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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과학 읽기]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다정한 본성의 위대함이 주는 위로와 희망
종합 fovero (2022-02-04)

다정한 본성의 위대함이 내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그림 1.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한글판, 영문판 표지


책을 읽는 도중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가 본디 착한 본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과학의 근거로 확인한 것 같아 기쁨과 안도감이 밀려왔다. 모든 생명체의 생존과 진화가 무한경쟁 속 자연선택의 결과물 이라기보다 협력적 의사소통 (Cooperative communicative abilities)이 만들어낸 공존의 산물이라니 일면 상식적이지만 무한경쟁에 내몰려 하루하루 버티고 각자도생 하며 위태롭게 서있는 현실 세계에 스며들기는 힘든 말일 듯했다. 하지만, 인류가 지금까지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내 주위를 살피고 아끼는 본성에서 비롯되었다니 마음이 편해지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문득, 故 이수현 씨가 떠올랐다. 20여 년 전 당시 일본 유학생으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 희생했던 그의 선함이 생각났다. 무엇이 아무런 대가 없는 선행과 자기희생을 이끌었을까? 인간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다름에 대해 서로를 포용하지 못하고 틀림의 기준으로 날카로운 선을 긋고 경쟁과 비판, 분쟁을 통한 자기 합리화에 익숙해져 가는 것만 같다. 더욱이 전쟁과 학살, 증오의 역사를 다시 떠올려보고 섬뜩하리만치 잔인한 범죄를 일삼는 인간의 자화상을 마주하게 되면 우리의 착한 본성에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영화나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선한 희생을 마주하게 될 때 미담으로 소개되고 기사화되는 이면에는 우리의 안도감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다정함이 진화를 통해 지구에서 번영을 일구어 냈듯 그 순수한 선함이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을 자각시켜 우리 사회의 결속을 유지시키고 협력적 의사소통을 이끌어 낸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작금의 팬데믹 위기 속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와 내 이웃에게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를 읊조려 본다.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우리는 답을 찾을 거예요. 늘 그랬듯이). 그 출발은 우리 본성에 대한 자각이 아닐까? 늘 그랬듯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와 오해: 적(適)자생존 vs 우(優)자생존

적자생존 (Survival of the fittest)은 친숙하지만 불편하다. 찰스 다윈 (1809-1882)이 ‘종의 기원’에서 ‘주변 환경과 잘 맞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는 그 집단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지 않은 개체는 사라질 것’이라는 의미로 자연선택을 설명하면서 “허버트 스펜서 (1820-1903)가 사용한 적자생존이 더 정확하고 때론 같은 의미로 편리하기도 하다”고 했다. 적자생존이 철학적, 경제적, 사회적 함의로 포괄적으로 사용되면서 생명체가 척박한 자연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식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 개념은 자연스레 우리 삶의 방식으로 각인되어 왔다.

하지만,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도움의 간절함을 목도하게 될 때 내 것을 내어주고 거리낌 없이 희생을 하는 우리의 따뜻함은 어찌할까?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 없어 오 갈데없던 마음을 이 책이 붙들어 준다. 책 말미 감수의 글에서 ‘the fittest’ (적자, 適者)에 상응하는 단어로 ‘넉넉하며 도탑고 인정 많고 부드럽고 품위 있고 뛰어남’을 의미하는 우(優)의 사전적 의미를 ‘the friendliest (다정한 것)’ 의미에 더해 우자(優者)로 제시하는 글에 공감이 간다 (수우미양가의 ‘우’). 인간의 자기가축화 (Human Self-Domestication, HSD) 이론을 토대로 한 과학적 근거와 해석을 접하면서 불편함이 조금 사라진다. 우리는 진정 다정한 본성 때문에 뛰어난 종으로 진화했을까?    


