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전한 정부지원과제는 1차 교육을 받고, 그 교육을 통해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심사위원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그다음 그 발표 결과에 따라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었다. 대략 2배수를 뽑아 창업 교육을 받고, 이 교육을 바탕으로 본인의 사업계획서를 잘 발표하면, 그 뒤 평가를 받고 이에 따라 돈을 차등 지급되는 시스템이었다. 합격만 하면 다가 절대로 아니었다. 또한, 이 돈은 공짜로 받는 돈이 아니었다. 일종의 투자금처럼, 나도 출자를 해야, 상대방도 출자를 해주는 시스템처럼 내 돈이 들어가는 과제였다.
정부 돈은 절대로 그냥 주지 않는다. 출자금이 들어간다. 이러한 개인 출자금을 우리는 자부담 (=자기부담금)이라고 부르는데, 일부 금액을 내야 정부지원금도 통장에 들어온다. 아 그렇다고 한 번에 다 주는 것도 아니다. 나누어서 돈이 지급된다. 가장 중요하지만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것 한가지. 우리는 세금도 내야 하는데, 이 부가세 10%는 모두 창업자의 몫이다.
의외로, 정부과제를 신청하고 합격을 하면, 이 모든 돈이 다 자기 돈이라고 착각을 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난다. 물론 망한 全 회사 대표 역시 이런 분들 중 하나였다. 안타깝게도 정부지원금은 말 그대로 사업을 돕기 위한 지원금이다. 모든 돈을 대표 마음대로 쓰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제출한 사업 계획서대로 쓸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개념이지, 펑펑 사치하라고 주는 돈이 아니다. 그래서 정부지원금으로는 부가세를 지급할 수 없다. 또한, 지원금액의 20~30%는 자부담으로 대표가 돈을 입금을 해야 하고, 이 돈이 입금이 된 것을 확인한 뒤 정부에서도 입금한다. 그냥 주는 건 세상에 없다.
우리가 선정된 사업은 최대 지원 한도가 1300만 원이었다. 공공기관에서 보던 과제 금액에 한없이 미치지 못하고, 소싯적 내 연봉보다도 낮은 금액이었으나, 사업 계획 발표를 바탕으로 이 돈을 이자도 안 받고 내어 준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 열심히 준비를 했다. 아 물론 1300만 원은 발표평가에서 1등을 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여 우리는 발표평가를 참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이번 편에서는 창업을 처음 준비하면서 정부과제가 익숙하지 않아 발생되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좀 정리해 보았다.
- 정부과제 지원금은 내 돈이 아니다.
의외로 정부과제 지원금을 받으면 돈이 한 번에 다 들어오고, 전부 다 내 돈이라고 생각을 많이 하는 모습을 간혹 접한다. 대표적으로 전 회사 대표가 그러하였는데, 이런 분들은 정부과제 지원금에 있는 돈을 마음대로 통장에서 넣었다가 빼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안된다. 이유 없이 사용하는 정부지원금은 모두 횡령으로 들어간다. 정부과제 지원금은, 본인이 제출한 그 사업계획서에 있는 사업을 수행하라고 정부에서 출자해주는 일종의 투자금 개념이다. 이 투자금을 이유 없이 쓴다면, 투자자가 득달같이 쫓아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혹시라도 내 맘대로 해야지 생각을 1%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 생각은 깔끔하게 삭제하길 바란다.
- 정부과제 지원금에는 자부담+부가세가 있다.
정부과제 지원금을 받을 때, 자부담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도 의외로 존재한다. 정부과제 지원 과제를 볼 때, 사업비 규정을 꼭 확인해야 한다. 이 규정은 공고에 이미 있다. 공고를 볼 때 대충 보지 말고 꼼꼼히 따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부담은 지원금 외에 기업대표나 혹은 개인이 함께 부담하는 금액을 말한다. 그리고 이 자부담은 사업비의 간접비로 사용되고, 전시회에 참가하거나 혹은 홍보비를 쓰거나 사무용품이나 관리비 같은 것은 이 자부담에서 지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외 부가세는 별도다. 간혹 이 자부담이 있는지 몰랐다고 사기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모든 정부과제마다 어떤 것은 자부담이 있고, 또 어떤 것은 자부담이 없고...다 case by case이다. 그러니 처음 지원할 때부터 공고는 꼼꼼히 봐야 한다.

