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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리포트 동향리포트
새롭게 탄생하는 유전학 생물모델
김천아(서울대학교)
목차
1. 모델 생물의 탄생
2. 모델 생물을 넘어서
3. 새로운 유전학 생물 모델
4. 결론
5. 참고문헌
1. 모델 생물의 탄생
자크 모노(Jacques Monod)의 "대장균에게 진실인 것은 코끼리에게도 진실이다"라는 말은 현대 분자생물학 연구에 담겨 있는 핵심 전제 중 하나를 잘 드러낸다. 대장균 같은 간단한 모델에서 유전자 코드의 실체, DNA 복제 기전, 유전자 발현의 조절 등과 같은 분자생물학의 핵심 기전이 규명되었고, 대장균부터 복잡한 다세포 생물까지 관통하는 생물의 핵심 원리가 하나둘씩 밝혀졌다. 세포의 작동원리가 상당히 밝혀진 현대에는 공학적 기법을 통해 세포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시도까지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유전자의 상호 작용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네트워크나 세포 내 물질의 수송과 같은 규명해야 할 많은 문제가 남아있으며,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선 여전히 모델을 활용한 '진실' 규명이 유효한 전략일 것이다. 분명히 개체를 구성하는 공통 단위인 세포 나아가 그 기저에 있는 유전자의 작동까지 공통된 본질이 생명체에 존재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지구상에는 같은 본질을 공유하는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으며, 이들의 엄청난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 또한 진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다른 접근이 가능할까? 이 질문은 현대에 등장한 독창적인 질문이 아니다. 다양한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하려 했고, 박테리아파지로 진실을 규명하던 시대에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이 모델로 만들어진 과정은 흥미로운 답변 중 하나일 것이다 [2]. 예쁜꼬마선충을 유전학 모델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던 사람은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라는 분자생물학자였다. 브래너는 DNA의 구조가 밝혀진 이후 크릭과 함께 DNA 염기서열을 암호화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triplet code 가설을 제안하였던 사람으로, 분자생물학 초기 연구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이다. 분자생물학 연구의 첨단에 있던 브레너는 분자생물학의 고전적인 질문들은 이제 거의 다 풀렸거나 곧 풀릴 것이므로, 더 흥미로운 주제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도전적 성향은 예쁜꼬마선충에 주어진 2002년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도 또 한 번 드러나는데, 예쁜꼬마선충이 신경, 발생 유전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모델로 자리 잡아가고 있던 시기에 복어를 새로운 모델로 연구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3]. 즉, 유전자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유전 암호가 생명체의 형질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
그는 박테리오파지나 대장균에 없는 다세포 생물의 복잡한 특징, 예를 들어 유전물질이 어떻게 생명체를 구성하는지(발생의 유전적 기반) 그리고 유전자가 행동을 어떻게 조절하는지(신경계의 유전적 기반) 등을 규명하기 위해 단순한 다세포 생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세포 생물을 이용하여 박테리오파지와 같은 연구를 하려면 낮은 확률로 유도되는 돌연변이를 찾기 위해 적은 비용으로 많은 자손을 확보할 수 있어야 했으며, 빠르게 자손을 불릴 수 있도록 생활사 주기가 짧아야 했다. 또한 완전한 발생과정을 추적하기 위해선 세포 수가 많지 않아야 했다. 그는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동물을 찾기 위해 동물학 책을 뒤져 자웅동체의 한 개체가 300개 이상의 알을 낳고, 낮은 비율이지만 male이 존재하기 때문에 유전학 교배 실험이 가능하며, 3.5일 만에 알에서 성체로 성장하며, 완전히 자랐을 때 세포가 959개밖에 되지 않는 1mm 크기의 동물 예쁜꼬마선충을 찾아냈다. 이미 예쁜꼬마선충은 엘즈워스 도허티(Ellsworth Dougherty)에 의해 좋은 유전학 모델이 될 수 있음이 제안된 적이 있었고, 몇몇 돌연변이 개체도 보고한 바가 있었다. 시드니 브레너는 엘즈워스 도허티로부터 예쁜꼬마선충과 배양에 관한 조언을 얻었고, 예쁜꼬마선충에 EMS (ethyl methanesulphonate, mutagen)를 처리하여 행동과 개체의 모양에 문제가 생긴 300개가량의 돌연변이 개체를 동정하였고, 1974년 그 연구 결과를 "The genetics of Caenorhabditis elegans"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5].
