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분석장비 이야기] 중합요소 연쇄반응법(PCR) 개발 (캐리 뱅크스 멀리스_Kary Banks Mullis)
Bio통신원(분석장비 탐험가 (필명))
“1901~2017년 사이 노벨 과학상을 수상 한 348건 중 분석기술/장비 분야 수상 건수는 27건(8.2%)이다. 이 데이터에서 보듯 노벨 과학상에서 분석기술 연구 장비 분야 수상 비중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연구 장비가 노벨과학상 수상에 미친 영향’ 중에서......
캐리B. 멀리스 (자료출처: nobelprize.org)
최근 코로나 진단 때문에 PCR 이란 용어가 신문과 뉴스에서 자주 등장한다. PCR은 희대 살인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도 잡을 때도 결정적 공헌을 했다.
자료출처: 매일경제 (2021.7.22 )
자료출처: tvN
이처럼 분자생물학의 연구목적으로 개발된 PCR은 진단, 법의학뿐만 아니라 유전자에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분석법이다.
PCR은 polymerase chain reaction 으로, 우리말로는 중합효소 연쇄반응이라고 한다. 이는 DNA의 원하는 부분을 복제, 증폭시키는 분자생물학적 기술로서 이 기술을 사용하면 미량인 DNA 용액에서 연구자가 원하는 특정 DNA 단편만을 선택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다. 그리고 증폭된 DNA는 분자생물학, 의료, 범죄수사, 생물의 분류 등 DNA를 취급하는 곳에서 보다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하였다.
Perkin-Elmer cetus DNA PCR
자료출처: http://www.sci-support.com, Per
PCR의 원리는 꼭 눈사람을 만드는 원리와 흡사하다.
눈사람도 처음엔 주먹만 한 눈덩이를 굴려서 만드는 것처럼, 중폭 된 DNA도 소량의 DNA를 중합효소 연쇄반응(PCR)하여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PCR는 굴리는 행위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포함된 ‘굴림’의 원리에는 눈이 뭉치는 원리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묘한 생명의 신비가 있을 것이다.
PCR의 원리는 캐리 B 멀리스에 의해서 발명되었다.
그는 미국의 생화학자로서, 1979년부터 1985년까지 시투스(cetus)사에서 DNA를 화학적으로 연구한 후, 1986년에 시트로닉사의 분자생물학 연구 책임자가 되었다. PCR 방법을 발명해 위치 선택적 돌연변이의 유도를 비롯하여 유전자 복제와 배열의 효율성을 높였고,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멀리스가 PCR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일화가 참 재미있고 신선하다.
그는 드라이브 데이트를 하던 중, PCR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과학계 최고의 홈런왕인 멀리스에게 노벨상을 쥐여준 아이디어가 떠오른 순간이었다. 그는 생명의 본질이 자기 복제 능력에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DNA가 상보적인 두 가닥의 사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것이 서로 상대방의 거푸집 삼아 복제된다는 것을 알았다. 프라이머라 불리는 짧은 DNA가 복제를 개시한다는 것, 그리고 프라이머는 손쉽게 인공 합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당시의 과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던 것들이다. 그러나 바로 그 앞의 안타레스의 잔상을 본 이는 멀리스뿐이었다.
그의 드라이브 데이트 아이디어에 대해서 더 살펴보자.
1983년 5월, 칩엽수의 향기가 주위를 농밀하게 물들이던 밤, 멀리스는 연인 제니퍼를 조수석에 태운 채 캘리포니아의 숲 속을 경쾌하게 달리고 있었다.
“ 분홍과 흰색 꽃잎은 자동치의 헤드라이트 빛을 받으니 차갑게 느껴졌다. 바깥 공기에서는 그 꽃잎에서 배어 나온 습기를 품은 기름 냄새가 났다. 그날 밤은 정말, 칠엽수가 어울리는 밤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난 밤이기도 했다. 나의 은색 혼다 시빅은 산을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핸들을 잡은 손은 노면의 질감과 커브의 감각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연구실의 일을 생각했다. DNA사슬이 뒤틀리거나 등등 떠있는 모습을 떠올랐다. 선명한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물들여진 분자의 전자적인 이미지가 나의 눈과 산으로 이어지는 노면 사이에서 부유했다.
헤드라이트는 나무들을 비추고 있었지만 내 눈은 DNA가 풀리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몽상에 시간을 맡기기를 좋아한다.
(중략)
밤하늘에 반짝이던 안타레스는 몇 시간 전에 산맥 저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오늘 밤, 나는 마음 속으로 저 안타레스처럼 유독 빛나는 불빛을 보고 있다.
