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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사실은 아이가 다섯
Bio통신원(닥터리)
그림 출처: 픽사베이
닥터리의 육아일기 마지막화를 적으면서 나의 육아의 시간을 반추해 보았다.
박사과정 한 복판에서 엄마가 된 이후로 나는 육아와 일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지난 10여 년간 고군분투하면서 이 힘든 일을 왜 이끌어가며 살고 있나 싶었다. 또한 나만 이렇게 허덕이며 일과 육아를 감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늘 마음속에 불만이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일과 육아를 다 잘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돈도 잘 벌고 예쁘고, 능력 있고, 자식도 잘 키우는 완벽한 엄친아가 세상 어딘가 있는 것 같았지만, 실제 나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내가 둘 다 잘하는 사람이 되고자 꿈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고, 그 불가능한 것을 사회가 나에게 요구한다고 생각되어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잠시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도 똑 소리 나게 잘 키우고, 자기 관리도 잘하며 지내겠지.... 직장을 다니더라도 칼퇴근 또는 탄력근무제가 가능한 사람들은 일과시간 이후에는 좀 편하겠지 싶었다. 나보다 두세 배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은 가사도우미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 가사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아이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겠지 싶어 부러웠다.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는 사람도 부러웠고, 파트타임이 가능한 사람도 부러웠다. 프리랜서로 전향할 수 있는 직업군도 부러웠다. 그저 나와는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마냥 부러워하면서 내가 가진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간도 없었고, 내가 원하는 물건을 마음껏 살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나는 아는 게 전공지식뿐이라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할만한 밑천도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좋은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국가 연구 프로젝트 기반으로 일하는 계약직 연구교수일 뿐 언제든 직장을 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정교수였다면 이런 마음이 좀 사그라들었을까? 내가 좀 더 돈을 많이 벌었다면 이런 가난한 마음이 메꾸어졌을까? 좀 더 좋은 논문을 써서 매스컴을 탔다면 만족스러웠을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주변의 교수님들도 나보다 급여가 많았지만 넉넉해 보이지 않았고, 본인의 처우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나는 엄마로서도 과학자로서도 쪼그라든 마음을 가지고 산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나는 커서 뭐가 될까 생각을 해 봤는데요, 과학자는 안 하려고요.”
“왜 과학자는 안 하려고 하는데?” 나는 아들에게 되물었다.
“아! 엄마 지내는 모습 보니까 과학자 하면 주말에도 실험실 나가야 하고, 자기 시간도 없고, 너무 어려운 거 같아요.”
우리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마냥 에디슨처럼 발명품을 뚝딱 만들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해야 하고, 실험 스케줄에 맞추어 늘상 연구실을 오가야 하는 삶을 어린 나이에 미리 알게 된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화를 통해서 나는 아이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치어졌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름대로는 “과학이 어렵기는 하지만, 열심히 연구해서 데이터를 얻는 기쁨도 있고, 세상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엄마처럼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까지는 기대하지 못해도, “엄마가 우리도 키우시고, 과학자로서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좋아 보여요.”라는 말은 듣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우리 아이 눈에는 그저 힘들어 보이기만 했구나 싶어 마음이 씁쓸했다.
비슷한 시기 나는 또 한 번의 뼈 때리는 말을 들었다.
