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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연구와 육아, 그리고 건강
회원작성글 BRIC
  (2020-10-08 16:24)

첫 돌을 앞둔 아이 사진

첫 돌을 앞둔 아이 사진

 

출산한 지 거의 8개월이 넘어섰다. 신데렐라 직장맘으로 지낸 지도 벌써 5개월째다.

친정엄마가 아기를 돌봐주시기 때문에 나는 아기와 함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친정집에서 지냈다. 아기가 매일 친정집과 우리집을 차타고 30분씩 오가기는 어려워서였다.

우리는 평일엔 친정집에서 지내다가 금요일 저녁에 우리 집으로 가서 일요일 저녁에 다시 친정집으로 오는 방식으로 지내며 주말마다 가족 대이동이 반복되었다.
 
우리 집 또한 일주일 내내 비워 놓을 수 없어서 남편은 월요일, 수요일은 처가에서 자고, 화요일, 목요일은 혼자 우리 집에서 잤다. 특히 목요일에는 주말에 아기가 지내는데 문제없게 집 대청소를 해놓았다. 가족이 한 명 늘어났을 뿐인데 참 짐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우리 교수님는 연구실 멤버들은 모두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회식도 한 명이라도 빠지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고, MT도, 학회도 마찬가지였다.

아기 엄마도 예외는 없었다.

“자 이번 주 금요일에 회식하자.”

“교수님, 저는 아기 때문에 좀 참석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아기가 모유만 먹는 거 아시잖아요.”

“뭐가 문제야? 아기랑 같이 오면 되지.”

아랑곳하지 않는 교수님의 대답에 조금 일찍 퇴근하여 아이를 아기띠를 매고 회식 장소로 시간 맞추어 간다.

교수님은 아기를 대동하고 갔기에 포장마차 같은 곳이 아니라 제법 번듯한 회식 장소를 골라주셨다.
같이 밥을 먹고, 랩원들은 술도 한잔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이 아기를 봐준다.
다들 싱글이니 꼬물대는 아기가 인형기도 하고, 귀엽고 신기해서 잘 안아주고 예뻐해 주었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해서 회식에 참여해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이런 독특한 연구실 문화에 적응하며 우리 주은이는 연구실 이모 삼촌을 얻었다.

한 번은 독채 펜션을 빌려서 2박 3일 연구실 MT를 가기로 했다.

남편과 시댁에 가서 하루나 이틀 지냈던 적은 있지만 남편 없이 아기를 데리고 외부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영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교수님의 모두가 함께하자는 철학을 꺾을 수 없었다.

랩원들은 봉고차를 렌트해서 타고 가는데, 교수님이 나와 아기의 편안함을 위해 본인 차 뒷자석에 태워 가시겠다며 호의(?)를 베푸셨다. 당시에는 그다지 편하지 않았던 교수님이었던 터라 친한 랩원 한 명을 꼬셔서 아기와 함께 교수님 차에 올라탔다. MT 가던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아기가 배고프다고 너무 칭얼거려 뒷좌석에서 수유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자 교수님이라 수유하는 것도 좀 민망했는데 ‘쩝쩝’ ‘쪽쪽’ 얼마나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젖을 빠는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우리 아기가 젖 먹는 걸 알 정도로 너무도 티 나게 맛나게 모유 먹던 아기가 눈에 선하다.

지나고 보니 어쩌면 교수님은 아기를 낳은 이후 랩원들과 분리된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소외되지 않기를 바라는 맘으로 그리도 고집을 피우셨던 것 같다.

어차피 육아도 나의 삶의 일부인데, 연구과 육아를 칼로 무 자르듯 뚝딱 분리할 수 없다면 거부감 없이 자연스레 두 삶이 조금씩 만나면서 내가 연구와 육아를 함께 병행하며 롱런할 수 있기를 바라셨던 것 같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몇 년 뒤 나의 뒤를 이어 아기 엄마가 된 연구실 동료는 이러한 문화가 당연하다 생각하게 되었고 그 동료의 아기도 나의 조카가 되어 버렸다.

그토록 애태웠던 SCI 논문이 accept 되고, 8월 졸업을 목표로 졸업논문을 작성하고, 디펜스를 위해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심사위원 5분을 섭외하고, 시간을 조율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심사위원 다섯 분 교수님의 스케줄을 맞추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결국 토요일에 디펜스 날짜를 잡았다. 30분에 발표를 맞추기 위해 연구실 후배 앞에서도 몇 번을 연습하고, 발표하러 가는 내내 타이머를 맞추고 또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아주 멋지게 정확히 29분에 맞추어 발표를 잘 끝냈다. 디펜스에서 젤 기억에 남는 것은 발표 내용보다 내가 정확히 발표 시간을 맞춘 것에 너무 흐뭇해하셨던 지도 교수님의 얼굴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지막지 혼나던 박사 초기 시절부터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연구실과 집을 오가던 박사과정 말까지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참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디펜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게 내리쬐던 5월의 햇살은 정작 졸업식 날 보다 나에게 더욱 감동스러운 기억으로 남는다.

나는 이렇게 나름 최선을 다하며 연구와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구토 증세가 너무 심해 한밤중에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서 기본적인 검사를 한 뒤 링거를 꼽고 누워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심각하게 말씀하셨다.

“간 수치가 원래 40이하여야 하는 데 지금 환자분은 900이 넘는 수치라 바로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좀 있으면 황달까지 올 상황이에요.”

아기가 태어난 지 8개월을 꽉 채운 시점이었다.

생각해보니 B형 간염 보균자였던 내가 출산 시 임신중독증으로 인해 간에 무리가 갔고, 그동안의 피곤한 일상이 내 몸의 항상성을 깨뜨렸나 보다. 결국 B형 간염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증식하게 되면서 간 손상을 일으켜 이러한 구토 증세까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아기를 키우고 연구실과 집안일을 담당하는 그 모든 스케줄이 누가 해도 피곤한 스케줄이었기에 내 몸의 피로가 간 손상에 의해서 나타났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내 몸이 여러 가지 사인을 보냈겠지만, 나는 다른 일들에 정신이 팔려 그 사인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내 온 결과였다.

갑작스러운 입원과 약물치료로 인해 우리 딸은 하루아침에 모유를 끊게 되었고, 다행히 빨대를 빨 수 있을 만큼 컸기에 빨대로 분유를 먹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치료를 받게 되었다.

졸업식을 한 달 앞두고 나는 병원에 1주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얻게 된 처음 가지는 긴 휴식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육아와 연구, 두 가지 이슈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를 깨닫게 되었다.

바로 “나의 건강”이었다.

이것은 사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혹시나 내가 많이 아파서 잘못되면 우리 아기가 엄마 없이 자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 보면 지켜야 할 사람이 없는 주인공은 두려울 것이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 또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 주인공은 그 대상이 주인공의 아킬레스건이 된다. 나 역시 내 인생의 종말보다 내가 없을 때 혼자 세상에 남겨질 아기를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졌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그런 막막한 두려움이었다.

아이가 적어도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내 아이 편에 서서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어야 할 텐데...
행여나 내가 그렇게 못하면 어쩌지?

밀려오는 두려움은 내가 앞으로 건강한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스트레스도 그냥 흘려보내기로
너무 완벽하려고 애쓰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욕심내지 않기로
그리고 열심히 치료받고 열심히 내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다듬어 가기로 말이다.

사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엄마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서 아이와 함께 부대끼며 추억을 쌓아갈 수 있는 엄마”가 아닐까?

병원에서의 일주일은 내게 이런 엄청난 깨달음 주었다.

 

작성자: 닥터리 (필명)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피펫잡는 언니들"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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