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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장점, 단점 그리고 특별함
Bio통신원(닥터리)
사진출처: 픽사베이
“사교적인 편은 아니나 모둠 친구들과 원만하게 잘 지냄. 주변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책 읽기나 그림 그리기로 자신만의 시간을 즐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수행하며 최선을 다해 끝까지 마무리하는 모습이 돋보임.”
“자신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모두에게 내보이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명랑하고 웃음이 많아 학급의 분위기를 즐겁게 유도함. 독서를 통한 상식과 지식이 풍부하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식들을 교과 학습과 관련지어 적극 발표하며 문제 해결과 이해력이 좋음.”
위의 두 글은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들께서 1년을 마무리하며 우리 아이들의 통지표에 적어주신 내용이다.
짐작했겠지만 위에 있는 글은 우리 딸 통지표이고, 아래 있는 글은 우리 아들의 통지표이다.
대충만 읽어도 두 아이는 완전 정 반대의 캐릭터를 가진 인물임이 느껴진다. 성별도, 성향도 정말 다른 아이들이 같은 배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신기한 일이다.
나는 아들의 입학식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날 미세먼지가 심해서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하고 하교하기로 한 일정이 변경되어 교실에서 입학식을 하게 되었다. 보통은 3월 말 정도에 열리는 부모 참여 수업이 되어서야 담임 선생님을 정식으로 뵙게 되는데 이례적으로 입학 첫날 선생님과 아이들과 학부모가 동시에 첫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본인 소개 후 몇 가지 안내 사항을 말씀해 주고 계셨는데,
우리 아들 정훈이가 “선생님!” 하며 손을 번쩍 들었다.
모든 학부모와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일어선 정훈이는
“그런데요 선생님, 파마하셨어요?” 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오오오오 마이 갓!!!!
순간 와하하 웃음소리와 함께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그 속에서 웃지 못하는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엄마인 나였다.
너무 당황해서 뭐라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우리 아들은 진심 궁금한 표정이었고, 오랜 교사 생활의 노하우를 가지신 담임 선생님께서는 충실하게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그 후 학교 규칙, 제출 서류, 등교 시간, 유의사항 등등 여러 부분에 대해서 선생님의 브리핑이 있었고, 말씀을 마무리하시면서 선생님께서 의례하시듯 “질문 있는 사람?” 하고 물어보셨다.
적막을 깨고 또 우리 아들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언제 끝나나요?”
아이고.......!
모두가 궁금하긴 했지만 차마 묻지 못한 그 한마디를 우리 아들이 내뱉어버린 것이다.
우리 아들은 입학식 날 모든 친구들과 학부모들에게 본인의 존재를 제대로 각인시켰다.
참여 수업에서 지목당하고도 끝내 발표하지 못하던 누나와는 너무나 다른 우리 아들의 초등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첫아이와 정 반대 성향의 아들을 입학시킨 후 나는 또 처음 학부모가 된 느낌으로 다시 학교에 적응해야 했다.
“어머님, 정훈이가 수업 시간에 저보다 더 말을 많이 해요.”
“제가 골고루 발표시키고 싶어서 정훈이 말고 다른 친구들도 얘기해보자고 말할 때가 많아요.”
“정훈이는 자기 할 것 다 하고 나면 다른 친구들이 뭐 하고 있는지 슥 둘러보면서 여기저기 참견할 때가 많아요. 본인이 전체 상황을 다 파악해야 하는 성격이더라고요.”
이해가 빠르고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우리 아들은 늘 질문이 많았다.
수업에 관한 것도 궁금하고, 담임 선생님의 핸드폰 기종도 궁금하고, 한 달간 급식이 뭐가 나올지도 궁금하고 말이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여학생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고, 남학생들과 활동적으로 어울리는 성격이라 그나마 안심이었다. 우리 아들이 조곤조곤 말하는 성격도 아니고 감정보다 사실을 중시하는 성격이다 보니, 여학생들과 마찰이 있었다면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기는 하다.
어느 날 수업 직후 아들이 내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오늘 선생님께 혼났어요.”
“왜?”
“아니~ 우리 반에 재율(가명)이라고 있잖아. 내가 어제 걔 따귀를 때렸거든. 그런데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는 끝난 줄 알았는데 재율이가 오늘 담임선생님께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담임선생님한테 혼났어요.”
“뭐...라구? 친구 따귀를 때렸다고오? 왜?”
