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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리포트 동향리포트
노화에 대한 분자 생물학적 이해와 응용 동향
성상현(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목차
1. 서론
2. 본론
2.1 유전체 불안정성
2.2 텔로미어 마모
2.3 후생유전학적 변형
2.4 단백질 항상성 유지 실패
2.5 비정상적인 영양소 감지 시스템
2.6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
2.7 세포 노쇠(cellular senescence)
2.8 줄기세포 고갈
2.9 세포 사이의 소통 장애
3. 결론
4. 참고문헌
1. 서론
노화는 대부분의 살아있는 생명체가 피해갈 수 없는, 시간이 부여한 숙명적인 퇴행이다. 노화라는 것이 피상적으로 다루어지던 시대를 넘어서 현대 생명과학의 핵심적인 주제로 떠오른 기념비적인 연구는, 예쁜꼬마선충에서 장수하는 돌연변이 개체가 발견된 것이다 [1, 2]. 그 이전까지만 해도 노화는 분자 생물학 연구자들의 관심을 많이 끌지 못했는데, 노화라는 현상이 수동적이며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망가짐과 동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노화 과정이 다른 생명 현상과 마찬가지로 신호 전달 경로와 전사 인자 등에 의존하는 생물학적 과정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초기의 연구는 효모, 선충, 초파리 등에 집중되었는데, 해당 연구에서 알려진 많은 결과가 포유류에도 진화적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노화 연구는 암 생물학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단순히 보면, 암과 노화는 반대의 현상처럼 보인다. 암은 세포가 과도하게 잘 사는 능력을 획득한 결과이며, 반대로 노화는 세포가 생존에 실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암과 노화는 공통된 특징이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축적되는 세포 내의 손상은 노화의 기본적인 원인으로 여겨진다. 또한 세포의 손상은 확률적으로 특정 세포에 비정상적인 이점을 제공하고 결국 암으로 발전하게도 한다. 따라서 암과 노화는 세포 손상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현상의 두 단면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 내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노화 연구의 방향은 노화의 원인이 되는 손상의 근원, 세포의 항상성을 회복시키려고 하는 반응,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다.
본 글에서는 우선 노화의 세포적, 분자적 특징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2013년의 ”The Hallmarks of Aging”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9개의 노화의 특징이 기본적으로 노화 과정에 기여하며, 노화라는 생명 현상의 표현형에 기여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3]. 각 특징은 다음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1)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 드러나야 한다. 2) 실험적으로 강화할 경우 노화가 촉진되어야 한다. 3) 실험적으로 개선할 경우 정상적인 노화를 지연시키고, 건강한 방향으로 수명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 각 특징은 3가지 조건을 모두 동일한 정도로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특히, 노화를 지연시키고 수명을 늘리는 효과에 대해서 다양한 정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각 특징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의 특징이 단독으로 노화의 한 측면을 담당하여 조절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 본론
2.1 유전체 불안정성
생명체가 살아가면서 축적되는 손상 중 가장 중요한 형태는 유전체에 축적되는 손상이다. 워너 증후군이나 블룸 증후군 같은 조로증은 DNA 손상의 축적이 증가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DNA의 안정성은 외부적으로는 다양한 물리, 화학, 생물학적 요인들에 위협받으며 내부적으로는 DNA 복제 오류, 자발적인 가수분해 반응들, 활성 산소 등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과로써 발생하는 DNA 손상은 점 돌연변이, 역위, 전좌, 염색체 증가 또는 감소, 텔로미어 길이 감소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이러한 손상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체는 DNA 복구 기전을 구축하여 대부분의 DNA 손상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DNA에 가해지는 손상뿐만 아니라 핵의 구조물(예, 핵막)에 문제를 일으켜서 유전체 불안정성을 유발하고 조로증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5].
1) 핵 내 DNA 손상
핵 내의 DNA는 개체의 유전정보를 보존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 보관소다. 흔히 유전체라고 부르는 유전 정보의 총체는 모든 세포의 핵 안에 보관되어 있다. 핵 내 DNA의 정보에 기반하여 RNA로 정보가 전달되고 최종적인 기능을 하는 단백질의 생산까지 이루어진다. DNA 손상이 발생하면 중요한 유전자가 망가지거나 전사 조절 과정 등이 변화하여 특정한 생화학적 경로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생산과 기능에 문제가 발생하고 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이 파괴될 수 있다. 이러한 세포가 제거되지 않고 축적된다면, 단일 세포의 망가짐에서 끝나지 않고 개체 전체의 항상성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6].
DNA 복구 기전이 망가졌을 때 조로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쥐와 인간에서 많이 보고되었다 [7]. 이는 워너 증후군, 블룸 증후군, 색소피부건조증(Xeroderma pigmentosum), 모발유황이상증(trichothiodystrophy), 코카인 증후군, 시클 증후군 등 다양한 질병을 포함한다. 유사분열 체크포인트의 구성원인 BubR1이 과발현된 쥐의 경우, 염색체의 분리를 더 정확히 검사할 수 있고 그 결과 염색체 이수성(aneuploidy)과 암으로부터 더 자유로우며 수명이 증가했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8]. 이러한 결과는 인위적으로 DNA 복구 기전을 강화해주면 노화가 늦춰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9].
2) 미토콘드리아 DNA
미토콘드리아 DNA에 발생하는 돌연변이 또한 노화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알려졌다. 동물세포의 경우 미토콘드리아만이 핵 이외에 별도의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유일한 세포 내 소기관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산화적인 미세환경 속에 놓여있고, DNA를 보호할 수 있는 히스톤 단백질이 없다. 또한 핵 DNA에 비교해서 DNA 복구 기전의 효율이 매우 낮다 [10].
