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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oWave, Vol.7, No.15, SubNo.2
미국 진화론논쟁의 최근 쟁점: 지적설계론
박희주
명지대학교 교양학부

To whom correspondence should be addressed. E-mail : parkhj(at).mju.ac.kr

미국 신보수주의를 떠받치는 기독교 복음주의가 진화론 교육을 문제 삼아 새롭게 시도한 전략이 지적설계론이란 것이다. 지적설계론은 지난 10여년 미국 진화론 논쟁에서 창조론을 대신해 새로운 쟁점으로 급부상했으며 최근 국내에도 지적설계연구회를 중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 글에서는 지적설계론이 무엇인지 그 기원과 핵심내용을 간략히 살펴본다.
Category : 생물학관련 모든분야
 
(이 자료는 BRIC IP 생물학사 및 생명윤리연구회에서 제공하였습니다.)
 
Citation: 박희주(2005). 미국 진화론논쟁의 최근 쟁점: 지적설계론. BioWave, 7(15): 2. Available from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review0&id=1039 (Mar 17, 2009)
박근준  (2005-08-02 14:25)
인터넷상에서 지적설계론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글 하나를 소개
합니다. 참조하시고 앞으로 브릭에서 지적설계론을 다룰 땐 한
번 더 잘 검토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최근의 미국 언론들,
네이처 등에서 어떻게 다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http://kin.naver.com/open100/entry.php?eid=VlRr2MHf986w2edTYUA2Y0QeitG6xXvB&state=R
BioWave  (2005-08-02 16:13)
BioWave에서 게재되고 있는 리뷰들의 검증은 연구회 제공 리뷰의 경우 해당 연구회의 심사를 거치고, 개인 제공 리뷰의 경우 해당 분야별 자문 위원이 심사를 거쳐 게재되고 있습니다.
적과의 동침  (2005-08-02 17:06)
이상적으로 추구해야할 가치가 있다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다양성이고 이를 이해할 수있는 사회적, 문화적 완충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이란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진화를 위한 바탕이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경계해야할 부분이 지적설계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마치 바이오 전문 사이트에서 논쟁이 되었다는 사실자체를 통해 그들의 주장이 과학적일 것이라는 오류를 일반인들이 저지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괜한 논쟁은 별 의미가 없을 듯합니다...
김우재  (2005-08-02 17:33)
브릭이 이제 자체검열과정조차 상실한 것입니까? 박희주씨처럼 창조과학회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사람의 글을 싣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미국에서 무슨 진화론논쟁이 있다는 것인지, 게다가 과학자들은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논쟁이 무슨 과학논쟁이라는 것인지. 차라리 과학사와 과학철학쪽 글을 쓰는 글쟁이들을 모조리 내쫓고 제대로된 과학자들의 철학적 글을 싣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네이쳐나 사이언스처럼은 아니더라도, 도대체 이런 글을 외국의 그런 잡지가 실어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만약 이 글이 생명윤리학회의 자문을 거쳤다면 제대로 검증이 될리 만무합니다. 생명윤리학회가 특정 종교인 투성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 사람들이 저런 글이 생물학의 메카라는 이곳에 올라오는 것을 반길 것도 뻔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실을 글이 없다고 해도 글을 받아서 읽어보셨다면 심각하게 고민은 해봤어야 합니다. 지적설계론에 관해 최근 4월과 5월에 걸쳐 네이쳐와 사이언스에서 벌어진 논쟁을 보셨다면 이 글이 이처럼 뻔뻔하게 브릭에 올라온다는 것에 회의를 가지게 될겁니다.

