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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이라는 현장] 슬기로운 실험실 생활
종합 실험실고고학자 (2021-08-24)

지난 글에서 조심스럽게 “사람이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고 학부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는 농담을 인용했다. 이 문구는 작년에 이른비의 <연구가 체질: 공학, 여자, 실험실 그리고 대학원>이라는 책에서 처음 봤는데, 17년 전에 자발적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던 나에게는 다소 충격적이었다1). 그런데 브릭에 글을 송고하고 연재물을 보던 중 다른 글에서 유사한 문장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만다린님은 “너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대학원 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고2), 석사탐구일지를 연재하는 욘됴리님의 소개글에도 같은 문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나 널리 쓰이는 말이었다니.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관찰하고 있는 실험실의 대학원생들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여기에 와 있는 걸까. 본 연재에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천천히 하고 싶었지만, 당장 한 실험실에 와 있는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실험실 학생들과 집단 인터뷰를 수행하였다3).

내가 있는 실험실 현장은 다른 대학 연구실과 마찬가지로 입학과 졸업에 따라 매 학기 구성원이 조금씩 바뀌어 현재는 석박 통합과정 대학원생 여섯 명과 2학기에 입학할 학부 졸업생 두 명, 총 여덟 명의 학생이 있다. 인터뷰에는 여섯 명의 학생이 참여했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표정은 좋아 보였다. “학부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는 말을 알고 있냐는 나의 물음에 모두 소리 내어 웃는 것으로 보아 역시 대학원생에게 널리 퍼진 문구인 것 같았다. 이들은 어쩌다 이 실험실에 오게 되었을까.
 

대학원생이 작업중인 벤치

대학원생이 작업중인 벤치 (2021.4.9)


한국연구재단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청년과학자(대학원생과 박사후 연구원)의 42.7%가 교수나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 26.5%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한다4). 이는 응답자들이 졸업 후 희망 진로로 31.3%가 대학을, 35.8%가 공공연구소를 선호하는 것과도 연결시켜 볼 수 있는데, 청년과학자는 학부 졸업보다 더 나은 직업을 갖거나 원하는 직종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며 대학원에 진학한다. 감옥에 비견되는 대학원에 자발적으로 들어오는 이유는 결국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일까. 

실험실의 학생들은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답을 했다. 먼저 졸업하고 취업한 친구들이나 선배들의 말을 들어 보면 학부 졸업 후 자신의 전공 분야와 관련된 업무를 배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배운 전공을 살리기 위해서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고 했다. 전공에서 더 높은 학위를 받는 것은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며 전문성을 인정받을수록 더 높은 연봉의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공을 살리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말은 앞서 한국연구재단 보고서에서 나타난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의 다른 말로도 보인다5). 하지만, 전공을 살리고 싶다는 말이 맴돌았다. 전공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대학원까지 오면서 살려야 하는 걸까. 다른 구성원은 학부 때 공부한 것만으로는 아직 화학을 다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 좀 더 공부해 보고 싶었다고 했고, 그냥 연구하는 게 좋아서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구성원도 있었다. 전공을 더 알아보고 싶고 연구하는 게 좋다는 답변은 언뜻 보기에는 앞서 취업을 언급한 구성원의 답변과 달라 보이지만 전공을 살린다는 맥락에서는 유사성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대학원 졸업 이후 대학에 자리를 잡든, 연구소에 자리를 잡든, 회사로 가든 이들은 전공과 관련된 업무를 하거나 연구를 지속하기를 원하며 이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연관되어 있고 싶고, 더 알아보고 싶고, 그냥 좋다는 이 감정은... 사랑 아닌가.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 사람들은 자기 전공과 사랑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헤어지기 아쉬워 전공을 간직하기 위해 대학원에까지 진학한 것 아닐까. 오죽했으면 전공을 “살리고 싶다”고 표현했을까. 

그렇다면 사랑에 빠진 이들의 실험실 생활은 어떨까. 실험실에서 연구자의 생활 양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동안 과학자는 일반인과 다른 존재, 감정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이들로 인식되었다. 유명 과학자들의 전기나 일화에서 소위 그들의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측면”을 발견할 때 대중이 환호하는 것도 역설적으로 과학자에게 그런 측면을 기대하지 못했다는 걸 반증한다. 그러나 과학자도 한 사회의 구성원이며, 감정을 느끼는 인간이고, 과학 활동도 신체를 사용하는 노동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점차 퍼지면서 과학자의 정신 건강이나 복지를 포함한 실험실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6).

2019년 봄에 입학한 최고참 선배부터 2021년 가을 입학 예정인 막내까지, 이들은 실험실 생활이 대체로 만족스럽다고 했다. 무엇이 이들의 실험실 생활을 만족스럽게 할까. 이들은 가장 만족스러운 점으로 가장 먼저 모난 성격 없는 구성원과 화기애애한 실험실 분위기라 답했다. 이어서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과 연 20일의 휴가 일수도 긍정적인 요소라 했다. 늦은 시간까지 실험실에 있기를 강요받는 대학원생의 한탄을 종종 들었던 터라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움에도 대체로 오전 10시 이전에 대부분 출근을 했고 저녁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실험을 하느라 종종 밤을 새우기도 하고, 심지어 주말에도 출근해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7). 표면상으로는 출퇴근 시간이 규제되어 있는 연구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만족스럽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한 구성원이 설명했다. 실험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새벽까지 진행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때 밤늦게까지 실험을 해야 하는 것보다 다음날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야 한다는 점이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이다. 일을 마쳤는데 퇴근시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만족도를 높이는 데에 한몫했다. 한편 많은 구성원들이 주어진 휴가를 실제 다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언제든 쓸 수 있는 휴가가 있다는 점이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한 구성원은 이를 “통장에 1억이 들어 있는 기분”이라고도 표현했다. 대학원생들이 원하는 건 시간에 대한 자기 주도권이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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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실험이 진행중인 흔적(2021.5.27)


사회 전체적으로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근무시간이 복지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강조되고 있다. 워라밸이 필요한 건 대학원생도 마찬가지다. 실험실 구성원들은 삶에서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경우 60%, 많은 경우 95%를 차지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퇴근을 하고 실험실에 있지 않더라도 논문을 읽거나 발표 자료를 준비하거나 데이터 분석을 했고, 당장 관련된 신체적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연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연구실에 있는 시간을 강제하지 않더라도 삶에서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낮아지지는 않는 것이다.

