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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봤니? - 서평
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저, 노승영 역 ㅣ 에이도스 ㅣ 2020
회원작성글 BRIC
  (2020-01-13 11:39)

향모를 땋으며

미국 아펠레치안 산맥 남쪽 끝에는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이 있다. 우리 가족은 뜨거운 남부의 여름이 시작할 때쯤이면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남쪽의 작은 호수가 있는 캠핑장을 찾곤 한다. 족히 20미터는 되는 떡갈나무와 히커리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는 작은 개울가엔 군데군데 캠핑을 할 수 있도록 자갈이 깔려있다. 평온하게 산바람을 맞으며 해먹에 누워 책을 보거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은 식사 시간이 되면 종종 신경이 곤두선다. 고기 냄새를 맡고 새끼손톱만 한 새까만 파리들이 어디선가 떼로 몰려들어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화장실 옆 쓰레기통은 단단한 쇠로 만들어 손잡이 안쪽으로 손을 넣어 꾹 눌러야 문이 열린다. 그 옆에는 흑곰을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흑곰이나 라쿤의 쓰레기통 습격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결국 파리 때문에 짜증을 내던 큰 아이는 산책하러 나가기 전 탁자 위에 놔두었던 치킨 박스가 비어있는 걸 보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파리랑 다른 동물들 때문에 짜증 나! 왜 내 치킨까지 가져가는 거야!!!” 

“여기는 원래 파리들이 사는 곳이야. 원래 흑곰이 살고 원래 라쿤이 사는 곳인데, 우리가 들어온 거잖아? 안 그래? 이렇게 불평할 거면 다음에는 캠핑 오지 말자.”라는 나의 말에 큰 아이의 불만은 쏙 들어갔다.

[향모를 땋으며]을 읽으며, 그때 그 캠핑장에서의 아이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캠핑장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초입의 아메리아 원주민인 체로키 부족의 마을이 있다. 보호구역 내에는 체로키어가 공용어로 사용된다. 1838년 미국 동남부에 살던 이들은 오클라호마 주로 강제 이주를 당한다. 체로키어로 번역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고된 걸음을 옮겼던 그 길을 “눈물의 길”이라 부른다. [향모를 땋으며]의 저자 로빈 월 키머러는 그 “눈물의 길”을 걸었던 포타와토미 족의 성원(成員)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눈물에 길’에서 언어를 잃어버렸고, 문화를 잃어버렸고, 가족을 잃어버렸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대지는 하늘 여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믿는다. 그 대지에서 처음 자란 식물이 윙가슈크라고 부르는 “향모 (sweetgrass)”라고 믿는다. 그래서 향모는 성스러운 식물 중 하나로 떠 받으며, 제의(祭儀)에 쓰이는 중요한 식물이자, 아름다운 바구니를 만들거나 약초로 쓰기도 한다. 그들에게 향모는 물질적인 동시에 영적인 존재이다. 여름이면 애디론댁 산맥에서 카누 야영을 하던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가 바위 위에 흘려보내던 커피 한 줄기를 기억한다. ‘눈물에 길’에서 사라졌을 것 같았던 그들의 위대한 자연을 대하는 행위는 그들의 피를 타고 전해져 그의 삶에 ‘토박이 지혜’가 되었다. 저자는 자연 앞에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공경하며 아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과학자가 되기 위해 들어간 대학에서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뀐다.“당신은 누구인가요?”가 아닌 “저건 뭐지?” 라는 질문으로 식물을 주체로 바라보던 토박이 지식이 지극히 환원주의적이고 기계론적이고 엄격히 객관적인 과학적 지식으로 식물이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환원되는 길을 걷는다. 

“인디언 여자치고는 공부를 꽤 잘했습니다.” 라는 지도교수의 추천서는 여성이자 아메리카 원주민인 그가 뚫고 나아가야하는 편견의 벽이 얼마나 단단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그는 과학적 세계와 토착적 세계의 가운데 서있다. 그 중간을 아슬아슬하게 서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벌이 두 꽃을 오가며 식물의 타가수분을 돕는 것처럼 새로운 종류의 지식을 통해 선한 초록 대지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냈다. 그는 그 방식을 호혜성(reciprocity)이라고 말한다. 

향모드림과 향모
향모드림과 향모 (출처:https://grasstalk.wordpress.com)

가느다란 향모는 가닥을 한데 모아 댕기를 땋듯이 땋아서 한뭉큼 한뭉큼씩 ‘향모드림’을 만든다. 이때 한쪽 끝을 누군가가 잡아줘야 향모를 땋을 수 있다. 저자는 향모의 한쪽 끝을 잡아주는 행위가 호혜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상호 번영할 수 있는 행위를 주고받는 호혜성은 우리에게 인간과 자연의 긍정적 상호작용의 필요성과 생태의식을 일깨운다. 과학적 사고로 한 가닥, 토박이 지혜로 한 가닥, 그리고 그의 겸손하고 따뜻함을 담은 사랑스러운 언어로 한 가닥을 엮어서 그의 향모드림을 만들어 냈다. 

 

나는 과학의 ‘드러냄’에 뿌리내리고 토박이 세계관에 기반한 이야기의 렌즈를 길잡이로 삼는 세상을 꿈꾼다. 물질과 영혼에 고루 목소리를 부여하는 이야기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한 캠핑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자연으로 들어간 이방인인 우리의 이야기였다. 존중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지 못하고, 석탄을 피워대고 모기약을 뿌려대고 쓰레기의 흔적과 짜증과 불평의 메아리를 남기는 그런 행위였다. 키머러의 글 사이사이 담겨있는 호혜성이란 말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이 되길 기대한다.

 

작성자: LabSooni Mom (필명)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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