예를 들어 당장 리뷰할 수 있는 분들로 리뷰어 리스트에 이병훈 교수님, 장대익씨등이 있습니다. 국내에 사회생물학을 가장 먼저 들여오신 분이 이병훈 교수님이시고, 윌슨의 제자인 최재천 교수와 진화를 연구하는 분이 장대익씨입니다. 이분들이 침묵했다면 정말 할말이 없지만 말입니다. 제 권한밖의 일이므로 상관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브릭에 지적설계론에 관한 글이 올라온다는 것이 제게는 충격입니다.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 아무리 많은 창조과학에 관한 글이 올라와도 저는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저런 글이 등재되기 시작한다는 건, 조금씩이나마 과학이 자리잡아가려는 판국에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일로 제게는 보인단 말입니다.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고려하고, 자신의 작업이 가지는 의미를 성찰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과학자 스스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고, 원래 과학의 전통속에서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과학이 하나의 도구로 수입되어 기술과 국가경쟁력의 기반으로 전락한 이곳에는 그런 문화가 없으며, 이를 메우기 위해 인문학자들은 과학의 인문학적 제어론을 외칩니다. 제어론이라는 것은 과학자는 윤리적으로 믿을 수 없으니 인문학자들이 과학자의 연구를 제한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가진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생명윤리학회입니다. 이들이 옳바른 과학문화의 적이겠습니까, 동지이겠습니까. 생명윤리담론은 많은 사람들의 감수성에 상처를 주고 생명이라는 개념을 다루니 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칩시다. 허나 결국 그들이 드러낸 본색은 특정 종교의 교리에 기반하여 생물학을 제어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임이 박희주씨의 저 글에 드러나는 겁니다. 이제 조금 후에 저들이 내어놓을 글이 무엇이겠습니까.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지적설계론을 다루자는 이야기를 이곳 브릭을, 생물학의 메카라고 자처하는 이곳 브릭을 통해서 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도 그들의 검열을 통과한 글이니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까.

논쟁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이렇게 반응을 보이는 것이 완충이 기능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더이상의 논쟁은 의미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그래서 동양에서 근대과학적 방법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밖에 안됩니다. 좋은 게 좋은게 아닙니다. 틀린것은 따지고, 개선하고, 마지막으로 부수려고 (적어도) 노력은 해야 합니다. 논쟁이 없는 곳에 학문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번이 이런 어이없는 해프닝의 처음이 아닙니다. 과학사학회의 회장이라는 분이 이미 브릭 리뷰에 "흔들리는 다윈의 自然選擇說 "이라는 제목으로 과학사학회지의 글을 재탕한 글을 실었습니다. 명지대학교에 창조과학회가 있고, 논문까지 만들어 출판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아닙니까.