자기가축화 가설과 인간 본성 탐구

저자 중 한 명인 브라이언 헤어 (Brian Hare)는 듀크대학에서 침팬지를 대상으로 마음이론을 실험적으로 검증한 진화인류학자이자 영장류학자이다. 개와 침팬지, 보노보를 대상으로 인간 본성을 탐구하고 있고 그의 연구 (https://brianhare.net/)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다큐멘터리 6부작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Why we hate)? 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참고: https://youtu.be/h2JEJj19Poo). 브라이언 헤어는 박사학위 지도 교수인 하버드대학 리처드 랭엄과의 자기가축화 가설 연구결과를 근거로 현생인류의 인지진화를 설명하고자 한다 (참고 1). 

The Survival of the Friendliest: Homo Sapiens Evolve via Selection for prosociality. (Annual Review of Psychology Vol. 68:155-186)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호모 사피엔스는 친화력 선택을 통해 진화한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흥미롭고 실증적인 내용은 브라이언 헤어의 이 리뷰 논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인지진화 (cognitive evolution) 연구는 우리 지능의 고유한 특징을 규명하는 동시에 그 발생과정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데, 인간 자기가축화 가설을 통해 인간 인지진화가 후기 인간 진화과정에서 공격성보다 집단 내 친사회성이 선호되고 자연선택되면서 이루어졌다고 제안한다. 인간에게서도 다른 가축에서 관찰되는 가축화의 특징적 징후가 보일 것이라 추측하고 인간의 독특한 정신능력과 관용, 가축화 징후와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흥미로운 증거를 제시한다.


인간 본성 탐구를 위한 동물모델 연구: 개, 은여우, 보노보 

손짓은 심리학에서 마음이론 (Theory of Mind)이 말하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의 시작점이다. 마음이론에 따르면 정교한 방식으로 타인의 마음을 읽고 추론하는 능력은 타인과 협력하며 의사소통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음이론은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희로애락의 원천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기도 하다. 저자는 심리학자들에게 흥미로운 대상이 아니었던 개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소개한다. 손짓을 통해 먹이가 있는 컵을 찾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우리 곁을 지키는 반려견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침팬지와 달리 손짓을 쉽게 알아차리고 협력적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 보여주었다. 

야생 동물의 가축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60여 년간 이어온 러시아의 드미트리 벨라예프와 류드밀라의 유명한 은여우 실험이 있다. 이들은 공격성이 덜한 여우를 골라 근친교배가 되지 않게 교배를 시켰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꼬리를 흔들고, 개처럼 펄럭이는 귀, 짧은 주둥이, 동그랗게 말린 꼬리, 얼룩무늬 털, 작은 이빨을 가진 여우가 보편적인 형질로 바뀌어갔다. 이 표현형들은 가축화된 동물의 특징적 징후다. 친화력만을 기준으로 삼고, 사람에게 친화적인 동물이 더 높은 번식 성공률을 보일 때 가축화가 발생함을 보여준 것이다.

이 멋진 유전학 실험 연구는 [은여우 길들이기]라는 책에서 자세하게 접할 수 있다 (참고 2, 3). 저자의 지도교수 리처드 랭엄은 협력적 의사소통의 변화를 통해 상대방의 의도를 잘 읽어내는 인지기능 변화도 친밀함을 기준으로 한 선택 번식을 통해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시베리아로 날아가 친화력이 좋은 여우들을 대상으로 한 손짓 반응 실험을 통해, 몇 달에 걸쳐 사회화 훈련을 받은 보통 여우들에 비해 친화력이 좋은 여우들이 손짓에 반응해 먹이를 쉽게 찾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을 친화력이 높은 은여우 실험에서도 확인한 것이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사람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유인원 종으로 유전체의 98.7%가 일치한다. 잘 알려진 것 것처럼 침팬지는 공격성 강한 수컷이 주도하는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무리 생활을 하고 있는 반면 중앙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콩고강 남쪽에 서식하는 보노보는 암컷 중심으로 마마보이 같은 새끼를 애지중지 돌보며 갈등이 있을 때면 전쟁 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종이다 (공격성을 극복하고 섹스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히피 침팬지로 불린다. 참고 4). 이들 두 종은 인지력 테스트에서는 비슷한 결과를 보였지만, 마음이론 테스트와 협력능력 분석 테스트에서는 다정함이 넘치는 보노보가 우세했다. 협력이 필수적인 곳에서는 관용이 지식을 앞선 다는 것을 우리의 먼 친척인 보노보가 보여주었다.