우리 연구실의 박사과정 학생이 한창 계획서를 쓰고 있던 나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 나는 박사님처럼은 살고 싶지 않아요. 하는 일이 너무 많고, 여유도 없고 너무 힘들어 보여요. 나는 박사 학위 받으면 우선 6개월 놀고 싶어요. 그냥 좀 쉬면서 진로를 생각하고 싶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제껏 내가 일과 육아를 구멍 없이 다 해내는데 급급하며 살아왔지만, 그 모습이 대견해 보이기보다는 참 숨 막히게 빡빡하고 안쓰러워 보이는가 보구나 싶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 아들과 박사과정 후배의 말을 통해 나는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일, 육아 두 부분의 균형을 맞추려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한발 한발 디디며 현상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를 보았다. 그 속에서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내 모습도 보았다. 내가 나 스스로를 만족해하지 않고 늘 부족하다 생각하니 과학자로서도 엄마로서도 부족함 투성이의 나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애쓴 만큼의 보람이 없는 것 같아서 솔직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제서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이제까지 365일 공부하면서 지내온 나였지만, 해야 하니까 하는 공부가 아닌 내가 답을 찾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였다. 박사과정 입학 후 처음으로 책을 손에 들었다. 전공책 말고는 처음이었다. 자기 계발에 대한 유튜브 강의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배워서 사람들과 관심사 기반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친구들끼리 하는 아주 작은 챌린지에 동참해보기도 했다. 매일 감사일기 적기, 성공일기 적기 이런 것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지난 10년간 매일 만나던 연구실 사람들, 우리 가족들 외에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소통을 통해서 나는 경력 단절로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주부도 만나고, 화려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만났다. 주말까지 진료를 꼬박 보면서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수의사 선생님도 만났다. 빚을 갚기 위해서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하는 사람도 알게 되었다. 밤샘 장사를 하고 와서 아이들 밥 챙겨 보내고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분도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대로 살면서도 자기의 발전을 하기 위해 무언가 시작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것 4가지씩 피드에 올리는 사람, 100일간 운동을 인증하며 몸매와 건강, 자신감을 회복하는 사람 등 각기 자기의 방식에 맞추어 변화를 꾀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그 좋은 기운이 내게도 조금씩 전달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에게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만나는 사람을 바꾸라고 했던 말이 이것이구나 싶었다.
잘살아 보겠노라 결단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삶에서 감사할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건강하니 감사했고, 적은 금액이라도 매달 저축을 실천해올 수 있었음이 감사했다. 이 많은 일들을 아프지 않고 다 감당해온 내가 대견했다. 책을 읽자고 하면 순순히 따라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니 탓이야.라고 나를 비난하지 않는 남편에게 감사했고, 주말부부 아닌 것도 감사했다. 연구비가 없어서 연구실에서 나와야 하는 일이 벌어진 적이 없는 것도 감사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감사할 거리를 찾다 보니 어느새 감사할 것이 더 많아진다고 말이다.
나는 그 말에 정말 동감했다.
만나는 사람들을 바꾸고,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니 같은 일도 더 나빠지지 않았음에 감사가 되고, 바빠도 일이 있음에 감사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게 깨달은 것은 나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나는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상황에 갇혀서 한정된 꿈만 꿀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까지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키웠고, 어쩔 수 없이 연구실을 그만두지 못해서 이렇게 지냈는 줄 알았는데 사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것도 내가 선택했던 것이고, 학위과정을 포함해 15년 가까이 이 연구실에서 연구하기로 한 것도 내가 선택했던 것임을 알았다. 좀 멀리 떨어져서 내 직업을 바라보니 내가 그만두지 못해서 꾸역꾸역 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나름 내 안에 신약개발이라는 꿈이 있었기에 힘든 일도 견딜 수 있었음을 알았다.
다만 내게 부족했던 것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않았고, 소극적으로 상황에 나를 맡겨버린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디 다른 데 갈 곳이 없어서 이곳에 계속 있게 되었어.”
“애도 있고 일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둘 다 구멍 안 나게 메꾸면서 지내봐야지 뭐.”
이런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나는 육아도 연구도 다 잘 해내고 싶어.”라고 적극적인 태도로 내가 나에게 말을 해 주었다면, 육아의 긴 여정 속에서 내가 안 가본 길을 걷는 사람들을 기웃거리며 비교하기보다는 내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연구와 육아를 어떻게 하면 잘 해낼 수 있을지 방법을 생각해내고, 그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 주변 환경을 바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혼자만 전전긍긍하며 일과 육아를 감당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책과 강연,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멋진 워킹맘 롤모델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롤모델이라고 해서 “우와 대단하다. 부럽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나보다 좀 더 먼저 나의 상황을 겪었던 멋진 분들을 보며 “일과 육아를 모두 멋지게 해 내는 게 가능한 것이었구나.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어떤 게 있지? 라며 희망도 얻고, 조언도 구할 수 있음이 너무나 반가웠다.
내가 존경하는 켈리최 회장님께서 세계 여성의 날 강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성의 가장 큰 적은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스스로가 나는 부족해. 나는 일과 육아를 다 감당하려면 너무 힘들 거야라고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나는 아이, 남편, 일 모두를 다 잘 키워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선언하고 믿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선 이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거라고 결심을 해야 그다음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까지 인생의 결정권을 타인에게 미루어왔다.
교수님께 미루고, 부모님께 미루고, 아이들에게 종종 미루었다.
이 사람이 원하니까 어쩔 수 없이...라고 말하면서 꾸역꾸역 일을 했다.
