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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마른 땅에 우물파기
회원작성글 BRIC
  (2020-12-15 15:21)

마른 땅에 우물파기

© Pixabay

 

2012년 8월.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귀여운 딸에 이어 둘째는 뽀얀 피부를 가진 싱글벙글 잘 웃는 아들이었다.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았기에 둘째는 고민할 것도 없이 예정일 3주 전에 수술 예약하고 출산하였다. 그리고 수술 후 이어지는 극심한 통증과 함께 이전 첫째 낳았던 고통을 그제서야 기억해 냈다.

한번 아이를 낳아보았다고 해서 둘째, 셋째를 낳으면 더 안 아프거나, 또는 아이를 키워 보았다고 해서 둘째, 셋째 키우는 것이 수월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여자의 임신과 출산, 육아의 여정에는 아이마다 스토리가 다 다르다. 아이의 성향도 다르고 그때의 집안 상황도 다르고, 아이의 체질, 성별 모든 것이 다르기에 엄마에게는 축적된 노하우는 없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처음 접하는 일이고, 생소하고, 서툴다.

둘째를 출산하면서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것은 첫째의 반응과 정서적인 안정이었다. 아이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것은 엄청난 삶의 변화이고, 엄마, 아빠의 관심사가 동생으로 옮겨질까 싶어 동생이 생긴 누나의 마음을 많이 헤아려주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우리 부부도 그 부분을 우려해서 임신했을 때부터 딸아이에게 집중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8월에 출산을 하면 아무래도 그 이후엔 아이가 좋아하는 물놀이를 못 가게 되니 그전에 실컷 놀아주리라 결심하고 7월에는 주말에 내내 수영장, 바다, 물놀이터로 놀러 다녔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있는 일주일 동안 남편은 낮에는 병원에 있고, 오후에 어린이집 가서 딸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왔다가 밤에는 잘 챙겨서 재우고 아침에 밥 먹이고 머리까지 이쁘게 빗겨 꾸며서 어린이집에 등원시켰다.

또한 병원에서 퇴원한 후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신청하여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게 되어 딸아이가 동생이 태어남으로 인해 엄마의 부재를 느끼지 않도록 노력했다. 첫째가 나를 먼저 불렀으면 동생이 깨나서 울어도 먼저 첫째와의 대화를 마무리했고,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꿀잠 자는 동생 귀에 대고 “정훈아! 누나 왔~다!” 라고 크게 인사를 해서 아기를 깨워도 나무라지 않았다. 이런 상황 또한 둘째는 적응하리라 생각했고, 사실 갓난아기가 있다고 해서 큰 아이가 너무 주의를 기울이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나와 남편의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다행히 딸아이는 동생이 태어남으로 인해 사랑을 뺏겼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은 것 같다. 도리어 자기가 누나임을 뿌듯하게 여기고 이것저것 살뜰하게 챙겨주기도 했고, 동생에게 재잘재잘 말을 걸어주면서 아기가 심심할 틈을 주지 않았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사실 주변에서 동생이 태어난 이후 어리광이 늘거나 배변 실수를 하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기에 우리 딸이 무난하게 동생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면서 나는 역시 연구실의 일을 집에서 병행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연구비가 큰 대형과제를 작성하기도 했고, 논문이 reject 되어 다른 저널에 투고하고, 투고했던 논문 revision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여전히 나의 일상은 첫째 출산 때처럼 집에서 논문, 과제 작성은 이어가고 있었다.

사실 박사과정 시절 우리 주은이를 낳았던 때 보다 박사학위를 받고 둘째를 낳았던 시점에는 좀 더 커리어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박사과정 때는 학위를 끝마치려는 노력이 가장 컸지만, 박사학위를 받은 나는 논문도 내야 했지만 내 이름으로 연구과제를 수주해야겠다는 부담도 있었다.

과학재단 과제 중 나처럼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진연구자들이 지원할 수 있는 과제로는 박사 후 국내연수와 대통령 post-doc. 펠로우십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좀 더 과제 금액이 크고 기간이 긴 대통령 post-doc. 펠로우십 과제에 도전해보고 싶어 지원했었는데, 발표평가 대상이 되어 둘째 출산 열흘 전에 과학재단에 가서 발표를 하고 왔다. 만삭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정을 갖고 발표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심사위원들이 뽑아주지 않으려나 내심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과제에서 똑떨어졌다.

