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스타트업에는 일당백이 필요하다고 한다. 좋게 말해, 인재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기도 하나, 돌려 생각해 보면, 결국 돈이 부족하여 사람을 많이 둘 수 없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동상이몽이 생기는 경우를 종종 본다. 대표가 직원에게 요구하는 내용과, 직원이 채용 당시 들었던 업무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순간이다. 흔한 말로, 대표가 직원에게 계약서에 존재하지 않는 열정과 노력을 요구하는 순간인 셈이다. 이런 불일치의 순간이 오고 난 뒤의 끝이란 딱히 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이런 일은 드라마에 나오는 것 아닌가? 혹은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그러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상황은 자주 만날 수 있다. 입사할 때 설명 받지 않은 업무와 관계없는 일을 시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또는 직원들이 주인 의식이 없어 걱정이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각자의 사정과 각자의 고민이 있겠지만, 주인 의식과 그로 인해 일을 하지 않아 걱정이고, 대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 역시 마음이 갑갑했다.
대표자가 된 시간보다, 직원으로 있었던 시간이 더 길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왜 직원이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또 왜 직원이 대표자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는지 공감 되지 않는다. 아무리 직원이 주인 의식으로 열정적으로 업무를 본다고 해도, 또 직원이 대표자의 마음을 헤아린다 하여도 결국 직원은 직원일 뿐 회사의 오너가 되어 결정권을 행사할 수는 없지 않던가? 또한, 직원이 설사 대표에 빙의하여 회사에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열정적으로 업무를 본다고 할 때, 과연 대표는 이러한 직원의 행동이나 태도를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직원이 대표 머리 위에 올라탔다며 불쾌하다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표가 원하는 인재는 무엇일까? 무엇을 대표처럼 생각하라는 것일까? 뜬구름과 비슷해 보이는 주인 의식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대표의 needs를 만족할 만한 인재는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대표가 희망하는 일당백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대표처럼 생각하는 직원이란 세상에 없다. 대표는 대표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비전과 목표가 있다. 또한 이를 실행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이 성장을 위한 경험은 다른 직원들에게는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어느 날 대표만 저 앞에 나가 있고, 직원은 그러하지 못할 수 있다. 직원이 알아서 일하지 못한다고 섭섭해할 문제가 아니다. 직원은 대표의 목표와 비전을 공유받지 못했기에, 당연히 대표의 마음으로 움직일 수가 없다.
물론 이런 인재가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 대표와 함께 창업을 한 동업자라면, 또 함께 비전을 공유한 사이라면 당연히 대표와 같은 마음가짐의 직원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드물다. 비전 공유를 하며 함께 성장을 하는 경우라면 대게 임원급에 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표는 일당백의 직원을 어떻게 구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그 허상을 포기하면 된다.
우리 팀은 처음부터 이 허상을 포기했다. 대신, 초기 창업 멤버인 나와 동료의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성장할 수 있는 동료를 구해나가는 방식으로 팀을 확장하기로 했다. 즉, 초기부터 조직을 구성하여 팀원을 구축하는 전략을 취했다. 조직을 처음부터 구성하자는 아이디어는 경영을 전공한 동료의 아이디어였다. 직원이 일당백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대표 역시 일당백이 될 수 없고, 자본은 한정적이니 공동대표 2인이 휴가를 가거나 출장을 가도, 업무 인수인계가 가능한 사람들로 임원을 구성하고, 그 아래 직원을 두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란 의견이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지금 우리는 각 공동대표의 전공 분야대로 연구와 경영을 분리하고, 임원 급 팀원을 확보하고, 상황에 맞춰 연구와 경영팀에 필요한 사람들을 각각 배치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조직을 구성하여 일을 한다는 것은, 연구자들에게 절대로 낯설지 않을 것이다. 회사를 조직하고 일을 조직화한다는 것은, 하나의 연구팀이 하나의 주제를 위해 각자의 연구자들이 각각의 연구를 진행하고, 이 연구를 취합하며 하나의 주제를 증명해가는 과정과 매우 유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로 보면, 합성 연구팀이 합성을 하는데, 그 안에서도 누가 중간체를 보급할지, 누가 최종 화합물을 만들지, 누가 물질 디자인을 할지 개인의 능력에 맞게 업무를 배치하고, 최종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연구 결과를 도출해나가는 이 모든 과정이 조직적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것에 해당한다. 말이 어렵지, 연구자들에게 조직을 구성하고 일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 셈이다.
이런 조직화 작업을 하게 되면 대표가 자신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조직을 구성한다는 것은 결국 대표에게 필요한 사람을 찾는다는 말이 된다. 즉 대표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본인이 커버할 수 없는 역량을 파악하고 이 역량에 맞는 사람을 찾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대표가 다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어설프게 아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므로,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낫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으며, 특히나 기술 기반의 연구자 출신으로 구성된 스타트업일수록 기술 외의 영역은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어느 특정 분야에 깊게 알고 있는 만큼, 사실 다른 분야에 대한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또한, 조직이 구성되고 잘 굴러갈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대표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인사라고 하는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조직이 잘 굴러가게 되는 경우, 대표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무리하다 발생하는 과로사를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표가 잠시 부재하더라도 회사의 업무는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비전 공유도 개개인에게 하는 것보다 조직에 공유하는 것이 편하다. 큰 틀과 목표를 대표는 조직에게 던지고, 조직은 이를 받아 조직 내 개개인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비전에 맞게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로 나쁘진 않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현업에 계신 선배 벤처 대표님들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초기 스타트업은 매출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몇 년이 가도 고용이 없는 기업이라면 그 기업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고용이 없는 기업은 조직을 구성할 수 없는 곳이고, 조직을 구성해서 그려나갈 큰 그림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성장할 생각이 없거나 혹은 성장할 능력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직은 기업의 성장 자체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성장하기 위해 어차피 필요한 고용이라면, 대표에게 없는 능력을 수혈하는 조직을 구성해 보자. 이런 작은 조직이 시작점이 되어, 더 큰 성장을 도약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작성자: 윤정인 (엄마 과학자, 유기화학자, 칼럼니스트, 창업가)
* 본 글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피펫잡는 언니들"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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