실제로 미토콘드리아 DNA 돌연변이가 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는 오랫동안 논쟁의 영역에 있었는데,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체는 다수로 존재하기 때문에 한 세포 내에 정상 DNA와 돌연변이 DNA가 함께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를 헤테로플라스미라고 함). 그러나 싱글-셀 분석을 통해 미토콘드리아 DNA 전체의 돌연변이 정도는 낮지만, 노화된 개별 세포의 관점에서 돌연변이 유전체가 우세한 미토콘드리아가 존재하는 경우가 있으며 세포에게 상당한 부담을 준다는 것이 알려졌다 [11]. 흥미롭게도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활성 산소에 의한 손상보다는 DNA 복제 오류에 의한 돌연변이가 더 우세하다는 것도 알려졌다. 이런 돌연변이가 생애 초기에 일어날 경우 다양한 조직에서 호흡 관련 기능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 DNA에 생긴 손상이 노화에 중요하다는 최초의 증거는 부분적으로 노화와 유사한 표현형을 보이는 인간 멀티시스템 장애 케이스에서 드러났다 [12]. 추가적으로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효소가 망가진 쥐 모델에서 조로증과 수명 감소가 관찰되었으며, 미토콘드리아 DNA에서 무작위적인 점 돌연변이와 결손이 발견되었다 [13]. 이 쥐 모델에서 얻어진 세포의 경우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망가져 있었는데 활성산소의 생성은 증가하지 않았고 줄기세포의 기능이 망가져 있었다. 미토콘드리아 DNA에 대한 돌연변이를 감소시킬 수 있는 유전적 조작이 노화를 늦추고 수명을 늘릴 수 있는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2.2 텔로미어 마모
DNA 손상이 축적되는 것은 유전체 전체에 무작위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텔로미어 같은 특별한 영역은 노화에 따라 독특한 손상을 겪는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말단을 구성 및 보호하고 있는 핵산-단백질 복합체를 의미하는데, 넓게는 염색체의 물리적인 말단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14]. DNA 복제효소는 선형의 DNA 분자 말단을 완전히 복제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 그래서 텔로머레이즈라고 하는 특별한 역전사 효소가 염색체 말단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포유류 체세포는 텔로머레이즈를 발현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매 세포 분열마다 점차적으로 텔로미어가 손실된다. In vitro에서 세포를 배양하면 분열 능력이 배양 세대에 비례하여 감소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를 분열성 세포 노화(replicative senescence) 또는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헤이플릭 한계(Hayflick limit)라고 한다. 텔로머레이즈를 인위적으로 발현시켜주는 것만으로 세포를 불멸화할 수 있다는 연구는 많이 있다. 또한 인간과 쥐의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 텔로미어의 길이 감소가 관찰된다.
텔로미어에는 쉘테린(shelterin)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단백질들이 복합체로 결합해 있다 [15, 16]. 쉘테린 복합체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핵심적으로는 텔로미어를 DNA 손상으로 인지되지 못하게 하고 DNA 복구를 위한 단백질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 자체이기 때문에 끊어져 있는 손상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인 유전체 내부의 끊어진 손상과 동일하게 처리된다면 텔로미어는 DNA 복구 시스템에 의해 염색체 결합으로 치료될 것이다. 그 결과로 두 염색체가 하나로 합쳐지게 되면 세포 분열 전후로 유전 정보를 정확하게 복제하여 전달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이를 막기 위해 쉘테린이 DNA 복구 기전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텔로미어 내의 DNA 손상은 치료되지 않고 지속되는 경향이 있고 세포 노화나 세포 사멸을 유발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17].
인간에서 텔로머레이즈가 결핍되면 다양한 질병이 발생하는데, 폐 섬유증, 선천성이상각화증, 재생불량성 빈혈 등이 일어날 수 있고 이들 질병은 특정 조직이 재생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병한다 [18, 19]. 쉘테린 단백질에 문제가 생겨서 텔로미어의 보호 구조가 망가지고 염색체끼리 잘못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조직의 회복 능력이 감소하고 노화가 촉진되는 표현형을 보이는데, 정상적인 텔로미어의 길이가 유지됨에도 보호 구조의 이상으로 인해 세포의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유전적인 변형을 가지는 동물 모델에서 텔로미어 손실과 세포 노화 그리고 개체 수준의 노화 사이의 인과 관계가 연구되었다.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거나 길어지도록 조작한 쥐의 경우 수명이 각각 짧아지거나 길어졌다 [20]. 최근의 연구에서는 노화가 텔로머레이즈 활성화로 인해 되돌려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고되었다 [21]. 텔로머레이즈를 잘 발현시켜 암이 발생할 확률을 높이지 않고 정상적인 노화를 늦춘 사례도 있다. 인간의 경우에는 생애 초기의 짧은 텔로미어 길이와 죽음 사이에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정상적인 노화 과정은 텔로미어의 길이 감소를 동반한다. 다양한 원인에 의한 텔로미어의 기능 이상은 노화를 촉진하며, 실험적으로 텔로미어를 조절해주었을 때 노화를 늦춘 사례도 있다. 따라서 텔로미어는 노화의 특징을 정의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
2.3 후생유전학적 변형
후생유전학적 변형은 DNA 메틸화 패턴의 변화, 히스톤의 번역 후 변형, 염색질 리모델링을 포함하는 개념이며, 세포와 조직의 생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노화 과정과 연관해서는 히스톤 H4K16 아세틸화, H4K20 메틸화, H3K4 메틸화의 증가와 H3K9 메틸화, H3K27 메틸화의 감소가 보고되었다. 다중적인 효소 시스템이 각 변형의 생성과 유지에 관여하며, 이들 시스템 자체 또한 노화의 영향을 받는다 [22, 23].
1) 히스톤 변형
무척추동물에서는 히스톤 메틸화가 노화의 특징의 조건을 만족한다. 히스톤 메틸화 효소들(H3K4나 H3K27에 대한)을 삭제하면 선충과 초파리에서 각각 수명이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그리고 H3K27에 대한 히스톤 메틸화제거효소를 선충에서 억제하면 인슐린 신호전달 경로를 타겟팅함으로써 수명이 증가한다 [24]. 이러한 결과들이 있음에도 히스톤 변형 효소들을 조작해서 노화에 영향을 준 과정이 완전히 후생유전학적 과정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DNA 복구나 유전체 안정성을 건드린 것인지 또는 핵 바깥에서 신호 전달 경로에 영향을 주어서 전사 조절이 바뀌었는지는 불분명하다.
NAD-의존적인 단백질 아세틸화제거효소인 sirtuin 패밀리나 폴리(ADP-리보오스)중합효소들이 항노화 인자로써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25, 26]. 효모, 초파리, 선충 등에서 단일한 유전자인 Sir2만을 조절하는 것으로 상당한 수명 증진 효과가 있었다. 각 모델에서 Sir2 유전자의 상동유전자를 과발현시키면 수명이 증가했는데, 모델에 따라 실험 결과에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기도 하다.
