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수료생입니다. 박사 들어올때 교수님께서 주신 주제가 있었는데 이래저래 논문을 읽어보고 실험을 반복해봐도 이론적으로도 구현이 안될 것 같고 실제로도 구현이 안됐었습니다. 해서 안될 것 같다, 다른 주제를 잡아야 할 것 같다, 누차 말씀드렸었는데 그래도 계속 진행하라셔서 2년간을 그렇게 흘려보냈습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2년동안 했던 걸 싹 정리해서 보여드렸더니 그제야 다른 주제 잡아보라시더군요.
일이 꼬이려니까 하필 새 주제라고 골라잡은게 결국에는 데이터조작이 판명나 retract된, 문제있는 논문을 바탕으로 한 거였고 또 그렇게 3~4개월을 허비했습니다. 결국 박사 5학기가 끝나갈 무렵에 스스로 주제를 잡아서 지금껏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시원찮아 보이셨는지 박사 6학기가 끝나가는 지금에 와서 다른 주제를 주시며 지금 하고 있는 건 접고 새 주제로 학위실험을 하라셨습니다. 물론 모든 실험이 확실성에 기반을 두고 시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새주제 역시 해당 팩터가 실험주제와 관련이 있거나, 없거나 반반의 확률이라 리스크가 너무 커 보입니다. 그 말씀도 드렸지만 역시나 될 수도 있으니까, 하시는 반응입니다.
실험에만 전념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게 방에서 연구과제를 큰 걸 하고 있는데다 또 다른 큰 과제를 준비하는 중이라 연구계획서/보고서를 비롯해서 과제 뒤치닥거리 하는 데만 하루의 2/3는 빼앗기는 것 같습니다.
나름 지난 5년간 밤잠 덜 자고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박사과정 3년동안 손에 남은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석사졸업논문 한편 낸 게 다고 박사들어와서는 내내 삽질+과제 뒤치닥거리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많이 지쳤습니다.
교수님과 디스커션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국가에서 연구비가 몰리는 분야로 연구주제를 자주 갈아타시기 때문에 사실상 실험적/논문적 코멘트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꽤 많이 고민한 끝에 수료생 신분으로 학위를 중도포기하려고 합니다. 다만 교수님께서 쉽사리 놓아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요. 새로 들어오는 대학원생도 없고 지금 저를 내보내시면 당장 실험실 과제 관련 업무라든가, 그런게 다 차질을 빚게 되니까요.
교수님께서 인간적으로 나쁜 분은 아니셔서 중도포기하고 나가더라도 교수님과 감정 상하는 일은 하지 않고 싶은데 교수님 성향상 그만 두겠다는 말씀을 드리면 절대 불허하실 것 같아서요. 박사가 많이 나온 실험실은 아니라서 저와 비슷한 전례는 없지만 인근 실험실에서 석사수료생 나가는 거 보고도 길길이 화를 내셨던 분이라.. 그만 두는 이상 교수님 감정이 안상하실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잘 끝맺을 수 있을지.. 답답해서 글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