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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과학 읽기] 살갗 아래, 시인의 시선에 담긴 우리 몸에 대한 이야기
Bio통신원(fovero)
시인의 시선에 담긴 우리 몸에 대한 이야기
일주일의 끄트머리를 마무리하는 늦은 저녁, ‘당신의 밤과 음악’에서 첼로의 1번 개방현 음색과 닮은 목소리로 읽어주는 책 한 구절이 가슴에 쑥 들어왔다. 크리스티나 패터슨이 쓴 피부에 관한 에세이였다.
흉터가 남더라도 피부는 상처를 낫게 한다. 하지만, 복숭아 같은 뺨은 더는 남지 않을 수도 있다. 더 많은 생을 살아갈수록 피부는 복숭아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더 오래 살아갈수록 이 세상과 당신을 가르는 이 탄력적인 장벽은 당신이 싸우고, 결국 이겨내 전투의 흔적을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상흔들 속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 삶이 피부에 남긴 상흔, 그 속의 아름다움을 보라 (‘피부’ 서문에서)
살갗 아래 (Beneath the Skin)는 시인, 소설가, 저널리스트,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열다섯 명의 작가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부분들을 자신의 내밀한 기억들과 버무려 인간이라는 존재를 고찰하며 써 내려간 열다섯 편의 글이 엮여 있는 책이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Editor’s letter가 담긴 책갈피가 툭 떨어졌다. 익숙한 그림이었다. 에곤 실레의 <포옹>이었다. 에곤 실레의 그림은 내면의 서사를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 불편하고 섬뜩하다. 특히, ‘죽음과 여인’은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 이 그림을 책갈피 삼아 피부(skin)부터 자궁(womb)에 이르는 열다섯 장기들을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읽고 나니 이 불편함이 조금은 위로로 다가왔다.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내 몸의 장기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시선으로 해체된 것 같았지만, 결국엔 내 몸을 이해하는 따뜻한 시선으로 남았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wikimedia commons
우리 몸을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은 불편함을 느끼거나 아플 때다. 살갗이 까져 피가 흐르고 아플 때, 딱지가 앉아 가려움을 느끼고 감쪽같이 새살로 덮이기 전까지 나를 에워싸고 있는 피부의 일부를 느낀다. 흉터라도 남을 때면 잔상이 좀 더 남아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드름으로 사춘기와 젊은 시절을 힘들게 보냈던 작가는 피부에 대한 관조가 생겼다. 천식으로 고생했던 시인은 혈액이 돌며 산소 교환을 하는 800 그램 장기의 들숨과 날숨을 시를 읊을 때 시의 호흡과 리듬으로 연동시켰다. 시를 읽는 건 우리 폐에 자극을 주는 행위 자체를 일상의 고됨을 버리고 다시 아름다움을 채울 수 있게 도와주는 교환 시스템이라 얘기한다. 꽤 멋진 비유다. 시를 읽는 호흡이 압력을 가하는 음악이 되고, 독자들은 시가 가진 호흡이 내뱉고 들이마시는 박자를 느끼면서 시라는 음악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육체적인 사건, 독자들이 흉곽과 가로막에 관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는 장본인이 ‘폐’인 셈이다.
멋진 비유들과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들을 몇 가지만 옮겨보면
피부는 28일에 한 번씩 새로 태어난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새로운 내가 된다는 뜻이다.
맹장을 생각할 때면, 시대에 맞지 않은 개척자의 비극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간은 감정이 머물고 흩어지고 다시 태어나는 곳.
코, 후각은 의식보다 빠르게 기억을 소환한다.
눈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연결해 주지만, 아주 묘한 외로움을 드러내는 기관이기도 하다.
고운 막에 감싸여 있는 콩팥은 마치 액체 같아 보였다. 이렇게 무기력한 기관이 어떻게 그 많은 놀라운 일을 해내는 것일까?
연구의 객체이자 주체인 나의 몸에 대해
개체발생 신호전달연구를 했다. 체축 발생과 세포 패턴 형성 (body axis formation and cell patterning), 장기 발생 (organogenesis)과 관련된 분자신호전달 연구였다. 이후 피부재생, 염증성 장질환과 대장암을 비롯해 다양한 폐암, 유방암, 두경부암을 모델로 전이, 항암제 내성, 재발의 기작을 밝히는 연구를 했다.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두고 학계와 산업계에서 레드오션이라 우려하면서도 여전히 질병 사망률 1위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연구개발 주제이다. 내 연구 관심은 줄곧 세포생물학과 신호전달연구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생명과 우리 몸을 이해하는 시작점에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한 체외진단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새로운 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나에게 내 몸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대상에 머물지 않고, 국책 연구 제안서가 요구하는 미충족 의료수요와 사업성을 논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고민의 시간을 넘어서 생명과 몸의 주체로서 나를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대한 상상
피부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가장 큰 장기이다.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 외부 유해인자 외부의 유해 물질을 일차적으로 차단하는 방어막이고, 단열, 체온조절, 감각을 담당하는 주요한 장기이다. 각질, 표피, 진피, 기저층으로 적층 구조 (stratified layer)를 가지고 있는 이 놀라운 장기는 약 한 달 (28일)을 주기로 새로운 피부세포를 만들어내 밀어 올리면서 각질을 형성하고 탈락되어 사라져 가기를 반복한다. 죽음의 흔적 (각질)과 매 순간 생동하는 삶 (성체줄기세포)이 한데 어우러져 잘 프로그래밍된 기능을 하는 장기가 피부다.