과제에서 떨어지면 또 다른 과제를 도전해야 하고, 과제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내 논문의 양과 질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현실이기에 박사과정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논문과 과제는 연구자인 내게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나는 우리 교수님이 내시는 과제를 기획하고 작성하는 것과 더불어 이제 나의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계획서를 내는 것까지 감당하면서 지금까지도 일 년에 6-7개 이상의 과제 계획서를 적고 도전한다. 둘째를 출산한 당시 나는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홀로서기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둘째를 낳고 나니 연구에 대한 부담과 더불어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야 할 내 삶이 사실 막연히 두려웠다. 내 주변에 몇 명 안 되던 직장맘들도 둘째 출산과 더불어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었다. 결국 의사 남편을 둔 대학병원 약사로 있는 교회 동생이 유일한 아이 둘 가진 직장맘이었다. 그나마 그 동생도 둘째를 낳고 너무 힘이 들어 1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우리 연구실은 육아 휴직이라는 개념도 없을뿐더러 나의 연구 분야는 동물 실험 자체가 몇 달 이상 지속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에 1년을 쉬고 다시 실험을 이어간다는 것이 사실상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에 나와 같은 직장맘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선배 엄마 과학자가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연구실의 첫 엄마 과학자인 나는 많이 힘이 들었고 막막했다.

며칠 전 우연히 컴퓨터 파일을 보니 둘째 출산한 지 한 달이 좀 넘은 어느 날 내가 쓴 일기가 있었다. 아마 논문을 수정하다가 끄적인 글 같았다. 아래 글은 그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왜 여자가 셰프되기 힘든지 알아? 그건 미련하지 않아서야."

"미련한 사람이 마른 땅에 우물을 판다. "

"셰프는 우물파는 것처럼 밑도 끝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2010년 1월에 방영했다는 파스타라는 드라마를 난 2012년 9월에 처음 보았다. 오늘 본 드라마에 나온 이 대사가 참 내 마음에 남았다.

미련한 사람... 그래... 연구하는 것도 미련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같다. 모든 일에 한결같이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 MMP-3논문을 새로운 맘으로 다시 보라고 윤교수님이 말씀하시는데 난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다시 보기 싫으니깐...  다시 생각하기 싫으니깐... 교수님처럼 내가 쓴 논문을 계속 보고 또 보고 의문 나는 점을 해결하고 문장을 triming 하는 것...  그것이 참 미련한 것 같은데 그게 힘이 아닐까 싶다. 그런 교수님의 모습은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지만 한편 귀찮고, 생각하기 힘들어서 하기 싫다. 논문은 내 자식과도 같은데... 내가 낳는 것인데... 내 것인데도 난 지금 남의 것 대하듯 한다.
생각 없이 반복하는 일은 익숙해지면 편해지는데, 그렇게 되면 그 일이 시시하게 느껴진다. 몸이 편하고 싶은데 편해지면 또 무언가 도전할 것을 찾는 나... 이것이 내가 직면한 모순인 것 같다.

이사 온 지 세 달이 지났는데 오늘에서야 아래층에 인사를 갔다. 우리 상황도 얘기하고, 며칠 전 쿵쾅거려 미안하다고도 하고, 시어머님께서 주신 고구마를 나누어 주면서 인사를 했다. 안 가도 되고, 가도 되는 인사였지만, 이렇게 다녀오니 맘이 한결 편하고 좋다.

아래층 남편이 밤에 책을 쓴단다. 그 말 들으니 난 남들 다 일하는 낮에만 일하면서 남들과 똑같아지려는 욕심쟁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 키우고, 살림하고, 그러면서도 이 어려운 과학을 해야 하는데 자꾸 나를 합리화하면서 시간을 좀 더 쪼개지 못하고, 나를 좀 더 갈고닦지 못하는 것 같다. 윤교수님이 어제 MMP-3 논문을 보내면서 다시 쓰는 기분으로 discussion을 쓰고 다른 것도 꼼꼼히 check 하라고 하셨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 논문은 내 것인데도 교수님이 다 뒷바라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정작 난 내 것에 대한 가치를 폄하하고 있었다. 그리고 편하게 먹으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면 발전이 없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언제까지 이렇게 어리광 부리면서 살 것인지? 사회인으로서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할 텐데... 이전에는 이런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좀 더 노력하고, 좋은 자리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8년 전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이전 일기를 보며 당시 내 맘을 들여다보았다.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아닌 사회에 받을 들여놓은 과학인으로서, 박사학위 받은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새내기 연구자로서 홀로서기를 위한 내면의 시끄러움이 많았던 듯하다.

사실 이런 고민은 지금도 여전히 있다. 색깔이 조금 달라졌을 뿐.

여전히 나는 논문을 잘 쓰는 것은 어렵고, 시간 쪼개기가 힘이 든다.

 

작성자: 닥터리 (필명)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피펫잡는 언니들"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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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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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꾺꾸  (2021-02-17 12:13)
1
논문 마무리 중인 요즘 "정작 난 내 것에 대한 가치를 폄하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박사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오래오래 연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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