포유류에 대해서는 7가지의 Sir2 상동유전자가 쥐 모델에서 다양한 노화 표현형에 각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다. 무척추동물의 Sir2와 가장 비슷한 SIRT1 유전자를 쥐에서 과발현시키면 노화 과정에서의 건강 정도는 좋아졌으나 수명을 늘리지는 못했다. SIRT1이 긍정적 영향을 미친 기전은 다양하고 복잡한데, 유전체 안정성을 증가시키고 대사 효율을 증진시켰다. 다른 상동유전자인 SIRT6가 망가진 쥐 모델의 경우 노화가 촉진되었고, SIRT6를 과발현하는 쥐는 인슐린 신호전달경로가 감소함으로써 수명이 증가했다 [27]. SIRT3는 미토콘드리아에 위치하는데 미토콘드리아 단백질의 아세틸화 제거를 통해 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불완전하긴 하지만 포유류 모델에서 또한 sirtuin 패밀리에 속하는 유전자들이 건강한 노화를 조절하는 것으로 보인다.
2) DNA 메틸화
DNA 메틸화와 노화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다. 초기의 연구들은 노화와 DNA 저메틸화(hypomethylation)가 연관되어 있다고 보고한 경우가 많은데, 이후에는 노화의 진행에 따라 종양억제유전자가 고메틸화(hypermethylation)되는 경우가 발견되었다. 조로증 표현형을 보이는 환자나 쥐 모델의 세포에서 DNA 메틸화나 히스톤 변형이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 발견되는 패턴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불분명하여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3) 염색질 리모델링
DNA나 히스톤을 변형하는 효소들은 대개 이질염색질 단백질(heterochromatin protein 1,HP1)이나 염색질 리모델링 인자인 폴리콤(Polycomb) 유전자나 NuRD 복합체와 함께 작동한다 [28]. 이들 단백질은 정상적이거나 질병으로 인한 노화 세포에서 발현량이 감소한다. 염색질 리모델링 관련 인자들은 유전체 전반에 걸쳐 이질염색질 형성과 재분배에 관여하는데, 이는 노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에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초기 연구는 초파리에서 HP1이 기능을 잃으면 수명이 짧아지며, 과발현되었을 때는 근육의 퇴행을 막고 수명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고했다.
노화와 염색질 리모델링의 중요한 연결점은 반복 DNA 서열과 염색체 안정성을 조절하는 데에 있다. 동원체(centrosome) 근처의 영역에는 이질염색질 마커와 더불어 HP1 단백질이 결합해서 염색체의 안정성을 유지한다. 텔로미어도 대표적인 반복 서열로써 이질염색질로 유지되어야 한다. 텔로미어 안쪽의 서브텔로미어 영역에도 이질염색질이 상시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즉, 염색질 조절은 또 다른 노화의 특징인 텔로미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4) 후생유전학적 변화를 되돌리기
일반적인 DNA 돌연변이와는 다르게 후생유전학적인 변형은 기본적으로는 되돌릴 수 있는 과정이다. 따라서 항노화 약물을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다. 쥐에서 히스톤 아세틸화제거효소 억제제를 사용하여 H4의 아세틸화를 유지해주면, 노화와 연관된 기억력 퇴행이 감소한다는 결과가 있다 [29]. 후생유전학적 변화를 되돌리는 것이 적어도 신경을 보호하는 기능은 할 수 있는 것이다. 히스톤 아세틸화효소 억제제를 이용해 조로증을 가지는 쥐 모델의 노화를 늦춘 사례도 있다. 또한 최근 선충에서 연구된 바에 따르면, 특정한 염색질 변형을 조절하여 수명이 증가하는 효과가 세대를 넘어서 수직으로 자식 세대에 전달되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염색질 변형은 부모 세대에만 일어났고 자식 세대는 동일한 변형을 가해주지 않았음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유전된다는 것이다. 항노화 물질로 각광을 받고 있는 레스베라트롤의 역할 중 하나가 SIRT1 유전자의 활성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후생유전학적 변형을 통해 세포와 개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후생유전학적인 변화는 다른 노화의 특징보다 이론적으로나마 되돌리기 쉽다는 점에서 노화와 연관된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 수명을 늘리는 타겟으로 연구될 가치가 크다.
2.4 단백질 항상성 유지 실패
생명체를 구성하고 작동하기 위한 정보는 DNA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DNA 자체로는 아무런 기능을 갖지 못한다. DNA 속의 정보는 특정한 구조와 기능을 갖는 단백질로 발현되고 단백질끼리의 네트워크가 복잡하고 촘촘하게 형성되어 생명 현상의 근간을 이룬다. 유전체의 안정성을 유지하여 DNA 정보를 정확히 유지하는 것과 더불어 세포는 단백질의 기능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품질 관리 시스템 또한 갖추고 있다. 이를 단백질 항상성이라 하는데 노화와 노화 관련된 질병 중 일부는 단백질 항상성이 망가지는 것과 연관이 있다. 단백질 항상성의 주요한 요소는 열충격 단백질에 의해 정확한 구조를 갖춘 단백질을 잘 유지하는 것과 특정한 타겟 단백질(주로 잘못된 구조를 가진 단백질)을 프로테아좀 또는 라이소좀을 통해 분해하는 것이다. 잘못된 구조를 가진 단백질은 기능에 이상이 생길 뿐만 아니라 다른 단백질의 기능에도 악역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정상적인 구조를 가지지 않거나 응집된 단백질이 만성적으로 발현할 경우 노화와 연관된 질병인 알츠하이머 병이나 파킨슨씨 병, 백내장 등이 발병할 수 있다 [30].
1) 샤페론에 의한 단백질 관리
노화 과정에서 샤페론(대표적인 열충격 단백질, 단백질의 정상적인 구조 형성이 이루어지도록 함)의 생산 또는 기능이 감소한다는 것은 여러 동물 모델에서 알려졌다. 그로 인해 수많은 단백질이 정상적인 구조를 갖지 못하고 기능에도 이상이 생긴다. 선충이나 초파리 모델에서 샤페론이 과발현되면 수명이 증가한다. 샤페론이 망가진 쥐는 조로증 표현형을 보이고, 반면 오래 사는 쥐 종의 경우 특정한 열충격 단백질이 상향조절되고 있는 것이 알려졌다. 또한 열충격 반응에서 핵심적인 전사인자인 HSF-1이 활성화되면 수명과 열 저항성이 증가한다는 것이 선충 모델에서 보고되었다.
