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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과학자 창업도전기] 16화. 근로자 정체성은 내가 결정할 수 없다.
회원작성글 BRIC
  (2022-04-28 13:06)

근로자 정체성은 내가 결정할 수 없다.


사건의 발달은 4대 보험이었다.
지난 chapter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는 동료를 구했고, 연구소를 설립했다.

공동 창업 후 맞이하는 첫 번째 동료로 우리는 사내 등기 이사를 채용했다.
사실 법인 설립 당시 우리 법인에는 대표자 2인이 있었고, 우리를 제외한 등기 이사가 2명 있었다.
연구 이사와 마케팅을 전담할 이사들인데, 사실 나와 동료의 각각 배우자들이었다.

초기 창업을 진행할 때부터 이들은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에 적립된1 인재들로,
각각 연구 경력 10년, 마케팅 경력 10년을 자랑하는 베테랑들이었다.
그리고, 연봉을 높이지 않아도, 나와 동료가 스카우트 제의를 해볼 수 있는 인재들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줄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동료였다.

그전엔 그저 이름을 올리고, 연구 관련 도움이 필요할 때 무임금 노동으로 함께 하고 있었지만, 
이제 연구소가 설립되고, 연구소의 장비를 세팅하며 자금2을 확보하자, 바로 연구인력으로 함께 하자며 신랑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사실 가족끼리는 사업하면 안 된다는 지도 박사님의 만류가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좋은 선택지는 내 배우자이자 동료인 이 사람이었다. 사실 배우자는 나와 함께 학부-석사 시절을 같이 보낸 동료였다. 학위 과정 기간 우리는 같은 Lab에서 동료로 근무했었고, 심지어 박사 이후 기업에서 함께 대략 2년간 근무한 경험도 보유하고 있다.

즉, 내가 아는 가장 의약화학 연구를 잘 하는 석사 고경력 연구원이 공교롭게도 내 배우자였다. 그리고 마침 나는 그 인력 충원이 절실했다. 사실 배우자와 나는 대학교 1학년 겨울, 화학과에서 CC로 시작해 대학원 CC를 거쳐 연인이자 유기합성을 하는 연구소 동료 및 선후배로 7년, 동일 업계 종사자이자 부부로 10년의 세월을 보냈다.그만큼 서로 손발을 맞춰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창업 후 바로 합류하여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는 이만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략 6개월간의 설득 끝에, 합류를 하고, 당당하게 근로자로 신고를 마치고 우리에겐 문제 될 일이 하나도 없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비상이 터진 것이다. 우리가 근로자로 신고했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근로자가 아니라며 가입을 허가해 줄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당연히 근로자로 영입했고,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였으며, 법률상 등기이사여도 회사에 근무하여 근로를 제공하면 근로자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청을 했는데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반려되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2개가 set로 움직인다. 고용보험에 가입된 근로자여야 산재보험 가입이 되기 때문이다.

위험한 일이 비일비재한 연구실에서 산재보험은 필수였고, 산재보험이 되지 않으면 산재 사업장 등록이 되지 않아 실험을 할 수 없다는 추가적인 문제도 발생하게 된다. 실험 중단이 되는 상황이니 난리가 나지 않을 수가 없는 문제였다.

고용보험이 가입되지 않는 이유는 근로자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법인 대표의 배우자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답변에 연구팀에 합류한 연구이사(=배우자)는 매우 불쾌함을 비췄다. 본인은 근로자로 언 10년을 살아왔고, 언제 망할지 모르는 스타트업에 지분도 없이 채용되었는데 근로자임이 부정 당했기 때문이었다.

모르면 전문가에게 묻는다는 우리의 신념에 맞춰, 우리는 바로 노무법인에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사업주의 직계 동거 가족은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법을 알게 되었다.

상담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자의 기준을 “사업주의 지휘 감독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을 갖는 보수를 지급받는 자"로 잡고 있는데, 법인 대표이사의 배우자나 동거 친족의 경우 원칙적으로 사업주와 생계 및 이익을 같이 하는 자이기 때문에 금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일부 사업주가 임금 횡령 등을 목적으로 실제 근무하지 않는 가족들을 회사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경우라고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처럼 이미 기존의 동일 분야에서 근무를 해왔고, 배우자의 회사에 동일한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목적으로 이직을 한 경우, 또한 업무 지시를 받고 일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실제로 이렇게 근로자성 인정을 받은 판례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근로자성 인정을 위해 이의신청 절차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근로자성 인정을 받기 위한 이의신청은 감정적으로 쉽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의 담당자는 사실 아무 말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굳이 배우자인데 근로자성 인정을 받고 싶어 하냐는 투의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고 고압적이었다.