인간 자기가축화 진화의 흔적

인간 자기가축화 가설은 보노보와 개의 경우에서 보듯 관용적일수록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얻는 보상이 커졌을 것으로 예측한다. 이 자제력과 감정조절 능력이 결합되어 사람 고유의 사회적 인지능력을 만들어 냈다고 본다.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는 다른 호르몬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격적인 반응과 연관성이 있는데, 성장기에 테스토스테론에 많이 노출되면 눈썹활이 두드러지며 얼굴이 길어지고 검지와 약지 비율 (2D/4D)이 감소한다 (손가락 비율 증거는 많은 연구결과에 비해 과학적 신빙성이 높지는 않은 것 같다. 비슷한 고민을 이미 심도 있게 다루어 준 글이 있어 반갑다. 참고 5).

가축화된 동물은 두개골의 크기가 작아지고 동그란 형태를 보였다. 이는 세로토닌의 유용도 상승, 옥시토신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했던가? 호모 사피엔스는 하얀 공막 (white sclera)을 가진 유일한 유인원 종이다. 하얀 공막 덕분에 우리는 시선을 조금만 움직여도 무엇을 보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 맞춤에 의존해 살아가고 협력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도록 설계된 것처럼 우리는 하얀 공막을 선호하거나 눈 맞춤에 의존하는 유일한 종이라 얘기한다. 아마도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다른 사람 종들을 하얀 공막을 가지지 못했을 거라 추측한다.

대부분의 동물은 공막을 숨겨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공막이 정말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공막과 동공 이미지를 비교해 보면 인간이 하얀 공막을 가진 유일한 종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축화 유무에 따라 개와 늑대 (E, F), 고양이와 호랑이 (G, H)를 비교해 보면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특히 반려견의 경우, 종마다 공막이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가축화의 징후로 보편화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 (그림 2).
 

눈 공막 비교

그림 2. 눈 공막 비교 (화살표: 공막, 화살표 머리: 동공). 인간과 영장류 (A-D), 개와 늑대 (E, F), 고양이와 호랑이 (G, H)의 공막을 비교해 보면 인간이 하얀 공막을 가진 유일한 유인원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축화된 다른 동물들은 공막 차이가 명확하지 않다 (A.인간, B.침팬지, C.보노보, D.고릴라, E.개, F.늑대, G.고양이, H.호랑이).


일반적으로 수천 년 전에 농경인이 늑대를 길들이고 수 세대를 걸쳐 번식시키면서 우리 곁을 지키는 반려견으로 진화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늑대의 가축화가 농경시대보다 1만 년 전보다 먼저 시작되었음을 근거로 수렵채집인들이 빙하시대에 늑대를 가축화했다고 가정하면 어렵게 얻은 고기를 공격성 강한 늑대와 나누어 먹으며 살았어야 한다는 추측이 가능하고 이는 납득하기 쉽지 않다.

정착해 사는 인구 집단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내다 버린 쓰레기와 배설물(똥)은 영양가가 풍부해, 용감한 늑대가 이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고 사람 주위에 친화력을 가진 늑대들이 자주 머물며 번식 상 이점과 함께 사람의 제스처와 목소리에 반응할 수 있게 되면서 반려동물로 진화했을 것이다 (사람 똥의 영양가와 늑대의 가축화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논문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놀랍다. 모든 연구자들에게 경의를!). 개는 사람이 길들인 게 아니라 친화력 높은 늑대들이 스스로 가축화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종도 스스로 가축화 한 징후를 보여주고 있는데 자제력과 친화력 향상, 세로토닌과 옥시토신 증가, 발달 창 확대, 여성스럽고 어린 외형, 협력적 의사소통 향상 간의 상관관계를 인지적 진화와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다 (그림 3, 참고 1)  
 

인간의 자기가축화 가설

그림 3. 인간의 자기가축화 가설 (참고 1)


