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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과학자 창업 도전기] 2화. 임금체불, 창업이 계기가 되다
회원작성글 BRIC
  (2020-10-28 14:52)

창업을 하게 된 두 번째 계기가 있었다.  물론 지난 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업에서 겪은 온갖 잡무가 그 결심을 굳히는데 일조를 하긴 했지만, 역시나 가장 큰 계기는 임금체불이었다.
 

나는 임금체불을 겪었다.

박사까지 하고, 나름 경력도 화려했고, 그저 내 인생이 목표가 엄마임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이직을 전전했을지언정, 살면서 당할 것이라곤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임금체불이 내가 겪은 가장 최근 노동문제였다.

이공계 연구자들에게 노동문제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하는 이벤트 중 하나다. 그리고 대개 이런 이벤트는 대학원에서 많이 발생한다. 학생 노동자 신분에서 많이 일어나는 이벤트다. 사실 대개 그렇다. 보통 이런 이벤트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고 있기는 하다.
 

  • 과중된 노동시간 (야근은 필수, 밤샘 실험은 선택)

  • 업무 외 지시 수행 (대학원생을 괴롭히는 각종 미션 발생이라든지)

  • 페이백 (정말 재수없는 경우....)


뭐 이런 형태가 존재하긴하다.

특히나 학생 노동자의 경우, 학생이란 신분과 노동자라는 신분이 모두 혼용되는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학생 노동자란 그냥 뜨거운 감자다.  물론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감자란 사실이 짜증나긴 하지만 뭐 그렇다. 대학원생은 지식을 생산하는 지식노동자의 역할을 학교에서 하고 있으나, 아무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학생이니 당연하게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지식노동자에 대한 편견은 회사 취업 후에도 쭈욱 이어진다. 뭐 그러하지 않은 곳이 더 많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나....얼척 없게도 내가 입사했던 곳마다 혹은 내 배우자나 동종업계 지인들이 입사 후 겪는 일들을 지켜보면 희한하게 우리는 노동시간의 강요를 받는다. 좋게 말해 열정적인 연구력을 보이라 하고 사실은 그냥 8시까지 자리 지키길 요구받는다.

나는 의도치 않게 열정적인 실험 노동자라는 허울 속에 야근을 강요하는 조직을 경험하곤 했다. 그래서 참 조직이란 공간이 어려웠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내 전공인 의약화학이라는 분야는 취업길이 매우 극단적이다. 
 

    대기업 계열사거나....

    혹은 국내 저명 제약사 한 두세군데?

    를 제외하고 우리 전공자들은 중소기업 빼곤 선택지가 적다.

    이게 아니라면 학교에서 개기거나

    혹은 연구소에서 개기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공공기관 공채를 기다리며 존버해야 한다.


그래 극단적이다. 그래서 선배들로부터 돈만 주면 가라는 조언을 들었고, 돈만 따박따박 나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회사에서 버텼다.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하고 재화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회사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졌다. 정확하게 짚어보자면, 경영자는 돈을 끌어오지 못했고, 카드론을 쓰셔서 신용등급 낮았으며, 자본잠식이 올 때까지 카드를 썼다.

직원 월급은 6개월이 밀렸으나, 다달이 법카를 400~700을 사용하셨으며, 직원들이 알아서 돈을 벌어오길 희망하였고, 관리자급 직원이 아래 직원을 알아서 퇴직시키길 바랬다. 이 상황이 벌어졌을 때, 관리자급 직원 (함께 창업한 우리 이대표와 나 ㅠㅠ)들은 카드 내역서에 찍힌 XX당구장과 XX수영장을 보며 손을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처음 자금 사정이 꼬였을때, 나는 관리자로써 경영자를 설득하여 자금 유치에 힘을 쏟았다. 급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자금 유치에 경영자는 관심이 없었다. 본인의 힘듦만 언급할 뿐, 해결책을 모색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던 내가 점점 빡치는 일이 발생했다.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이 털리는 일은 자꾸 생겼기 때문이다. 뭐 여러가지가 있었으나, 대표적인 사례를 털어보면....
 

  • 대표 본인의 논문실험 데이터를 만들어 달라는 실험을 요구하기도 했고,  (돈은 주고 말하자....)
  • 왜 야근을 안 하냐는 소리도 했고, (돈을 주고 말하라니까....)
  • 연구원 두 명을 내보내는 걸 나더러 말하라고 하기도 했고....(내보내면 줄 돈은 있니????)


정신적으로 참 힘들었던 1년이었다. 전 회사의 위기는 더럽게 오래갔다. 19년 2월부터 급여는 밀리기 시작했고, 폐업이 된 20년 1월까지 대표는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자급 두 명이 직원들을 설득해 남았던 이유는 초기 자금이 꼬인 이유가 우리의 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표는 연구 용역 계약을 잘못 채결했다. 우리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받아왔고, 관리자들의 계약에 대한 걱정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뒤, 당연히 돈을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첫 자금이 막힌 것은 그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함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초기엔 버텼다. 물론 대표가 돈 달라는 소리를 안 해서 내가 싸워야 했다. 그때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아 외부에 돈 벌어오는 것은 일개 소장인 내가 아니라 대표가 나서서 해야 하는 거구나....
 

