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실험실이라는 현장] 드디어 메인 장비가 들어왔다
Bio통신원(실험실고고학자)
질량분석 연구실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너무 당연하게도 질량 분석기다. 처음 실험실을 배정받고 한창 공간 리노베이션을 진행하던 시기에는 실험장비를 놓을 여건이 안되어 주변 다른 연구실의 장비를 빌려 사용하기도 했고(실험실 유랑), 오래 사용하고 낡아 불용처리가 예정된 장비를 들여와 되살려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짧은 생애사). 하지만 이들 장비는 연구실이 원하는 연구를 진행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연구실의 정확한 명칭은 분자집합체 연구실로 분자 클러스터가 생성되는 과정을 질량 분석을 통해 연구하는 곳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분자 클러스터의 입체 구조를 질량분석으로 연구함으로써 어떻게 분자들이 겹쳐지면서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크기가 커지는지, 혹은 특정 크기나 구조 선택성을 지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분자 구조 분석을 위한 대표적인 방법은 엑스선 결정구조 분석과 최근에 많이 사용되는 Cryo-EM 분석법이 잘 알려져 있지만 질량분석기를 통해서도 구조 분석이 가능하다.
질량분석기는 이전에도 설명했듯이 이온화된 시료에 전기장을 걸어주어 이온을 가속시켜 검출기에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 등을 분석하여 분자량을 측정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질량분석 모듈로는 질량이 같은 분자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분자 크기별로 분리할 수 있는 모듈을 하나 더 달아준다. 그 대표적인 방식이 바로 이온 이동도 스펙트로메트리다.
이온 이동도 스펙트로메트리(Ion Mobility Spectrometry, IMS)는 분자를 충돌 단면적에 따라 분리한다. 시료가 통과할 긴 관에 적절한 농도의 비활성 기체를 채우고 기체상으로 이온화된 시료를 주입한다. 아주 약한 전기장을 걸어주면 이온들이 천천히 이동하는데 이때 이온들은 관을 따라 이동하면서 관에 채워진 비활성 기체 분자들과 충돌하면서 속도가 느려진다. 단면적이 큰 이온은 작은 이온보다 더 많은 기체 분자들과 충돌하면서 더 느려지기 때문에 충돌 단면적에 따라 관을 통과하는 시간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충돌 단면적(간단하게는 입자의 크기로 이해할 수도 있다)에 따라 분리된 이온들은 다시 질량분석기를 통과하면서 질량에 따라 한 번 더 분리되어 검출된다. 두 번의 분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결과 그래프는 3차원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온 이동도 분석 원리. 관을 채운 드리프트 가스와의 충돌 단면적에 따라 분자가 분리된다>
분자 클러스터 연구를 위해 바로 이 이온 이동도 스펙트로메트리 모듈이 달린 질량분석기가 필요했다. 이를 어떻게 구할까. 방법은 두 가지다. 잘 알려진 회사로부터 장비를 구매하거나 직접 만들거나. 아무래도 직접 만드는 쪽이 왠지 더 너드한 과학자 같은 느낌이지만, 구매하는 연구자도 많다. 문제는 이 장비의 가격이 꽤 비싸다는 것이었다. 신임 교수는 부임할 때 학교로부터 일정 금액의 정착비를 지원받는다. 이 돈으로 실험실 리노베이션도 하고, 교수실과 학생실의 가구도 들이고, 실험실 가구 및 기자재는 물론 장비도 갖춘다. 신임 교수 정착비는 대학마다, 학과마다 다르며 시기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본 실험실이 있는 대학은 신입교수 정착금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지만 학교가 한창 신임교수를 뽑던 시기였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는 적은 금액을 받았다. 정착금만으로는 새 장비를 구하기가 어려웠던 A 교수는 중고장비를 구입할 계획을 세웠다. 마침 회사로부터 약 2년 정도 임대로 사용된 장비가 임대 중단될 계획이라는 소식이 있었고 해당 장비를 들이기로 하였다. 다른 대학 연구실에 있던 장비가 그렇게 다시 장비회사에서 수거하여 리퍼비쉬 작업을 거친 후 우리 실험실로 오게 되었다.
