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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일상이 기적이 되다
종합 닥터리 (2021-06-09)

일상이 기적이 되다

이미지 출처: pixabay


2014년 4월 16일은 잊을 수 없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오전에 세월호에 대한 뉴스를 접했을 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전원 구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런 보도가 나오기도 해서 맘 놓고 하루를 보냈다. 퇴근 후 뉴스를 다시 보았을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후 이어지는 나날을 보내며 내 마음도 깊은 수렁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키워낸 자식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잃어버릴 수 있을까? 

너무나 당연히 며칠 후에 만나겠지 하며 잘 다녀와 인사했었는데, 꿈에서라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대한민국을 덮쳐버렸다. 사실 나는 첫아이를 출산한 뒤 난생처음으로 내 목숨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뭐 죽기밖에 더 하겠냐며 버거운 일을 만나도 호기 있게 대처하던 나였지만, 아이가 생긴 뒤에는 우리 아이들이 다 자라서 홀로서기 할 때까지 내가 잘 키워야 하니 내가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간절한 바람이 생겼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겨서 우리 딸, 우리 아들이 엄마 없이 맘 고생하면서 자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엄마인 나는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내가 혹시 아프거나 사고가 날까 봐 덜컥 겁이 나곤 했다. 소중한 것, 소중한 사람이 있는 사람은 소중함의 크기만큼 두려움의 크기도 같이 자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하루아침에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한동안 길을 걸을 때에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깊은 슬픔이 아직 겪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합해져서 내 맘을 짓눌렀다. 만일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면 난 어떤 부분이 가장 후회가 될까 생각을 해 보았다. 감히 상상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오늘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룬 것이 가장 후회될 것 같았다. 나라면 아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수능 뒤로 미루자고 했던 것이 후회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와 함께 뭔가를 하고 싶은 아이에게 지금은 엄마가 바쁘니까 이 프로젝트만 끝나면 하자고 약속했던 것이 평생 맘속에 앙금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세월호 사건은 내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진을 많이 찍게 되었다. 내 아이들 사진만 담는 것이 아니라 시댁에서 전 부치다가도 한 장 찍고, 어머님 밭 매시는 모습도 찍고,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모습도 찍곤 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언젠가 내가 나이 들어 파이펫 (pipette)을 놓게 되었을 때, 이 사진을 보면서 그렇게 빡세게 열정을 담아 연구하던 시절을 추억하겠지 싶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가장 많은 시간 머무르는 공간인 연구실 안에서 실험 관련 데이터 사진 외에 내가 실험하는 모습이나 연구실 멤버들의 사진은 찍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요즈음도 후배들이 열중해서 실험할 때 그 모습이 참 멋지다 싶어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틈새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매일 바쁜 일상이지만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주말에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낮에 연구실에 가지 않고 새벽 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물론 나도 고단하지만, 아이들과의 시간을 최대로 확보하고 싶어서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있을 때에는 주말 새벽 4시에 연구실에 가서 집중해서 일하고 아침 9시면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낮 동안 아이들과 놀이공원이던 중랑천이던 가고 싶다는 곳에 가서 실컷 놀고 왔다. 

경상북도에 있는 시댁에 자주 내려가는 일상에도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농사일을 도와드리러 한 달에 한 번 이상 시댁에 내려가야 하는 우리 부부는 이제까지 시댁에 내려가서 열심히 농사 관련 일만 하다가 곧장 서울로 올라오던 피곤하고 삭막한 일상을 조금 바꾸어 시댁에 내려가면서 지나치게 되는 관광지를 들르기도 하고, 휴게소에서 아이들이 맘껏 간식을 고르게 해 푸짐하게 사서 먹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당일치기 여행이 어려운 거리이지만 시댁에서는 경주나 영덕, 포항이 가까운 거리이기에 아버님, 어머님을 모시고 반나절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어차피 가야 하는 시댁행 속에서 추억을 쌓고 재미를 찾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오가는 여정이 도리어 힐링의 시간이 되었다. 또한 늘 농사일에 여유가 없으신 아버님, 어머님이 어색하고 생소하지만 자녀 손과 더불어 색다른 행복을 느끼실 기회가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시어머님께서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그 후유증으로 언어와 보행에 큰 장애를 갖게 되시면서 어머님과 이전처럼 일상을 함께 즐길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그나마 몇 년 동안이라도 두 분을 모시고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만일 늘 집안일과 농사일로 고생만 하셨던 어머님의 모습만 기억에 남았더라면 남편의 마음은 지금보다 더 무거웠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한동안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일상을 지내왔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출산 휴가 3개월 외에는 쉬어본 적 없이 연구와 논문 작성, 국가과제를 수행하는데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버겁게 노력해 왔다, 또한 엄마로서도 부족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지내왔는데, 내 노력에 비해서 얻는 것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다. 

그럴듯한 타이틀도 없고, 일반 기업에 다니는 동기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급여도 불만이었다. 돈이라도 적게 벌면 시간이라도 자유로워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닌 현실을 마주하면서 박사학위 받은 후 유학도 접고 취업은 안 하겠다 하고, 교수는 내 길이 아니라며 고집스럽게 연구실에 남아서 내가 하던 연구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선택한 내가 바보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내가 선택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대한 불만이 고개를 들었고, 한동안 나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자격지심의 굴레 때문에 남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내가 가진 것은 초라하게 느끼며 내 인생이 통째로 별것 아닌 인생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을 겪고, 갑작스런 어머님의 병상을 마주하면서 나는 현재 내가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공짜로 내게 주어진 기적의 순간임을 알게 되었다. 상황은 그대로이지만 상황을 해석하는 능력이 생겨났다 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연구실에서 고집스럽게 머무르며 정체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꾸준한 연구를 통해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었다. 내 이름으로 수주한 국가과제를 보더라도 내가 성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5천만 원 규모의 박사후 국내연수 과제를 1년 진행했다가, 그 이후 연간 5천만 원/3년 과제에 도전하여 리서치 펠로우 과제를 수행했고, 현재는 3년간 총 3억 규모의 국가 개인 과제에 채택되어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교수님의 연구과제도 동시에 함께 운영하면서 과학인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찾아가는 나의 발자취가 순간순간은 부족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잠시 뒤를 돌아 내가 걸어온 길을 반추해볼 때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그뿐 아니라 10년 이상을 함께 하면서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 주고, 내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소중한 연구실 동료들이 곁에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지금의 나는 이전보다 좀 더 다른 시선으로 나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자체도 감사하고, 아직도 내게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님이 곁에 계시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또한 점점 연결되는 연구자들 간의 네트워크도 참 소중하게 다가온다. 특히 요즈음은 동물 실험을 넘어서서 실제 환자 조직 샘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어 나는 한 걸음 더 임상 응용에 다가서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평온한 가정이 있기에, 건강한 내 몸이 있기에, 그리고 신뢰하는 동료들이 곁에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니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최고의 기적임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이렇게 정신 차리고 생각할 때는 감사함을 느끼다가도 그 하루하루 속에서는 소소한 투덜거림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나 스스로에게 일상이 유지되는 것이 내게는 곧 기적이라고 말해주며 내가 중요한 것을 잊지 않도록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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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 (필명)

신경생물학을 전공하고 현재 연구교수로 척수손상과 척추관협착증 치료제 개발을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본 연재를 통해 박사과정부터 시작된 저의 두 아이 육아 에피소드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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