물론 그 태도에 우리 역시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근로자니까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근로자임을 부정 당한 이유가 단순히 내가 창업을 해서 대표가 된 것 때문이라는 점이 아니던가? 결혼했다는 것을 이유로, 왜 10년 이상의 근로자 정체성을 본인이 아닌 남이 결정한단 말인가?

근로자임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뭐 하러 6개월간 연봉협상을 했던 것이며, 또한 노동자에게 목숨만큼 귀한 퇴직금은 어쩌란 말인가?

우리가 시간을 들여 이의신청을 하고 소명을 한 이유는 딱 그 하나였다. 부부지만, 우리가 영위하는 삶은 별개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근로자로써 각자 쌓아온 커리어 역시 존재하는데, 그 모든 것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부정당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단의 해석대로라면, 단순히 가족이기 때문에 근로계약서 없이 무임금으로 노동을 동거 친족에게 시킬 수 있고, 임금을 받기로 한다고 해도 임금 체불이나 혹은 근로시간을 준수하지 않아도 사업주를 신고할 수 없다. 심지어 사업주가 폐업해서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항의할 수 없다. 심지어 산재에 등록되지 않으니 죽도록 일하다가 죽는다고 해도 따질 곳이 없다.

이렇게 되는 경우, 이것 역시 가족이니까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가족이라 근로자가 아니니까 보호하지 않는 것은 옳은 것인가? 그러니까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왜 일하셨냐고 되물을 것인가? 가족이니까 근로자성 인정이 되지 않으니, 같이 일하고 싶으면 이혼이라도 하란 소리인가?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우리는 공단의 태도가 꼭 이렇게 느껴졌다. 혼인신고 왜 했어라고 말이다.

결국 소명 절차 잘 진행했고, 근로자 인정을 받아 새로운 스타트업의 동료가 된 배우자는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 특히나 소중하고 소중한 퇴직금을 확보했다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4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공단에서 인정받기 위해, 물론 우리가 동일한 연구 분야에서 함께 종사한 사이였다는 것도 증명하기 위해 전 직장 재직증명서를 떼서 제출하기도 했고, 같이 차 타고 출퇴근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아무튼 소명은 완료가 되었다.

근로기준법이 엄격해야 한다는 점은 아직 근로자성이 더 강한 사업주 입장에서 충분히 동의한다.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은 특히나 엄격해야 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 동일 업종에서 가족이 탄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부부가 함께 동료로 일하는 일이 과거와 달리 흔한 시대에, 근로자성 판단을 혼인신고 여부로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전 직장과 현 직장의 업무를 비교하고, 연봉 수준도 파악하고 보다 더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혹시 창업 첫 동료를 가족으로 생각하는가?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사업주와 근로자의 관계가 될 예정이라면, 잘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잘 준비하고, 제대로 공사 구분해서 일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힘든 소명 과정을 거치는 것은 사실 추천하지 않는다.

위에는 간단하게만 이야기했지만, 더 많은 대화가 있었다. 그리고 소명 과정을 겪으며 나와 배우자는 결혼하면 안 되는데 결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창업 동료가 되면 안 되는데 왜 동료가 되었느냐는 느낌도 받았다. 정체성을 부정 당하는 그 기분이란 것이 꼭 연구자의 커리어도 함께 부정 당하는 듯하여 여러모로 좋지는 않았다.

그러니 창업 동료 선택은 보다 더 신중하게, 그리고 만약 특수한 상황이 걸린다면 꼭 미리 노무법인이나 법무법인 상담을 받길 바란다. 생각보다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법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1. 우리 회사에 영입하겠다고 적립한단 소리는 배우자에게 먼저 말하지 않았었다.

  2. 중진공 2차 대출을 이용하여 추가 자금을 확보했다.

  3. 덕분에 석사 시절 도망가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잘 붙들어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4. 우리 부부의 경우 퇴직금은 각자 노동의 대가로 존중해 주고 있어 각자 계획대로 운용하기로 사전 합의가 있었다.


작성자: 윤정인 (엄마 과학자, 유기화학자, 칼럼니스트, 창업가)

* 본 글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피펫잡는 언니들"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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