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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슬기로운 다둥맘 생활
Bio통신원(닥터리)
@Pixabay
가끔 난 아기를 1명만 낳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이도, 성별도, 성향도 전혀 다른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따금 버거울 때가 종종 있었다. 이건 비단 직장맘이어서 느끼는 어려움이라기보다는 모든 엄마들이 느끼는 어려움일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아이들은 세 살 차이가 나는데, 두 아이가 모두 어렸을 경우에는 첫째는 놀이터 가자고 하고, 둘째는 이제 막 잠이 들려고 이불에 누워 있는 경우도 있었고, 첫째가 책을 읽는데, 그 책 위로 둘째가 기어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두 아이의 요구사항이 다르니 아빠가 함께 있는 경우에는 서로 한 명씩 맡아서 케어해주기도 하지만 둘 다 엄마를 차지하겠다고 떼를 쓰는 경우도 많았기에 어떻게 해야 두 아이가 다 만족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엄마인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였다.
그래도 유아기에는 잘 먹고, 잘 자고, 안 다치고 잘 노는 것만 되면 큰 문제가 없었기에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소소한 문제들은 어느 정도는 원만히 해결하며 지내왔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동생을 재우면서 첫째와 영화를 본다던가, 놀이터에 두 아이를 풀어놓고 안전하게 노는지 봐준다던가, 동생 유모차 뒤에 누나가 탈 수 있는 발판을 달아 두 아이 모두 유모차를 탈 수 있게 해 준다던가, 물감 놀이를 할 때 각자의 물감을 준비해 주어 동생이 누나 물감을 가져가지 않게 해 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같은 시간에 두 아이의 니즈를 채워주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조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를 봐주어야 하는데, 그 시간에는 5살 동생이 궁금하다고 해서 옆에서 재잘거리면, 숙제하는 시간은 자꾸 늘어나게 되고, 집중력도 떨어지니 10분 걸릴 일이 30분씩 걸리기도 했다.
그러면 자꾸 내 입에서도 잔소리가 나갔다.
“안돼.” “만지지 마.” “누나 숙제 다 끝나고 해 줄게.” “잠깐만.” 등등 이런 말들을 하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둘째를 혼내는 상황이 종종 생겼다.
또한 학교 반 모임에 나가게 되어도 주말에 남편이 없는 경우 둘째를 맡길 곳이 없으니 늘 데리고 갔었는데, 우리 아들은 세 살 위의 형, 누나들 사이에서 같이 끼어 놀기에는 수준이 맞지 않아 재미가 없기도 하고, 1학년 형, 누나들은 동생의 방해를 받았다고도 느껴 5살 동생을 놀이에 껴주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달한 우리 아들은 누나의 모든 모임에 따라가서 형, 누나들과 같이 놀곤 했다.
그중 우리 둘째가 가장 힘들어했던 것이 일주일에 한 번 우리 집에서 친구들과 소그룹으로 영어 공부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날은 누나가 영어 수업하는 시간 동안 둘째는 방에서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나 공부하는 것도 너무 궁금하고, 크게 말하면서 놀고 싶기도 한데, 그 시간을 참고 있는 게 꽤 어려웠던 것 같다.
또한 다른 집에서 누나가 공부하는 날에는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픽업 시간마다 엄마 손 잡고 함께 따라나서야 하니 그 또한 고단한 일이었으리라 싶다. 또한 누나가 차량 운행이 안 되는 수영 학원을 다니던 시절에 1년이 넘도록 주 2회씩 누나 수영 학원에 같이 가서 1시간 기다렸다가 누나 끝나면 같이 집에 오는 일과가 이어지던 시절도 있었다.
엄마인 나는 아이를 픽업해주고, 기다렸다 데려오는 것이 당연했지만 돌이켜보면, 둘째는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누나의 스케줄에 맞추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 셋은 같이 움직여야 하는 운명이니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했다. 만약 내가 직장맘이 아니었더라면 둘째 어린이집 하원을 6시에 맞추고 첫째 학원 픽업을 그 사이에 해주었더라면 더 나았으려나 하는 별로 도움 안 되는 상상도 해 보았다.
어느 날 저녁, 나와 딸, 아들 셋이 같이 집에 있으면서 내가 둘째와 놀고 있는 상황이었다.
첫째 딸아이가 오더니
“엄마, 잠깐 와봐 봐. 이것 좀 같이 하면서 놀자.”라고 불렀다.
나는 “지금 동생이랑 이거 하고 있으니까 좀 이따가 해줄게.”라고 말했었는데,
갑자기 첫째가 얼굴을 붉히며 “엄마는 맨날 동생만 챙겨줘!!!” 라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 순간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잠깐만.”
“좀 이따가.”
이런 말들은 우리 둘째가 계속 듣던 말인데... 가만 보니 우리 아들은 그런 나한테 화를 한 번도 안 냈었네...