“어제 방과 후 수업 가는데 좀 늦어서 뛰어가려고 했더니 재율이가 뛰지 말라고 내 가방을 끌어당겨서 내가 넘어졌거든요. 그래서 순간 화가 나서 얼굴을 때린 거예요. 그리고 재율이가 울어서 지나가시던 다른 선생님께 혼났고요, 그때 제가 미안하다고 했고, 당시에 재율이도 괜찮다고 해서 끝났는데, 오늘 교실에서 또 얘기한 거예요.”
우리 아들은 당당했고, 나는 당황했다.
콩닥거리는 마음을 잠시 진정하고 우선 아들에게 말해 주었다.
“정훈이가 그 순간 욱해서 그랬다는 것은 알지만 분명 친구를 때린 부분은 잘못이 있는 거야. 그런 일이 있었으면 엄마에게도 네가 먼저 말해주어야 돼. 왜냐하면 재율이가 맞은 것 때문에 얼굴에 멍이 들었을지도 모르고 다른 부분은 이상이 없는지도 알아보아야 하잖아. 그리고 재율이 엄마도 아들이 다른 곳도 아닌 얼굴을 맞았다는데 얼마나 마음이 안 좋으시겠어. 엄마라면 엄청 속상했을 것 같거든. 엄마가 재훈이 엄마한테 연락 한번 드려야겠다. 다음부터는 말로 해야 하는 거야. 실수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바로 엄마에게도 말해주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잘 참았다 싶었다.
마구마구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고 싶었는데, 순간 어릴 적 일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엄마랑 통화하면서 혼날 이슈가 있을 때면 우리 엄마는 종종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이따가 얘기하자. 집에 오면 혼날 줄 알아. 끊어.”
그러면 그 순간 얼마나 집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던지...
신나게 놀다가 그 순간부터 기분이 상해 그 이후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던 그런 기억이 나서, 적어도 얼굴 안 보고 퍼부어 대거나 싸하게 전화를 끊어버리지는 말자 생각했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재율이 어머님 전화번호를 알아내 연락을 드렸다.
전혀 안면이 없는 엄마이기에 더 마음이 불편했지만 전화를 드렸고, 재율이 어머님은 순간 재율이가 정훈이 따귀를 때렸는 줄 알고 당황하셨다가 반대임을 깨닫고 도리어 안심하셨다. 물론 사과도 흔쾌히 받아주셨다. 재율이가 집에서 얘기도 안 해서 몰랐다며 별로 큰일이 아니니까 그랬을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먼저 연락 주어 감사하다는 말로 훈훈하게 전화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보통 딸 엄마는 이런 종류의 사건은 겪을 일이 별로 없지만, 아들 엄마는 아무래도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그런 자잘한 사건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일이 커지기 전에 얘기하고 해결하고 자기 조절을 배울 수 있다는 것에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엄마가 되니 아이가 조용해도 걱정, 너무 활달해도 걱정, 책을 안 읽어도 걱정, 책만 읽고 애들이랑 안 어울려도 걱정, 친구들이랑 노느라 공부를 안 해도 걱정이 생기는 것 같다. 요즘에는 첫째는 국어는 잘하는데 수학이 약해서 걱정, 둘째는 수학은 무난히 잘하는데 국어가 싫다고 해서 걱정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진짜 이 모든 것이 다 걱정거리가 맞을까?’
조용한 성향을 적당히 활달하게 만들고, 수다스러운 성격을 적당히 얌전하게 만들고, 그렇게 하다 보면 “평균”에 수렴하게 되고, 아이들은 특별하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뭐가 좋아지는 것일까? 과연 그렇게 아이들을 무난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옳은가? 나는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거지?
근본부터 좀 헷갈렸다.
학부모가 되어 몇 년간 지내다 보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특별한 잡음 없이 무던하게 지냈으면 싶었다. 그런데 잡음이 없더라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다 보면 아이의 부족함이 더 눈에 띄는 것이 맞다. 그래서 단점 보완에 신경을 쓰려고 노력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제까지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진짜 단점이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무엇이 장점이고, 무엇이 단점이지? 장점과 단점을 결정하는 기준은 뭐지?
이 숙제를 풀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내 마음속에서 하나의 결론을 끄집어냈다.
사람의 장단점은 보기에 따라 장점도 단점으로 보이고, 단점도 장점으로 보일 수 있다.
즉,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같은 모습이 다르게 평가된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사실은 장점도 단점도 없다는 것이다.
그저 아이들이 가진 “특별함”만이 존재할 뿐.
그리고 내가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은
우리 아이들이 본인의 특별함을 밑천으로 자기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것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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