신임교수가 부임한 지 9개월이 다 되어 가던 때에 연구 목적에 부합하는, 실험실의 어느 장비보다 최신인 장비가 드디어 들어왔다. 장비 업체 사람 네 명과 장비 이동을 위한 이사 업체 사람 세 명이 왔다. 기본적으로는 이사 업체 사람들이 장비를 옮겨와 포장을 풀고 장비를 배열했다. 분석 장비는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졌고, 긴급 전원 공급장치와 질소 가스 생산장비가 장비 오른쪽에 놓였다. 이제 장비는 장비 업체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매니저로 보이는 두 명은 장비를 배치하며 검수용 사진을 찍었고, 엔지니어는 장비 조립을 준비했다. 다른 한 분은 장비에 조립될 부품을 세척할 준비를 했다. 튜빙을 포함한 부품들은 메탄올, 3차 증류수 혼합액, 고순도 메탄올에 차례대로 담긴 후 질소 가스로 건조되었다. 업체 엔지니어가 이를 하나하나 연결하며 장비를 조립했다. 이 작업은 하루 종일 걸렸고, 조립이 끝나자 펌프를 틀어 진공이 걸리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조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새는 부분이 있다면 진공이 잡히지 않을 터였다. 밤새 펌프를 켜 두고 다음 날 확인하니 다행히 진공이 제대로 걸려 있었다.
<상자에서 막 나온 IMSMS 장비. 커버가 없다>
장비가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은 한참 뒤에 이루어졌다. 장비 업체는 서울에 있는데 여기저기 출장을 다니는 엔지니어가 다시 지방에 내려오는 일정을 잡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려 삼 주가 지난 후에야 다시 엔지니어가 내려왔고 장비를 확인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니까 장비가 실험실에 와서 조립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서야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업체가 리퍼비시 하기 전 다른 대학 연구실에 있을 때에는 잘 작동하던 장비였는데, 옮겨 온 장비는 프로그램에서 실행을 눌러도 분석을 실행하지 않았다. 엔지니어는 그 이유가 메인보드에 있다고 봤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메인보드에 펌웨어 설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곤 메인보드만 새것으로 교체하면 작동할 것이라고 처방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었다. 원인을 찾고 해결책도 찾았으나 그 해결방법을 시행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 메인 보드를 미국 본사에서 발주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 메인보드를 받기까지 빠르면 일주일이 걸릴 것이고 엔지니어의 출장 일정도 다시 잡아야 했다. 그나마 엔지니어가 미안했는지 일정을 최대한 빠르게 잡아보겠다고 했다.
보름 뒤 메인보드를 교체하러 엔지니어가 다시 방문했다. 기존 메인 보드를 꺼내고 새것을 넣고 다시 실행. 하지만 장비는 작동하지 않았다. 왜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새 메인보드에도 펌웨어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다. 간혹 이런 것들이 있다고 했다. 즉 뽑기 운이 없었던 것이다. 이걸 대비해서 엔지니어는 새 메인보드를 두 개를 발주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가져온 또 다른 메인 보드로 교체했다. 결과는, 오류. 이렇게 연속으로 뽑기 운이 없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다시 미국 본사에 또 다른 메인보드 발주를 넣어야 했다. 그리고 엔지니어의 일정도 다시 잡아야 했다. 실험 계획은 계속 늦춰졌다.
<문제의 메인보드>
그 사이 출장 오는 엔지니어는 계속 바뀌었다. 뽑기 운이 없어서 혹은 지방까지 출장 오기가 힘들어서였을까. 최대한 빠른 일정이 가능한 엔지니어를 배정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걸까. 엔지니어가 새로 올 때마다 장비의 이력을 다시 설명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장비를 아직 사용하기도 전이어서 설명할 부분이 적다는 것이었달까. 분석 장비를 취급하는 업체에 소속된 엔지니어는 다양하다. 실험실에 오는 엔지니어들은 질량분석기를 주로 담당하는 이도 있었고 다른 장비를 다루면서 질량분석기도 다루는 이도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실험실에 설치된 장비를 처음 다뤄보는 이도 있었다. 그러니까 분명히 해당 장비에 대해 교육은 받았지만 실전에서 해당 장비를 만져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다행히도 장비를 처음 설치해 주신 엔지니어가 다시 오셨고 그분이 가져온 새 메인보드도 다행히 오류 없이 작동을 했다(어쩌면 이 전에도 이 분이 오셨다면 오류 없이 작동하지 않았을까?).
