋은 공동 연구자여야 하며, 다른 이들도 나의 단점을 참아 주고 있다는 것을 계속 되뇌이는 사람이라면 늘 함께 공동연구를 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내가 그런 공동연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1915년, 세계 1차 대전 시기에 태어난 경이 이미 랩 테크니션과의 협업과 정당한 대우에 대해 설파하고 있는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도덕 및 계약 의무’와 ‘진실’ 항목은 의문의 여지 없이 우리가 지켜야만 하는 부분이기에, 다른 동료들이 비윤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면 더 쓰라리게 다가올 내용입니다. ‘계약의 의무와 옳은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상충할 때가 있겠지만, 이 문제의 해결책은 도덕적 딜레마가 발생하기 ‘전에’ 고민해야 하는 것이며,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연구에 참여해 놓고서 훗날 그 사실을 개탄하는 이들의 언사는 공허하고 설득력 없게 들릴 뿐이라는 것.’, ‘가설에 대한 확신의 강도는, 그 가설의 진실성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것.’ (강조점이 찍힌 단 두 개의 문장 중 하나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기로에 섰을 때 우리 업계는 언제나 윤리적으로 옳은 선택을 해 왔던가요. 

늘 젊은 정신을 유지하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 어떤 식으로 나이 들어야 할 지, 그리고 모두가 불평을 늘어놓는 연구 외 행정 혹은 기타 업무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지 읽다 보면 40년 전과 지금 과학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에 대해 비교하게 되고, 그 본질이나 대처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5장에서 이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고용주의 출산휴가 처리 방식 및 탁아시설 제공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는 조언이나, 과학자와 결혼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할 그들의 특성 등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네요. 성차별과 인종차별, 국수주의의 근거 없음에 대한 논증을 읽다 보면, 다른 분야에 이 논증을 널리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박사 학위 취득’ 유행이 지나가고, ‘포스트닥’이라는 새로운 유행이 왔으며 우리는 이 무조건 긍정적인 혁명이 앞으로 학계에 의해 망가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야 할 것이라는 말은 일말의 무상함과 함께 씁쓸함도 느끼게 합니다. 2000년대에는 어느새 ‘포스트닥’ 유행이 지나가고, ‘포스트닥 인턴’이라는 도무지 모를 신조어가 도입되었네요.

4장부터 7장이 과학자의 삶과 태도에 대한 조언이라면, 8장부터 11장은 연구 과정에서 우리가 직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조언들이 담겨 있습니다. 발표, 실험과 발견, 수상과 보수…….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도 매일 고민하는 부분이죠. 깨지거나 지문이 묻은 슬라이드를 사용하지 말라든지, 우편 시스템을 믿고 논문 원고를 보내라거나 하는 세부 내용들은 시대의 흐름을 느끼게 하지만, 정확하고 간결하게 논문을 작성하라거나, 절대로 원고를 그대로 읽는 식으로 발표하지 말 것 (강조점을 찍어 강조한 단 두 개의 문장 중 두 번째입니다.), 그리고 값비싼 설비와 밤낮없는 노력을 투입하기 전 그 실험이 정말 수행할 가치가 있는 실험인지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점들은 우리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이겠지요. 11, 12장은 어찌 보면 철학적이기도 합니다. 과학자라는 집단과 이 집단이 추구하는 이상향에 대해 (물론 각각의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이상향들에는 모두 차이가 있지요), 그리고 과학적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여러 종류의 가치관들에 대한 동시대를 살아가던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1960-70년대는 칼 포퍼와 토마스 쿤이 각각 걸출한 저작들을 내고 지적인 논쟁을 펼치던 때이기도 하지요.