아침 회의 중, 핸드폰 진동이 멈추지 않았다. 보모에게서 온 전화였다. 섬뜩한 마음에 급히 나와 전화를 받았다. 아이 손등에 뜨거운 물이 쏟아져 심하게 데었단다. 발갛게 달아 오른 피부 사이에 속살이 보인다고도 했다. 심각해 보였다. 아내도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얼른 상피재생의료센터가 연계되어 있는 가까운 병원을 검색해 아이를 데리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군데군데 3도 화상의 흔적이 보였다. 다행히 뼈까지 손상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의사는, 아이의 손등을 '조직재건스캐너 (tissue remodeling scanner)'에 올렸다. 화면에 손상된 부위, 치료를 위해 필요한 세포의 종류와 조직의 용적, 필요한 칵테일 용액 조건, 함께 처치할 최적의 스케폴더 종류에 대한 정보가 바로 표시되었다. 의사는 몇 가지 선택을 한 후 로봇팔을 조작해 아이 손등에서 피부생검 1mm2 가량을 떼어 배양액에 담아 세포재건연구소로 보냈다. 진료실 바로 옆에 위치한 세포재건연구소에서는 '생물반응기 (bioreactor)'에 입력된 정보에 맞춰, 아이의 피부 생검을 재료로 섬유아세포 (fibroblast), 각질세포 (keratinocyte), 모낭줄기세포 (hair follicle stem cell), 모낭간 줄기세포 (interfolicullar stem cell) 분리하고 리모델링 해서 피부재생 신호전달물질 칵테일 용액에서 3차원 배양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손등을 덮을 만한 피부세포 조직을 배양하는 데는, 반나절 걸린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 아이의 자가피부세포로 만들어진 피부 조직은 최적배지 (성장인자, 신호전달물질 칵테일 배양액)에 잠긴 채 전달되었다. 스캐닝 정보를 기반으로 만든 생착보조 생분해성 기질 스케폴더가 3D 프린팅으로 이미 준비되어 있고, 손상된 아이의 피부가 이 스케폴더와 함께 능숙한 의사의 처치로 곧바로 이식되었다. 아이는 일주일 간 성장인자, 사이토카인, 면역세포 조절을 모니터링 받으면서 생착과 흉터 (fibrosis, 섬유화)에 대한 관리를 추가로 받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는 매끈한 손등을 내게 보여 주며,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며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이 정도로
심각한 피부 손상의 경우 (2도 이상의 화상)에는 피부이식 수술이 필요한데, 자신의 다른 부위 피부를 떼내어 이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내 피부 (표피, 진피, 혈관, 모낭 및 부속기관까지 모두 구현된 피부)를 빠른 시간에 손상된 부위에 딱 맞게 배양해서 처치할 수 있는 기술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현재 피부 세포치료제가 화상 피부 재건, 당뇨병성 족부궤양 치료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각질세포는 성체줄기세포의 성질을 갖고 있다. 정확히 정의하면, 피부의 줄기세포는 크게 모낭 줄기세포 [(진피유두, dermal papilla)에 존재]와 모낭 간 줄기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표피와 진피 아래의 기저층에 이 피부 줄기세포가 존재한다. 환자의 생검 (biopsy)으로부터 각질세포 (keratinocyte) 및 섬유아세포 (fibroblast)를 분리 배양하여 자가배양세포 이식 (autograft) 하거나 동종배양세포 이식 [allograft, 기증받은 어린이 피부(포피) 세포로 배양]하게 된다. 기본 원리는 “Serial cultivation of strains of human epidermal keratinocytes: the formation of keratinizing colonies from single cells (Cell 1975, 6(3): 331-43)” 논문 내용에 기초하고 있다. 소위 인공피부에 가장 가까운 형태는 이와 같은 reconstituted (or reconstructed) human skin 라 할 수 있다. 피부세포는 상대적으로 biopsy를 구하기가 용이한 편이어서 현재의 피부 세포치료제 이외에도 이를 활용한 cell banking, 역분화줄기세포 재료로 활용하고, 동물실험을 대체한 피부 실험 (화장품 및 약품의 효능, 투과, 자극 시험법)의 중요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직과 국책과제 제안, 새로운 연구에 직면해 생존을 위해 정신없이 보냈던 지난 몇 달간의 시간으로 지친 내 몸이, 백신 2차 접종 후 이틀간 고열과 근육 통증으로 면역반응을 적나라하게 맘껏 발산했던 내 몸이, 우연하게 곁에 두게 된 책 한 권으로 이런저런 상상의 기억들을 반추하며 크게 위안 받는다. 역시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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