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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봤니? - 서평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저/김은령 역 | 김영사 | 2020년 09월 04일 |
회원작성글 BRIC
  (2021-02-17 11:31)

2016, 2017년 과학 도서 중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책이라면 단연코 호프 자런의 랩 걸을 들 수 있지 않을까요. 식물학자인 저자가 식물에 대해, 그리고 본인의 삶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담담하면서도 뜨거웠지요. 실험실에서 보내는 삶의 치열함은 과학도가 아닌 이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고, 실험실 생활에 대해 아는 이들에게는 가슴 깊은 공감을 주었지요. 각종 매체들에서 올리버 색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찬사들이 쏟아진 건 책을 홍보하기 위한 과장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작가가 작년 말 ‘The Story of More (역서 제목: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라는 제목의 두 번째 책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언제까지나 풍요로울 수 있도록


책의 목차를 보면 작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지요. 생명이라는 대주제에서 시작해 식량, 에너지, 지구로 연결되는 목차를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번 책은 환경 문제와 지속 가능한 지구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도 이 책은 작가가 진행했던 기후변화에 관한 수업과 관련이 있다고 책의 서두에 쓰고 있지요. 연도를 볼 때 아마 하와이 주립대학에서 진행했던 수업일 것 같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듣고 있고, 너무 많고 공허한 이야기들이 떠다녀서 이제는 두려움조차 잃어버리게 된 것 같은 ‘환경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호프 자런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본인의 메시지를 전달할 지 궁금해집니다.

70억의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지구. 그 지구 위에는 인간도 있지만, 다른 생명들도 있고, 우리는 그 생명들에 삶을 의탁합니다. 직접적으로 먹어서, 혹은 간접적으로 사용해서요. 내가 먹는 식량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쌀은 논에서, 야채는 밭에서, 동물들은 농장에서 자라는 줄 알지만 그 땅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호프 자런의 고향 미네소타 하트랜드의 주 산업은 농업과 도축업입니다. 어릴 때부터 작가는 계절이 지나가고 생명이 순환하는 모습을 봐 왔고, 이야기 역시 여기서 시작합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들을 먹여 살릴 식량 역시 훨씬 많이 생산되어야 했고, 오늘날 단위 면적당 수확량은 작가가 태어난 1969년 대비 적어도 두 배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어떻게 같은 땅에서 작물을 키우는데 이렇게 수확량이 증가할 수 있었을까요? 작가가 간결하게 답합니다. 예전보다 농작물을 더 잘 키우고, 더 잘 보호하며, 농작물 자체를 개선했기 때문이지요. 비료와, 농약과,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요. 수확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작물을 조작하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지만, 현대 농업에서 이 문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건 우리가 기존보다 너무 빠른 속도로 작물들을 개량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약물을 사용하면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 역시 함께 낳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풍요로움을 손에 넣은 우리는 다시 전통 작물과 비슷한 영양가의, 깨끗한 식재료를 위해 전통적인 농업 방식으로 키운 재료에 돈을 더 지불합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그러나, 더 이상한 일은 이렇게 키워낸 식량들이 모두 인간의 위장으로 들어가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공 옥수수를 포함하더라도 인간은 매년 미국에서 생산하는 옥수수의 10% 밖에 소비하지 못하고, 남은 양의 절반은 살아 있는 생물의 먹이로 사용되지 못하며, 1억 명의 사람이 1 년 간 먹을 수 있는 양의 옥수수는 바로 거름 형태로 전환된다’는 이야기는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동물성 식품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1969년 대비 육류, 계란, 각종 동물성 식품 모두 생산량이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더 적은 개체로 이만큼 생산량을 증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역시 가축들을 더 잘 먹이고 잘 보호하며 동물 자체를 개량해야 합니다. 닭도, 송아지도, 돼지도 50여 년 전과 비교하면 근본적으로 다른 생물체에 가깝다는 작가의 말이 과장은 아닐 거에요. 온전히 인간만을 위해서 바뀐 것들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인간을 먹일 1억 톤의 육류를 생산하기 위해 우리는 10억 톤의 곡물을 동물에게 먹이고, 3억 톤의 분뇨를 만들어내고, 엄청난 양의 항생제를 사용합니다. 어류는 어떤가요. 전세계 연어 생산량이 1970년대 대비 20,000 % 가량 증가했다는 수치는 믿기 어렵지만, 전통적으로 연어를 전혀 소비하지 않던 우리 나라에서조차 연어가 흔한 식재료가 된 걸 보면 당연할 듯싶습니다. 1 kg의 연어를 키우기 위해 3 kg의 먹이를 먹여야 하고, 3 kg의 먹이를 만들기 위해 15 kg에 달하는 물고기를 갈아야 한다는 사실에 이르면 이런 섭취가 유쾌하지만은 않게 느껴집니다. 단순히 어떤 생선을 예전보다 많이 먹게 되고, 그 결과 양식량이 증가하고, 식생활 습관이 바뀌고 있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요. 이렇게 풍족하게 생산되어 우리의 곁에 자리하는 음식물들은 과연 가치 있게 쓰임을 다할 수 있을까요? 작가에 따르면 ‘연간 전 세계에서 낭비되고 폐기되는 곡물의 양은 인도에서 필요로 하는 양과 맞먹고, 매년 버려지는 과일과 채소의 양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필요로 하는 양과 비슷하다’고 하는데요. 우리는 왜 먹을 의도가 없는 음식을 위해 땅을 갈아야만 했을까요. 그리고 왜 그 후에 수반되는 수많은 일들을 해야 했을까요. 만들어낸 모든 것의 절반 가량을 버리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겠지요.