그 후 예쁜꼬마선충의 세포 계보, 신경계 지도 등이 규명되었으며, 다세포 생물 중 최초로 전체 유전체 지도가 밝혀진 생물이 되었다 [6-8]. 세포 계보 지도를 바탕으로 프로그램된 세포 사멸(programmed cell death) 현상과 그것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밝혀졌으며 [9], 세포의 발생 단계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네트워크를 규명하였다. 또한 신경계 지도를 바탕으로 각 신경의 발생을 조절하는 유전자 및 예쁜꼬마선충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뉴런의 네트워크가 밝혀졌다. 또한 평균 수명이 20일 정도로 상당히 짧은 다세포 생물이었기 때문에, 수명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규명하기 위한 매력적인 모델이 되었다. RNA 저해(RNA interference) 현상이 처음으로 규명되었으며 [10], 예쁜꼬마선충의 먹이로 사용되는 대장균에 double strand RNA를 발현시켜 RNA 저해를 유도할 수 있는 실험적 편이성을 토대로 예쁜꼬마선충의 거의 모든 유전자 발현을 쉽게 저해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을 통해 예쁜꼬마선충의 다양한 표현형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의 네트워크가 밝혀졌다. 또한 투명하여 내부를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형광 단백질을 활용하여 각 유전자가 발현하는 시간, 장소를 규명하기 용이했고, 이를 바탕으로 많은 유전자의 시, 공간적 조절 네트워크를 밝힐 수 있었다.
2. 모델 생물을 넘어서
예쁜꼬마선충은 대표적인 모델 생물(model organism)이다. 모델 생물이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모델 생물이라 불리는 생물은 대부분 앞에서 언급한 예쁜꼬마선충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11, 12]. 대부분 크기가 작고, 연구실에서 키우기 쉬우며, 형질전환 개체나 돌연변이를 만들기 용이하다. 현재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는 단지 17종의 생물에만 모델 생물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 모델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는 이유는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함이라기보단 이러한 모델 생물이 인간 질병을 위한 기초 모델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델 생물이 해결할 수 있는 질문이 흥미로워서인지, 아니면 연구비 수주가 용이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대표적인 모델 생물인 효모, 예쁜꼬마선충, 초파리, 생쥐, 애기장대에는 상당히 많은 연구자가 모여들어, 각자의 연구 커뮤니티를 형성하였다 [13].
이렇듯 현대의 실험실은 자신이 다루는 생물, 대부분의 경우 모델 생물에 따라 실험실이 구분되어 있다. 각 모델 생물을 다루는 실험실이 모여 모델 생물의 큰 생태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 안에서 과학적 발견, 새로운 실험 방법, 재료, 형질전환 개체 및 돌연변이들이 활발하게 공유된다. 예쁜꼬마선충의 경우 2년에 한 번씩 전 세계 예쁜꼬마선충 연구자가 모이는 학회가 열리며, 예쁜꼬마선충의 다양한 자연종과 돌연변이를 전 세계의 실험실로 보내주는 센터(Caenorhabditis Genetics Center)가 존재하며, 예쁜꼬마선충의 표준 유전체 및 새로 채집된 자연종과 근연종의 모든 유전체 정보가 담겨 있는 사이트(Wormbase)가 잘 확립되어 있으며, 예쁜꼬마선충의 해부학적 정보가 충실히 서술된 사이트(WormAtlas)와 다양한 연구 주제 및 방법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는 교육 사이트(Wormbook)가 잘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는 예쁜꼬마선충을 비롯한 모델 생물 전반에 잘 갖춰져 있으며, 모델 생물 연구의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 덕분에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모델 생물 연구를 통해 빠르게 생산되었다 [14].
그러나 생물학의 역사에서 이렇게 몇몇 생물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 것은 비교적 현대에 일어난 일이다. 초파리 돌연변이 연구의 선구자인 토머스 헌트 모건(Thomas Hunt Morgan)의 실험실 풍경은 하나의 모델 동물을 선택하여 연구하는 현대의 실험실과는 사뭇 달랐다. 초파리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모건의 실험실에는 비둘기와 닭, 불가사리, 말미잘, 개구리, 쥐와 같은 다양한 동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초파리 연구를 시작했던 이유도 초파리가 공간을 적게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1]. 그때 모건의 실험실이 다양한 생물로 이루어져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관심 주제에 맞춰 각 동물의 장점을 활용한 실험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모건은 자신의 관심사인 발생을 연구하기 위해 배아 관찰이 쉬운 개구리 알을 이용하여 실험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생물학 실험에 사용된 다양한 생물이 있었지만 거기서 특정 생물이 모델 생물이라는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과정에는 개인의 취향을 비롯한 여러 우연이 작용했다. 우연과 모델 생물이 가진 강점이 더해져 모델 생물에는 연구비와 연구자가 모였을 뿐만 아니라 유전체 지도를 비롯하여, 연구를 용이하게 하는 과학 자본인 다양한 실험 기법 및 형질전환 개체가 활발하게 공유되었다.