멀리스는 앞 유리창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30억 개나 되는 문자를 거느린 게놈 DNA 배열 중에 특정한 배열을 검색할 수 있을까? 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다. 특정한 배열의 짧은 DNA(올리고뉴클레오티드, 프라이머라고도 불림)를 합성하고 그것을 게놈과 섞어 프라이머가 결합한 장소에서 상보적인 DNA를 합성한다. 그는 처음에는 이 반응을 ‘반복’하면 복제된 상보적 DNA가 많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프라이머가 결합할 수 있는 장소는 정도의 차에 따라 여러 개가된다. 적어도 천 곳은 될 것이다. 불완전한 결합장소에서는 목적하지 않은 DNA가 복제된다. 즉 이 방법으로는 시그널 대 노이즈의 비율이 너무 높아진다.
어떻게든 정밀도를 높일 수 없을까?
그런데 너무나 한 순간에 그 방법이 떠올랐다. 30억개의 뉴클레오티드 가운데 한 개의 올리고 뉴클레오티드에 결합하는 장소, 천 곳을 알아냈다고 하자, 그렇다면 거기에 또 하나의 올리고 뉴클레오티드를 사용하여 다시 한 번 걸러내는 것이다. 첫 번째 올리고뉴클레오티드가 결합한 장소의 하류에 두 번째 올리고 뉴클레오티드가 결합할 수 있도록 설계하면 된다. 첫 번째 올리고 뉴클레오티드가 우선 천 곳의 후보지를 선택한다. 두 번째 올리고뉴클레오티드가 그 중에 단 하나의 정답을 골라낸다. 그리고 DNA가 자신을 복제하는 능력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중략)
“야호!”
나는 환호하며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다. 차는 하행 커브의 갓길에서 멈췄다. 길 옆 언덕에 늘어져 있는 커다란 칠엽수 가지가 제니퍼가 앉아있던 조수석 창을 간질이고 있었다. (중략) 그녀는 졸면서 몸을 뒤척였다. (중략) 제니퍼가 빨리 가자고 했다. 내가 말했다. 굉장한 걸 발견했어. 그녀는 하품을 하더니 창에 머리를 기대고는 다시 잠들었다.
우리는 128번 도로 75킬로미터 지점에 서있었다.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PCR 시대의 바로 앞에 서있었다. “
(출처 멀리스 박사의 기상천외한 인생, 하야카와문고, 2004)
데이트 장소에서조차 PCR 아이디어에 몰입했던 멀리스 박사의 집중력이 돋보이는 문구다. 이처럼 인류 역사에서 훌륭한 아이디어들은 꼭 책상머리에서만 나오란 법은 없다 보다.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어느 날 파리에서 친구와 버스를 타고 잡담을 나누던 중 “불현듯 내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캠브리지에서 파이프 담배를 살 때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한다.
독일 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아우구스투스 케쿨레는 수년 동안 화학구조에 관한 이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수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1858년 늦여름의 어느 날, 런던에서 말이 끄는 마차 위에 앉아 백일몽을 꾸던 중 그는 자신이 고민했던 원자와 분자 구조에 관한 해답을 얻었다고 한다.
토머스 에디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탈리아 물리학자 구글리엘모 마르코니, 에디슨 이후의 발명화 찰스 케터링, 제임스 왓트, 자연과학자 장 루이 아가시 및 그 밖의 많은 과학자들이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로 과학발전에 이바지했다.
과학사학자인 토머스 쿤은 과학자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와 이론 사이의 격차를 더욱더 확인하는 방법에 관해 말한다.
쿤은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성적인 추론을 통해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떠오른다. 한밤중이나 상당한 위기에 빠진 사람의 마음 등에서 갑자기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쿤의 주장은 잠재의식의 활용에 대한 이야기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정도로 임팩트가 강한 이론이나 발견은 의식보다 오히려 무의식에 의해 성취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PCR를 발명한 멀더스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평소에 별 관심이 없었던 잠재의식의 놀라운 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많은 단순한 작업들이 서서히 AI와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구현되는 논리적인 일보다는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같은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요구될 것이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을 자유로이 상상하고 연결하여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인간의 창조력은 결코 AI와 로봇이 따라오기가 쉽지 않은 영역이다. 왜냐하면 찰나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 PCR 멀리스 박사와 여러 과학자들의 사례를 보면서, 나의 창조성을 발현하기 위해 그동안 관심 없었던 잠재의식을 증폭시키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참고자료 및 출처]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연구장비가 노벨 과학상 수상에 미친 영향’
-www.nobelprize.org
-과학과 기술, 기획시리즈, NMR 과학자들
-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80/20법칙, 리처드 코치 지음
-몰입, 황농문 지음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