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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하루 두 번 퇴근하기
회원작성글 BRIC
  (2021-11-10 14:44)

픽사베이 제공

© 픽사베이


아이 둘을 키우면서 직장에서도 내 몫을 제대로 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퇴근과 동시에 일이 종료되는 직종이 아닌 나와 같은 연구자들은 더욱 그렇다. 연구실에서 직접 실험을 하는 것 외에도 논문과 세미나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연구 제안서를 내고, 후배들을 가르치고, 논문을 쓰고, 연구비를 관리하는 등 연구실 안에서의 눈에 보이는 직장인의 삶 이 면에 남들은 볼 수 없는 연구자로서의 삶이 더 있고, 이러한 업무들은 시공간을 넘어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오롯이 일과 삶을 분리해 내는 것이 잘되지 않는다. 

공무원인 남편의 직장 생활 패턴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나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아주 깔끔하게 현실로 돌아온다. 남편에게는 키워야 하는 후배도 없었고, 몇 년간 끌고 가는 프로젝트도 없었다. 어차피 2년마다 근무지를 옮기고, 1년마다 한 근무지에서도 보직이 바뀌는 것이 일상이기에 연말에 후임자에게 1주일 정도 인수인계하면 되는 상황이다.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간 모은 데이터로 연구 논문을 내거나, 연구실에 첫발을 디딘 대학원생 또는 연구원이 제대로 실험하고, 자신의 연구를 스스로 끌어갈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치는 게 일상인 나와는 결이 다른 남편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정말 많이 다른 삶을 살아가는 중이구나 싶었다.

직업 특성상 내 삶은 여느 직장맘 보다 더욱 일과 삶이 분리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만일 늦게까지 해야 할 일을 다 마무리하고 온다고 해도 그것은 오늘 내가 정한 할당량을 끝내 놓았을 뿐이고 머릿속에서는 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때까지 그 생각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막상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우다다다 뛰어와 내 품에 안기는 두 아이를 만나는 순간부터 연구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은 저기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리게 된다.

부랴부랴 아이들 저녁을 챙기면서 동시에 아이들과의 폭풍 수다가 또한 시작된다. 오늘 잘 지냈는지, 친구들과 무슨 일은 없었는지, 숙제는 있는지 없는지, 준비물 사야 할 것이 있는지, 재밌었던 일이나 속상했던 일이 있는지 등 다양한 수다가 이어진다.

아이들과 수다를 떨면서 저녁 식사가 마무리되면, 나는 최대한 빨리 설거지를 끝낸다. 청소는 뭐 시간 있을 때만 하기에 아이들 방만 대충 정리해 준 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요구들을 들어준다. 

묵찌빠를 하기도 하고, 숙제를 도와주기도 하고, 잊어버렸다는 레고 조각을 찾아주기도 하고, 아들의 변신로봇을 변신시켜주거나 부러진 장난감을 수리해 주기도 한다. 나는 기왕 장난감을 가지고 놀 꺼면 소리도 잘 나고 작동도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라 배터리를 집에 쟁여두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장난감을 세팅해 주는 엄마다. 로봇 팔이 부러지면 제조사에 연락해서 수리를 맡기고, 부품이 없어져도 따로 구매할 수 있는 부분이면 부품을 구해 온전한 로봇, 비행기, 자동차로 놀 수 있게 해 주었다.

4년 전 나는 아들과 놀기 위해 또봇, 카봇, 파워레인저 등 수십 개에 달하는 다양한 변신 로봇을 자유자재로 변신시키고, 합체시킬 수 있게 무척 노력했다. 아들 있는 엄마들은 다 공감할 것이다. 로봇 변신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자동차로 변신시켜 준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아 다시 로봇으로 변신시켜 달라는 반복되는 아이의 요구에 응하기가 얼마나 빡센 일인지 말이다. 아들이 7살이 되면서 점점 스스로 조작할 수 있게 된 덕에 그 무한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퇴근 후 로봇 변신뿐 아니라 스토리를 담아 함께 놀아주면서 나도 똑같이 6살 수준이 되어 함께 놀기 바빴다.

딸아이와는 주로 만들기, 그림 그리기 등을 함께 했다. 지금은 아이패드로 디지털 드로잉에 빠진 우리 딸은 이전부터도 그림 실력이 1도 없는 엄마에게 자꾸 뭐를 그려보라고 시켜서 진땀을 빼는 경우가 많았다. 그 덕에 딸과 이모티콘 만들기 수업을 같이 들어 그림 똥손인 내가 네이버 오지큐 마켓에 이모티콘을 출시해 보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을 나도 함께 보았다.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부터 시작해서 로보카폴리, 베이블레이드, 신비아파트, 명탐정코난, 또봇, 헬로카봇, 괴도조커, 레이디버그, 마음의 소리, 소년탐정 김전일 등등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나도 함께 시청했다. 애니메이션의 스토리와 주제가를 섭렵하고, 극장판도 꼭꼭 챙겨 보는 아이들과 같은 수준의 엄마가 바로 나다.

