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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봤니? - 서평
우주비행사의 지구생활 안내서
크리스 해드필드 저 | 더퀘스트 | 2014년 12월 10일
회원작성글 BRIC
  (2021-03-11 11:30)

[아주 사적인 책 편지] 부정적 사고와 두려움의 힘

지금은 ‘인플루언서’의 시대라고들 하죠. 학생들의 장래희망이 유튜버가 된지는 꽤 오래 되었고, 예전에는 분명 존재하지 않았던 포지션인, SNS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에게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이 부여될 만큼 SNS와 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영향이 큽니다. 과학계 역시 예외는 아닌데요, 각종 과학 실험이나 관련 영상들을 게시하는 과학 유튜버, 과학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과생 밈을 게시하는 SNS 등 다양한 채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전에는 비전공자들이 접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과학계 인플루언서 중 가장 큰 예산을 사용해서 컨텐츠를 만든 사람이라면 단언코 이 사람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캐나다 출신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지요. 직업을 들으니 다른 인플루언서들은 절대 이 사람보다 큰 예산을 쓰지는 못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시죠? 이 사람의 컨텐츠 중 가장 유명하고, 아마 가장 많은 사람이 봤을 영상이 바로 우주에서 촬영한 최초의 뮤직 비디오, David Bowie의 노래를 개사한 Space Oddity1)입니다. 공개 사흘 만에 천만 명이 감상했다는 기록을 세웠지요. (2021년 3월 8일 기준 조회수가 4천 8백만을 넘어섰네요.) 이 우주비행사는 전 국제우주정거장 사령관이자 (Commander for Expedition 35) 4천 시간에 달하는 우주 체류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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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Space Oddity (원곡: David Bowie)1)


그런 작가가 ‘우주비행사의 지구생활 안내서’라는 제목의 책을 쓴다면, 그리고 그 책의 부제가 ‘나는 우주 정거장에서 인생을 배웠다’라면, 왠지 한 대단한 인간의 실패 없는 (종종 본인이 겪은 실패와 역경에 대해, 그리고 그걸 헤쳐나온 본인의 경험에 대해 역설을 토하며 ‘하면 된다’는 걸 독자에게 소리치는) 수기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상투적인 자기계발서 내용이면 시간 아깝겠는데, 하지만 전세계가 주목하는 우주 정거장 생활에 대해 얘기할 테니 디테일은 흥미롭겠다는 다소 삐딱한 생각과 함께요. 하지만 일반적인 자기계발서를 그닥 즐겨 읽지 않으시거나, 일과 삶이 확실하게 분리되지 않는 종류의 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늘 마음 한켠에 두려움을 안고 있다면 이 책은 분명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앞서 지레짐작한 내용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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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힘은 작가가 던져 놓은 목차에서부터 나옵니다. ‘부정적 사고의 힘’, ‘사소한 일에 진땀을 빼라’, ‘목표는 제로’, ‘사다리 내려가기’……. 보통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려면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내용들이지요. 그러나 ‘본질적으로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다 죽을 수도 있고, 실제로 이를 대비한 죽음 시뮬레이션을 훈련의 일부로 삼는 우주비행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모토들입니다. 극미량의 김서림 제거제 때문에 우주 유영 중 시야가 완전히 봉쇄되고 유영을 중단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기도 있고, 해진 고무 패킹이나 기포 때문에 로켓이 폭발하고 탑승자가 전원 사망하기도 하니까요.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목숨이 걸려 있는데, 어떻게 그냥 넘기겠어요. 그렇기에 우주비행사라는 직업은 본질적으로 두려움과 매우 가까운, 늘 긴장되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땅에서 겪는 모든 일들을 한 단계 매운 맛으로 겪는 느낌일까요. 책의 내용들은 이런 매운 맛 우주정거장에서 그가 배운 지구 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용 하나하나가 모두 빼놓을 곳이 없지만, 목차에서부터 와 닿는 위 네 가지 모토들과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에 대해서만 이 지면에 풀어볼까 합니다.

실험실은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만큼, 부정적 사고와 두려움을 기르기에도 최적인 장소입니다. 사소한 실수부터, 예측할 수 없던 실험의 실패나 스쿱, 중대한 가설 오류를 겪다 보면 늘 긍정적인 자세와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붙어있는 동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지요. 그렇기에 학위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다는 사람들은 찾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추억이 보정된다고 하더라도요.) 모든 것이 정확하게 통제되어야 하고, 매 순간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실험이 실패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떤 것에 준비가 되어 있고, 열심히 한다는 게 꼭 성공할 수 있단 뜻은 아니라는 걸 몸으로 배우는 단계지요. 그리고 이 실험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를 위한 계획을 동시에 짜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제대로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지 이해한다는 뜻이며, 이에 대처할 계획이 있다는 뜻이다.’ 많이들 느끼셨던 부분 아닐까요. ‘유일하게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대처할 계획을 마련해 두지 않은 상황 뿐이다.’ 역시 같은 이야기지요. 작가는 우주 비행과 이를 위해 수행한 평생의 훈련 동안 실패를 떠올리고, 이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찾아왔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부정적 사고 덕분에 일이 잘 될 때도, 잘못될 때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일에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턱대고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있고, 두려움을 줄일 수 있는 사고 방식 아닐까요. 우리가 실험실에서 몸으로, 머리로 배워 온 것이기도 하고요.