꼬장꼬장하고 냉소적인 위트로 가득 찬 조언이지만, 읽는 내내 즐거웠던 건 저자가 진정으로 젊은 과학자와 동료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직접 말해주지 않을 내용들을 툭툭거리는데도, 실제로 만나 다양한 주제에 대해 논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요. 만약 내가 그의 관점이 진지한 비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정중하게 증명해 낼 수 있다면, 이 과학자는 그 무엇보다 나와의 대화를 높이 평가해 줄 것 같습니다. 작가 본인이 쓴 대로요. ‘젊은 과학자에게 주는 조언’이라는 제목대로 이 책에는 갓 과학에 발을 들인 젊은 이들이 마음에 담아야 할 조언들이 가득하지만, 경력이 쌓인 후에도 젊은 연구자의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곁에 두고 싶은 이야기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온갖 종류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늘 원래 상태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하지만 주변 사회에서 그닥 큰 관심을 얻지는 못할 수도 있는 과학자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의미란 무엇일까요. 작가의 말로 그 대답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과학자의 삶은 최고급의 만족감과 보상을 제공해 줄 수 있으며(보상이란 물질적 보상을 배제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추가로 자신의 모든 열정을 한 곳에 쏟을 때의 충만함도 맛볼 수 있다.’

 

Ps1. 작가가 ‘유행에 뒤떨어지게도 학위는 없는’ 은사로 언급한 John Zachary Young은 신경해부생물학의 큰 기둥입니다. 두족류의 거대축삭을 발견했고, 무척추동물의 신경계 연구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피터 메더워와 동일하게 옥스포드 머들렌 칼리지에서 수학했었고, 그가 강의하며 연구하던 때 피터 메더워가 같은 칼리지에서 동물학을 전공하며 영과 함께 학문에 한평생 투신했습니다. 1997년 네이쳐에 실린 부고를 보면, 동료들이 그와 함께 ‘scientific family’로 함께한 시간이 어땠을지 짐작이 갑니다.2) 재커리 영의 친척인 토마스 영은 의사로 일하며 이중 슬릿 실험을 수행하고 빛의 간섭 현상을 발견했으며, 악기 조율법(평균율)을 알아내고 샹폴리옹과 같은 시기 로제타석을 이용한 상형문자 해독에 기여했습니다. 근대의 르네상스형 인재였네요.

Ps2. 책을 읽다 보면 동시대인들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살짝 엿볼 수 있는데요. ‘과학혁명의 이해’로 당대 파란을 일으킨 토마스 쿤에 대한 비판도 그렇지만, 지금은 다양한 이유로 학자로서의 명성에 빛이 바랜 제임스 왓슨에 대한 언급이 흥미롭습니다. 대놓고 편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비판하고 싶지도 않은, 어찌 보면 옹호에 가까울 태도랄까요.

Ps3. 정확하고 간결한 논문 작성도 어려운데,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이를 작성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영어 작문은 또 하나의 고민거리일 것 같은데요. William Strunk Jr. 의 The Elements of Style은 출간된 지 수십 년이 넘은 고전이지만 여전히 우리가 참조할 만한 (그리고 왠지 이 책과 비슷한 종류의 위트가 흐르는 것 같은) 책입니다. 각종 쓰기 규칙 뿐 아니라 표현, 문장 부호 등의 용례가 헷갈릴 때마다 큰 도움이 됩니다.

 

1) Just a Human Being, Paidagogos, The Expository Times(1986) 
https://journals.sagepub.com/doi/pdf/10.1177/001452468609701133 
DOI:10.1177/001452468609701133 

2) https://www.nature.com/articles/41905

 

작성자: 예린 (필명)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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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브라이언 메다워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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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작성글 용기있는사람  (2021-04-11 06:14)
1
좋은 책입니다만 1960년에 노벨상을 받은 메다워가 쓴 책입니다. 지금은 2021년이니 벌써 환갑이 넘은 책이니 다른 시대상황을 고려하고 재미로만 읽기 바랍니다. 재미로 읽기도 어려울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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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없애는 것과 환자를 살리는 것의 차이 크레타에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迷宮)이 있었다. 미궁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둬두기 위한 것이었다. 아테네는 크레타에 매년 일곱 명의 소년과 일곱 명의 소녀를 공물로 보냈는데, 미궁 속 미노타우로스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이 비극을 막으려 크레타로 향한다. 테세우스는 두 가지...
회원작성글 bios781
 |  2020.09.11 14:31  |  조회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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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학에 대한 입문서 추천 부탁드립니다.
고등학생인데 면역학에 관심이 있어 아바스 면역학 등을 보니, 좀 어렵다는 느낌인데   면역학 입문자가 볼 만한 다소 쉬운 개론서나 ...
회원작성글 밝음지혜
 |  2020.09.09 18:14  |  조회 96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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