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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R 돌리고 한 장] 룰루 밀러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Bio통신원(이지아)
화제의 신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소개합니다. 2021년 말 국내에 들어온 책이 2022년 5월까지도 베스트셀러 목록을 지키고 있습니다. 과학 책 안 읽는 세상에 반년 가까이 베스트셀러인 과학 책이라니! 비결이 궁금해 읽어보았습니다. 과학보다는 과학자와 사람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한 과학자의 열정에서 움튼 이야기는 다양한 사람의 삶으로 뻗어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책은 누구보다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고, 언젠가 다른 이의 거인이 될 여러분을 위해 책을 가져왔습니다.
표지 출처 알라딘
저자는 룰루 밀러는 삶에서 큰 실수를 하고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합니다. 저자가 찾은 인생 모델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의미가 희미해지는 세상 속에서 삶에 확신을 잃지 않고 평생을 연구에 투신한 사람입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전 세계를 뒤지며 새로운 물고기 수천 종을 발견한 분류학자입니다. 저자는 집념 가득한 조던의 삶을 첫 장부터 실감 나게 묘사합니다. 조던은 연구자들이 흔히 겪는 시행착오는 물론이고, 화재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마저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명을 모읍니다. 장마다 담긴 삽화도 감상을 돕습니다. 검은 바탕에 하얀 선으로 채워진 삽화는 비늘과 지느러미를 지닌 생명체와 잘 어울립니다. 세밀한 삽화를 천천히 감상하면 조던이 왜 생명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는지 공감하게 됩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https://en.wikipedia.org/wiki/David_Starr_Jordan
실존했던 인물의 삶과 그를 조사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병치하는 형식은 이전에 소개해드린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과 비슷합니다. 독자는 시대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읽으며 역사의 연속성을 느낍니다. 과거 사람들의 행동과 선택이 어떻게 현재를 만들었는지 책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헬라 세포가 오늘날에도 실험실에서 쓰이듯, 조던이 제작한 표본도 아직까지 박물관에 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서술은 책이 그리는 인물의 삶이 진실이 아니라 작가가 재구성한 허구임을 암시합니다. 독자는 작가의 눈으로 인물을 평가하는 동시에, 1인칭 시점의 작가의 말 또한 한 걸음 떨어져서 읽고 판단하게 됩니다.
만화에서도 말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책이라 감상을 공유하기 어렵습니다. 지금부터는 책 내용을 최소한으로 언급하며 글을 쓰겠습니다. 내용을 알수록 김이 빠지는 책입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관심이 생겼다면 아래 글을 읽지 말고 책을 먼저 읽기를 권합니다.
실존 인물의 삶에 얼마나 큰 반전이 있겠냐 싶겠지만, 현실 사람일수록 한 가지 면모만 갖지 않습니다. ‘인천공항의 마법’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해외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모두를 존중하던 연구자도 임용이 되어 인천공항 게이트만 넘으면 사람 귀한 줄 모르는 교수가 된다는 우스갯소리입니다. 인천공항의 마법은 성실한 과학자를 무능하게 만드는 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성실한 연구자에게 다른 것 없이 성실함만 남아 가혹하게 변하는 편에 가깝습니다.
데이비드 조던은 세상만사의 맨 위에 과학을 놓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렸습니다. 조던은 일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과학자로 자라서 과학자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업적이 쌓이고 지위가 높아지며 너무 큰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연구자로서 데이비드 조던을 마냥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스스로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사고한다고 여길수록 그의 행동에 공감할 겁니다. 사회가 과학적 진리를 거스를 때, 과학자의 사명감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면 하겠습니까? 조던은 그렇게 했고, 황당하다 못해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자신이 조던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천천히 생각하다 보면 그가 마냥 괴물처럼 보이지 않을 겁니다. 과학적 진리라고 생각하던 것이 그저 믿음이었음을 깨닫기란 과학에 몸담은 사람일수록 힘든 일입니다. 조던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되, 과학마저도 사람이 만든 가치 체계일 뿐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저자는 조던의 삶이 사후에 뒤집어졌다고 평합니다. 조던의 과학 우선주의 가치관이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그가 찾은 과학적 사실마저 다 틀렸다는 것입니다. 조던은 세상의 모든 물고기에 이름을 붙이려 했지만, 책의 제목처럼 현대 분류학에 물고기(어류, fish)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사적으로는 훌륭한 결말입니다. 하지만 죽은 조던이 이 부분에서 화를 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과학은 항상 뒤집히며 발전해왔습니다. 조던이 스승 아가시의 사상에서 틀린 점을 찾았듯, 현대의 연구자도 조던의 연구를 반박하며 자연에 더 가까워졌을 뿐입니다. 조던의 과학 맹신주의적 가치관이 틀렸더라도, 그가 연구한 분류 체계가 통째로 사라졌더라도, 조던이 과학 안에서 이룬 기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척추동물의 계통수. 저자는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쥐와 닭보다 고등어와 홍어 간 거리가 먼 시점에서 '어류'는 무의미해집니다1.
데이비드 조던은 비열하고 위선적입니다. 그렇기에 결점을 찾기 힘든 과학자 위인들보다 현실 과학자에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좋은 과학자와 좋은 사람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이라면 조던의 이야기가 더 와닿을 것입니다.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일지 고민하는 분들께 데이비드 조던은 롤모델이든, 반면교사로든 도움이 될 것입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조던 홀
미국 각 대학의 '조던'의 이름을 딴 건물은 하나씩 이름이 바뀌고 있습니다2.
신념을 안고 사는 것이 위험하다면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할까요? 저자는 자신 곁의 사람에게서 답을 찾았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없으니 서로가 서로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불변하는 진리 대신 나만큼 보잘것없는 사람을 택하는 결말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책이 베스트셀러에 있는 이유도 저자의 답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각주
1. Yamamoto K, Bloch S, Vernier P. New perspective on the regionalization of the anterior forebrain in Osteichthyes. Dev Growth Differ. 2017 May;59(4):175-187. doi: 10.1111/dgd.12348. Epub 2017 May 4. PMID: 28470718.
2. https://news.stanford.edu/2020/10/07/jordan-agassiz/
2020년 10월 스탠퍼드 대학은 조던 홀의 이름을 바꾸겠다고 했으나, 2022년 5월 기준 어떤 이름으로 바꾸었는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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