나는 일개 소장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뒤집어엎을 수도 없었고, 불리한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을 권한도 없었으며, 회사를 휴업하거나 혹은 회사를 폐업하며 자산을 정리할 권한도...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힘이 들었다. 
남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는 박사과정도 강한 멘탈로 이겨냈던 내가,
육아 우울증은 1도 겪어보지 않았던 내가....
저 대표 밑에서 일하면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무능력하게 있어야 하는 현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원하던 연구도 할 수 없고,
미래를 개척할 수도 없고,
대표는 아무런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표가 아닌 내가 책임을 질 수 없는 그 상황이 너무나 괴로웠다.


대표가 채용에 관심이 없어, 직원들의 채용은 내가 진행했었다. 내가 뽑은 사람들에게 돈도 못 받는 상황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내가 돈을 줄 수 없고, 내가 어디서 계약을 따올 권리도 없고, 하다못해 연구과제 신청을 할 때 계획서는 내가 써도, 대표가 안 한다고 하면 쫑 나버리는 그 상황이 못 견디게 힘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들어졌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극복했다. 자고로 인간이 정신적으로 회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상황을 없애버리면 되는 것이고,

나는 그 회사가 폐업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

 

임금체불, 창업이 계기가 되다



우리는 모두 6개월의 임금이 밀렸었다. 그리고 체당금 제도라는 것을 통해 구제받아 각 3개월이 월급은 보전하였지만, 여전히 3개월은 받지 못했다. 경험이 비추어 조언을 하자면, 취업 후, 회사가 자금난에 시달리면 3개월을 버텨보고 나오는 것을 추천한다. 정부에서 고용보험으로 구제해 주는 임금체불액은 3개월이기 때문이다 ㅠㅠ

이 임금체불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임금체불을 겪기 전까지 나는 지식노동자는 이런 일을 겪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임금체불을 겪고, 노무사를 만나고,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생각보다 이런 개똥같은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업합병을 통해 연구팀이 해체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며, 나처럼 대표가 돈 안 주고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다. 병특으로 채용하여 돈 안주는 예시도 생각보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병특의 경우 당사자가 부당한 일을 겪어도 군대 문제이므로 함부로 거론할 수 없다는 것을 악용하는 양아치들인 셈이다....

뭐 암튼,
아무런 권한 없이, 실무만 맡아 진행한 관리자가 회사의 위기에서 겪게 되는 무력감을 깨달은 뒤, 나는 이 원동력으로 창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지게 되었다.

기업은 늘 위험하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S모 대기업 개발자인 지인의 표현을 빌리면, 자기 회사는 본인 입사 이래 한 번도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고 했다. ㅋㅋㅋㅋㅋ

그래 어차피 기업의 생존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어차피 해야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라면, 차라리 권한이라도 갖고 움직이는 게 마음 편하겠다는 것이 창업의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을 겪으며 창업 동료와 다짐한 것이 있었다.

우리가 이 회사를 떠나지 못했던 이유... 망할 육아.... 그래 우리는 그것 땜에 다른 좋은 곳 가지도 못하고 이곳에서 위기를 겪어야 했고, 돈도 못 받고... 그렇게 개고생을 했으니... 최소한 우리가 만드는 회사는...
 

노동의 가치를 꼭 존중하자.
돈은 주고 일을 하자.
육아 가지고 눈치 주지 말자.
일 가정 양립도 못하는 회사가 무슨 회사냐....


그렇게 우리는 회사의 비전을 만들게 되었다. 그저 간단한 비전이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비전이다. 다만,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겪는 일을 모두가 겪어보진 않았을 뿐이다. 우린 최소한 창업주가 저 문제로 고생을 했으니, 같은 고생을 시키진 않겠다는 다짐이다. 뭐 얼결에 탄생한 기업의 모토이고, 남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 원칙은 우리만 아니라 모두가 지켜야 하는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기본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좋은 연구자도, 좋은 기업가도 될 수 없다 생각한다.

간혹 창업 생태계에서 건방지다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당장 내일 문을 닫네 마네 하는 상황에 몇 년 후 계획이 왜 필요하냐는 소리도 듣는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연구결과를 파는 기업가이기 때문이다.
그 연구는 내일 당장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몇 년간이 연구 계획이 없으면,
시행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글자로라도 연구 계획을 세워야 움직일 수 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건방지다고 생각한다면 뭐 어쩔 수 없다.

연구 기획안도 만들지 않고, 연구기업을 이야기하는 게 난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니까....
일단 그 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 
뭐 그분들의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내가 와닿지 않는 것들을 곱씹어 생각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난 우리 지도교수님 이야기도 소화할 것만 소화하던 사람이라, 그 외에 것들을 모두 신경 써줄 수가 없다.
그리고 내일 당장 법인 문을 닫든 말든, 아무튼 난 연구계획서는 계속 다듬을 생각인지라..... 동의를 못하겠다 ㅋㅋㅋㅋㅋ

또, 우리가 한 가지 역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다.
당신들은 우리가 40대 남성 연구자들로 구성된 팀이었고, 그래서 연구기업을 하노라고 했다면....
우리에게 과연 건방지다는 표현을 썼을까? 라는 궁금증 말이다...
우리가 30대 여성, 그리고 엄마라서 무시한 건 아니길 바라지만, 왜 난 그런 거 같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성자: 윤정인 (엄마 과학자, 유기화학자, 칼럼니스트, 창업가)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피펫잡는 언니들"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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