즉, 모델 생물이 특별한 지위를 획득하게 된 이유는 유전학을 용이하게 만들어준 다양한 리소스 덕분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전체 유전체 지도와 돌연변이의 생산 및 공유가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차세대 시퀀싱(next generation sequencing)과 CRISPR 기술은 모델 동물 연구에 효율을 더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델 동물만이 가지고 있었던 특별한 지위를 위협하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 [15, 16]. 차세대 시퀀싱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여,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DNA의 길이(read)가 점점 증가하였고 이론적으로 아니 실제로 이제는 모든 생물의 유전체를 염색체 수준까지 제작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17]. 또한 CRISPR로 유전자 조작이 가능한 생물의 숫자가 점점 늘어가고 있으며, 유전체 서열을 규명하는 개체가 점점 늘어날수록 CRISPR가 사용되는 생물의 수도 함께 늘어날 것이다.
과학적 질문의 범위는 기술의 진보에 큰 영향을 받는다. 기술의 발전은 이전에 가능하지 않았던 일들을 상당 부분 가능하게 해주며, 그로 인해 질문의 규모와 방식이 달라진다. 다시 예쁜꼬마선충으로 돌아가 보자. 예쁜꼬마선충이 다세포 생물의 대표 중 하나를 자임하게 된 것은 그 생물이 자연계에서 어떠한 대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연구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풀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고 (발생과 행동의 유전학적 기반), 그 질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예쁜꼬마선충을 통해 다양한 과학적 질문에 좋은 답변들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지만, 예쁜꼬마선충 하나의 모델을 이용하여 그 질문을 풀고자 하면 그 생물이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한계에 갇히게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예쁜꼬마선충은 세포의 재생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으며, 사회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으며, 수명이 너무 짧아서 수명이 긴 개체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규명하기엔 부적합하다. 생명의 다양성만큼이나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질문들은 너무나 많이 남아있고, 그 질문에 대답하기 더 좋은 모델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모건의 연구실로 돌아가 보자. 거기에는 다양한 생물이 있었지만 결국 초파리의 유전체만 완전히 밝혀졌고, 다양한 툴이 적용되어 모델 동물의 지위를 획득하겠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모건이 기르던 비둘기와 닭, 불가사리, 쥐, 노란 생쥐 모두 시퀀싱하여 유전체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CRISPR를 이용하여 그 생명체의 돌연변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어떤 생물은 CRISPR를 적용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제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대, 즉 우리가 관심이 있는 생물학적 질문을 잘 확립되어 있는 모델 생물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특징으로 환원할 필요가 없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2018년에 공식적으로 시작된 Earth BioGenome Project (EBP)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을 시퀀싱하여 유전체를 제작하겠다는 목표로 진행되고 있으며, EBP를 통해 우리는 유전체의 진화 및 다양성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8]. 새롭게 만들어진 유전체와 CRISPR의 통합으로 다양한 형질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새롭게 규명하게 될 것이다.