이 사람이 원해도 내가 싫으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했다.
그러니 내 시간에 대한 선택권이 늘 타인에게 있었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같은 일이더라도 내가 그것이 필요하다고 수긍하게 되어 선택한 일과 상황이 나를 밀어 넣어 욕먹지 않으려고 하게 되는 일은 질적으로 천지차이이다. 내가 선택한 일은 평가도 내가 한다. 어제보다 한 뼘이라도 성장했다면 나는 나에게 잘했다고 토닥여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나는 내 삶에 대한 평가의 권리를 사회에 넘겨주었다.
impact factor 5점 논문을 내면 10점 내는 사람들도 많은데 라는 사회의 평가를 수긍했고,
너의 결과물이 내 눈에 안찬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 평가를 진실로 받아들였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매겨지는 점수는 늘 더 잘하는 누군가와 또 비교하여 점수를 받아야 하고 이것은 결코 끝이 없다. 물론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분명 있고, 직장에서 내 몫을 해야 하는 것이 분명 있지만 일의 평가와 내 존재에 대한 평가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가 나의 삶을 정의하고, 내가 나를 뜨겁게 응원해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 선언했다.
“나는 5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첫째는 딸 주은이, 둘째는 아들 정훈이, 셋째 내 남편, 넷째 내 일, 그리고 다섯째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품듯, 내 남편도 품고, 내 일도 품고, 무엇보다 나를 품어서 다섯 아이들이 모두 골고루 성장할 수 있도록 보듬어주는 엄마로 살아갈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과학에서 대조군과 비교군을 비교하여 차이를 말하듯이 나는 오롯이 어제의 주은이, 어제의 정훈이, 어제의 남편, 어제의 성과, 어제의 나 하고만 비교하여 내 성장을 판단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행복한 엄마 과학자가 되어가고 있다.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잘 안 풀리는 실험을 성공하고 싶어서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논문 쓰는 부분에 대해서도 내 것뿐 아니라 연구실 후배들의 논문을 봐주느라 시간을 내고 첨삭해주면서 내 논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키우는 중이다.
그리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나만을 위한 새벽시간을 만들어 책도 읽고 강의도 듣는다. 이 시간이 채워지니 내 마음도 한결 넉넉해지고, 나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부드러워진 것을 느낀다. 내가 나를 칭찬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일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붙었다. 누군가 나에게 칭찬을 하면 있는 그대로 그 칭찬을 감사하게 받고 스스로에게 엄지 척 날려준다.
매일 한정된 사람과 한정된 대화를 나누던 내가 책과 강의, 소통을 통해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나의 언어도 자꾸만 바뀌고 있는 게 느껴진다. 여전히 바쁜 삶이지만, 그 시간에 내가 의미를 부여하니 나의 모든 시간이 값지게 바뀌어감을 느끼고 있다.
며칠 전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는 이전엔 많이 힘들어 보였는데, 지금은 일하는 엄마 모습이 좋아 보여. 좋아하는 일 하는 것 같아.”
머지않아 아끼는 연구실 후배가 첫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출산휴가를 앞두고 후배들에게 인수인계하고, 실험실 샘플 정리를 하는 모습에서 13년 전 내 모습을 보았다. 입덧이 심해서 연구실에 못 나오던 시절에도, 조산기가 있어서 일주일 입원하게 되었을 때도, 괜히 눈치 보인다고 움츠러드는 후배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아이가 건강하게 잘 태어나면 되지라고 말해주며 연구실 일 처리도 알아서 해 주곤 했다. 그렇게 이모저모로 내가 도와준다 하더라도 무거운 몸 이끌고 편도 1시간씩 걸려 출퇴근하는 후배가 얼마나 고단할까 싶어 마음이 짠하다.
내 후배는 “박사님도 박사과정에 아이 낳고 잘 키우고 연구도 잘하셨으니까 저는 별로 걱정 안돼요. 아기 낳고도 문제 생길 때마다 물어보면 되잖아요.”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있음에 기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더 멋진 모습으로 서고 싶어 어깨가 무겁다.
나는 곧 엄마 과학자가 될 사랑하는 후배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너의 꿈을 이루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고, 충분히 똑똑하고, 충분히 건강하고, 충분히 용기 있는 사람이야. 분명 아기도, 남편도, 일도, 너 자신도 잘 키워낼 거야.”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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