단백질 항상성을 유지하거나 개선하려는 시도들은 주로 샤페론의 기능을 조절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인 샤페론인 Hsp72의 기능을 약물로 유도하여 주면 근육 퇴행을 보이는 쥐 모델에서 질병의 진행이 지연되었고 근육의 기능을 오래 보존할 수 있었다. 또한 작은 분자를 약물로써의 샤페론으로 사용하여 노화와 연관된 표현형을 개선한 사례도 있다. 세포 내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단백질 수리공의 기능을 최대한 돕거나 개선시켜 줌으로써 비교적 편리하게 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2) 단백질 분해 시스템
단백질이 정상적으로 생산되도록 돕고, 잘못된 단백질을 다시 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손상을 입거나 변형이 생긴 단백질은 제거하는 것밖에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 단백질의 품질을 관리하는 데 있어 분해를 통해 나쁜 단백질 제거를 담당하고 있는 핵심적인 두 축은 자가포식-라이소좀 시스템과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이다. 이 두 시스템은 노화 과정에서 기능이 감소한다.
자가포식 수용체인 LAMP2a를 과발현하는 쥐는 노화에 따른 자가포식 기능 감소를 겪지 않고 간 기능을 오래 유지했다. mTOR의 억제제인 라파마이신은 자가포식을 유도하여 쥐의 수명 증가를 일으키기도 했다. 라파마이신은 효모, 초파리, 선충 모델에서 자가포식을 유도함으로써 수명 증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또 다른 자가포식 유도제인 스퍼미딘은 면역계를 억제하는 부작용을 가지지 않으면서 유사한 수명 증가 효과를 보였다.
프로테아좀 시스템에 대해서는 선충에서 EGF 신호전달 경로를 활성화할 경우 다양한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의 구성 요소들의 발현이 증가하며 수명이 증가한다는 결과가 있다. 인간 세포 실험에서도 유비퀴틴제거효소 억제제나 프로테아좀 활성제를 처리할 경우 독성이 있는 단백질이 효율적으로 제거되었다. 효모에서는 실제로 수명 증가 효과 또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잘못된 단백질을 잘 분해하는 것이 단백질을 잘 만들고 고쳐 쓰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점이다.
2.5 비정상적인 영양소 감지 시스템
세포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성장하고 분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조금 더 편한 용어를 사용하자면 영양분으로도 표현할 수 있고, 적절한 영양분은 세포의 생존뿐만 아니라 개체의 생존에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모든 생명체에는 영양분의 존재를 인지하고 흡수하여 적절한 대사 과정을 통해 세포가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하거나 나중에 필요할 때를 대비해 저장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31]. 또한 개체의 영양 상태를 인지하여 적절하게 필요한 곳에 분배하여 사용하도록 조절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개체의 성장과 생식에 에너지를 분배하는 문제는 생명체가 가장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다. 성장과 생식 모두 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본 글에서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노화의 특징을 정리한다. 가장 큰 이유는 생식과 노화가 연결되는 지점이 노화를 겪고 있는 당 개체로서는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생식 기능을 적절한 시점에 제거하면 노화가 지연되고 수명이 늘어난다는 증거는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 연장을 위해 생식 기능의 존속 여부를 고민한다는 것은 본 글의 취지와 맞지 않는 듯하다.
포유류에서 성장자극 시스템(somatotrophic axis)은 뇌하수체 전엽에서 생산되는 성장 호르몬과 성장 호르몬에 의해 자극을 받은 다양한 세포(주로 간세포)가 생산하는 이차 중재자 IGF-1 (insulin-like growth factor 1)으로 구성된다. IGF-1의 신호전달경로에 의해 촉발되는 세포 내의 반응은 인슐린에 의한 반응과 동일하게 세포에게 포도당이라는 중요한 영양소가 존재한다는 정보를 전달한다. 따라서 IGF-1과 인슐린 경로를 하나로 묶어 인슐린과 IGF-1 신호(insulin and IGF-1 signaling, IIS) 경로라고 부른다. 특히 IIS 경로는 진화적으로 가장 잘 보존된 노화 조절 경로이다. IIS 경로에는 다양한 타겟이 존재하는데 핵심적인 타겟인 FOXO 패밀리의 전사 인자나 mTOR 복합체 또한 진화적으로 잘 보존된 노화 관련 인자이다. 즉, 세포의 성장과 에너지를 조절하는 경로가 노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IIS로 대표되는 영양소 감지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은 노화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관점에서 식이 제한(dietary restriction)이 개체의 수명과 건강 수명 모두 증가시킬 수 있다는 연구가 많이 있다.
1) 인슐린과 IGF-1 신호전달 경로(IIS)
IIS 경로의 신호 강도를 다양한 수준에서 유전적으로 조절한 경우 수명 증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 선충, 초파리, 쥐 모델에서 보고되었다 [32]. 유전학적 분석을 통해 식이 제한이 수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또한 IIS 경로에 부분적으로 의존하는 현상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IIS 경로의 하위 실행자(effector) 중 선충과 초파리에서 가장 극적인 수명과의 연관성을 보인 것은 FOXO 전사인자이다. 쥐에는 네 개의 FOXO 구성원이 있는데 IIS를 통해 수명을 조절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장호르몬과 IGF-1의 발현량은 정상적인 노화 과정과 조로증 마우스 모델에서 감소한다. 그런데 실험적으로 IIS를 감소시키면 수명이 증가한다. 일견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IIS를 억제하는 것이 세포의 성장과 대사를 최소화함으로써 세포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방어적인 반응이라고 이해하면 해결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속적으로 IIS가 억제되고 있는 개체는 세포 성장 속도와 물질대사 정도가 낮기 때문에 세포에 가해지는 손상의 정도가 낮고, 그로 인해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정상적이거나 질병적인 노화 과정에 있는 세포 또한 최대한 오래 살기 위한 방어 반응으로써 IIS를 낮추는 것이다.
