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든 사람이든 집이든 직장이든 다 인연이 있는 거 같다. 이런 인연이 나의 운명을 변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내가 미국에 오기 전에 컨설턴트로 4개월 일했던 ****라는 회사가 있었다. 미국으로 들어오면 신분이 변경되므로 입국을 하고 나서 다시 계약서를 쓰고 일을 시작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계약서까지 다 써두고 최종으로 불발이 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에 도착하고 취업허가서를 받기까지는 두 달 반이 걸렸는데, 이런 나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 기다림의 시기는 아이들과 같이 정착을 하던 때라서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정신적으로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실패는 없다.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다른 회사를 알아보게 되었다. 존스홉킨스대 소속은 아니지만 병원과 맞은편에 있는 연구소 건물에서 데이터 분석을 할 수도 있으며, 또한 남편과 같이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 있었다. 출퇴근 동선을 고려하여 프리스쿨에 보내는 아이는 병원 근처 pre school에 대기를 넣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복합적인 생각으로 지원을 했고, 그동안 수행했던 연구에 대해서 두 시간 정도 줌 미팅 발표를 했다. 최종적으로 결과는 긍정적이었으나, 내 포지션을 지금 당장 변경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쓴맛을 보게 되었다. 두 번의 실패는 나에게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미국에서 연구를 하거나 회사를 다니기가 참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차라리 연구 분야가 아닌 사업을(빅 피쳐) 하기 위한 연습을 해볼까? 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 미국서 알바 해보기
운 좋게 쉽게 구해졌다. 지금 코로나 시국 이후로 일자리로 돌아가야 할 노동자들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라고 언론에서 기사가 흘러나온다. 또한 여기저기 구인... 이라는 문구를 보는 것이 어렵지 않게 많이 쓰여 있었다. 나는 버블티 만드는 업체에서 주방 쪽 파트를 맡기로 했다. 일단은 주말에만 일을 하기로 했다. 일은 재미있었고, 나중에 이런 업체를 다른 지역에 만들어서 사업을 해볼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열심히 일을 배웠다. 2021년 11월 6일 처음 시작해서 연말까지 주말에만 일을 했다. 시급은 낮지만, 정신노동을 하다가 육체노동을 해보면 약간의 잡생각이 없어지면서, 피곤은 하지만 매우 뿌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알바도 2주마다 PAYSTUB을 준다. 남편 것과 비교하자면 빠져나가는 금액이 매우 적기는 하다. 아래는 블랙프라이데이쯤에 받은 나의 PAYSTUB이다.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에는 시간당 19.72불씩 페이가 지급되었다.

* 드디어 미국회사 입사
알바를 하는 와중에도 아는 박사님께서 소개해주신 회사가 생각이 나서 연락을 드리게 되었다. 2021년 10월 20일쯤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싶은데 아직도 자리가 남아 있으면 일을 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예전에 소개를 받았지만 그때는 갈 곳이 정해져 있던 상황이라서 고사를 했던 회사였다. CV를 보내고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갔는데, 간단한 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실제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내가 해오던 분야가 아니라서 상당히 애를 먹었지만, 다행히 통과가 되었다(문제는 뭔가를 고민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어떻게 코딩을 해야 할까에 대한 질문인데, 회사 기밀상 공개하지는 않겠다.). 이런저런 이슈로 12월 6일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팀 미팅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이렇게 인연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등록 절차가 늦어져서 계약서에는 12월 21일부터 정식으로 effective day로 적혀 있었다. 파트타임으로 시간당 **$를 받게 되었고. 그동안 일한 시간을 모두 소급 적용해 주셨다. 다행히 한국의 소속 기관에서 퇴사를 앞두고 새로운 기관으로 이직하게 된 셈이다. 이렇게 미국에서의 나의 경력은 순조롭게 이어지는 듯했다.
내가 그동안 연구해오던 분야는 대장암 데이터 분석이다. 이곳에서는 혈액암 데이터 분석을 한다고 해서 내가 새롭게 공부하고 적응해야 할 분야가 많겠다는 각오는 살짝 했다. 내가 이 분야를 잘 모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관련 연구 논문을 계속 보내주셨다. 역시나 무슨 소리인지, 하루에 3-4시간 공부해서는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을 읽고 있는 느낌 이랄까... 이 당시 나의 스케줄은 매우 벅찼다. 아침 9시에 막둥이를 프리스쿨에 내려두고 집에 와서 빨래와 청소, 장보기를 하는 대신 연구실로 올라가서 4시간 정도 앉아 있었다. 점심을 먹고 2시 40분에 출발해서 3시에 픽업해서 집에 오면 3시 20분쯤 되었다. 4시에 집에 오는 아이들과 4시 30분에 집에 오는 남편과 5시쯤 저녁을 먹고 나면 씻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낮에 4시간 정도 연구를 하다 보니 집안일을 모두 오후에 해야만 했다. 나름대로 지켜오던 패턴이 모두 뒤틀리게 된 셈이다. 주변에 아는 언니들 동생들도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서 뭔가 내 영역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급여는 어떻게 받나? 세금은 어떻게 내나?
시간당 급여를 받는 컨설턴트는 급여를 받기 위해서 w9라는 양식의 폼을 내야 한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컨트랙터라고 부른다. 이것은 세금에 관하여 조금 색다른 방법으로 신고를 해야 한다. 컨트랙터는 그냥 1인 기업을 운영한다고 보면 된다. 지불받은 급여에서 택스로 아무것도 빠지지 않는다. 내가 알아서 3개월에 한 번씩 세금도 내야 한다. 이처럼 컨트랙터로 속해 있는 사람의 세금 신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큰 숙제였다. 나중에 내가 세금을 회피하려 한 사람으로 몰리지 않게 위해서는 세금도 공부를 해야 한다니...