그날 나는 주은이, 정훈이 두 아이를 앉혀놓고 차분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주은아, 엄마가 맨날 동생만 챙겨준다고 했지만 잘 생각해봐. 네 친구들과 놀 때 동생이 같이 따라가 주었지? 주은이 수영 배우고, 영어 배우고 할 때마다 정훈이가 따라가기 싫어도 같이 가서 한 시간 동안 기다려주던 거 기억나지? 엄마는 한 명이고, 너희들을 둘이니까 한 명이 뭐 하면 다른 한 명이 자기 시간을 희생하면서 기다려 주었던 거야. 장난감도 없는 수영장에서 뛰어다니지도 못하고 한 시간을 기다리는 5살짜리 동생의 마음은 어땠을까? 학교 숙제가 먼저니까 누나 꺼 먼저 봐주게 되고, 아무래도 누나가 스케줄이 많으니까 당연하다고 따라다녔지만, 정훈이 마음에 싫었던 적도 있고, 엄마랑 둘만 놀고 싶기도 했었을텐데 그런 거 티 안 내고 같이 생활해준 동생을 생각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지.”
“물론 주은이도 친구들 모임에 동생 데려가서 챙겨줘야 하고, 동생이 가끔 놀이를 방해하기도 해서 힘들었던 거 알아. 그리고 이제까지 엄마가 동생 챙겨줄때면 가만히 잘 기다려주고 있었던 것도 고맙게 생각하고... ”
그러자 옆에 있던 우리 아들 둘째가 이제까지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자기도 억울하고 서러운 생각도 들고 누나 꺼 망가뜨린 게 미안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기 시작했다. 물론 첫째 주은이도 자기가 당연하다고 누린 수많은 시간 속에는 알게 모르게 동생의 양보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미안함이 몰려왔는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일 하는 엄마라 충분하게 시간을 내주지 못하고, 퇴근 후에 함께 하는 시간도 한정적이니까 우리 애기들 한 명 한 명에게 시간을 많이 못 내줘서 서운하게 했나부다. 엄마가 미안해.”
결국 그날 우리 셋은 서로 부둥켜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각자 자기 서운한 것만 크게 보였는데, 사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참아주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어리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또한 우리 엄마가 나만 바라보았으면 좋겠지만 내 마음이 그런 것처럼 동생 또는 누나의 마음 또한 그렇겠다는 상대의 마음을 알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우리 엄마 또한 나와 동생을 골고루 잘 대해주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구나 깨닫는 시간이었던 듯하다.
그 이후로 남편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당연하다 생각했던 육아의 패턴을 좀 수정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영어 수업을 하는 날 아들이랑 둘이 산책을 나가서 군것질도 하고 같이 장도 보며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돌아오는 식으로 일과를 바꾸었다. 또한 딸 수영 수업도 최근에 생긴 차량 운행하는 곳으로 학원을 바꾸어 기다리지 않고 집 앞에서 차 타고 내리는 것을 봐주기로 했고 그마저도 나중에는 혼자 오갈 수 있도록 연습을 하여 수영 배우는 부분에 대해서는 엄마가 관여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었다.
가끔 반 모임, 친구 모임 등이 있는 날에는 남편이 둘째와 시간을 보내고 나는 오롯이 첫째만을 데리고 모임에 갈 수 있도록 해서 첫째도 맘 편히 친구들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중 시간표를 그려서 하루 각각 1시간씩 엄마랑 활동하는 시간을 정해놓았다.
“정훈아 이거 봐봐. 전자시계가 7에서 8이 될 때까지는 정훈이랑 엄마랑만 노는 거야. 그리고 그다음에 9가 될 때까지는 엄마가 누나랑 노는 거고... 엄마가 누나랑 숙제도 하고 놀기도 하고 하는 시간에는 정훈이 혼자 장난감 가지고 놀거나 아빠하고 책도 읽고 그렇게 보내는 거야. 알겠지?”
이렇게 시간을 정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한 시간에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게 보내다 보니 아이들이 가졌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쑥~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솔직히 시간표대로 시간을 정하고 생활하는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한 4-5주 정도 시간표대로 하루 한 시간씩 오롯이 엄마와 함께 지내다보니 어느새 엄마와 함께하고픈 갈증이 해소되었는지 엄마와 함께 있기로 한 시간에 도리어 엄마 빼고 둘이서 노는 경우도 많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어쩌다 내가 뱉게 되는
“잠깐만.” “좀 이따가 해줄게.”라는 말이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아프게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벌써 딸아이가 6학년, 아들이 3학년이 되었다.
요새는 늦은 밤까지 둘이서 킥킥거리며 수다 떨고, 같이 노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남편이 조용히 하라고 한마디 할 정도로 시끄럽게 떠드는 경우도 많다.
그런 날은 남편과 이런 말을 한다.
“둘 낳길 잘했네. 또래끼리 같이 노는 재미가 있어서 좋아 보이지?”라고 말이다.
몇 년 전에만 해도 엄마! 엄마! 불러대며 엄마가 우주의 전부인 양 들러붙었던 아이들이었는데..
불과 3-4년 사이에 쑥 자라나 각자 자기의 세상을 만들어가며 엄마의 품에서 한 발짝씩 세상으로 내딛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를 독차지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이제 조만간 엄마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 시간을 내 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어느 날은 아들과 둘이서만, 어느 날은 딸과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을 만들곤 한다.
성향이 너무 다른 우리 아이들에게 둘만 데이트할 때 평소 아이가 가고 싶었던 곳에도 가고, 먹고 싶었던 것도 먹고, 그냥 한 아이만 바라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상대를 배려해서 절충안을 선택해야 했던 평소의 삶에서 벗어나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고르고, 내가 타고 싶은 놀이기구만 골라 타고, 내 취향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행복감이 아이의 표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보이기에 사춘기를 앞두고 계속 이렇게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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