혼자 흥분하는 것이라면 그냥 이것으로 덥겠습니다. 그럼 창조과학자들도 생물학자들도 구경꾼들도 모두 평안히 안녕하시겠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대한민국의 과학은 영원히 정치인들의 노예로 살아가겠지요.
타협점  (2005-08-02 17:44)
김우재님의 의견에 상당부분 동감을 하면서 몇자 적어봅니다. 실상 이미 오픈된 리뷰에 대해서 삭제를 하거나 없었던 일로 치부하기에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논쟁이 없는 곳에 학문도 없다는 표현처럼 올려진 리뷰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 자료 대한 게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BRIC을 중간에 두고 뭐라 하기보다는 어짜피 만들어진 공간을 통해 형평성있는 반대 이론을 다음호 리뷰에 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의견을 올려봅니다. 박근준님이 올려주신 링크 자료만으로 본 리뷰에 대한 반대의견으로 대처하기에는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적과의동침  (2005-08-02 17:32)
예 그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김우재 선생님께서 위에 작성한 글을 바탕으로 반박글을 작성하셔서 브릭에 제안하시죠...당연히 받아줄것으로 생각됩니다..그래서 차근차근 룰을 지키며 의사를 개진하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브릭에서 받아주리라 믿습니다...브릭 관리자님들께도 부탁합니다...받아주시길....
지나가다  (2005-08-02 17:54)
연구회 구성원을 보면 김우재님이 지적한 연구회가 특정종교인으로 구성된 것 같지는 않군요. 오히려 박희주씨 개인이 특정종교에 치우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 까요?
김종원  (2005-08-13 13:25)
다윈의 진화론이 현대 생물학의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사실이지만 그저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현실적으로는 현대 생물학의 주류를 뒤흔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불확실한 어떤 한 이론에 치우쳐 "진리를 외면하는 우를 범하지나 않을까"를 두려워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논쟁이 지나치다보면 내눈의 대들보를 보지 못할 수 도 있으니까요. 새로운 이론은 언제나 비판대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이론의 미래는 현재는 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실험자는 그저 묵묵히 실험으로 증명해갈 뿐입니다. 지금이야 지구가 돌고 있으며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면 이를 확인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것을 우리 과학자들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김우재  (2005-08-02 18:13)
상대방의 글을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연구회가 아니라 생명윤리학회를 말한 겁니다. 내기를 해도 좋은데, 생명윤리학회가 특정종교의 잔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특정종교가 아니더라도 종교인들이 생명윤리담론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정종교를 옹호하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라면 그냥 가던길 조용히 자나가셔도 됩니다
김우재  (2005-08-02 21:24)
글쓰는 것이 직업인 인문학자들과는 달리 실험이 직업인 제게 글을 쓸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http://goodking.new21.net/bbs/rgboard/view.php?&bbs_id=0004&page=&doc_num=294 이곳에 글을 써 나갑니다. 원하시는 분은 마음껏 퍼가시고, 반박하셔도 좋습니다. 마음이 피곤합니다..
박희주  (2005-08-25 17:25)
댓 글의 자수 제한(2000자) 때문에 불편하지만 저의 반응을 글쓴이의 입장 I. II 로 나누었습니다.
글쓴이의 입장 I ------
저의 글이 실린 후 조회수가 500이 넘어가고 뜨거운 댓 글이 줄을 잇고 심지어 반대 리뷰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당황스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리 보면 ‘지적설계론’이 국내에서도 이미 논쟁적인 이슈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도 하겠습니다. 앞의 여러분들의 댓 글에 나타난 주된 불만은 지적설계론은 ‘사이비과학’인데 이에 관한 글을 왜 과학전문지인 ‘바이오웹진’에 여과 없이 실었는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저의 글과 이를 게재한 섹션의 성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진화론논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과학자사회 내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주로 진화의 메커니즘에 관한 논쟁입니다. 진화론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은 진화의 다양한 메커니즘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며 내부적인 논쟁을 진행해왔고 이는 건강한 과학의 표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진화의 사회, 종교, 이념적 함의를 둘러싸고 일반사회에서 일어난 논쟁입니다(물론 과학자도 중요한 참여자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미국진화론논쟁의 최근 쟁점: 지적설계론”이란 제목에서 사용한 ‘진화론논쟁’은 후자의 의미입니다. 이는 최근 사이언스와 네이쳐, 뉴욕타임즈 등에서 과학과 사회분야의 이슈로 다룰 정도로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제 한 일간지의 서적 광고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았습니다.
“한 권의 책 때문에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내게는 ‘이기적 유전자’가 바로 그런 책이다” 다름 아닌 최재천 교수의 추천사입니다. 제 글에도 등장하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과학을 넘어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바꾸는 책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바이오웹진의 “Bioethics" 섹션은 생명과학의 윤리적, 사회적, 이념적, 나아가서는 세계관적 함의를 논의하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지식의 생산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지만 과학지식이 소비되는 곳은 과학자사회를 넘어섭니다. 뿐만 아니라 과학 활동에 필요한 막대한 물적 인적 자원은 사회에서 지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이 사회에 책임감을 느끼고 대화할 수밖에 없는 근거입니다. 과학지식의 사회적 함의에 대한 논의는 과학자로서 부담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특별히 정치, 종교적 이념이 과학이슈와 교차하는 곳에서는 불꽃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진화론의 종교적 함의에 대한 논쟁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제가 이 섹션에 지적설계론을 소개하고자 마음 먹은 것은 지적설계론이 미국에서는 ‘진화론논쟁’의 새로운 쟁점이 되었고 국내에서도 그럴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적설계론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지적설계론이 뭐지?” 스스로 묻거나 혹은 “지적설계론이 도대체 뭔가요” 학생들로부터 질문 받는다면 제 글이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서 였습니다.
