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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싸우는 우리에겐 『진단이라는 신약』 필요하다
김성민 | 바이오스펙테이터 | 2020.08.21.
회원작성글 bios781
  (2020-09-11 14:31)

암을 없애는 것과 환자를 살리는 것의 차이

크레타에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迷宮)이 있었다. 미궁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둬두기 위한 것이었다. 아테네는 크레타에 매년 일곱 명의 소년과 일곱 명의 소녀를 공물로 보냈는데, 미궁 속 미노타우로스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이 비극을 막으려 크레타로 향한다.

테세우스는 두 가지 문제를 풀어야 했다. 우선 미노타우로스를 해치워야 한다. 테세우스는 이미 여러 괴물을 물리친 경험이 있다. 용기가 있었고, 싸움에 능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음이다. 살아서 고향 아테네로 돌아가려면, 들어갈 수는 있으나 나올 수 없다는 복잡한 미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제물로 바쳐질 아테네 젊은이들 사이에 있던 테세우스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칼과 실뭉치를 건넌다. 테세우스는 실을 풀면서 미궁으로 들어가 칼로 미노타우로스를 해치웠다. 그리고 미궁 입구에서부터 풀어놓은 실을 되감으며 미로를 빠져나왔다.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는 함께 크레타를 떠나 아테네로 향했다.

사람을 잡아먹는 암과 싸울 때, 우리도 두 가지 문제를 만난다. 우선 암을 없애야 한다. 암과의 싸움에서 용기를 냈던 수많은 환자, 의료진, 그리고 신약개발자들은 성과를 거두었다. 암을 없앴던 경험이 있고, 여러 종류의 치료법도 갖추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음이다. 암과 싸우는 궁극적인 이유는 암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암에 걸린 사람을 살리려는 것이다. 강력한 치료제와 치료법은 암을 없애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테세우스에게 미노타우로스를 없앨 수 있는 칼만 있었다면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났을 것이다. 무사히 안전하게 살아나올 실뭉치가 있었기에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었다. 암을 없애는 치료제 신약은 칼이다. 암을 빠르고 쉽게 초기에 찾고(조기진단), 환자에게 최적화된 치료제를 찾고(동반진단), 환자의 사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전이를 찾고(전이암진단), 물리학과 공학과 AI를 활용해 암 진단 마커를 찾는 것은(이미징마커) 실뭉치다. 치료제 신약을 개발하는 것과 더불어 ‘진단이라는 신약’이 필요하다.

 

 

 

현장, 과학 그리고 시장

이 책 『진단이라는 신약-조기진단, 동반진단, 전이암진단, 이미징마커』는 현장의 이야기다. 저자 김성민은 2019년 『어떻게 뇌를 고칠 것인가-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을 중심으로』(바이오스펙테이터)라는 책을 냈다. 저자는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개발을 향해 뛰고 있는 신약개발 현장을 다루었다. 기본이 되는 생명과학과 새롭게 발견한 메커니즘을 논문으로 분석하고, 그동안 진행된 임상시험 데이터를 분석해 한계와 성과를 정리했다. 이를 바탕으로 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에서 앞으로 주목해야 할 개념과 방향에 대한 의견을 냈다. 모두 신약개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학 이야기다. 『진단이라는 신약-조기진단, 동반진단, 전이암진단, 이미징마커』 또한 개발 현장과 과학에 대한 이야기지만, 하나를 더 보탰다. 시장이다.

바이오 신약개발에 대한 기대는, 이 분야로 돈을 끌어들인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 경제를 뒷걸음질치게 하는 2020년 현재도, 바이오 제약 분야로는 돈이 모인다. 오히려 바이러스, 백신, 치료제, 임상시험과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뉴스에 나오는 코로나19 상황이 바이오 제약 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신약개발은 수십 년의 시간과 노력, 천문학적 규모의 개발비, 잦은 실패와 낮은 성공률이라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이런 조건들은 한국이라는 상황에서는 아직까지 거리가 있다. 한국에서 신약개발의 꿈을 포기하는 것은 이르지만, 한국에서 신약개발이 임박했다는 소문을 듣는 것도 이르다. 다만 암 진단 분야는 다르다. 2020년 현재 기준, 국내외를 통틀어 암 진단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거나 주목받는 진단 키트와 진단법 등은 한국적 상황에서 접근할 수 있는 과학과 기술, 자원과 경험이 바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 『진단이라는 신약조기진단, 동반진단, 전이암진단, 이미징마커』에서 다루고 있는, 치료 현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으며 시장에서 기대를 받는 암 진단 바이오테크들 가운데는 한국 바이오테크들도 있다.