3. 새로운 유전학 생물 모델
EBP라는 대형 프로젝트는 최근에 시작되었지만, 이미 자신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단일 연구실 혹은 몇몇 연구실의 협력으로 다양한 생물의 유전체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CRISPR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자생물학, 유전학 툴을 활용하여 연구를 진행하는 많은 사례가 있다 [16, 19]. 이번 글에서는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 새로운 유전자 발전소 - Vibrio natriegens [20]
분자생물학/유전학 실험실에서 여전히 가장 많이 하는 일은 클로닝(cloning)일 것이다. 연구자가 다루는 생물이 무엇이든지 대장균을 활용한 클로닝은 피해갈 수 없고, 대장균의 성장 속도에 맞춰 연구자의 생활도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만약 우리가 3~4시간 만에 충분히 대장균을 키울 수 있다면 아마 우리의 삶도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대장균을 분자생물학 모델로 삼고, 공장으로 활용하게 되었을까? 사실 대장균이 이렇게까지 활용되는 이유는 구하기 쉽고, 친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에도 많은 우연이 개입하고 있는 것이며,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다양한 박테리아 중 대장균보다 활용하기 더 적합한 모델이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Free-living 박테리아 Vibrio natriegens는 빠르게 분열하는 종(doubling time이 10분가량)으로, 형질전환에서 colony가 만들어지는데 5시간이면 가능하다. Pacific Biosciences (PacBio) long-read 시퀀싱을 이용하여 염색체 2개로 이루어진 유전체가 밝혀졌으며, 이 정보를 바탕으로 형질전환 능력을 향상시키고, 벡터의 안정성을 높이는 유전자 조작도 가능할 것이다. 이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아직 박테리아 생장 속도가 왜 이렇게나 다른지, 거기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요인에 대해 충분히 밝히지 못했다. Vibrio natriegens를 시작으로 새롭게 동정되고, 시퀀싱되는 박테리아와의 유전적 비교를 통해 replication time을 비롯한 박테리아의 생활사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새로운 척추동물 노화 모델 - African turquoise killifish [21, 22]
1993년 예쁜꼬마선충에서 단 하나의 유전자 조작만으로 수명이 2배가량 늘어날 수 있음이 밝혀졌다 [23]. 그 후 예쁜꼬마선충, 초파리 그리고 생쥐에서 수명에 관여하고 있는 다양한 유전자가 규명되었다 [24]. 특히 수명이 짧은 예쁜꼬마선충에서 규명된 많은 유전자가 초파리, 생쥐에서도 수명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모델들을 통해 수명에 대한 많은 이해를 얻게 된 것은 분명하지만, 척추동물의 노화에는 예쁜꼬마선충에 없는 여러 층위의 노화가 존재한다 [25]. 대표적으로, 예쁜꼬마선충에는 적응 면역(adaptive immune system)이 존재하지 않으며, 성체 줄기세포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척추동물의 노화를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선 척추동물의 예쁜꼬마선충이 필요할 것이다.
발생 연구에 지대한 기여를 한 주요 척추동물 모델인 지브라피쉬는 최대 수명이 거의 5년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 척추동물을 활용한 직접적 노화 연구를 위해선 짧은 수명의 동물이 필요했다. 따라서 최대 수명이 7개월 정도인 African turquoise killifish는 척추동물의 노화를 연구하기에 상당히 매력적인 동물일 것이다. Short-read 시퀀싱과 long-read 시퀀싱을 통합하여 유전체를 만들었으며, CRISPR를 이용해 돌연변이를 만들어낼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초기 실험으로, African turquoise killifish의 자연종 가운데 짧은 수명(6개월)의 개체와 긴 수명(1년)의 개체를 비교하는 실험을 수행하였고, 성염색체의 특정 지역이 수명 차이에 기여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비교 유전체학을 활용하여 African turquoise killifish와 상대적으로 수명이 긴 다른 7종을 비교하였고, African turquoise killifish에서 기존에 알려진 수명 관련 유전자에 변이가 축적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유전자 지도와 CRISPR를 활용하여 예쁜꼬마선충에서 이루어졌던 다양한 스크리닝이 척추동물에서도 수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생물을 활용하여 각 조직간 상호작용과 면역계 등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이 새롭게 규명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추가로 채집되는 근연종과의 비교를 통해 African turquoise killifish의 짧은 수명과 연관된 유전자를 규명한다면 척추동물의 수명 조절 기전을 자세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CRISPR 기술의 발전으로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쉬워졌다고 하지만 수명 측정은 아직까지 많은 부분이 노동집약적으로 이뤄진다. 특히 물고기의 경우에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큰 규모의 스크리닝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African turquoise killifish뿐만 아니라 새롭게 채집되는 모델에서 대량의 유전학 연구가 이뤄지기 위해선 생물의 유지 및 측정의 자동화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 노화의 법칙을 벗어나 극단적으로 오래 사는 생물 모델 - Naked mole rat [26, 27]
개체의 수명은 몸의 크기와 상관관계가 있다. 사람은 쥐보다 오래 살고, 쥐는 예쁜꼬마선충보다 오래 산다. 그런데 이런 경향성에서 극단적으로 벗어나는 생물들이 가끔 발견되곤 한다. 이런 개체들이 오래 사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진화적 설명이 시도되었지만, 실제로 어떠한 유전자 네트워크가 장수에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고자 하는 노력은 비교적 최근에 시작되었다. 이러한 노력 역시 시퀀싱 기술의 발전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극단적 표현형의 차이를 보이는 근연종의 유전체를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 될 것이다.
