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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학부모가 되다
Bio통신원(닥터리)
그림출처: Pixabay
직장맘으로 살면서 퇴사를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 있는데, 나의 경우 첫 번째는 둘째를 출산했을 시점이었고, 두 번째는 첫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시점이었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 육아휴직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 이 두 번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퇴사는 직장맘이 많이 있었다.
첫째가 7살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나에게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상당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거주하고 있는 동네에 아는 이웃이 단 한 명도 없었던 터라 우리 아이가 입학할 초등학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어린이집은 오후 7시까지 운영을 하니까 퇴근길에 픽업하면 되지만, 초등학교는 일찍 끝난다던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난감했다.
우리 언니를 포함하여 올케, 아가씨, 형님 등 시댁과 친정에 각각 두 명씩 먼저 엄마가 된 가족이 있었지만 모두 전업주부였기에 나와 같은 고민은 해 본 적이 없었을뿐더러 공통적으로 직장맘과는 거의 교류가 없어 정보를 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방과 후에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봐 주는 초등 돌봄교실도 각 학교마다 운영 여부 및 운영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 아이가 가게 될 초등학교에 몇 번이고 전화하여 시스템과 운영시간 등을 물어보았아야 했다.
그 결과 몇 가지 정보를 알게 되었는데, 우선 초등학교 1~2학년은 오후 1시 이전에 수업이 끝난다고 했다. 그리고 직장맘을 위한 돌봄교실이 있는데, 오후 5시까지 운영을 하고, 서류를 제대로 갖춘 사람만 지원할 수 있으며 정원이 1~2학년 합해서 40명 정도 되기 때문에 신청자가 많으면 추첨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돌봄교실 입실 여부는 입학 직전에 알게 되기 때문에 돌봄교실 추첨에서 떨어지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대안을 마련해 놓아야 했다. 하지만 혹시 운이 좋아서 돌봄교실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오후 4시 50분이면 하교해야 하니 결국 1시간 30분의 공백이 생기는 셈이라 이래저래 시간을 맞추느라 노심초사하며 지냈던 기억이 난다.
이래서 직장맘들이 어쩔 수 없이 시댁, 친정집 근처에서 살게 되는 것이구나 싶었다.
오전에 학교 다녀오고, 오후에 학원 가기 전에 할머니 댁에 들렀다가 간식 먹고 가도 되고, 아니면 돌봄교실에서 5시까지 있다가 한두 시간 정도만 아이가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많은 직장맘들이 결국 몇 시간 공백을 메우기 어려워 그만두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결국 나는 또 한 번 교수님께 양해를 구해 퇴근 시간을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시간표를 짜도 6시 5분이면 학원에서는 아이를 집 앞에 내려주고 가겠다니 답이 없었다.
전업주부이신 사모님과 살고 계신 교수님은 나 때문에 전혀 알지 못했던 직장맘의 현실을 알게 되신 셈이다. 교수님은 퇴근 시간 관련해서 양해를 구하는 나에게 왜 남편은 안 하고 너가 다 걱정하고 알아보냐는 둥, 나라에서 직장맘에 대한 대책이 너무 미흡하다는 둥 이런저런 말씀을 푸념처럼 늘어놓으시더니 어쩔 수 없다며 일찍 퇴근하라고 하셨다. 결국 그렇게 해서 나는 초등생 남매를 키우면서도 연구실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떤 회사는 탄력근무제가 있다고 하지만 연구실 상황은 그런 신문에 나오는 근로환경과는 거리가 멀기에 탄력 근무제를 신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고객을 상대해야 하거나 정확히 퇴근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직업이 아니라 연구직이기 때문에 교수님과 합의만 보면 된다는 점에서 또 이럴 때에는 연구자가 조금은 더 자유가 있어 다행이라며 감사하는 마음도 들었다.
어쨌든 나는 초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킨 뒤 “학부모”가 되었다.
첫째가 입학했을 때에는 우리 아이가 학교까지는 잘 갔는지부터 시작해서 학교 안에서 길은 잃지 않았는지, 방과 후 교실을 잘 찾아갔는지, 아침을 적게 먹고 가서 중간에 배는 안 고팠는지, 숙제는 뭔지 제대로 알아듣고 온 것인지 등등 다양한 걱정거리에 3월 한 달 내내 노심초사하며 지냈다. 어린이집에서는 오전 9시 30분이면 간식이 나오기 때문에 아침을 못 먹고 가더라도 안심이 되었지만, 학교에서는 점심시간까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으니 아침을 든든히 먹이는 것을 습관 들이는 게 제일 어려웠던 일 중 하나였다. 학교를 보내보니 이제까지 우리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돌보아주시던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얼마나 고마우신 분들인지를 가슴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돌봄교실이라고 하는 방과 후 아이들을 어린이집처럼 돌보아주는 공간이 있고, 우리 아이가 돌봄교실 입실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공간이 있기에 아이가 가방도 두고, 아이들과 사귀고, 시간에 맞추어 안전하게 학원을 갈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가 돌봄교실이 아주 잘 운영되고 있는 학교 중 하나였다. 더욱이 사랑이 넘치시는 돌봄교실 담당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아이와 내가 학교생활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부모가 된 이후 가장 큰 문화충격은 바로 엄마들과의 단체 카톡방이었다. 나는 당시 몇몇 단체 카톡방 안에 들어가 있기는 했지만, 답을 달아도 그만 안 달아도 그만인 눈팅만하고 넘어가도 되는 그런 단톡방이어서 무음으로 해놓고 원할 때만 훑어보곤 했었다.
