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오후가 돼서 연구소를 나설 때면 연구소 맞은편에 매일 피켓을 들고 서 있는 한 남자를 만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고 공식적으로 거의 모든 직원이 자택 근무에 들어간 후에도 그 남자는 피켓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정지 신호 앞에 서 있는 차들 옆으로 가서 무표정한 얼굴로 피켓을 들이밀기도 하고 연구소 출입증을 목에 건 사람들 앞에 불쑥불쑥 피켓을 내밀기도 한다. 피켓의 내용은 이렇다.
“백신은 독이다.” “백신은 불임을 일으킨다.” “백신은 아이들을 죽인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백신을 반대하는 이들을 “안티 백서”라고 부른다. 조나단 M. 버만은 [백신 거부자들]이란 그의 저서를 통해서 백신 거부로 인해 공동의 건강을 위협하는 이들의 정체와 그들이 주장과 그 세력 확장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현실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백신 거부의 역사는 백신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에드워드 제너’의 시대부터 거슬러 간다. 아니, 그보다 더 먼저 인두 법을 영국에 소개한 ‘레이디 메리 워틀리 몬태규’ 시대부터 스멀스멀 조짐이 보였다. 에드워드 제너의 종두법 소개 후 폭발적으로 백신 거부가 일어난 것은 동물의 고름을 사람에게 접종하는 그 방법 때문이었다. 영국 정부가 종두 예방 접종 의무화를 위해 1853년 예방 접종법을 통과시키자, 존 깁스(John Gibbs)는 백신이 인간의 신체 자유권을 억압하고 의사들의 이익이 되며 개인의 건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백신 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백신 거부자로 기록되었다. 실제 당시 천연부 백신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백신 거부 운동은 미국과 캐나다로 퍼져나갔다.
20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그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전염병과 인류의 싸움에서 늘 패배의 쓴 잔을 손에 쥐던 인류가 지구상에서 천연두를 박멸시킨 사건은 백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100% 완벽한 백신은 없다. 백신의 역사는 늘 희망만 존재하지 않았고, 늘 질병에 맞설 수 있지는 않았다. 자연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세균이라는 거대한 적은 앞에 두고 서로가 서로를 진화시키며 공존해왔다. 버만은 백신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닌 백신 거부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백신 개발 역사의 실패한 사건 들고 가감 없이 꺼내놓는다.
최근 영국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을 신뢰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이나 과학적 증거를 신뢰한다고 대답했다. 버만은 그 과학적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을 분별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미디어에 전문가라고 나와서 이야기하는 이들 혹은 외국의 유명한 XX 박사의 주장이라며 이야기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앞에 내세우는 이들을 잘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로서 의심을 하고 관찰을 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것과 자신의 과학적이지 않은 주장 뒤로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일들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by Labsoonimom
과학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델타 변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눈앞에 백신을 두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백신을 통한 면역의 완성은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백신 거부자들]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자. 솔잎차 따위는 백신을 대신하지 못한다. 알파로 시작된 코로나19의 변이가 오메가라는 그 끝에 다다를지 아닐지는 결국 우리 팔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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