Naked mole rat은 엇비슷한 크기와 무게의 생쥐에 비해 10배 이상 수명이 길다. 최대 수명이 30년 가까이 되며, 늙은 나이까지 생식을 하고, 노화와 관련된 특징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암도 걸리지 않아서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암 억제를 연구하기에도 좋은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Naked mole rat의 경우 아직 long-read 시퀀싱을 활용하여 염색체 수준까지 유전체를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short-read 시퀀싱과 전사체 시퀀싱을 통하여 확보한 단백질 암호화 부위 정보를 바탕으로 많은 연구를 수행하였다. 유전체 분석 결과 naked mole rat은 근연종에 비해 genome stability, protein maintenance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변이가 축적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Naked mole rat은 수명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예쁜꼬마선충이나 African turquoise killifish와 같은 수명이 짧은 모델에서 수행하는 knockout 실험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근연종을 활용한 비교유전체학과 naked mole rat 유래 세포 주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naked mole rat 세포는 생쥐 세포에 비해 oncogenic transformation에 저항성을 보이며, naked mole rat의 fibroblast에서는 인간과 생쥐에서 유래한 세포에 비해 5배가량 큰 high-molecular-mass hyaluronan (HA)를 분비하는데, 이 물질이 naked mole rat의 암 저항성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Naked mole rat 세포에서 규명된 유전자를 수명이 짧은 근연종에 도입하여, 수명을 늘릴 수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도 있을 것이다.
- 개미의 사회적 행동 모델 - Ooceraea biroi [28, 29]
개미가 군집(colony)을 이루는 행동은 사회성의 진화에 대한 고민을 던지는 흥미로운 행동으로 오랫동안 생태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개미는 상당히 많은 종이 동정되어 있으며, 밝혀진 10,000종 이상의 개미 모두에서 번식에 전념하는 무리와 노동에 전념하는 무리가 나눠져 있는 진사회성(eusocial)이 나타난다. 이러한 행동을 근원을 밝히기 위해 개미의 유전체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사체 및 후성유전체(epigenomic) 분석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유전체 분석으로 개미는 근연 종에 비해 많은 수의 후각 수용체(olfactoy receptor)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고, 개미의 후각 수용체는 척추동물에서 밝혀진 구조와 상당히 달라 어떤 특별할 기능을 수행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후각 수용체의 기능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후각수용체와 heterodimer를 이루는 것으로 밝혀진 Orco 유전자를 CRISPR를 이용하여 망가뜨렸다. Orco 돌연변이 개미는 군집 형성과 관련된 행동에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나아가 곤충의 뇌에서 후각 자극을 처리하는 antennal lobe의 구조에도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antennal lobe의 구조적 문제가 초파리 Orco 돌연변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Orco가 개미에서 어떤 특이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결과를 보면 상대적으로 단순한 후각 반응이 사회적 행동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Orco를 비롯한 어떠한 후각 수용체 및 어떤 뉴런에서 초파리와 다른 개미 특이적 사회적 행동을 유도하는지 규명하는 것은 흥미로운 연구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어떠한 차이가 번식에 전념하는 무리와 일에 전념하는 무리를 나누는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개미뿐만 아니라 개미의 근연종에 대한 시퀀싱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비교 유전학적 연구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CRISPR가 개미에 적용 가능해지면서 초파리에서 밝혀진 다양한 행동 관련 유전자가 개미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비교 분석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개미의 뉴런을 직접 imaging하고, 활성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행동에 관여하는 뉴런까지 연구가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 뛰어난 재생 능력을 가진 모델 : 플라나리아(Schmidtea mediterranea) [30, 31]
플라나리아 Schmidtea mediterranea는 어떤 조각으로 잘라도, 완전한 개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재생능력을 가지고 있다. 플라나리아의 재생능력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이러한 능력의 유전적 근원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반복 서열이 플라나리아 유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유전체 제작이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근 PacBio long-read 시퀀싱을 이용해 플라나리아 유전체 제작에 성공하였고, 비교 유전체 분석을 통해 플라나리아에는 mitosis, DNA repair, spindle check-point 등 세포의 핵심 메커니즘과 관련된 유전자의 상당수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많은 경우 이러한 필수 유전자(essential gene)는 효모, 예쁜꼬마선충, 초파리의 유전학 실험을 통해 발견되었는데, 이와 같은 플라나리아의 사례는 필수 유전자도 종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플라나라아는 교과서에 소개될 정도로 오래된 역사를 가진 실험 생물이며, 사실 모델 동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작고, 실험실에서 키우기 좋으며, 무성생식으로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 수를 빠르게 불릴 수 있음)을 가지고 있다. 