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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R 돌려놓고 한 장] 뤼트허르 브레흐만 - 휴먼카인드
Bio통신원(이지아)
연구실 5년이면 순수한 학부생 한 명이 아귀로 바뀌기 충분합니다.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들이 연구실을 군대로 바꾸고 있다며 비판하던 동기는 어느새 후배의 퇴근 시간에 맞춰 일을 시키는 선배가 되었습니다. 동료면 다행이죠. 학생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교수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지요. 지도교수는 굳이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며 너희 정도면 행복한 줄 알라고 토를 달고요. 미쳐 돌아가는 연구실에서 졸업은 하겠다는 자신을 보면 호구가 따로 없습니다. 졸업한 또 다음엔 어떤 사람을 만날까요?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아귀가 되지 않았다고 자신하는 분들께 인류를 이야기하는 책 <휴먼카인드>를 추천합니다.
<휴먼카인드>의 결론은 ‘모든 사람들은 당신만큼 고상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기 상황에서 남을 버리고 혼자 살아남는 아귀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사회에서 함께 삽니다. 사람들은 구명보트의 마지막 자리를 양보합니다. 자연재해나 대규모 시위로 치안이 사라져도 소요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부상자를 의사에게 데려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설령 전쟁이 일어나도 실제로 사람에게 총을 쏘는 군인은 10% 안팎이라고 합니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떠올려보세요. 먼저 퇴근하는 동료의 시료를 기꺼이 냉장고에 넣어준 기억. 여러분이 일찍 가야 할 때 대신 장비의 전원을 내려준 동료들을요.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를 도우며 살아갑니다.
저자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호모 사피엔스’는 곧 ‘호모 퍼피’라고 말합니다. 늑대가 길들여져 개가 되었듯, 사람도 서로에게 길들여진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동물에게 친밀성은 곧 지능입니다. 똑똑하지만 고독한 천재가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었더라도, 천재의 발견을 퍼트릴 호모 퍼피 무리가 곁에 있어야만 비로소 세상이 변합니다. 수렵·채집 시기 인류는 서로 다른 무리와 교류하고 진보를 공유했습니다. 문명이 없던 시절, 대부분의 갈등은 폭력을 낳기 전에 화해로 끝났습니다. 오랜 기간 우리는 살인자를 쫓아내고 이웃을 위로하던 호모 퍼피였습니다.
소련에서 있었던 <은여우 길들이기> 프로젝트를 아시나요?
여우는 세대가 지날수록 귀가 내려가고, 꼬리를 흔들고, 지능이 높게 측정됩니다. 육종 기준은 '친화성' 하나뿐이었는데도요.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비극은 사유재산이 생긴 이후에야 생겼습니다. 농업이 시작되고 문명이 태동하던 1만 년 전 시기입니다. 현생 인류가 200만 년 전 분기했다니 비교적 최근입니다. 사이코패스가 무리에서 쫓겨나는 대신 우두머리가 되기 시작합니다. 비로소 전쟁이 등장합니다. 역사가 기록되는 시기도 이때부터입니다. 역사는 권력자의 생각과 선택을 기록하며 인간의 악을 논합니다.
호모 퍼피가 이룩한 문명 치고는 우리 역사에는 비극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학살의 예시를 생각나는 대로 네다섯 개는 말할 수 있고, 오늘 이 순간에도 전쟁은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브레흐만은 ‘잘못 알고 있는 예시’와 ‘그럼에도 사실인 예시’를 구별해서 설명합니다. ‘잘못 알고 있는 예시’는 문명이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입니다. 문명의 색안경이 평화롭던 시절을 왜곡한 경우입니다. ‘그럼에도 사실인 예시’는 학살을 비롯해 인정하고 분석해야 할 악입니다. 저자가 제시한 인간이 잔인해지는 이유를 요약하자면 공감 능력, 합리화, 권력입니다. 어떤 예시가 나올지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세요.