그러나 노화에 대한 방어적인 반응으로 인해 세포의 특정한 기능이 결국 망가지게 될 수 있고 오히려 노화가 촉진되는 위험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낮은 IIS를 가지는 세포는 생존할 수 없다. 또한 매우 낮은 IGF-1 발현량을 보이는 쥐 모델이 조로증 표현형을 보이며, IGF-1을 보충해주는 것으로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2) mTOR, AMPK, Sirtuin
포도당을 감지하는 IIS 경로 이외에도 핵심적인 영양소 감지 시스템이 세 가지 더 있다. mTOR 경로는 높은 아미노산 농도를 인지하고 AMPK는 높은 AMP 레벨을 인지함으로써 낮은 에너지 상태를 감지한다 [33]. Sirtuin 경로는 높은 NAD+ 레벨을 인지함으로써 낮은 에너지 상태를 감지한다.
mTOR 인산화효소는 mTORC1과 mTORC2라고 불리는 두 가지 단백질 복합체의 일부분이다. mTORC 복합체는 동화작용을 전반적으로 조절한다 [34]. 효모, 선충, 초파리에서 mTORC1의 활성을 유전적으로 낮추어 주면 수명이 증가하고 식이 제한에 의한 수명 증가 효과를 희석시킨다. 이는 mTOR 저해가 식이 제한에 의한 효과와 겹치는 영향을 준다는 의미이다. 쥐에 라파마이신을 처리해서 수명을 증가시킨 사례는 유명한데, 포유류에서 약물을 통해 수명을 증가시킨 것 중 가장 극적인 경우이다 [35, 36]. 쥐 시상하부 뉴런의 경우,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mTOR의 활성이 증가하는데 이로 인해 노화와 연관된 비만이 나타난다. 시상하부에 직접 라파마이신을 처리해주면 노화에 의한 효과를 억제할 수 있다. IIS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mTOR 경로에 의한 성장 신호가 노화를 촉진할 수 있는 것이다. TOR 활성을 억제하는 것이 노화에 대해 좋은 효과를 보이는 것은 맞지만, 부작용 또한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쥐 모델에서 상처 회복이 더디어지거나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기도 하며, 백내장 또는 고환 손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따라서 TOR를 억제하는 것의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의 원인을 잘 이해하여 둘을 분리하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이다.
AMPK와 sirtuin은 IIS와 mTOR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작동한다. 즉, 영양소가 부족한 상황을 인지하고 이화작용을 촉진한다. 따라서 AMPK와 sirtuin 경로는 상향 조절되었을 때 노화를 억제할 수 있다. AMPK의 활성화는 대사에 다양한 방면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중요한 것은 mTORC1을 억제하는 기능이다. 선충과 쥐에서 메트포르민(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되는 혈당강하제)을 처리하면 수명이 증가하는데 이때 AMPK의 활성화가 관여한다 [37]. Sirtuin에 의한 효과는 PGC-1α (PPARγ coactivator 1α)의 아세틸화를 제거하여 활성화하는 것인데, PGC-1α는 미토콘드리아 생성, 항산화 반응 촉진, 지방산 산화 증가 등 다양한 대사 작용을 조절한다. 또한, AMPK와 SIRT1은 양성 피드백을 주고받음으로써 낮은 에너지 상태를 인지하는 반응들을 통합한다.
정리해 보면 동화작용 경로는 노화를 촉진하며 영양소 인지 경로가 억제되면 수명이 증가한다. 특히 낮은 영양소 상태를 모방할 수 있는 라파마이신 같은 약물이 쥐 모델에서 수명을 증가시킨 사례가 기념비적이었다. 그러나 세포의 영양 상태를 관리하는 것이 세포의 생존 자체에 매우 중요한 만큼, 부작용 없이 이로운 효과만을 얻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2.6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
세포와 개체가 늙어가면서 미토콘드리아의 호흡 사슬(respiratory chain)의 효율이 감소하고 결과적으로 전자의 누출이 증가하며 ATP 생산량이 감소하게 된다.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이상과 노화 사이의 관계는 오랫동안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1) 활성 산소
노화에 대한 미토콘드리아의 자유 라디칼 이론(the mitochondrial free radical theory of aging)은 노화에 따른 점진적인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가 활성산소의 증가로 이어지고 결국 미토콘드리아의 퇴행과 전반적인 세포 손상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38]. 이러한 주장에 대한 연구 결과는 많이 쌓여있지만 최근에 활성 산소의 역할을 평가하는 데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결과가 많이 나왔다 [39]. 가장 놀라웠던 연구 중 하나는 선충과 효모에서 증가한 활성 산소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결과였다. 또한 쥐에서 유전적 조작으로 미토콘드리아에서 활성 산소 생산이 증가하고 산화적인 손상이 증가해도 노화가 촉진되지 않았으며, 증가한 항산화 반응을 가지는 쥐에서 수명 증가 효과가 관찰되지 않았다 [40]. 유전적 조작으로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은 망가졌으나 활성 산소의 양은 증가하지 않았을 때 노화가 촉진된 사례도 있다. 이러한 결과를 보았을 때 활성 산소와 노화의 관계는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활성 산소가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특정한 상황에서 세포의 성장과 생존을 촉진하는 세포 내 신호를 담당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활성 산소를 스트레스에 의해 촉발된 생존 신호로 생각한다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상황을 조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활성 산소의 핵심적인 역할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보상 반응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노화가 진행될수록 세포의 스트레스와 손상이 증가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방어 기제로써 활성 산소가 증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한계점을 넘어가면 활성 산소는 원래의 항상성 유지 목적을 배반하게 되고 노화와 연관된 손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게 된다. 이러한 프레임 내에서 활성 산소가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분석하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
2) 온전한 미토콘드리아와 생성 조절
비정상적인 미토콘드리아는 활성 산소와 무관하게 노화에 기여할 수 있는데, DNA 중합효소 γ가 망가진 쥐 모델에서 잘 드러난다.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미토콘드리아의 투과성이 증가해서 세포 사멸 신호가 증가하는 것이나 염증 반응을 촉발함으로써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토콘드리아의 바깥쪽 막과 소포체 사이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주어 세포 내 신호 전달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노화에 따른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감소는 미토콘드리아 생산 자체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텔로머레이즈가 없는 쥐 모델에서 텔로미어가 짧아지면 p53에 의해 PGC-1α와 PGC-1β가 감소하고 미토콘드리아의 생산이 감소한다. SIRT1도 PGC-1α를 통해 미토콘드리아 생산을 조절할 수 있고, 자가포식 과정을 조절하여 손상된 미토콘드리아를 제거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41]. SIRT3는 미토콘드리아의 핵심적인 아세틸화제거효소로 작동하는데 호흡 사슬에 관여하는 여러 효소들과 항산화효소 등의 아세틸화를 제거함으로써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대사뿐만 아니라 활성 산소 생산에도 관여한다. 이러한 결과는 텔로미어와 sirtuin이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통해서도 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 다른 중요한 노화의 원인은 미토콘드리아 DNA에 축적되는 돌연변이, 미토콘드리아 단백질의 산화, 호흡 사슬에 속하는 복합체의 불안정화, 미토콘드리아 막의 지질 구성 변화, 미토콘드리아 분열과 융합의 이상, 미토콘드리아 포식 작용의 비정상적인 작동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미토콘드리아에 손상이 축적되고 비정상적인 미토콘드리아를 제거하는 기전이 망가지면 노화가 촉진된다. 지구력 훈련이나 간헐적 단식 등이 미토콘드리아의 퇴행을 방지함으로써 건강 수명을 늘려준다는 보고가 있다. 이때 발생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부분적으로나마 자가포식에 의해 조절된다고 하는데, 다른 기전 또한 함께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 미토콘드리아의 변화가 얼마나 핵심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불분명하다.