인간 자기가축화에 대한 유전적 증거

신경능선세포는 척추동물 신경형성 과정에서 신경판에서 유래되어 다양한 경로로 이동하고 여러 핵심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면서 뇌와 척수 발생에 관여하고, 치아의 상아질 세포, 내분비 세포, 말초신경계, 멜라닌 세포 등으로 분화되는 줄기세포이다. 가축화 징후와 관련된 많은 형질 발달에 관여한다 (그림 4, 참고 6).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 (Williams-Beuren syndrome, WBS)은 인지능력 손상, 작은 두개골, 작고 여린 얼굴, 극단적인 상냥함이 특징인 장애이다. 신경능선세포를 관장하는 BAZ1B 유전자가 이 신경능선세포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정상인이 BAZ1B 유전자를 2개 가지고 있는 반면 WBS 환자들은 이 유전자를 하나만 갖고 있다. 실제로 BAZ1B 유전자가 WBS의 특징적 안면구조를 유도하는 것으로 보아 이 유전자에 의한 신경능선세포 조절이 자기가축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가축화된 동물들은 신경능선줄기세포가 적다 (참고 7).
 

신경능선세포의 이동과 분화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생각되는 세포 조직과 자기가축화 징후의 변화

그림 4. 신경능선세포의 이동과 분화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생각되는 세포 조직과 자기가축화 징후의 변화 (출처: Adam S. Wilkins, Richard W. Wrangham, and W. Tecumseh Fitch, The “Domestication Syndrome” in Mammals: A Unified Explanation Based on Neural Crest Cell Behavior and Genetics, Genetics, Vol. 197, 795-785, 참고 4)


자기가축화의 유전전 근거를 설명한 멋진 연구이긴 하지만, 자기가축화 표현형에 관여된 다른 유전자의 기능이 간과되어 있다. 자기가축화 신경능선세포 가설이 보편적인 자기가축화를 설명하는데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 영향력이 간접적이거나 아주 미약하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을 거라는 반박도 적지 않다 (참고 8).     


우리의 다정한 본성

오래전 기억이다. 아이와 우연찮게 만화영화 ‘부도리의 꿈’을 봤다. 생소한 이야기 구성과 뜬금없는 전개 때문에 아주 재미가 있진 않았지만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기희생을 보여준 이야기에 오랜 시간 잔상이 남았다 (부도리의 꿈의 원작인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는 더 생소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동화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故 이수현을 추모하며’라는 예기치 않은 문구에 깜짝 놀랐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그의 부모님이 유학생 1,000여 명에게 펼쳤던 장학회 활동과 한국인들에게는 잊혀져 간 그를 매년 추모하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가치 있는 희생적 삶의 이야기를 다룬 동화를 쓰고 헌신의 삶을 살았던 이 작품의 원작자 미야자와 겐지와 故 이수현 씨가 생각났다 (그림 5).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그림 5.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를 모티브로 한 만화영화 ‘부도리의 꿈’ (左) 은 故 이수현 (中)을 기리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희생적 삶의 가치는 그의 다른 작품 ‘은하철도의 밤’ (右)에서도 아름다운 은유로 표현되어 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열기에도 지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절대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4합과 된장과 약간의 채소를 먹는다
온갖 모든 것에 감정으로 치우치지 않고
잘 판단하여 알고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 넘어 소나무 숲의 그늘에 있는 
지붕이 작은 오두막집에 가서
동쪽에 병이 든 아이가 있으면 가서 간병해주고
서쪽에 지친 엄마 있으면 가서 벼 한섬 짊어져 주고
남쪽에 죽을 것 같은 사람 있으면 가서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쓸데없으니 멈추라고 말하고
가뭄일 때는 눈물을 흘리고
더운 여름에 안절부절 못하며 걷고
모두에게 바보라고 불리고
칭찬도 받지 못하고 고민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 미야자와 겐지의 시 -

 

내 아이는 누군가를 도와주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해주고 싸움을 멈추라고 말하고 힘들 때 함께 눈물 흘리는 시구가 인상에 남았나 보다. 몇몇 구절들을 삐뚤빼뚤하게 연필로 눌러 적은 메모를 나중에 발견하고 적잖이 놀라고 감동받았었다. 여덟 살 아이의 눈에도 남을 돕고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고 희생하는 모습이 가슴에 남았던 것 같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에서 친구를 위해 희생한 캄파넬라와 조반니가 함께 우주를 여행하며 느낀 가치 있는 삶은, 진심으로 주위를 살피고 내 친구와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었다. 이수현 씨의 순수한 선함이 양국의 갈등을 누그러뜨린 건 당연한 이치였다. 