한편 출퇴근 시간에 대한 별도의 규제가 없어도 일정 시간에 출근을 하고 늦게까지 실험을 하기도 한다는 점은 대학원생들이 연구 성과에 어느 정도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연구가 좋아서 대학원에 왔다는 구성원은 랩 세미나 발표를 앞두고 실험 결과를 정리할 때 대학원 진학을 말리던 선배들의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실험실 생활의 고난도 연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연구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괴로움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찐사랑으로 인정해 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뭘까?

그 상황은 실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로 발생했다. 질량분석 연구실에서 하는 실험이라고 하면 아마도 질량분석기에 시료를 넣고 측정 결과를 얻어서 분석하는 과정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실험이라는 것은 본편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사전 준비가 필요하며 때로는 그 사전 준비가 실험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게다가 본 실험실은 아직도 세팅 중인 신생랩이기에 사전 준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일례로 실험을 위해 시료를 데우는 등 간단한 준비가 필요한데 이를 위한 세팅이 되어 있지 않아 해당 기구부터 주문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팅을 위해 공부가 필요한 경우도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길을 찾느라 헤맬 때도 있다. 이런 작업들에는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러한 작은 걸림돌이 매끄러운 실험을 방해하며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를 매끄럽지 못하게 하는 이런 돌부리들도 연구의 일부가 아닐까. 우리는 흔히 논문에 쓰이는 부분, 학회 등에서 발표 내용에 적히는 부분을 연구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연구는 장비의 세팅, 갑작스럽게 생긴 장비의 트러블을 해결하는 일과같이 자잘하지만 실험이 매끄럽게 진행되게 만드는 것에 있지 않을까. 과학사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은 과학을 퍼즐 풀이에 비유하였지만 실제 과학자의 활동은 직접 몸을 써서 다양한 것들을 이어 붙이는(tinkering) 작업이 수반된다8). 무언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결국에는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일이다. 연구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필요로 한다고 얘기하지만 아이디어를 반짝이게 만들어주는 건 결국 이런 자잘한 수고로움일지도 모른다. 별거 아닌 것 같고, 어디서 내세울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일들. 대학원생들이 연구실에서 오늘도 하고 있는 일은 작아 보이지만 없으면 연구가 되지 않을 그런 일이다. 



[참고문헌]

1) 책에 적힌 정확한 문장은 “소년이 죄를 저지르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을 저지르면 대학원생이 된다”이다.

2) 만다린 (21.4.29) <대학원생 S-17 다이어리> #01 5년째 삶은 귤

3) 본 연재의 중심이 되는 실험장비 구축은 2018년에서 2019년에 일어난 일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본 글의 작성을 위해 진행된 집단인터뷰는 2021년 7월에 진행되었다.

4) 한국연구재단(2020), “청년과학자의 연구 및 학업 관련 애로요인 분석”, NRF Issue Report 2020_16호.

5) 해당 보고서에서는 청년과학자를 대상으로 객관식 설문조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답변 문구는 청년과학자의 것이 아니라 설문 설계자의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6) 앞서 언급한 한국연구재단의 보고서도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된 연구이며, 관련하여 2021년 올해는 이공계 대학원 총조사가 계획되어 있다.

7) 본 실험실은 일요일에는 출근하지 말 것을 권장하나 간혹 일요일에도 실험실에 나오는 구성원이 있다.

8) 퍼즐조각을 맞추는 데에도 머리 뿐 아니라 손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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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화 (실험실고고학자)

실험실이 좋아서 과학자가 되고 싶었으나 실험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실험실을 떠나지 못하고, 다시 실험실 주변을 서성이는 실험실 연구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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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토라  (2021-08-2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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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셨던 실험실 자체가 분위기도 그렇고 괜찮은 곳이네요ㅎㅎ...
여긴 포닥분들도 근로계약서 썼으면서 연15일의 연차도 못쓰고..
병특중인 저조차도 연차15일 자유롭게 못씁니다.. 이사한다고 하루, 집안 경조사때문에 이틀,
여름휴가랍시고 5일쓴게 전부네요...
학생들은 석사는 단 3일 박사는 5일 휴가, 출퇴근은 밤을 새고 몸이 너무 죽을거같은거 아닌이상은..
9시...늦어도 10,11시엔 다들 출근..하는데 딱히 발표준비하는게 아니면 밤을 샐 일이 거의 없긴합니다만,
저희 교수님도 막 출퇴근갖고 뭐라하시진않으시지만..ㅠㅠ..
다들 의무적으로 그렇게들 출근하니까 자연스레 굳은것도 있죠..
랩바랩이지만 분위기가 좋아도 뭔가 근본적으로는 공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랩은
인건비도 짜기때문에.. 딱 분위기 외에도 결국 갑갑한 구석이 있다보니 어느샌가 잘못하면 대학원..같은
풍자가 생긴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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