하지만 1학년 학부모 단톡방을 들어가 보니 세상에 1분 내에도 글이 수십 개 올라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오늘 숙제 내용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거냐부터 시작해서 알림장을 아이가 두고 왔다며 찍어서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누군가 찍어서 보내주면 어쩜 애가 글씨도 이리 잘 쓰냐며 서로서로 댓글을 단다. 오 마이 갓.
아이들 중에는 특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엄마한테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는데, 오후 2시 정도 되면 그런 아이들 엄마들은 오늘 있었던 따끈따끈한 정보를 올려주곤 했다. 엄마들끼리 반 모임 날짜도 정하고, 아이 동반 전체 반 모임도 정했다. 엄마들끼리의 모임은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난 뒤 평일 10시 반 정도에 시작하는 브런치 모임인 경우가 많았다.
“저는 직장맘이라 이번에는 빠질게요.”라고 쭈뼛거리며 답글을 다는 나와는 달리 “그날은 휴가 내고 참석합니다!”라고 힘차게 답글을 올리는 직장맘도 많이 있었다. 나는 학교 상담, 학부모 모임 등에도 가야 하고, 게다가 일찍 퇴근도 해야 하기에 이런 모임을 위해서 휴가를 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사실 직장맘 중 상당수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다니는 동안에는 육아에 집중하겠다며 육아휴직을 한 경우도 허다했다. 한 교실 정원 26명 중에서 직장맘이 12명 정도 되었는데, 그중 절반은 1년 또는 6개월간 육아휴직 중이었으니 자연스레 엄마들 모임이 평일 오전으로 정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 엄마들과 오프라인으로는 많이 못 보더라도 온라인에서라도 잘 소통하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우리 딸아이가 말수도 적고 키도 작고, 노는 아이들과만 이야기하는 얌전한 성향이 있었기에 학교생활을 물어봐도 별로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않았고, 결국 아이의 학교생활을 파악하기 위해 엄마들과의 소통에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톡 알림 중 유일하게 엄마들의 단톡방 알림만 소리로 해놓고 지냈다. 처음에는 누가 누구 엄마인지 몰라서 엑셀 파일에 아이 이름, 엄마 카톡 아이디, 특징을 정리해서 표로 만들어 보면서 카톡 내용을 분석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지극 정성으로 노력했다 싶어 웃음이 나지만 내가 그만큼 절실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런 노력으로 인해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고, 학교생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우리 딸의 성향과 맞는 친구들이 어떤 아이들인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단 한 명도 없던 동네 친구들을 얻게 되어 정보가 부족한 직장맘의 약점을 어느 정도 메꿀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당시 1학년 우리반 반대표 엄마는 아들 둘을 이미 키워낸 셋째 맘이었는데, 어찌나 따뜻하고 배려심이 깊은 분인지 그 반대표 엄마를 통해 많이 배웠고 6년 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시간이 흘러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에는 나도 어느덧 꽤 여유가 생긴 둘째 엄마가 되어 있었다. 첫째를 입학시켰을 때처럼 안달복달하지 않고도 1학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엄마들 단톡방에서 첫아이를 막 입학시킨 엄마들의 무한 질문에 답도 해줄 수 있는 정보력도 갖추게 된 나를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또한 둘째는 워낙에 활발하고 붙임성이 좋아서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알아서 친구들을 사귀었고, 누나의 친구들을 비롯해 태권도 선배들, 친구들까지 아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금세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게다가 3년이 지났을 뿐인데 직장맘의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서 반 모임도 직장맘을 고려하여 저녁이나 주말 시간으로 정해지기도 하는 상황에 감개가 무량했다.
결국 처음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던 동네였는데 이제는 제법 나의 지인들이 많이 생겼고, 아이들도 어느덧 자라서 학교 마치고 집에 들렀다가 학원에 다녀올 수도 있게 되었고, 내가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동네 엄마들이 우리 아이를 내 대신 픽업해주거나 돌보아주기도 해서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이 집 근처에 살지 않으셔도, 혹시나 퇴근이 늦어져도 조금은 괜찮은 그런 상황이 되었다. 10년 정도 육아를 하다 보니 이제 조금은 직장맘의 삶이 수월해지는 시기에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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