지적설계론은 다분히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민감한 주제는 다루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과학의 역사를 전공한 역사가로서 제가 사용한 방식은 제 목소리는 가능한 배제하고 지적설계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하는 것입니다. 제 글은 이들의 글을 사료로 삼아 지적설계론의 기원과 내용을 역사적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을 읽고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박희주  (2005-08-25 17:38)
글쓴이의 입장 II --------
과학이 사회 속에서 다양한 정치, 종교적 이념과 만나면 다양한 결과를 낳습니다. 자신의 이념적 편향에 따라 과학적 이슈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방식도 달라지는 것이지요. 실험실을 벗어난 ‘사회 속의 과학’을 과학자가 통제해야한다는 생각은 ‘사회 속의 과학’이 ‘실험실 내의 과학’과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데 기인한 것이며 이는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사회 속의 과학’의 어젠더를 과학자(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특정 이념 - 예컨대 과학지상주의 혹은 유물론적 과학주의 -을 가진 과학자)가 설정하고 그 논의과정을 통제해야한다는 생각은 이념 논쟁에서 뿌리치기 힘든 ‘사상검열’의 유혹에 해당한다면 지나친 비유일까요?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사회 속의 과학’ 논의는 어느 일방의 통제가 아닌 다양한 사회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이 되어야겠지요.
바이오웹진을 읽는 독자는 대부분 해당분야의 연구자들로서 독립적 판단능력을 가진 성숙한 독자이며 다양한 정치, 종교적(무신론을 포함해)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 속의 과학’을 다루는 이 섹션은 이념에 대해 열린 논의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글을 걸러낸다면 이념이 아닌 내용의 질로 걸러야겠지요.
참고로 저의 신앙적 배경은 기독교이지만 창조과학회, 지적설계회의 회원은 아닙니다.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 진화론에 대해 무조건 지지, 무조건 배제의 굳은 태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며 과학과 종교의 이슈에 대해 열린 대화를 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오늘도 그 답을 고민스럽게 모색할 따름입니다.
창조론의 방법  (2005-09-01 19:51)
지적설계론을 소개하는 것은 좋지만 이런 내용이라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1. 제대로 된 논문 하나 없는 이론을 일반인들에게 마치 무슨 제대로 연구된 과학이론인 것처럼 소개한다. 2. 그 분야 전문가들은 진화를 모두 인정하고 그 메카니즘에 관해 논쟁을 벌일 뿐인데 마치 전문가들이 진화 자체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3. 창조론의 선전방법에 따른다. - 자기는 절대 창조론을 지지하거나 숭상하는 게 아니고 단지 그게 무슨 이론인지 소개만 하는 척 한다. 그러면서 창조론이 상당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이 면밀한 검토 끝에 확립한 과학이론인 듯한 인상을 주게끔 결론을 내리며, 진화론과 대등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노력한다. 검증된 논문을 내지 못 하므로 대신 일반과학지에 단순히 소개만 한다는 구실로 글을 내거나 과학관 등을 빌려 단순히 소개만 한다는 구실로 관련 행사를 연 후 일반인들에게 이것이야말로 과학자들이 광범위하게 창조론을 인정한 예라고 소개한다. 4. 생물학을 포함한 과학적인 증거제출이나 논쟁이 불가능하면 이건 철학의 문제이고 무슨무슨 주의에 관한 문제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자연)과학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로 끌고 간다. 천동설과 지동설을 따지는데 과학적인 관찰결과만 따지면 되지 거기에 무슨무슨 주의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 물론 지동설도 많은 사람들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바꿨다.
김우재  (2005-09-07 12:38)
은근슬쩍 두가지를 섞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학이 제대로 과학답지도 않게 커버린 땅에서 연구하는 과학사가는 과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에도 벅차야 합니다. 지적설계론에 대해 이곳저곳에서 강연을 하고, 창조과학관을 짓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면서(인신공격을 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게다가 그런 짓거리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으시면서, 많은 이들이 지적설계론을 과학이라 믿을만한 글을 이곳에 올리지 마시라는 겁니다. 과학사가는 과학사의 영역에 머물면 됩니다. 우리나라의 과학사가와 과학사회학자들은 자신들이 과학자라는 착각을 하고 사는듯 합니다. 바둑해설가가 이창호보다 바둑을 잘 둘수 있다고 허풍을 떨고, 이창호는 바둑을 잘못둔다고 헛소리하는 꼴을 저는 못봅니다. 이미 위에 제가 자주 가는 사이트 주소를 남겨두었고, 답글 제한도 맘에 안드신다니 그리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언제든 환영이니까! 이미 아실지도~~
다위니스트  (2005-10-30 12:33)
가장 우습고 황당한 일은, 논쟁이 있었다고 치더라도, 창조론에 어떤 과학적 진실이 담겨 있느냐, 실험적, 가설연역적, 관찰적 방법론들이 동원되고 있느냐, 약간의 생물학자들이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논문이 발표되느냐, 하는 겁니다.
기껏 마이클 베히의 저서 한 권 가지고 주장하기에는 그 저서 자체의 비과학적 태도 - 틈틈이 주장하는 환원불가능성 어쩌구 - 도 문제가 분명히 있다구 보구요.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희비애사(史)를 소개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을 과학적 탐구의 어떤 결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창조론자들은 말합니다. 아니 지적설계론이라고 해두죠. 그들은, 지적설계자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탐구 영역의 밖이다,라고 하는데 그 지적설계자가 과학에서도 이야기 못하고 종교에서도 이야기 못하면 도대체 그 지적설계자에 대한 학문은 어떤 것인지..
그 지적설계자가 생명체를 만든 것은 아침을 먹고 나서인지 점심을 먹고 나서인지..차라리 그 쪽에 관심을 두는 것이 더 정직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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