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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R 돌려놓고 한 장] 레베카 스클루트 -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Bio통신원(이지아)
헬라 세포를 아시나요? 세포 실험 경험이 없더라도 헬라 세포는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학부 1학년 일반생물학 시간에 교과서에서 헬라 세포를 접했습니다. 책은 ‘배양에 성공한 최초의 인간 세포’로 흑인 환자 ‘헬렌 레인’의 암세포를 소개했습니다. 연구실에 들어간 후 여러 가지 세포를 접했지만, 헬라 세포만큼은 직접 관찰한 적 없이 이름만 들어본 세포로 남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책은 절판되었습니다. 학교나 지역 도서관을 찾아보세요!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은 1920년부터 2000년대까지 헬라 세포의 역사를 쓴 책입니다. 저처럼 헬라 세포를 겉핥기로 아는 사람은 물론, 헬라 세포 전공자라도 몰랐을 비화가 가득합니다.
저자 레베카 스클루트는 저처럼 대학교 강의 시간에 헬라 세포와 만났습니다. 저자는 헬라 세포로 얻은 과학적 성과에 비해 세포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아무것도 없다는 데 놀랍니다. 생물학을 공부하고 저술로 전공을 옮긴 후에도 헨리에타에 대한 새로운 소식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헨리에타의 삶을 알아내기 위해 논문과 의료 기록을 샅샅이 뒤졌고, 백인이라면 치를 떠는 랙스 가족을 설득해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침내 헨리에타의 삶을 재구성해 책에 옮겼습니다.
인간 헨리에타 랙스의 삶은 짧습니다. 헨리에타는 29살에 자궁경부암을 진단받고 1년도 안 되어 죽었습니다. 1951년 이후 헨리에타의 이야기는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하나는 헬라 세포가 연 세포 배양의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를 잃은 랙스 가 아이들의 가족사입니다. 한 종류의 세포와 열 명도 안 되는 가족 이야기에 생명공학의 부침과 미국 흑인의 수난이 그려집니다.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 속 헨리에타 랙스
두 이야기는 동시대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릅니다. 세포 배양의 혁명가 조지 가이는 헨리에타 랙스의 세포를 전 세계에 무상으로 배포했습니다. 세포 배양 기술은 빠르게 발전합니다. 배지가 표준화되고 헬라 세포 대량 생산에 성공한 덕분에 소아마비 백신을 비롯한 다양한 의약품이 개발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헨리에타의 첫째 딸은 흑인 전용 정신병동에서 죽었습니다. 둘째 딸은 아버지 애인의 남자 친구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으며, 막내아들은 사람을 죽여 수감됩니다. 조지 가이는 환자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헬렌 레인’이라는 가명을 퍼트렸습니다. 랙스 가족은 ‘헬렌 레인’ 세포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세월을 보내고요.
갈라졌던 역사는 20년 만에 하나로 모입니다. 60년대 후반 거침없이 자라는 헬라 세포가 다른 세포주를 오염시킨다는 의혹이 생겼습니다. 과학자들은 헬라 세포를 검출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랙스 가족의 유전 정보를 찾습니다. 랙스 가족은 과학자들이 암 검사를 해주는 줄 알고 피를 제공합니다. 과학자들은 랙스 가 사람들의 유전 정보를 토대로 헬라 세포 검출법을 만듭니다. 가족들은 암 검사 결과를 기다리지만 애초에 암 검사가 아니었으니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고요. 이후 랙스 가족에게 백인 과학자란 어머니를 속여서 얻어낸 세포로 일확천금을 얻은 사기꾼이 됩니다.
저자는 뒤늦게나마 랙스 가족과 과학자를 잇습니다. 헨리에타의 둘째 딸 데버러 랙스에게 어머니 세포가 어떤 일을 했는지 설명하고, 헨리에타에게 고마워하는 과학자들과 만날 기회를 주선해줍니다. 가족들의 분노도 누그러집니다. 데버러와 동생들은 어머니의 세포로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가족들 중 누구도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어떤 통지와 보상 없이 금전적 이득을 취한 바이오 업계만큼은 용서하지 못합니다.
HBO 드라마는 백인 작가가 흑인 가족을 만나는 장면까지 넣었다고 합니다.
책은 조직 제공 환자가 사실을 알 권리와 환자의 금전적 지분에 대한 논쟁으로 끝을 맺습니다. 사람의 세포를 이용해 의약품을 개발했을 때, 세포를 제공한 사람은 의약품 이익의 일부를 요구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자신의 세포를 이용해 약을 만들었으니 당연히 지분을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과학자들은 수많은 사람을 살릴 연구를 시작도 하지 못하게 되리라 두려워합니다.
예전에 HEK293 세포에 대한 글을 쓴 적 있었습니다. HEK293은 태아의 신장에서 유래한 세포입니다. 1973년, 생명윤리가 확립되기 전에 개발한 세포주라서 아이가 누군지, 낙태되었는지 사산되었는지도 알려진 바 없습니다. 저는 글을 쓰며 이미 만들어진 세포로 하는 연구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논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문제는 차라리 쉽습니다. 죽은 아이는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이 결론은 오늘날 사람의 세포를 연구에 사용할 때 적용할 윤리 기준은 아닙니다.
2022년 한국은 어떤지 찾아보았습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는 인체유래물을 이용한 연구를 할 때는 기증자에게 연구 내용을 충분히 설명한 후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동의서에는 내 기증물을 몇 년 동안 보관할지, 다른 연구에 기증물을 써도 될지 체크하는 항목도 있습니다. 규칙에 따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세포가 연구에 쓰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단, 동의서에는 인체유래물을 이용한 연구가 상품이 되었을 때 기증자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세포를 받아간 과학자가 바이오벤처를 차려서 얼마를 벌든 기증자는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인체유래물연구 | 적용대상 |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 기관생명윤리위원회 정보포털 (irb.or.kr)
인체유래물을 기증자의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할까요? 생명과학 연구는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요? 생명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이상 평생 끝내지 못할 고민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어느 입장에 계시더라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을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책은 역사적인 사건과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함께 담았습니다. 생명과학의 역사는 곧 과학자 개인의 양심이 윤리 규정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역사를 따라가며 여러분의 연구도 함께 성숙해지면 좋겠습니다.
- 드라마 캡처는 뉴욕타임스와 타임 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Review: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 Condensed - The New York Times (nytimes.com)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 What to Know | Time
-HEK293 세포에 대해 제 브런치에 올렸던 글입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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