‘생명’과 ‘식량’ 파트에서 이만한 이야기가 나왔다면 다른 파트의 내용 역시 감이 오실 겁니다. ‘에너지’ 파트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지, 40여년 전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로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인공적인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읽을 수 있습니다. 작가가 제시하는 명확하지만 쉽게 머리에 박히는 수치들과 함께요. 이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우리는 또 생명을 이용하죠. 그리고 연료를 이용해 무언가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들을 생산해 냅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다시 쓰레기통으로 던져지기 위해 생산될 뿐입니다. 지구는 어떤가요? 올해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밖이 추웠더라도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태워 실내를 데웠을 테니 우리가 대부분 보내는 시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겠지만요. 지구 표면의 온도는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고,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에너지를 사용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교토 의정서와는 상관없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파리 협정 탈퇴는 굉장한 이슈였고 바이든은 임기 첫날 파리 협정 복귀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파리 협정 이후로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지금만큼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지금 하는 것만큼 폐기물을 늘리고, 먹지 않을 식품을 생산하고, 쓰지 않아도 될 에너지를 사용하며 이를 생물지구화학적 부채로 남겨 놓아야만 하니까요. “나는 그저 과학을 하는 여성이지만, 대중이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들려면 대중에게 두려움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는 작가의 말은 이 사태의 본질을 잘 드러내 줍니다. 실질적인 두려움과 삶에 대한 위협이 없다면 우리는 이 풍요로운 삶을 쉬이 고치려 하지 않겠지요. 다회용기 사용을 위해 새로운 다회용기를 구매하는 세상이니까요. 우리가 풍요로워지는 동안 지구는 정말로 달라졌습니다.

작가는 각 챕터의 마지막 마다 지구가 변화하고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풍요로움 대신 지구의 풍요로움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설파합니다. 자칫 교조적이거나 훈계로 보일 수 있는 책의 내용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겠지요. 작가가 풀어서 던지는 통계 자료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주장은 논리적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 책 내용은 단순히 환경 보호를 해야 한다는 슬로건이 아니라 작가 본인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독자를 가르치기 위한 내용이 아니라, 정말로 결론이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들이지요. ‘랩 걸’ 만큼 가슴을 직접 치는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읽는 동안 머리로 생각한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랄까요.