잔혹성과 폭력의 역사에 파묻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가 다정다감한 천성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는 주위에 차고 넘친다. 사회를 든든하게 받들고 더 좋은 세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는 건 이웃을 살피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간 본성이 만들어낸 작은 결과물들이 켜켜이 쌓여 가며 얻게 되는 부산물이 아닐까? 팬데믹 위기와 인류가 우려하는 디스토피아를 극복하고 새로운 인류 번영을 이끌 핵심은 인간 본성에 대한 깨달음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지진화를 통해 위대한 번영을 이룩한 호모 사피엔스 종은 조그만 다름에 대해 점점 더 분명한 선긋기를 하고 타인을 비인간화함으로써 그 폭력성과 공격성의 당위성을 찾고 있다. 인간의 공격성과 잔혹성은 반응적 공격과 주도적 공격의 유형으로 나누어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참고 9, 10).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는 자기가축화를 통해 반응적 공격과 주도적 공격 모두 자제하는 온화한 종이 되었다. 인간은 주도적 공격면에서 침팬지보다도 사악하고 반응적 공격면에서는 보노보 보다도 관대하다. 우리 자화상을 이해할 수 있는 침팬지와 보노보의 본성을 반면교사 삼아 조직적 폭력이 가능한 우리 능력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리처드 랭엄이 우리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 던지고 싶은 화두이기도 하다. 
 
흔히 알고 있는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늑대 두 마리 이야기’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체로키 인디언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 정확한 출처는 불분명)

“얘야, 다툼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두 마리 ‘늑대’ 사이에서 벌어진단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지, 악한 늑대는 분노, 시기. 질투, 슬픔, 유감, 탐욕, 오만, 죄의식, 열등감, 거짓, 거만함, 우월감, 그릇된 자존심이란다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긴단다!”

적어도 난 우리 종의 미래를 생각해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에 충실해 볼 심산이다. 내 가족을 넘어 동료와 이웃에게 한번 더 다정한 관심을 주고 하심으로 주위를 살펴봐야겠다. 

 


참고 문헌

1. Brian Hare, The Survival of the Friendliest: Homo Sapiens Evolve via Selection for prosociality, Annual Review of Psychology Vol. 68:155-186
2. [은여우 길들이기] 류드밀라 트루트, 리 엘런 듀가킨 저, 서민아 역 (2018, 필로소픽)
3. [논문밖 과학읽기] 은여우 길들이기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07929
4. [내안의 유인원], 프란스 드 발 저, 이충호 역 (2005, 김영사)
5. [강석기의 과학카페] 손가락 비율은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29276
6. Adam S. Wilkins, Richard W. Wrangham, and W. Tecumseh Fitch, The “Domestication Syndrome” in Mammals: A Unified Explanation Based on Neural Crest Cell Behavior and Genetics, Genetics, Vol. 197, 795-785)
7. Zanella et al., Dosage analysis of the 7q11.23 Williams region identifies BAZ1B as a major human gene patterning the modern human face and underlying self-domestication, Science Advances. Vol.5, eaaw7908
8. The Neural crest cell hypothesis: no unified explanation for domestication GENETICS, 2021, 219(1), iyab097 Martin Johnsson, Rie Henriksen, and Dominic Wright 
9.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리처드 랭엄 저, 이유 역, (2020, 을유문화사)
10. [강석기의 과학카페] 보노보보다 관대하고 침팬지보다 사악한 ‘인간’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43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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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evis (필명) (바이오 기업)

책과 논문을 읽으며 설레고 충만했던 시간들은 내 일상과 연구에 큰 활력이었다. 내밀한 내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조그만 공감을 일으킨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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