한국에서는 신약개발을 주도하는 몇몇 국가에만 있는 유무형의 자산이 아직 아쉽고, 연구와 임상 노하우를 쉽게 얻기 어려우며, 천문학적 규모의 자본이 오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흔히 말하는 암 치료제 신약이 ‘뚝딱’하고 세상에 나오기는 어려운 조건이다. 그러나 암 진단 분야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하는 개발과 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다. 조기진단, 동반진단, 전이암진단, 이미징마커 개발은 암 치료를 돕는 것이다. 이미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범용화된 과학이나, 다른 분야에서 한국이 선도하는 기술을 접목할 수 있다. 암 치료 과정의 임상 데이터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한국만의 장점을 활용할 수도 있으며, 아이디어와 전략의 재조합으로도 성과를 낼 수 있다. 실제로 X-레이 장비 등 의료영상장비 분야에서 전 세계 점유율이 30%에 이르는 GE헬스케어는 한국의 이미징마커 개발 바이오테크인 한국의 루닛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2020년 8월 기준 시가총액 140억 달러 규모의 이그젝 사이언스(Exact Science)는 개발한 대장암 조기진단 키트 콜로가드(Cologuard)를 개발했다. 그리고 콜로가드에 견줄 수 있는 성능을 지닌 대장암 조기진단 키트를, 한국의 지노믹트리도 개발했다. 이 책은 시장성을 전망하는 데 필요한 과학과 기술에 대한 데이터들을 살펴본다.

 

조기진단, 동반진단, 전이암진단, 이미징마커..한국의 암 진단 바이오테크들

『진단이라는 신약-조기진단, 동반진단, 전이암진단, 이미징마커』의 각 장은 부제를 따른다. 1장 조기진단은 대장암 조기진단 분야에서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바이오테크인 이그젝 사이언스와 한국 바이오테크인 지노믹트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두 바이오테크 모두 검사 대상자에게 얻은 대변을 시료로, 메틸화 변화를 측정해 대장암을 진단한다. 환자를 일찍 찾아 적은 비용으로 치료하면 치료비 총액을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 환자의 생명을 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1장에서는 과학과 기술의 측면에서 대장암 조기진단에서 메틸화 변화를 볼 때의 장점을 다루고, 진단 키트 시장에서 중요한 미국의 건강보험 시장을 개괄한다. 보론으로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기술을 활용해 혈액으로 여러 종류 암을 진단하려는 그레일(Grail)의 현황과 전략도 분석한다.

2장 동반진단에서는 암의 변이에 따른 최적화된 치료제를 찾는 바이오테크 파운데이션 메디슨과 가던트헬스를 살펴본다. 동반진단은 암을 세분화할 수 있게 되면서 나온 개념이다. 암은 복잡한 유전자 변이의 결과물이다. 동반진단은 환자에게 얻은 시료를 분석해, 수백 개의 유전자 변이를 찾고, 해당 변이에 적합한 치료제를 찾아내는 것이 목표다. 환자 개인에게 최적화된 암 치료제를 찾아낼 수 있다면, 더 많은 환자를 더 효율적으로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파운데이이션 메디슨과 가던트헬스는 각각 환자에게 얻은 암 조직, 환자의 혈액을 이용해 동반진단을 한다.

3장 전이암진단은 암 환자의 생존에서 결정적인 국면이라고 할 수 있는 전이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순환종양세포(circulating tumor cell, CTC)는 원암세포에서 떨어져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해 암을 전이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환종양세포라는 것이 있다는 점과, 순환종양세포가 암의 전이에 관계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은 약 150년 전 일이지만, 실제로 환자에게 일어나는 암의 전이를 막는 데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순환종양세포의 숫자가 적어 임상 현장에서 활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국의 바이오테크 싸이토젠은 반도체 생산에 활용되는 기술로 순환종양세포를 찾아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과 순환종양세포의 크기 차이를 이용하는데, 환자의 혈액을 고밀도 미세다공칩에 통과시키면 다른 혈구들은 빠져나가고 순환종양세포가 걸러진다.

4장 이미징마커는 세포 단위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실시간 입체 동영상 수준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현미경 기술과, X-레이를 분석해 암 진단에서 오진을 줄이면서 치료제 선택의 정확성은 높일 수 있는 AI 기반 기술을 소개한다. 한국의 바이오테크 토모큐브는 세포 수준의 실시간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3D 입체 이미징 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KAIST 공대생 6명이 시작한 루닛은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암 환자의 X-레이 사진을 분석해 의사의 눈을 돕는 AI 기반 암 진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마지막으로 부록에는 한국에서 암 진단을 연구하고 있는 바이오테크 17곳의 현황을 정리했다.

 

진단이라는 신약(新藥)이 신약(神藥)이 되기를 바라며

크레타를 떠난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둘은 헤어졌다고 한다. 테세우스는 아테네로 돌아가 왕이 되었고, 칼과 실뭉치를 건네 미노타우로스를 없애는 것을 도운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 신과 결혼했다고 한다. 신과 결혼했으니 신의 반열에 오른 셈이다. 진단이라는 신약으로 암이라는 괴물을 없애고, 환자를 살아 돌아오게 만들 수 있다면, 진단이라는 신약도 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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