3) 미토콘드리아 호르메시스(mitohormesis)
호르메시스는 낮은 독성을 가지는 물질이 이로운 효과를 내는 현상을 말한다. 농도나 강도에 대한 영향도 포함될 수 있는데, 높은 농도나 강한 강도에서는 해롭지만 낮은 정도의 자극에 대해서는 이로운 효과가 나는 경우도 호르메시스로 볼 수 있다. 호르메시스가 일어나면 특정 독성 자극에 대한 복구 반응을 넘어서서 세포의 적응도가 자극을 받기 전보다 더 향상되는 정도까지 반응이 나타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심각하게 망가지면 질병이 생길 수 있지만 약한 정도의 호흡 이상이 발생하는 것은 호르메시스에 의해 수명의 증가까지 이어질 수 있다. 선충에서는 미토콘드리아 호르메시스가 손상을 입은 당사자인 세포를 넘어 멀리 떨어져 있는 조직에까지 이로운 효과를 미친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42].
메트포민이나 레스베라트롤은 가벼운 미토콘드리아 약화 물질로 작용해서 AMP 레벨 증가와 AMPK 활성화로 나타나는 낮은 에너지 상태를 유발한다 [43]. 메트포민은 선충에서 AMPK와 핵심적인 항산화 조절자인 NRF2에 의해 조절되는 스트레스 보상 반응을 활성화시켜 수명을 늘려준다. 최근에는 메트포민이 선충의 장내에 서식하는 미생물 군집의 엽산과 메티오닌 대사에 영향을 미쳐 수명을 조절한다는 연구가 있다. 쥐에서는 메트포민을 생애 초기에 투여하면 수명이 증가한다는 보고가 있다. 레스베라트롤과 SRT1720 (sirtuin의 활성제)은 대사에 의한 손상으로부터 미토콘드리아를 보호하고 PGC-1α 의존적으로 호흡을 향상시켜 주지만 정상적인 식사를 하는 상황에서는 수명을 증가시켜주지는 못했다. PGC-1α를 과발현하는 초파리는 미토콘드리아 활성이 향상되어 수명이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유전적인 조작이나 약품을 통해 미토콘드리아의 짝풀림(산화적 인산화 과정에서 형성된 수소 이온의 농도 구배를 ATP 합성 과정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현상)을 유발해주면 초파리와 쥐에서 수명을 증가시켜 줄 수 있었다.
정리해 보면, 미토콘드리아와 수명의 관계는 초기에 생각되던 것만큼 활성 산소에 의한 단편적인 효과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활성 산소가 매개하는 세포 내 신호 전달 경로가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활성 산소를 단순히 산화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나쁜 것이라고 인지하는 프레임은 완전히 깨졌다. 전반적으로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이상이 노화를 촉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토콘드리아의 이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연구 또한 필요하다. 미토콘드리아만을 특이적으로 조절해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약물적 방법이 있는지는 아직 남아있는 과제이다.
2.7 세포 노쇠(cellular senescence)
세포 노쇠는 특정한 조건 하에서 세포가 분열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세포 주기가 정지된 상태를 말한다. 세포 노쇠는 헤이플릭이 인간 섬유아세포를 지속적으로 배양했을 때 확립한 개념이다 [44, 45]. 최근에는 세포 노쇠가 기본적으로 텔로미어에 의해 조절되는 현상이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고, 텔로미어와 독립적으로 노쇠를 유발할 수 있는 자극이 있다는 것도 알려져 있다. 노화한 조직 내에 노쇠한 세포가 축적되는 것은 주로 간접적으로 측정되었는데 DNA 손상 정도를 재거나 노쇠와 연관 있는 β-갈락토시데이즈(senescence associated β-galactosidase, SABG)의 활성을 측정했다. 나이 든 개체에서 노쇠를 보이는 세포가 증가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맞지만, 조직마다 차이가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노쇠한 세포가 축적되는 것은 그러한 세포가 생성되는 것의 속도와 제거되는 속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현상인데, 면역 시스템이 나이가 들면서 약화되면 노쇠한 세포가 충분한 속도로 제거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노쇠한 세포가 증가하기 때문에 세포 노쇠는 개체의 노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현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세포 노쇠의 기본적인 목표를 평가절하하는 것일 수 있는데, 세포 노쇠는 손상을 입은 세포가 증식하는 것을 막고 면역 반응으로 해당 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시작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포 노쇠는 손상된 세포를 제거하여 암 발생 과정을 막아주는 이로운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세포 노쇠의 유익한 효과가 잘 발현하기 위해서는 노쇠한 세포를 제거하고 다시 전구 세포로부터 필요한 만큼의 세포 수를 회복하는 과정이 원활해야 한다. 노화한 개체에서는 세포를 다시 회복시키는 과정이 약화되어 있거나 전구 세포의 고갈로 인해 회복 자체가 더딜 수 있다. 이로 인해 노쇠한 세포가 축적된다면 개체 전체에 스트레스를 줄 수 있고 노화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46].
최근에는 노쇠한 세포가 독특한 종류의 분비체(sectretome, 특정 세포에서 분비되는 물질의 전체 집합)를 가진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특히 염증을 유발할 수 있는 사이토카인이나 금속단백분해효소(metalloproteinase)이 포함되며 ‘노쇠와 연관된 분비 표현형(senescence-associated secretory phenotype, SASP)’으로 불린다. 이러한 분비물들이 노화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1) 세포 노쇠 결정 영역과 p53
DNA 손상뿐만 아니라 과도한 분열 신호 또한 세포 노쇠와 관련 있는 스트레스다. 최근의 연구들은 50가지 이상의 분열 신호 또는 암발생 촉진 신호가 세포 노쇠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 이런 신호에 반응하여 노쇠를 유도할 수 있는 기전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는 p16INK4a/Rb와 p19ARF/p53 경로가 가장 중요하다. 쥐와 인간에서 시간적인 노화와 거의 모든 조직에서의 p16 발현량 사이에는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 노화에 따라 발현량이 이만큼 상관관계를 보이는 유전자나 단백질은 없다. p16과 p19은 유전체의 같은 영역(INK4a/ARF 영역)에서 생산된다. 300개 이상의 샘플을 분석한 유전통계학(genome-wide association study, GWAS) 연구에 따르면 이 영역이 노화와 관련된 질병들과 가장 많은 연관을 보였다. 여기에는 심혈관계 질환, 당뇨, 녹내장, 알츠하이머 병 등이 포함된다. 이 영역 내의 유전자들이 기능획득 또는 기능상실 돌연변이 중 어떤 것을 가지는지 찾는 것이 다음 연구 방향이 될 것이다.