그리고 내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독서이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이 또 하나의 일상이다. 처음에는 5분 남짓 책을 읽어주어도 목이 가라앉던 나였지만 점점 실력이 늘어 빨리, 역동적으로 책을 읽어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아이들이 이제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어도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여전히 좋아하기 때문에 같이 이불 속에서 부대끼면서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꾸준히 가지려고 노력해왔다. 

이렇게 퇴근 후 아이들과 다채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는 나는 이 순간만큼은 몸과 정신이 완전히 일과 분리된 진정한 퇴근을 맛보고 있었다. 비록 그 이후 다시 논문을 펼치고, 컴퓨터를 켜기도 하지만, 오후 6시에서 10시까지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몰입된 육아시간이 내가 접하는 제2의 삶이었고, 도리어 이렇게 머리가 완벽히 리셋되는 것이 내게는 또 하나의 휴식이었던 것 같다. 

첫째가 9살, 둘째가 6살이 된 지 6개월이 지나니까 초등학교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둘째도 이제는 엄마를 100% 의존하던 삶에서 스스로 놀기도 하고, 누나와도 크게 싸우지 않고 조율해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쯤 되니 퇴근 후 내 시간의 일부를 나를 위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육아 후 할 수 있는 운동을 알아보았다. 그동안 유모차 밀고 걷기, 새벽에 중랑천 걷기, 가끔 홈트 보고 따라 하기 정도의 운동만 해보았던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나를 위해 돈을 내고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운동 종목은 무에타이였다. 킥복싱보다 몇 가지 기술을 더 쓸 수 있는 태국 전통 무술 무에타이는 운동 종목을 검색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지만, 관장님의 블로그와 카페를 보면서 마음이 확 끌렸다. 무엇보다 체육관 마지막 수업이 저녁 10시 30분 시작이라 나처럼 육아를 마친 직장맘이 선택할 수 있는 시간대였다. 아이 둘을 데리고, 체육관에 가서 관장님과 상담하고, 체육관 분위기를 살펴보니 샌드백을 치는 사람들, 스파링을 하는 사람들, 서로 미트를 잡고 킥 연습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열기와 땀 냄새가 싫지 않았다. 아니, 생동감 있는 그 분위기가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관장님은 3체급 챔피언 경력을 가지신 능력자이셔서 더욱 마음에 끌렸다.

나의 두 번째 퇴근이 시작되었다. 바로 육아에서의 퇴근이다. 나는 밤 10시 10분이 되면 육아를 마치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에 가니 내 직업, 나이는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중학생이던, 내 또래이던 함께 운동하는 동지였고, 함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학생이었다. 10년 이상 운동한 고수분들이 지나가면서 자세도 잡아주시고, 조언도 해주는 그런 분위기가 처음에는 무척 생소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그리고 땀에 흠뻑 젖으면서 운동하는 것이 얼마나 개운한지 모른다. 또한 혼자 하는 반복적인 운동이 아닌 서로 같이 상호작용하면서 하는 운동이라 나에게는 진짜 딱 맞는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게 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대화는 인생에 대한 나의 사고의 폭 또한 넓히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코로나가 생기기 전까지 2년 넘게 체육관을 다니면서 나는 정말 눈에 띄게 활기차지고, 체력이 상당히 좋아졌다. 원래도 체력이 좋았지만 피곤 지수가 현저히 낮아지게 되니 일과 육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좀 더 멀어질 수 있었다.

물론, 그동안 운동으로 인해 어깨 부상도 생기고, 종아리 염좌도 생기고, 허리도 다쳐서 몇 주씩 운동을 못하기도 했다. 주먹 치는 위치가 잘못되어 글러브가 돌아가 주먹이 찢어지기도 했었다. 때로는 남편의 회식이나 야근으로 못 가기도 하고, 큰 아이 숙제가 많아 10시를 넘겨버려 못 가기도 하고 말이다. 어떤 주간에는 우리 연구실 회식, 남편 회사 회식, 야근 등이 몰려 일주일에 한 번만 운동 갈 수 있던 상황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주 5일 다 갈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는 늘 다음 달 등록일에 등록을 꾸준히 했고 절대 운동을 그만두지 않았다. 나의 육아로부터의 두 번째 퇴근은 내가 재 충전되는 시간이었음을 알기에 나는 그 시간을 고수했다. 

이 두 번의 완벽한 퇴근으로 인해 나는 내 몸과 마음을 그나마 잘 지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연구실에서 잘 안 풀리던 숙제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에 푹 빠졌다 나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좀 더 다른 관점으로 일을 바라보게 되면서 해결되기도 하고, 속상했던 일들이 있었더라도 샌드백을 치고, 체육관에서 몸 부대끼며 운동하고 나면 아까는 크게 보였던 일이 별것 아닌 일로 느껴지기도 해 어느새 마음이 누그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육관을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엄마로서, 연구자로서 말고 그냥 나 자신으로서 설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만 하느라 하루를 다 쓰기보다는 내가 선택한 시간에 내가 선택한 그 무엇을 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내가 내 시간을 잘 들여다보고 스스로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내 속에 있는 내가 힘을 얻을 수 있음을 난 엄마가 된 지 10년 만에 알게 되었다.

 

작성자: 닥터리 (필명)
 

* 본 글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피펫잡는 언니들"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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