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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R 돌리고 한 장] 캐스린 페이지 하든 - 유전자 로또
Bio통신원(이지아)
학부생 시절 집단 유전과 육종을 배우고 질문 하나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개나 돼지는 육종하면서 사람을 육종하는 것은 막을까요? 교수님께도 질문을 드렸지만, 사람의 형질은 무엇이 좋은지 확신할 수 없다는 답만 받았습니다. 틀리진 않았지만 완전하지도 않은 답이었습니다.
몇 년 간 관련한 책도 읽고 인터넷 논의도 뒤쫓아 보았지만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과학사 수업의 리포트 주제를 우생학으로 잡고 쓰기도 했습니다. 우생학의 역사를 조사하며 알게 된 사실은, 인류는 우생학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우생학을 언급하는 것을 금지했을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생학은 나치의 패배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습니다. 유전병이 있는 태아를 중절할 수 있다면, 더 우수한 정자를 골라 난자에 착상할 기술만 있다면 이를 선택하지 않을 부모는 적을 겁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비슷한 말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늙어서 노망이 났다는 욕만 잔뜩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도킨스를 욕할 게 아니라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였고요.
<유전자 로또 – DNA가 사회적 평등에 중요한 이유>는 우생학을 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냐는 제 질문에 답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책은 생물학보다 사회과학에 가깝습니다. 책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이 줄어들까’입니다. 책의 재미있는 지점은 여기서 말하는 불평등이 자산이나 계급이 아니라 유전적 차이라는 것입니다.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배경지식은 모두 생물학에 있습니다. 사회과학 책을 읽는 데 유전체 지식이 필요한 짜릿한 순간입니다.
표지 출처 알라딘
저자의 논지는 간단합니다. 유전자로 인한 능력의 우열은 존재하며 측정 가능합니다. 누군가 좋은 유전자를 받은 이유는 운이 좋아서일 뿐, 그 외의 이유는 없습니다. 다행히 유전적 차이는 환경으로 보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정책에는 사람들의 유전적 차이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모든 정책에는 기회비용이 있습니다. 유전적 차이를 무시하고 사람을 연구하거나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기회를 낭비하는 것입니다.
특히 재미있게 읽은 내용은 유전자형과 표현형의 관계를 레시피와 맛집에 비유해서 설명한 부분입니다. 어떤 레시피로 아귀찜을 만들어 팔면 아귀찜 맛집이 될 수 있을까요? 넣으면 안 될 재료를 찾기는 쉽습니다. 아구찜에 카레 가루를 넣으면 망하겠죠. 그렇지만 아귀찜에서 미나리 몇 줄기가 얼마나 맛에 기여했는지 따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최고의 아귀찜을 만들기 위해 레시피를 최적화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음식만 맛있다고 맛집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음식점이 위치한 길목이나 입소문 효과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디가 맛집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이버 지도에 4.5 이상이 찍히면 맛집일까요? 저는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되었지만 생각보다 맛없는 곳도 몇 번 가보았습니다.
엄마가 해주신 아구찜이 생각이 나서 예시를 들어보았습니다.
유전자를 연구해서 좋은 인간을 선별하는 것은 미나리가 들어간 아귀찜 레시피로 동네 맛집이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나쁜 재료 하나가 음식을 망치듯, 하나의 돌연변이가 치명적인 유전병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 형질 대부분은 유전자 한두 개로 정해지지 않고 메커니즘도 복잡합니다. 최고의 염기 서열을 가진들 환경이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면 표현형도 발현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표현형을 측정하는 방법조차 절대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기어코 표현형을 예측하는 지표를 찾아냈습니다. 전장 유전체 분석(GWAS) 결과를 수십만 명 모아 특정 형질과 연관된 SNP를 찾아낸 것이지요. 이렇게 찾은 SNP들을 점수화해서 ‘다유전자 지수(polygenic index, PGI)’를 만들었습니다. 빅데이터 처리 수준이 높아진 덕분에 인과관계를 건너뛰고 결과만 얻게 된 셈입니다. 이렇게 찾아낸 다유전자 지수는 부모의 소득 수준 같은 사회적 지표만큼 예측력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교육 다유전자 지수가 높으면 대학을 졸업할 확률이 높고, 그러므로 미래 소득도 높게 예상됩니다.
서로 다른 GWAS 데이터 샘플(Add Health, HRS)에서 다유전자 지수와
교육관련 지표의 R2. 위 그래프에 따르면, 다유전자 지수는 교육 연수를 대략 15%정도 설명합니다. Okbay, A., Wu, Y., Wang, N. et al. 2022
그럼에도 다유전자 지수는 사회과학에서 평가 절하되고 있습니다. 대중은 물론 과학자들마저 사람이 유전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생학에 희생당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지금도 우생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함부로 유전자 얘기를 꺼냈다간 사회적 갈등만 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다유전자 지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전체 검사를 적극 활용하되, 유전적으로 우월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대신 유전적으로 열등한 사람에게 기준을 맞추자는 것입니다. 자연재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것이 사회의 의무이듯, 유전적으로 떨어지는 사람에게 사회에 기여할 역량을 키워주는 것도 사회가 해야 할 입니다.
이 책을 브릭에 소개하는 이유는 정보를 전달하는 책 치고 굉장히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논의는 여기 정리한 내용보다 복잡합니다. 다유전자 지수의 한계, 다유전자 지수와 자유의지, 연구 결과와 실현의 층위 등 재미있는 논의가 많습니다. 레시피와 맛집 같은 훌륭한 비유가 여럿 있습니다. 논지를 차근차근 끌고 가는 책이라 함부로 요약하면 재미가 반감될 테니 직접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또한 이 책은 여러분이 만드는 지식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새로운 측면에서 보여줍니다. 생물학의 가치는 생명의 신비를 파헤친다는 순수한 의도에 있기도 하고, 질병을 치료하겠다는 구체적인 사례에 깃들기도 합니다. 이 책이 말하는 생물학은 사회를 더 나아지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유전학 연구 하나하나가 없었다면 GWAS도 없었고 다유전자 지수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생물학이 세상에 기여하는 새로운 축을 확인하고, 여러분의 연구에도 새로운 의미를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
도킨스의 트위터에는 긴 논쟁 타래가 달렸습니다: https://twitter.com/RichardDawkins/status/1228943686953664512?lang=ko
Okbay, A., Wu, Y., Wang, N. et al. Polygenic prediction of educational attainment within and between families from genome-wide association analyses in 3 million individuals. Nat Genet 54, 437–449 (2022). https://doi.org/10.1038/s41588-022-01016-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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