사소한 일들이 실제로 수천 억의 예산을 불태우고 목숨을 앗아가는 우주 비행이기에, 사소한 것에 진땀을 빼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의 실수가 모두의 분석 대상이 될 수 있고, 실수를 저지른 당사자는 공격받고 있다는 느낌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실수를 배움의 기회로 여길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실수에 대해 쉽사리 잘잘못을 따지는 대신 이 실수에서 배워 더 큰 실패를 막을 수 있다면 이 실수는 모두를 위한 거름이 되겠지요. 나사는 성과보다는 교육을 강조하는 조직 문화를 지닌 곳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이 조직이 나아가는 길이 보입니다. 실수를 개인을 비판할 용도로 이용하지 않고, 남들의 비판을 감정을 배제한 채 받아들이는 것. 사소해 보이는 수치와 결과에 연구의 사활이 걸려 있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생존 기술이 아닐까요. 물론 실수와 의도된 잘못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우리는 서로를 평가하고, 분류하게 됩니다. 작가의 ‘걸핏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마이너스형’, ‘균형을 깨지 않는 제로형’, ‘이로운 일을 하는 플러스형’ 이라는 분류법은 직설적이지만 참 와 닿는 분류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플러스형의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사람들의 목표의식이 뚜렷한 집단일수록 더 그렇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경쟁의 정점에 서 있던 작가는 제로형 인간을 목표로 삼는 것의 타당성에 대해 역설합니다. 야단스레 들이닥치는 것보다 물결을 일으키지 않고 들어오는 것이 이상적인 진입이며, 주의 깊게 관찰하고 배우다 보면 플러스형의 인간이 될 기회가 더 잘 생긴다는 작가의 말은 비단 우주에서뿐 아니라 지구에서도 맞는 말이지요.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면, 늘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긴장해 있고 성마르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긴장하다 보면 늘 동료들과 텐션이 엇나가거나 사고를 치게 되지요. 대단한 사람이 되기에 앞서 유능해지는 게 먼저입니다. 물론 동료들과 잘 협력하고,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대단히 유능한 사람이고요. 플러스형 인간이 되더라도 늘 지혜롭고 겸손하게 처신하는 것, 정말 유능한 사람만이 가지는 능력 아닐까요.

이런 우주 생활을 보내다 보면 다시 지구로 돌아와야 할 때가 옵니다. 우주비행사들은 귀환하면 어떻게 될까요? 엄청난 훈련을 받고, 현장에서 능력도 증명했으니 다음 비행을 준비할 것도 같고, 후배 비행사들을 관리할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가 지구에서 소임을 다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들이 지원팀에 재배치된다는 것은 책을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에요. 지구로 돌아와 우주에 나아가 있는 이들의 임무를 지원하고 촉진한다는 것. 분명히 뜻 깊고 중요한 일이지만 우주에서 보내던 시절보다 눈에 덜 띄고, 화려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조직의 관점에서 타당한 조치이며, 개인이 아닌 전체의 목적을 위해 팀워크를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작가의 설명을 보면, 한 집단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데 효과적인 체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거창하고 눈부신 순간들은 그때 즐기고 축하하면 그뿐이라는 얘기는 그런 순간을 겪어보고, 그 후 새로운 자신의 소임을 다해 본 이만이 할 수 있는 말이겠지요.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실험실에서의 가르침이 또 한 번 마음에 박힙니다. 

작가가 안내하는 지구 생활은 분명히 우리의 실험실과 많이 닮아 있고, 업의 본질 역시 동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작가가 우주정거장에서 배운 인생은, 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우리가 실험실에서 배워야 할 것과 같다는 생각도요. 이런 목적과 업무 중심의 삶을 살다 보면 (혹은 실험 스케줄 중심의 삶을 살다 보면)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종종 뒷전에 두게 됩니다. 물리적으로 시간을 내기 불가능해질 때도 있지요. 이를 위해 가족 구성원들은 인내하고 희생하며, 함께 보내는 시간을 포기합니다. 가정이 가장 후순위로 밀리는 거지요.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 역시 영원하지는 않은데, 우리는 종종 이들과는 언제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작가가 우주 생활에서 얻은 중요한 교훈으로 글을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등에 업고 목적을 추구할 때에는, 말로 가끔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때그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번번이 놓친다면, 언젠가는 아주 화려한 축배로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의 지지와 성원에 감사를 표한다 해도 통하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

 

Ps1. 교훈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지만, 책에는 우주비행사가 아니라면 얘기할 수 없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우주 정거장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우주비행사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한 분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Reference

1) ColChrisHadfield. (2013, May 12). Space oddity. Retrieved March 11, 2021, from https://www.youtube.com/watch?v=KaOC9danxNo


 

작성자: 예린 (필명)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태그  
#부정적
 
#두려움
 
#우주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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