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와 봉쇄 정책(lockdown)으로 상징되는 코로나19의 시대는 어느새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코로나19 자체는 엔데믹이 되어 우리 곁에 남겠지만, 영업시간이나 모임 인원을 제한하는 형태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제법 자유롭게 외식을 하고 일터로 복귀하면서 일상과 직장의 많은 부분이 코로나19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변화는 분명 우리 곁에 장기적으로 남을 테지요. 화상회의와 재택근무가 대표적이겠습니다.
저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학위과정의 막바지를 보냈습니다. 덕분에 학계에서의 토론 문화가 대면 회의에서 화상회의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어요. 협업을 꽤 많이 하는 연구실 소속이었던지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꼭 외부 출장을 다녔지만, 2020년에는 대부분을 화상회의로 대체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니 화상회의는 제법 편했어요. 일단 열차에 실려 몇 시간씩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고, 출장 회의에 으레 따라붙기 마련인 술자리가 사라진 것도 반가웠습니다. 한동안은 모든 회의를 100% 화상회의로 대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몇 달 정도 일하다 보니 화상회의에서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안건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대표주자는 논문 작성이었습니다. 당시에 함께 연구하던 교수님은 본인이 참여하는 논문을 첨삭할 때 학생과 함께 모니터에 논문 파일을 띄워 놓고 글의 구조를 고치고 문장을 수정하며 공을 들이는 스타일이었어요. 코로나19 이전에도 여러 번 함께 작업한 적 있었는데도 화상회의로는 논문 작업에 능률이 도저히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연구 회의는 화상으로 진행하다가 논문 작성 단계가 되면 다시 출장을 가서 모니터 앞에서 논문을 쓰게 되었지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뒤섞여 일하는 소위 ‘하이브리드 워킹’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겁니다.
왜 어떤 작업은 화상으로 진행하면 효율이 떨어질까요? 직관적인 대답은 여럿 떠오릅니다만, 분명하고 정량적인 이유를 답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화상으로 진행해도 괜찮은 일과 대면해야 효율이 높아지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꼽기도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2022년 4월, 이 애매한 문제를 정량적으로 접근한 논문이 Nature에 게재되었습니다.[1] 그 내용을 살펴볼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등 창의력을 요구하는 화상회의에서 논의하기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를 발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이라고 하지요. 창의력이 필요한 문제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주어진 몇 개의 선택지 중 최선의 전략을 찾아내는 문제입니다. 이는 반대로 수렴적 사고(convergent thinking)이라고도 합니다. 즉,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개념을 떠올리는 데에는 창의력이 필요하고, 반대로 이미 주어진 선택지 중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작업에는 창의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창의력’이라는 느슨하고 일상적인 단어의 정의라고 생각해도 좋겠습니다.
심리학 실험에서 피험자의 창의력을 측정하는 고전적인 기법이 하나 있습니다. 일상적인 물건 한 가지를 피험자에게 제시한 다음, 5분 동안 그 물건의 새로운 쓰임새를 최대한 많이 떠올려 보라고 하는 거예요.[2] 연구자들은 프리스비와 에어캡(뽁뽁이)을 제시어로 사용했는데요, 피험자들은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 5분 동안 물건의 쓸모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룹 중 절반은 회의실에서 직접 만나 토론하며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나머지 절반은 웹엑스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토론을 했지요. 이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5분 동안의 토론이 끝난 다음에는 자신들이 떠올린 아이디어 중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1분 동안 고르는 두 번째 과제에 착수합니다. 스스로 고른 ‘최고의 아이디어’가 외부 심사위원이 평가한 ‘최고의 아이디어’와 가까울수록 두 번째 과제에서는 높은 점수를 얻습니다.
아주 단순한 실험 구성입니다만, 대면 그룹은 화상회의 그룹에 비해 유의하게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통계적 유의성을 검증하는 P값이 0.01 미만으로 나타났으니 상당히 강한 상관관계가 나타난 셈이지요. 이렇게까지 강한 경향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추가 분석에 따르면 화상회의 그룹은 토론 시간 동안 스크린에 나타난 상대방의 얼굴에 훨씬 더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그 결과 시선 고정이 인지적인 편협함으로 이어졌다고 연구진은 해석합니다.
더욱 흥미롭게도, 연구진은 피험자들이 회의실의 구석구석에 얼마나 한눈을 팔았는지도 측정하여 아이디어 개수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피험자들이 토론 도중 시선을 돌리는 빈도를 세어 보기도 했고, 토론을 마치고 나온 피험자들에게 방의 인테리어 구성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질문해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토론 도중에 회의실 환경에 한눈을 많이 판 피험자일수록 유의하게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경향성이 나타났습니다. 스크린에 정신을 집중하고 토론에 임한 참가자일수록 창의력이 떨어지는 결론이 나온 거예요.
한편, 이미 만들어진 선택지 중 최고의 하나를 골라내는 두 번째 과제의 경우 대면 그룹과 화상회의 그룹 사이에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고, 한눈팔기와의 상관관계도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새 아이디어를 만들 필요 없이 주어진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서 최적화하는 형태의 작업은 회의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거죠.
해석하자면 시선을 화면에 고정하는 것만으로 일종의 터널 시야가 생겨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이런 차이는 결국 우리 뇌가 몸과 긴밀히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생겨날 거예요. 2014년의 한 연구[3]에서는 물건의 쓸모 찾기 시험에 응한 피험자들 중 산책하며 참가한 피험자들은 창의적·발산적 사고 점수가 무려 81%나 높아졌지만, 수렴적 사고 점수의 증가는 23%에 불과했던 결과가 발견된 적도 있습니다.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동료와 화상회의를 잡는 것보다는 직접 찾아가서 산책이라도 함께하며 토론하면 더 참신하고 뛰어난 아이디어가 탄생하겠지요?
화상회의는 아마 앞으로도 우리의 직장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겁니다. 하지만 절대 대면 회의를 100% 대체하지는 못할 거고, 또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 셈이지요. 또 진부한 결론이 되었습니다만, 앞으로는 화상회의와 대면 회의의 장점을 취하는 ‘하이브리드 회의’가 필요할 거예요. 창의력이 필요할 때는 스크린을 노려보지 말고 한눈을 팔고 산책을 하는 것처럼요.
*참고 문헌
[1] M. S. Brucks and J. Levav, Nature 605, 108 (2022).
[2] J. P. Guilford et al., Alternate uses: Manual of instructions and interpretations, Sheridan Psycological Services, Orange, CA (1978).
[3] M. Oppezzo and D. L. Schwartz, J. Exp. Psychol.: Learn. Mem. Cogn. 40, 114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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