메인보드 오류가 사라지자 장비가 구동되기 시작했다. 스탠더드 샘플을 찍어서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드디어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료를 넣고 분석을 실시. 분석이 되기는 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번에는 디텍터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다시 디텍터를 수리해야 했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는 그 물건을 받아서 바로 사용할 것을 기대한다. 연구비만 충족되면 장비를 구매해서 바로 실험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장비를 구입한다고 바로 실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비를 실험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네 개의 메인보드도.
장비의 크고 작은 오류 덕분에, 엔지니어가 실험실에 자주 방문했고 그만큼 구성원들과도 친해졌다. 그 사이 엔지니어는 다른 실험실에서 가져온 낡은 질량분석 장비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특히 생산이 중단된 지 한참이 된 MALDI-TOF 장비를 보면서 즐거워했는데, 해당 장비를 처음 본다고 했다. 그 장비의 덮개를 열고 엔지니어에게 장비를 설명해주던 A 교수도 즐거워 보였다. 낡은 장비 하나를 두고 덕후들처럼 신나 하던 교수와 엔지니어는 장비의 상태에 대한 토론도 했다. 비록 다른 회사의 장비지만 엔지니어는 장비 상태를 봐주기도 하고, 문제 해결책을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당시 장비에 설치된 모듈 하나가 전혀 작동을 하지 않는 상태였다). 또한 장비의 작동원리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교수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교수는 장비의 작동원리나 분석원리 등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으나 장비를 직접 고치기는 어려웠고 엔지니어는 장비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수리를 할 수는 있지만 작동방식에 대해서 완전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둘은 장비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궁금증을 해결했고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세팅이 완료된 IMSMS 장비>
디텍터까지 수리를 마치고, 이제는 질량분석기 엔지니어(앞으로는 이 분이 우리 실험실 장비를 전담해주시기로 했다!)와 질량분석기 전단에 붙은 액체크로마토그래피 엔지니어가 함께 와서 다시 한번 장비를 전반적으로 확인했다. 스탠더드 샘플의 측정 결과도 좋았고, 두 명의 엔지니어는 드디어 장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신들이 근무하는 회사(장비 업체)에 낼 보고서를 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장비를 사용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질량분석기 엔지니어의 장비 사용법 교육이 진행되었다. 내용은 주로 간단한 장비 유지에 대한 것으로 장비에 있는 튜빙과 같은 소모품을 교체하는 방법과 장비를 운용하면서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들, 간단한 트러블슈팅 방법이었다.
그리고 한 주 뒤, 장비를 사용했던 다른 대학의 박사 B가 출장을 왔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장비는 다른 대학의 연구실에서 임대해 사용하던 장비로 임대 계약이 종료되면서 리퍼비쉬 한 후 중고로 우리 연구실로 오게 된 것이었다. B박사는 이 장비로 연구를 했는데 결과들을 모아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추가 실험이 필요해서 우리 실험실로 출장을 온 것이다. 장비에 대해 잘 알고 직접 실험을 했던 연구자가 와서 실험을 하는 과정은 대학원생들에게는 완벽한 교육의 시간이었다. 이제 첫 학기를 보내고 있는 대학원생들은 실제 장비가 작동하는 모습도 보고, 자신들이 준비한 시료들을 B 박사와 함께 찍어보기도 했다. 연구실에 드디어 메인 연구장비인 IMS-MS가 개시된 것이다. 장비가 들어온 지 삼 개월, A 교수가 부임한 지 1년이 되는 때였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