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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엄마 과학자] 첫 슬럼프
회원작성글 BRIC
  (2020-09-01 14:09)

과학자에게는 최근 몇 년간의 경력이 매우 중요하지만, 출산 및 육아 등으로 인하여 경력이 단절된 나와 같은 여성과학인에게는 재취업의 기회가 무척 제한된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WISET(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경력복귀 지원 사업 -고용기관 측에서(대학교 혹은 연구소)  총 월급의 20% 이상을 매칭펀드로 지급하고, 나머지 인건비 200만 원의 급여를 30개월간 WISET에서 소속기관으로 지급해 주는 사업-을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연구교수로 다시 연구자의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지원 사업은 여러 사정으로 경력이 단절된 나를 포함한 여성과학자들에게 과학자로서 지속적인 경력을 다시 이어갈 수 있도록 해 주는 마중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경력이 단절된 여성과학인에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학교 교수님과 교직원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이후에 시스템생물학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KAIST에서 3년간 박사후 연구원 과정 동안 초파리, 효모와 같은 모델 생명체의 세포 내 구성 요소들 간 분자 단위의 상호작용 네트워크와 신호전달의 분석, 수학적 모델링을 연구했다. 3년간의 연구 경력으로 Bioinformatics, Bioessays, BMC Systems Biology 그리고 Nucleic Acids Research 저널 등에 논문 게재를 했었다. 발달 생물학 쪽에는 문외한이어서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밤늦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연구했던 시기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돌봐야 하는 두 아이들이 생기니 일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긴다고 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반드시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와야 하였고, 집에 오면 연구와 관련된 일들은 진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남편을 통해, 또는 BRIC을 통해 최신 연구 동향을 꾸준히 따라왔다고 생각해 왔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육아를 위해 중단되었던 시간 동안 연구 동향은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이에 적응하는 시간이 또한 필요하였다.

1) 새로운 프로그램 언어를 익혀야 했고, 연구 분야도 인간 질병에 관한 연구로 전향을 하게 되어서 관련 지식을 습득하기에 바빴다. 예전에는 파이썬이라는 컴퓨터 언어를 주로 사용하였으나, 생체 데이터를 다루기에는 R 컴퓨터 언어가 적합하였다.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파이썬이 다시 대세가 되어가는 듯하다.)  새로운 언어로 연구를 시작하게 되니 그 진행속도는 무척 더딜 수밖에 없었다. 연구 분야로는 기존에 했었던 모델 생명체가 아닌 인간 질병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BRIC에서 제공하는 동향이나 최근 출간된 논문들을 통해 관련 연구 동향을 새로이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걱정했던 것처럼 쉽게 진도가 나가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과연 내 연구 방향이 옳게 진행되고 있는지 고민을 반복하고  또한 연구방향을 변경해 보기도 일쑤였다.

2) 두 번째 어려움은 10개월마다 경력복귀 지원사업의 연차 실적보고서 작성을 해야 하므로 논문과 같은 정량적 결과물에 대한 부담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당해연도 사업추진 주요 성과를 달성하고, 차년도 사업목표, 연구개발 추진계획, 경력개발 추진계획 등을 열심히 고민해야 했다. 몇 년을 쉬다가 복귀하자마자 정량적 실적이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했고, 이런 어려움을 건의했으나, 지원 사업 또한 사업을 시작한 초반이었고, 정해진 규정은 바뀌지 않았다. 보고서를 쓸 때마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여 탈락하지는 않을지 걱정하였다.

3) 연구직에 복귀는 했어도 육아는 계속 지속되어야 하니, 퇴근 후에는 만 3세, 만 4세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줘야 했다. 가끔 일과시간에 어린이집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뜨끔하였다. 주로 아이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지만, 아주 일부분은 오늘은 더 이상 연구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전화는 걱정할 필요 없는 사소한 문제였지만 가끔 아이들에게 유행병이 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에 맡기게 되면 마음 한편이 편치 않았다. 한 번은 수족구라는 유행병이 발병하였고, 돌아가며 아이들이 열이 나고 손발에 수포가 생겼다. 이 경우에는 완치가 되어도 완치확인서를 병원에서 받아와야 다시 등원할 수 있다. 집단 생활을 하는지라, 우리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엄마 과학자들에겐 빈번한 경험이라 생각된다. 이외에도 어린이집 현관 자동문에 손가락이 끼어 병원에 가거나, 비염증상(심하지는 않지만 참으로 귀찮은 질병)으로 인해 병원에 가서 처방전을 계속 받아야 하였고, 영유아 검진이나 예방 접종은 평일에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일과 시간에 따로 시간을 내야하였다.
 

2013 성장사진

2014 성장사진

2015 성장사진


4) 남편은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시작하였고, 주중에는 집에 늦게 들어오기 일쑤였다. 주말에도 남편은 아이를 보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 상당 부분은 나의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집안일 또한 내 차지였다. 결국, 연구 성과 내기, 육아, 살림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정량적 성과를 내어야 했기에 SCI를 목표로 논문을 작성하기보다는 국문지로 연구 내용을 정리하게 되었다. SCI를 목표로 하는 것이 좋았을지 국문지로 목표를 변경하는 것이 좋았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제한된 시간 내에 연구의 시작과 끝을 맺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고, 결국 2015년 12월에 국문지 한편 게재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꾸준한 노력, 성장이 모여 작은 성공을 이루고, 그 작은 성공이 모여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딱 그때의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비록 부족하긴 하였으나, 이 한 편의 논문으로 자신감도 얻고, 후속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다른 고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작성자: 김만선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피펫잡는 언니들"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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