p16과 p53이 만들어내는 세포 노쇠가 개체 전체의 노화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관점에 따르면, 이들이 암 발생을 억제하는데 기여하는 정도와 비교했을 때 노화를 촉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비용이긴 하나 이득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지속적인 스트레스의 축적으로 조로증을 보이는 쥐 모델은 상당한 정도의 세포 노쇠를 보이는데, p16이나 p53을 제거했을 때 세포 노쇠가 상당히 경감되는 것을 관찰했다. 그러나 p16이나 p53의 발현량을 증가시켜 주었을 때 암발생 확률이 낮아지고 수명도 길어진 쥐 연구도 있고, p53이 없어졌을 때 조로증이 더욱 심각해진 사례도 있기 때문에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세포 노쇠와 노화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세포 노쇠가 암발생을 막기 위한 방어적인 반응이라는 관점을 생각한다면, p53의 활성화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지속되면 조직의 재생 능력이 감퇴하거나 한계에 도달해 있기 때문에 p53의 활성화 반응이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노화를 촉진하는 것일 수 있다.
세포 노쇠가 노화에 미치는 영향이 복잡하기 때문에 노화의 특징의 세 번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세포 노쇠를 유발하는 종양 억제 기전을 활성화시켜 수명을 증가시킨 사례도 있고, 조로증 모델에서 노쇠한 세포를 제거하여 노화 관련 질병의 발생을 늦춘 사례도 있다. 개념적으로 반대되는 두 가지 처리를 통해 각각 노화를 막은 셈이기 때문에 명확한 그림이 드러나려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2.8 줄기세포 고갈
조직의 재생 능력이 감소하는 것은 노화의 가장 명백한 특징 중 하나이다. 혈액 생성 과정이 나이에 따라 감소하는 것이 대표적이며 그 결과 획득면역반응이 감퇴하고(면역 노쇠), 빈혈증과 골수 종양의 확률이 증가한다. 성체줄기세포가 존재하는 대부분의 조직에서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다. 노화한 쥐 연구에서 조혈모세포의 세포 주기 활성이 전반적으로 감소해 있어서 오래된 조혈모세포는 더 적은 세포 분열을 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는 DNA 손상의 축적, 세포 주기 억제자인 p16의 과발현과 연관이 있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 또한 다양한 조직에서 노화에 따라 줄기세포의 기능이 감소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47]. 그밖에 다양한 원인에 의해 줄기세포의 감퇴가 나타날 수 있다 [48, 49].
줄기세포나 전구세포가 제대로 분열하지 못하는 상황은 개체에 명백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테지만, 이들 세포가 과도하게 분열하는 것 또한 줄기세포 적소(niche)의 고갈을 앞당겨 유해할 수 있다. 줄기세포가 휴지기에 들어가 있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초파리의 장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에서 잘 드러났다. p21이 망가진 쥐에서도 조혈모세포와 신경 줄기세포가 빨리 고갈되어 개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노화 과정에서 INK4a가 활성화되는 것이나 IGF-1이 감소하는 것은 모두 개체가 줄기세포의 휴지를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줄기세포의 고갈을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세포 내 신호를 조절하는 것이 노화 억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식이 제한 또한 비슷한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보고한 사례가 있다.
세포 내 신호에 의해 줄기세포가 조절되는 것 이외에 세포끼리 주고받는 신호에 의해서도 줄기세포의 기능이 변화할 수 있다. 어린 쥐의 근육에서 유래한 줄기세포를 조로증 쥐에 이식해주었을 때 수명의 증가와 조직의 재생 능력이 일부 회복되는 것을 관찰한 바 있다. 놀라운 것은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조직뿐만 아니라 이식한 줄기세포가 전혀 검출되지 않는 멀리 떨어진 조직에서도 퇴행적인 표현형이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줄기세포에서 분비된 모종의 신호가 다른 세포의 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물을 사용해서 줄기세포의 기능을 개선하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라파마이신을 이용해 mTORC1을 억제하는 것은 단백질 항상성이나 영양소 감지 능력을 조절하는 것 이외에도 줄기세포의 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 이는 노화의 특징들이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과 동시에 노화를 막기 위한 시도들 또한 복합적인 기전에 의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밖에도 노화한 인간 조혈모세포에서 GTPase인 CDC42를 약물로 억제하여 노쇠 표현형을 개선한 사례도 있다.
2.9 세포 사이의 소통 장애
노화는 세포의 자율적인 변화 이외에도 내분비, 신경내분비, 신경신호 등 세포 간 소통의 변화를 동반한다. 신경호르몬 신호는 노화 과정에서 망가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염증 반응의 증가, 면역관리 체계 감소, 세포 주변의 환경 변화에 뒤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1) 염증 반응
노화 과정에서 세포 간 소통 체계에 생기는 변화는 인플라메이징(inflammaging, 염증 반응 inflammation과 노화 aging의 합성어)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노화에 동반하는 염증 반응이 지속적으로 주변에 영향을 주는 상황을 말한다 [50]. 인플라메이징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염증 반응을 촉진할 수 있는 손상이 조직에 축적되거나, 병원체 또는 이상한 세포를 제거할 수 있는 면역 시스템이 기능 장애를 가지거나, 노쇠한 세포가 염증 촉진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하거나, 특정한 면역 관련 전사 인자(NF-κB)가 활성화되거나, 자가 포식 작용이 잘못 활성화되거나 하는 등의 원인이 존재한다. 이러한 변화는 NLRP3 인플라마솜(inflammasome)의 과도한 활성화를 유발하고 다른 염증 반응도 유발하여 종양 괴사 인자인 IL-1β와 인터페론의 생성이 많아진다. 염증 반응은 또한 비만과 유형2 당뇨병의 진행에도 관련이 높고, 이들 질병은 인간의 노화와 연관이 높다. 노화와 연관된 염증 반응은 상피 줄기세포의 기능을 억제하기도 한다 [51].
