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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 like 2] 첫 번째 바이오 아트 - DNA로 새겨진 창세기 <Genesis - Eduardo Kac>
Bio통신원(쏘르빈)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공부가 하기 싫어질 때면 책장 속에서 자서전을 빼서 읽었다.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읽다 보면 그 마음이 나에게도 심어져 미래를 상상해 보곤 했다.
이때부터 ‘나의 자서전 쓰기’는 나의 인생 버킷 리스트 한편에 항상 존재해왔다.
자서전에 진심인지라, 매년 나에게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파일로 정리해 놓았더니 벌써 몇 페이지를 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 비밀! )
사실 나의 첫 번째 자서전은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완성되었다.
내 몸 곳곳에 숨어있는 ‘DNA’ 속에 나의 수많은 비밀정보들이 들어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나의 피부색, 눈 색깔 같은 수많은 유전정보들이 담겨있는 ‘DNA’를 이용해 만든 바이오 아트를 만나보자.
DNA 하면 이중 나선, 이중 나선 하면 DNA.
이 둘의 관계는 중학교 과학시간부터 줄기차게 들어왔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즈 구슬을 가지고 DNA 이중나선 열쇠고리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렇듯 DNA는 우리 몸의 세포 핵 속에 담겨있는 중요한 유전물질이라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DNA는 사실 몸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몸 밖에서도 우리는 DNA를 합성해낼 수 있다.
몸 안에 있는 DNA는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것이라면, 합성 DNA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맘껏 순서를 바꾸고 꾸며낼 수 있다. DNA는 A(아데닌), T(타이민), G(구아닌), C(사이토신)라는 네 가지 염기서열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결합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몸 밖에서 DNA를 합성할 때는 자기가 원하는 순서대로 A, T, G, C를 맘껏 배열해 ATTGTGCCCGTA 이런 식으로 ‘맞춤 제작’ DNA를 합성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1999년 Eduardo Kac 작가가 <Genesis(창세기)>란 바이오 아트 작품을 만들었다.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창세기의 한 구절을 표현한 작품이다. 하지만, 창세기가 성경 책 속에 글자로 새겨진 것이 아니라, 실험용 플레이트 위에 DNA로 새겨진 작품이다. Kac은 창세기 구절 중 일부를 모스부호의 점(·)과 선(-)으로 변환시켰고, 이 모스부호를 다시 DNA 염기서열(A, T, G, C)로 표현하였다.
이렇게 창세기를 DNA 염기서열 배열로 새롭게 번역한 유전자 ‘Art Gene’이 탄생하였다. 이 Art gene은 박테리아에게 주입되었고, 새로운 유전자로 인해 형질이 변한 박테리아를 전시한 작품이 바로 <Genesis>이다.
그림 1. <Genesis> 전시 모습 © Eduardo Kac (https://www.digitalartarchive.at/database/general/work/genesis.html)
그림 2. 창세기 구절의 모스부호로의 변환 © Eduardo Kac (http://www.medienkunstnetz.de/works/genesis/images/2/)
그림 3. Art gene © Eduardo Kac (http://www.medienkunstnetz.de/works/genesis/images/3/)
그림 4. Art Gene이 주입된 박테리아 © Eduardo Kac (http://www.medienkunstnetz.de/works/genesis/images/4/)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DNA를 전달의 매체로 사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생명체에게 깃들어 있는 다양한 정보를 저장하여 전달하는 DNA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한 종교의 근간이 되는 창세기의 정보를 재번역해 전달하며 ‘기록’의 의미를 부각시켰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 흥미로운 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DNA는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관객들이 직접 이 작품을 변형시키게 유도했다는 점이다!
작품에서 인용한 창세기 구절은 다음 문장이었다.
"Let man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air,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moves upon the earth.""사람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세기 2장 28절 중)
창세기 중에서도 인간 중심적인 견해가 부각되는 부분을 채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장은 관객들의 행위로 인해 계속해서 바뀌게 된다. Kac은 관객들이 직접 관람을 하면서 혹은 인터넷을 통해서 박테리아에게 주사되는 자외선을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 자외선의 변화가 박테리아 속의 ‘Art gene’에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전시가 끝난 후, Kac은 박테리아에서 변형된 DNA를 다시 추출했고, 이를 다시 모스부호로, 그리고 글자로 번역했다. 결과적으로, 원래 심어놓았던 창세기 구절의 메시지가 얼마나 변형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그림 5. 변형된 박테리아 © Eduardo Kac (https://www.digitalartarchive.at/database/general/work/genesis.html)
그림 6. 변형된 창세기 구절 © Eduardo Kac (https://www.ekac.org/genseries.html)
작가는 DNA라는 매체를 통해 새로운 창조주가 되었고, 창세기 구절을 이야기하며 인간 중심적인 가치관에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작품의 전시 과정에 관객들의 참여를 포함시켜 인간의 작은 행동들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 또한 함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자연을 소유하려 했던 사람(man)은 더 이상 man이 아니게 되었고, 땅 위를 움직이는(moves) 것들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인간의 자연 지배, 자연 파괴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DNA 유전자 변형을 통해 보여주었기에 작품과 메시지가 큰 시너지를 나타낼 수 있었다. 바이오 아트의 특징을 살려 직접 무언가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행위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능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운을 남겨주었다 생각한다.
Kac을 비롯한 많은 바이오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통해 인간 중심적 가치관을 비판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변화시키는 가장 인간 중심적인 행위를 행한다. 이러한 역설 속에 서있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과학과 윤리 사이에 서있는 과학자들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은가?
Reference
Eduardo Kac, “GFP Bunny,” in Peter T. ‘Dobrila and Aleksandra Kostic eds., Eduardo Kac: Telepresence, Biotelematics, and Transgenic Art, Maribor, Slovenia. Kibla. 2000, pp. 101-131.
Archive of Digital Art database :
https://www.digitalartarchive.at/database/general/work/genesis.html
그림 출처 :
https://www.digitalartarchive.at/database/general/work/genesis.html
http://www.medienkunstnetz.de/works/genesis/images/4/
https://www.ekac.org/genserie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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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현상을 넘어선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누군가가 삶 속에서 과학을 발견한다면, 저는 과학 속에서 삶을 발견하며 이것을 글로 기록합니다. 포항공과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즌 2에서는 여러 생명과학 기술과 이를 예술적인 견해로 바라본 시선, 이로써 만들어진 과학예술작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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