COVID-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배달 업계와 포장 전문 식당, 다양한 형태의 홈쇼핑 업계 매출은 오히려 상승했다고 합니다. 나가지 않고 물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 된 시기죠. 근 몇 달 간 집에서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적지 않은 폐기물의 양에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너무 깔끔하고 맛있게 오는 배달 음식을 먹으며, 이 음식을 이렇게 제공하기 위해 사용된 여러 개, 여러 종의 플라스틱을 동시에 버렸고, 인터넷 쇼핑물에서 물품 별로 택배 박스를 받아 물건 부피의 몇 배에 달하는 포장재를 버렸지요. 이들이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뉴스를 계속 보면서도 배달 음식의 빈도를 줄이거나 택배로 받을 물품의 개수를 줄여야겠다는 마음이 행동에 바로 반영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동안 박스 품귀 현상으로 인해 골판지 회사의 주가는 상승했고, 저는 일회용 수저 사용을 줄여보겠다는 이유로 새 수저를 구입했습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환경 문제에 대해 양가적인 느낌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지구를 지켜야 된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거의 모두가 동의하겠지요. 하지만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라면, 당장은 어쩔 수 없고 이 행위가 꼭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며 눈 앞의 풍요로움을 모색하게 되더군요. 늘어나는 폐기물의 양을 줄여보기 위해 다회용 택배 박스와 포장 용기 도입, 다회용기 사용 우대 등의 방안이 시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일회용품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애매한 형태의 죄책감을 느끼고는 있지만 삶의 풍요로움을 계속 영위하게 된달까요.

‘랩 걸’의 작가 호프 자런의 신간은 그 자체로 반가웠는데, 신간의 내용이 너무나 시의적절했습니다. 우리가 풍요로워진 동안, 단지 음식과 생활용품, 폐기물 양산 뿐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풍요로워지는 동안 지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그게 머나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작가 특유의 덤덤한 이야기를 따라가며 읽다 보면 이 풍요로움을 영위하는 것은 논리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장기적이고 새로운 해결 방안을 개발해 내는 것보다 내가 누리는 풍요로움을 조금 덜어내는 것이 제일 합당한 방법이라는 작가의 결론에 동의하게 되지요. 이 책 한 권으로 굉장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거에요. 하지만 내가 누리는 풍요가 어디에서 왔는지 한 번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이 풍요를 작가의 제안에 따라 조금씩 덜어내 본다면 지구는 조금 덜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풍요로울 것이고, 더 오랫동안 풍요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딛고, 다른 생물을 먹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종속영양생물이니까요. 아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바뀌지 않겠지요.

 

Ps1. 작가의 전작인 ‘랩 걸’은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셨고, 감동받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은 후 ‘랩 걸’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는데요. 한 번 읽어도, 여러 번 읽어도, 그리고 다른 톤의 이 책을 읽은 후 읽어도 매번 다양한 종류의 힘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많은 고민이 생길 대학원 중후반부나, 연구와 삶 사이에서 많은 감정을 느낄 때 읽어보시면 더 큰 힘을 얻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수 회 이상 읽을 책만 직접 구입하고 책장에 꽂아 놓는데, ‘랩 걸’은 망설이지 않고 구매한 책 중 한 권입니다.

Ps2. 작가 호프 자런이 과학자이기 때문일까요? 해당 책을 읽다 보면 묘하게 논문 포맷과 겹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명’으로 시작되는 Intro, 나머지 챕터들로 보여주는 Result, 그리고 지구의 풍요를 위한 Discussion과 함께 친절하게 설명된 Reference까지요. 각 reference들에 대한 줄글 설명을 보니, 논문 reference도 이런 식으로 설명을 달아주면 조금이나마 친근해질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듭니다. 한국어판을 위한 특별 서문은 작가가 특별히 우리에게 준 선물입니다. Hope can flow even into a torn pocket (원문 유치환). 


 

작성자: 예린 (필명)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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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 올리버 색스 평전
밝혀지지 않았던 올리버 색스의 모든 것 우리는 비로소 올리버 색스의 평전을 통해 온전히 그의 정신을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됐다. 그를 추억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올리버에게 더없이 감사하는 일이다. 책을 덮으면서, 누구나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올려다볼 것이다. ‘거기 먼 곳에서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_정재승 뇌과학자, 『정재승의 과학...
회원작성글 알마
 |  2020.09.07 13:17  |  조회 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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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쉽게 썼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 책은 과학기술시대를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알짜배기 과학지식들을 고르고 골라서 가볍게 읽기 좋은 일상의 언어로 담아냈습니다. 50가지의 주제에 담긴 과학적 원리를 일상의 언어를 통해 한 번 깨닫고, 이러한 과학적 원리가 우리의 일상과 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깨닫고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게 이 책의 특징이지요. 과학 하면 머리가 아프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사람들도...
회원작성글 크바카나
 |  2020.08.28 23:52  |  조회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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