책이 연구자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 더 있습니다. 저자는 역사나 일화를 확인하는 데서 나아가 실험과 연구를 의심하고 새로운 설명을 시도합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이나 키티 제노비스 사건에서 유래한 ‘방관자 효과’ 등, 책에서 비판하는 심리학 개념과 실험은 전공자가 아니라도 들어보았을 유명한 연구입니다. 저자는 결론이 나온 과정을 점검했고, 절차가 의심스러운 연구 결과라도 완전히 버리지 않고 비판적으로 수용해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는 근거로 이용했습니다. 권위 있는 연구 결과에 ‘과연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의 답을 찾는 방법과 과정은 어떤 분야의 연구자에게든 모범이 될 법합니다.
저자는 주장은 사실을 근거로 하지만, 동시에 ‘모두들 나만큼은 선하다’는 주장을 믿어달라고 설득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 빼고 모두가 악하다’고 믿어봐야 공멸하는 결론만 나오니까요. 자신의 이론에 당위를 말하는 구성은 캐롤 드웩의 책 이후로 처음이라 신선했습니다. 캐롤 드웩은 사람의 태도와 사고방식에 따라 능력이 변한다고 주장하던 심리학자입니다. 재능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성장 가능하리라 믿는 사람이 실제로도 더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실현적 예언’의 하나입니다. 브레흐만은 개인 차원의 자기 실현적 예언을 사회 규모로 확장하라고 요청합니다. 우리가 남을 믿을 때, 그들도 선함으로 보답할 것이라고요.
'똑똑하다'는 말을 들은 학생보다 '노력한다'는 말을 들은 학생들이 어려운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하죠.
그러니 책의 마지막이 자기 계발서처럼 끝나는 것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삶에서 지켜야 할 열 가지 규칙’을 제시합니다. 누군가를 의심하기 전에는 최선을 예상합니다. 연구실 규칙이 필요 이상으로 빡빡한 이유는 입학하고 반 년만 지나도 알 수 있죠. 그러니 동기가 후배에게 일부러 야근을 시키는 데도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믿어봅시다. 뉴스를 줄입시다. 하루에 보도되는 백신 부작용 소식만 봐도 뉴스가 세상의 극단적인 악만 골라 말한다는 걸 알 수 있죠. 포털 사이트 뉴스 페이지를 로봇처럼 반복해 볼 것이라면 차라리 같은 화면에 <휴먼카인드> 전자책을 띄워보세요.
책은 신선합니다. 여러 가지 통념을 뒤집으며 내놓는 결론이 ‘사람은 고결하다’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저조차도 책의 세세한 내용까지 동의하지는 못했습니다. 같은 데이터도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사람들을 믿으라는 주장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무턱대고 사람들을 믿으며 살아왔거든요. 덕분에 크게 데인 적도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저를 구원해 준 것도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제가 좋은 사람으로 믿어지면 더할 나위 없겠고요. 어렴풋한 믿음에 근거를 주는 책을 만나 반가웠고, 많은 사람들이 책의 근거를 직접 읽고 내용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휴먼카인드> 표지 이미지에 <사피엔스>가 나와있는데, 먼저 읽었다면 즐겁게 비교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사피엔스>를 읽다가 포기했더라도 안심하세요. <휴먼카인드>는 여러 가지 예시를 마냥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관점에 따라 큼직한 예시를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한 책입니다. <사피엔스>보다 재밌습니다. 비슷한 내용을 다룬 <팩트풀니스>도 좋은 책입니다. <휴먼카인드>가 사람의 본성에 대해 말한다면, <팩트풀니스>는 인류가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외에도 요새는 사람은 선하다는 책이 많이 나오는 추세입니다.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며 잃어버린 ‘인류애’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연구실 동료들, 지도교수님, 제자들 모두 세상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겠다고 모인 믿음직한 사람들이니까요.
여러가지 책을 추천했지만 우선순위는 <휴먼카인드>입니다.
출처
1. 모든 책 표지는 알라딘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aladin.co.kr/)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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