염증 반응이 과도해지는 것에 더하여 획득면역반응 또한 기능이 감소한다. 이러한 면역 노쇠 작용은 개체 수준에서 노화 표현형을 악화시킬 수 있는데, 면역계가 감염성 인자나 감염된 세포 또는 악성 종양화의 가능성이 있는 세포를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감퇴하기 때문이다. 또한 면역계는 세포 노쇠를 겪는 세포를 직접적으로 제거하기도 하고 노화 과정에서 축적되는 고배수체(hyperploid) 세포를 제거해야만 한다.
염증 반응을 조절하여 노화를 늦추기 위한 목표하에 노화한 조직의 전사 패턴을 널리 조사한 연구가 있다. NF-κB가 과하게 활성화되는 것이 노화의 중요한 전사 특징으로 보였고, 조건부로 NF-κB의 억제제를 노화한 쥐의 피부에 발현시켰더니 조직이 회춘되는 표현형을 보였다. 또한 젊은 조직의 전사 패턴과 유사한 전사적 특징을 보이도록 변화했다. 그 밖에도 NF-κB를 유전적이거나 약물적인 방식으로 억제하여 쥐의 노화 표현형을 억제한 연구는 많이 존재한다. 염증 반응과 스트레스는 시상하부에서 NF-κB를 활성화시키고 하위의 신호 전달 경로는 신경세포에서 생식샘자극호르몬분비호르몬(gonadotropin-releasing hormone, GnRH)의 생산을 낮추도록 한다. GnRH의 감소는 뼈와 근육이 약화되고 피부가 위축되고 신경 발생이 감소하는 등의 노화 관련 변화로 이어진다. GnRH를 추가로 처리해주면 쥐에서 노화와 연관된 신경 발생 감소를 억제하고 노화를 늦출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시상하부가 NF-κB에 의한 염증 반응과 GnRH에 의한 신경 내분비 효과를 통합해주는 곳임을 의미한다.
2) 특이한 세포 간 소통
염증 반응 이외에도 조직이나 기관끼리 영향을 미쳐 노화의 효과가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노쇠한 세포가 이웃한 세포에게 간극연접(gap junction)을 통해 활성산소 매개 신호를 전달하여 노화 표현형을 유발하는 사례가 있다. 이를 전염성 노화(contagious aging) 또는 방관자 효과라고도 한다 [52]. 쥐에서 면역치료 요법인 양자전이(adoptive transfer)를 통해 관찰했을 때 노화와 연관된 CD4 T세포의 기능 감소에 미세환경이 크게 기여한다는 것도 알려졌다. 반대로 수명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한 조직에 처리했을 때 다른 조직의 노화 과정이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
3) 망가진 세포 간 소통 회복시키기
유전적, 영양학적, 약물적 간섭을 통해 노화 과정에서 망가지는 세포-세포 소통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많다. 식이 제한을 통해 건강 수명을 증가시키는 것, 개체결합 실험에서 예상되는 혈액 내 인자를 사용해 회춘시키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항염증 약물인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하는 것이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쥐와 인간 연구에서 존재한다. 장내 미생물 군집이 숙주 면역계의 기능을 조절하고 개체 전체의 대사 작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에 기반하여 인체 내 미생물 생태의 조성과 기능을 변화시켜 노화를 지연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3. 결론
앞서 소개한 아홉 가지 노화의 특징들은 일차적 특징, 상반되는(antagonistic) 특징, 통합적 특징 세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일차적 특징들은 모두 명백하게 부정적인 것들이다. 유전체 불안정성, 텔로미어 손실, 후생유전학적 변화, 단백질 항상성 유지 실패가 여기에 속한다. 일차적 특징과는 달리 상반되는 특징들은 강도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낼 수 있다. 즉, 낮은 강도에서는 이로운 효과를 주지만 높은 강도에서는 해로운 것이다. 여기에는 세포 노쇠(개체를 암으로부터 보호하지만 과도할 경우 노화를 촉진함)와 미토콘드리아의 활성 산소(세포 신호와 생존을 담당하지만 과도할 경우 세포에 손상을 줌), 영양소 인지 과정(개체의 생존을 위해 중요하지만 과도할 경우 질병을 일으킴)이 포함된다. 상반되는 특징들은 개체를 손상이나 영양소 부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전이지만, 과도하거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원래의 목적을 넘어서 개체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세 번째 분류인 통합적 특징에는 줄기세포 고갈과 변화한 세포 간 소통을 넣을 수 있다. 이들은 조직의 항상성과 기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아홉 가지 노화의 특징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관계에 있어 일정한 정도의 위계를 가진다. 일차적 특징은 노화를 촉발하는 계기로 작동하여 시간에 따라 손상이 축적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상반되는 특징은 원리적으로 이롭게 작용해야 하지만 일차적 특징이 지속됨에 따라 과도해지게 되어서 점차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통합적 특징은 일차적 특징과 상반되는 특징에 의해 축적된 손상이 세포와 조직의 항상성이 버텨낼 수 있는 정도를 넘었을 때 드러나게 된다. 기본적으로는 이런 흐름을 따르긴 하지만, 각 특징들 간의 인과 관계를 정확히 설명하는 것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다.
노화의 특징을 정리함으로써 노화의 분자적인 기전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인간의 건강 수명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노화는 너무나 복잡한 생명 현상이지만 최근의 기술 발전이 조금씩 노화의 이해에 다가가도록 돕고 있다. 대표적으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이 발전하면서 노화한 개체의 개별 세포에 축적되는 유전적, 후생유전적 변화를 정확히 분석하고 평가하는 노하우가 쌓이고 있다. 이전에도 비교 유전학적 접근을 통해 장수하거나 단명하는 개체 사이의 유전적, 후생유전학적 차이를 분석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동물 모델에서 기능획득 또는 기능손실을 가지는 유전자를 통해 in vivo에서 노화에 대한 영향을 관찰하는 연구도 지속되고 있는데, 두 분야의 적절한 결합을 통해 인과 관계로 특정 인자와 노화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한다.
개별적인 특징들을 연구하는 것에 더하여 시스템 생물학적 접근을 통해 노화에 동반하거나 노화를 촉진하는 과정들 사이의 연결을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본 글에서는 주로 개체 내의 변화와 영향에 대해서만 기술했지만 유전체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분자 기전 수준에서 규명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과제이다. 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동시에 안전하고 재현 가능한 방식으로 인간의 수명과 건강 수명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도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미래 연구들에 대한 초석으로써 노화의 특징들을 정리하고 노화의 기전 이해의 바탕을 닦은 것이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4.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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