플라나리아를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가 있으며, 다양한 분자생물학 기법 특히 먹이를 통하여 RNA 저해를 유도하는 기술을 통해 유전학적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유성생식하는 플라나리아의 두꺼운 보호 피막(cocoon)으로 인해 CRISPR를 비롯한 형질 전환 생물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다. 대신 최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single cell mRNA 시퀀싱 기술을 활용하여, 플라나리아의 pluripotent stem cell을 분리하여, 유전자 발현을 조사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또한 편형동물(flatworms) 근연 종 가운데 재생 능력이 없는 종도 존재하는데, 이러한 종과의 비교 유전체학을 통해 플라나리아 재생능력의 유전적 기반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뛰어난 사지 재생 능력을 가진 모델 - 도롱뇽(Mexican axolotl) [32, 33]
도롱뇽은 1864년부터 실험실에서 연구에 사용되었던 오래된 실험동물이다. 발생 교과서에 등장하는 Spemann organizer, axon guidance 등의 연구가 일찍부터 진행되었던 생물이며, 한 번의 교배에서 500개의 알을 낳고, 변온동물로 다양한 온도에서 쉽게 키울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CRISPR를 비롯한 실험 방법들이 일찍부터 적용되었다. 또한 피부 색소가 없는 돌연변이를 활용하여 live imaging을 할 수 있는 장점 덕분에 사지 재생 과정에서 blastema의 imaging, tracking이 가능하여 최근에는 single cell mRNA 시퀀싱까지 적용되고 있다.
흥미로운 재생능력과 실험적 용이성 덕분에 오래전부터 유전체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유전체가 인간에 비해 10배나 크고, LTR을 비롯한 반복 서열의 비율이 높아 양질의 유전체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최근 PacBio long-read 시퀀싱을 활용하여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유전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도롱뇽에는 물고기나 다른 양서류에 존재하는 발생 유전자, Pax3가 존재하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그 대신 도롱뇽에서는 Pax7이 Pax3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음을 CRISPR를 이용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플라나리아와 마찬가지로 잘 제작된 도롱뇽의 유전체는 다른 근연종과 비교를 통해 도롱뇽의 재생 능력과 같은 흥미로운 표현형과 관련 있는 유전자를 규명하는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4. 결론
앞에서 소개한 사례는 현재 시도되는 새로운 연구 모델의 극히 일부이다. 하나의 연구실 수준에서 유전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새로운 과학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모델 생물의 자연종을 이용하여 유전체에 변이가 어떻게 쌓이는지 규명하는 것을 넘어서, 모델 생물과 쉽게 비교가 가능한 근연종까지 연구가 확장되고 있다. 다수의 연구자가 오랜 시간 수정하여 만들어낸 좋은 퀄리티의 모델 생물 유전체는 새롭게 시퀀싱되는 종의 좋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모델 생물에서 잘 규명된 유전자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새로운 종에서 그 네트워크가 어떻게 보존되고, 변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연구의 흐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생물을 연구해야 할까? EBP를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이뤄지고 있는 시퀀싱으로 인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의 유전체는 대부분 밝혀지게 될 것이다. 방대한 다양성 속에서 우리는 생명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명체의 어떠한 현상을 풀고 싶은지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몇몇 모델 생물을 이용하여 유전체 네트워크를 규명해왔던 유전학자들은 생명체의 다양성을 조사하고, 형질의 진화를 직접 관찰해왔던 생태, 진화학자들과 흥미로운 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식물에서도 마찬가지로 유전체를 만들고 CRISPR를 이용하여 수확량을 향상시키거나 가뭄 저항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34]. 식물에서는 연구자들이 수행한 다양한 표현형, 유전형 데이터를 하나로 모아 공유하는 Phenome Networks (https://unity.phenome-networks.com)라는 흥미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토마토 연구에서는 4,000여 종의 가지 분지(branching) 정보를 활용하여, 분지가 극심하게 일어나는 종을 활용한 유전학 연구가 수행되기도 했다 [35]. 널리 연구된 모델 생물은 결국 이러한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커뮤니티를 키워나갔다. 새롭게 유전체가 만들어지는 종에서도 유전체 정보를 넘어서, 그 종이 가진 특징과 돌연변이의 표현형 등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확립된다면 생물의 다양성, 진화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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