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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연구원이라도 괜찮습니다] 실험실, 그땐 그랬지_그때는 언제나 좋을 때
Bio통신원(세균맨)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원 실험실은 참 묘한 곳이었습니다.
학생 신분이지만 수업 이외의 업무가 있었고, 출퇴근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던, 학생과 직장인의 중간쯤에 있던 나날들이었어요.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은 초과 근무하면 억울한데 돈 주고 하는 일은 필요하면 밤도 샌다고요.
대학원생들도 연구비를 받기는 하지만 직장에서 버는 돈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고, 어쨌든 학생인지라 등록금까지 내야 합니다.
재학 기간 동안 실험실 행정 업무도 많이 보고, 논문과 관련 없는 용역 과제 같은 일들도 하곤 합니다. 그 일에 대한 인건비는 참으로 적은 양이었는데 한 번도 억울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순수했기도 했고, 실험실 안에서 동기, 선후배와 어울려 하는 일들이라 그럭저럭 힘들지 않게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는지 그 잡일들의 성격과 양이 타당하고 적절했는데요. 사회에 나와서 보니 꽤 불합리한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더군요. 그런 곳들도 세월이 흘러 많이 바뀌었겠지만, 아직도 어딘가 불합리한 곳이 있다면 빨리 개선되어 마음껏 연구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석사 과정은 달콤한 드라마와 함께
제가 석사과정을 거친 연구실은 건물 구조상 사무실과 실험실이 나누어져 있던 곳이었습니다. 사무실의 낡은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인원수대로 작은 사무용 책상이 옹기종기 모여있었습니다. 겨울이면 사무실 중앙에 자그마한 석유난로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난방이 되긴 했지만 건물이 낡아 웃풍이 심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난로 위에는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랗고 커다란 알루미늄 주전자가 올려져 있어, 그 안에서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언제나 들렸습니다.
오래 걸리는 실험 때문에 새벽까지 실험실에 남아있어야 하는 날은 중간중간 드라마를 보는 것도 잔재미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공중파 방송국 홈페이지에서 드라마를 무료로 보여주던 때였습니다. 늦은 밤에 실험실에 남아 간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드라마를 공짜로 보던 아늑함 때문에 밤늦은 실험 스케줄도 별로 싫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대학원에 입학하던 2002년에는 일인 당 컴퓨터를 한 대씩 사용하지도 못했어요. 세 명이 한 대 정도를 같이 사용했고 데이터는 각자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하여 관리했습니다. 그러니 다들 퇴근하고 한가한 실험실에서 컴퓨터를 독차지 하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었지요.
그렇게 무료 드라마를 즐기던 어느 날 밤, 그날을 끝으로 SBS가 무료 드라마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드라마 ‘올인’을 다 보지도 못한 시점에서 서비스가 끊겨 어찌할 바를 몰랐지요. 그동안 ‘로망스’ ‘별을 쏘다’ ‘올인’ 같은 드라마를 벗 삼아 밤중 실험을 버텼는데 공중파 방송국이 차례로 무료 서비스를 종료하니 저에게는 상당한 타격이었어요. 그 후로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이나 ‘시트콤 프렌즈’ 등의 CD를 무서운 속도로 구워대며 실험 메이트를 만들어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공중파 방송국 웹사이트에서 지난 드라마를 무료로 보여주는 곳이 많죠. 이제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엄청나게 발전해서 언제 어디서나 드라마와 영화를 볼 수 있으니, 가끔 그때 생각을 하면 지난 20년 동안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이러니 ‘라떼는’이라는 대사가 나올밖에요.
드라마 말고 실험실에서 가장 많이 시간을 죽인 오락거리는 프리셀이었습니다. 학부생일 때는 거들떠도 안 보던 것인데 실험실에서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게임이었습니다. 오분, 십분 남은 시간에도 할 수 있고,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오락이라 이 사람 저 사람 많이들 했습니다. 클릭 소리가 시끄럽고 단시간에 집중해야 하는 지뢰 찾기에 비해 느긋하게, 혹은 몰래 하기에 안성맞춤인 게임이었어요. 최근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프리셀이 나오는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워서 하마터면 게임을 다운 받을뻔 한 것을 꾹 참았습니다.
첫 신용카드 만들던 날
저희 실험실 앞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습니다. 잔디밭도 아니고 길가도 아닌 애매한 공간이었는데요. 주로 대학원생들이 담배도 피우고 커피도 마시며 잡담을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거기서 자주 하던 것 중 하나가 컴퓨터 본체를 들고나가 에어건을 연결해서 내부에 붙어있는 먼지를 날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실험실에 먼지가 많아서 꼭 컴퓨터를 청소해 줬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마냥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컴퓨터 관리를 한다는 핑계로 죄책감 없이 노닥거리는 그 시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친구 한 명과 나란히 앉아 컴퓨터 먼지 제거를 하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데 저희 곁으로 아주머니 한 분이 걸어오셨습니다. 조용히 다가와 옆에 앉으신 그분은, 아무 대가 없이 영화관과 제과점, 식당 등 여러 곳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카드가 있다며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아직 신용카드를 만들어 본 적도 없고, 내 신분에 신용카드가 감히 가당키나 한 것인가 고민이 되었지만, 같이 있던 친구가 공짜인데 뭐 어떠냐며 냉큼 신청서를 쓰길래 덩달아 신청을 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제 인생 첫 신용카드는 이후 십여 년간 저의 주거래 카드가 되었어요. 나중에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때 은행 직원이 대출에 유리한 카드를 신청하라고 해서 얼떨결에 저의 첫 카드는 해지되었지요. 그 카드를 해지한 일은 두고두고 후회를 했습니다. 그 후에는 연회비 없는 혜택 좋은 카드 같은 건 영영 사라져 버렸거든요.
그때는 언제나 좋을 때
당시에는 실험실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빨리 졸업하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어제 입은 옷을 오늘도 입고 매끼 멀건 국물이 나오는 학생 식당 밥을 먹는 궁상맞은 대학원을 졸업만 하고 나면, 사회에 나가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는 화려한 날들이 올 줄 알았습니다. 그때는 취직만 하면 퇴근 후 바(Bar) 같은 곳에서 병맥주만 먹고 살 줄 알았어요.
가끔 그 꿈을 이룬 것으로 보이는 졸업한 선배들이 찾아와 초코파이를 몇 박스씩 넣어 주기도 하고, 듣도 보도 못한 특이한 빵들을 사다 주며 눈과 입을 호사시켜주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선배들은 늘 같은 말을 했죠.
“여기 있을 때가 제일 좋았다. 지금이 좋은 줄 알아.”
대체 바깥세상이 어떻길래 이 구질구질한 곳이 ‘제일’씩이나 좋다는 거냐며 저희끼리 시시덕 거렸죠.
아마 지금 제가 대학원 후배들을 만난다면 나이 먹은 티를 내며 그런 말을 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때가 좋을 때 라구요.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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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은 황량하고 지루한 곳 같지만 역동적인 매일이 담겨있는 곳이다. 모든 연구원들에게는 실험실에서의 추억이 있다. 즐거웠던 기억, 지긋지긋했던 기억, 성취감에 기뻤던 기억, 그리고 가장 많은 기억의 자리를 차지하는 삽질의 기억. 그런 나와 내 주변의 얘기들을 나눠보려고 한다. 모두가 지식을 얻기 위해서만 글을 읽는 것은 아니니까, 과학도들도 잠시 바쁜 손을 놓고, 조금 감성적인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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