아래의 BILL이란 어플을 이용하여 급여를 받게 된다. 회사에 INVOICE를 요청하면 회사 측에서 INVOICE를 검토하고 있다는 표시를 해주는데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첫 급여를 받을 때 여기에 내 은행 계좌를 연결해야 하는데 할 줄 몰라서 한 참 뒤에나 급여를 받았다. 미국 생활은 물어 물어 스스로 알아 가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가령, 8월 1일부터 말일까지 일한 것은 8.31일에 INVOICE를 보냈고, 회사에서는 30일 이내에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늦어지게 되면 그다음 달로 넘어가서 지급되기도 한다. 8월에 일한 것을 9월 말경에 받는 것이 아니라, 10월 11일에도 받게 될 수 있다.

세금을 내는 것도 특별히 공부를 해야 한다. 컨트랙터는 1인 사업자가 되므로 경비처리를 할 수 있다. 한 달에 80시간을 일한다 치면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급여를 계산한다. 매달 받은 비용이 변동되어 차등은 있으나 세금을 낼 경우에는 1년간 총 받을 수 있는 금액을 expectation을 하여 얼마나 비용으로 처리할 것인지 차감한다. 가령 총 54000불을 받을 것으로 추정하면 경비로 10,000불을 공제하고 기본공제로 12000불을 공제한다. 그러면 32000불에 대하여 social관련 15.3%, 주 세금 8%, 연방세금 12%을 계산한다. 그렇게 나의 예납세금은 941불로 계산되었고 이것을 3개월에 한 번씩 2,824달러를 지불하게 되었다. 세금을 내야 하는 마감일은 분기별로 4.16(1분기), 6.15(2분기), 9.15(3분기), 1.17(4분기) 일로 정해져 있다. 이때 납부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래는 이 돈을 어떻게 납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보여준다(from IRS). 나는 체크카드를 이용해 한번 수수료 2.2불인 ACI payment를 이용했다(이것이 가장 저렴한 납부방법). 이것을 내년 3.1일에 부부합산 세금 보고 시에 증빙서류로 가져가야 한다.

* 힘들게 들어갔으나 나는 퇴사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일들이 있어서,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9월경에 공지를 하고 회사에서는 계약의 종료를 12월 21일에서 10월 21일로 한다는 결정문을 보내주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영어로 미팅을 하는 것이었고, 개인적으로 아이가 미국 pre-k로 옮기면서 하원 시간이 낮 12시 30분으로 너무 일찍 집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어찌 되었건, 열 달간의 미국회사의 경험도 나름 재미있었고,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또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공유해 보겠다.
작성자: 김만선
* 본 글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피펫잡는 언니들"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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