우리가 받은 과제의 공고이다. 이 공고 내부에는 이렇게 정부에서 지원하는 직접사업비와 내가 부담해야 하는 간접사업비의 항목이 분류되어 %가 적혀 있었다. 1300만 원이 정부지원금을 받는다 칠 때, 이 지원금은 총사업비의 70%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 금액을 70%로 잡고 필요한 30%를 계산하면 자부담으로 준비해야 하는 금액이 산출된다. 우리는 그래서 560만 원을 준비해서 사업을 시작하였다. 자부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금을 낸다. 세금 10%는 별도 기업 부담이니 이 부분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즉 정부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은 그 금액의 1-30%의 자부담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심지어 10% 부가세도 있다. 따라서, 많은 금액을 지원하는 과제를 쫓을 것이 아니라 그 과제를 신청할 때 본인이 자부담과 부가세를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만큼 투자를 했을 때 충분한 가치를 얻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정부과제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을 구별하자. 모르면 돈 쓰기 전에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쓰는 것을 추천한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정부지원과제의 돈은 내가 편한 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쓸 수 있는 영역과 쓸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그리고 쓰면 안 되는 곳에 돈을 사용하면, 과제비 정산과정에서 잘못 사용한 것을 토해내야 한다. 즉, 내 돈이라고 생각하고 막 쓰면 호되게 고생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창업에 필요한 인건비, 재료비, 기타 용역비, 심지어 임차비, 사무용품 기타 등등 총사업비에서 지출 가능한 것들이 정해져 있었다. 단, 절대로 불가능한 것은 특허출원과 같이 뭔가 자산이 남는 것들은 지출할 수 없다. 자산취득이 불가능한 사업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업비로는 A4용지는 살 수 있어도 프린트나, 컴퓨터는 살 수 없다. 이런 세세한 내역을 꼼꼼히 살펴보고 진행을 해야 한다.
이런 부분들을 세세하고 꼼꼼하게 찾지 않으면 추후 과제비 정산에서 고생을 크게 할 수 있다. 아!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학원생으로써, 연구비정산의 딱풀 신공을 해보았던 이들이라면, 이 정부과제비용 정산 시스템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크게 차이를 못 느끼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때, 연구비 정산에 도가 튼 대학원생 출신이라면, 어쩌면 정부지원과제란 괜찮은 길일 수도 있다.
창업생태계는 연구과제 제안서를 정부에 제출하던 그때 그 모습과 비슷하다. 정부가 좋아하고 원하고 대답해 주길 바라는 그 산업이 있고,
우리는 마치 답정너인것처럼 그들의 니즈에 맞춰 사업 또는 연구에 데코레이션을 한다.
연구를 하다 창업의 길에 들어설 생각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정부과제는 마치 우리의 대학원 시절 신명 나게 써 내려가던 그 연구과제보고서와 심히 비슷하다. 과제비 정산은 특히나 데쟈뷰를 느낄 정도로 선명한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줄 것이다. 이미 정해진 산업은 있고 그 산업에 나를 끼워 넣어야 하는 현실과의 타협 역시, 과제를 따기 위해 연구를 짜 맞추던 그때와 무섭도록 비슷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서 아마 이곳에 오면 낯설지는 않을 수 있다. 어쩌면 무섭게 빠르게 적응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과제비는 공짜가 아니니, 부디 시작 전에 자신의 자금 사정을 잘 체크해서 부가세 낼 돈까지 확보한 뒤 도전하길 바란다. 과제비에는 자부담과 세금만 넣는 게 아니라 본인의 시간과 스트레스와 열정을 모두 쏟아야 하는데, 돈이 부담스러우면 추후 첫 과제 이후 다음 과제를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뭐 그래서 결론은 돈이 문제란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러니 결국엔 자본을 잘 확보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결국 창업 초기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이지 않을까?
작성자: 윤정인 (엄마 과학자, 유기화학자, 칼럼니스트, 창업가)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피펫잡는 언니들"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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