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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원숭이가 읽어주는 오늘의 과학기술] 끓이면 돌돌 말리는 신기한 파스타, 시뮬레이션으로 설계하다
Bio통신원(여원)
파스타 좋아하세요? 기념일에나 먹을 만한 특별한 요리인 것 같으면서도, 집에서 간단하게 해 먹기에도 의외로 좋은 음식이기도 하죠. 물론 레스토랑에서 먹는 만큼 훌륭한 맛이 나지는 않지만 요즘은 시판되는 소스도 맛있는 게 많아서 저도 집에서 가끔 파스타를 해 먹곤 합니다.
요리할 때나 먹을 때나, 파스타의 매력을 한층 더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파스타 면의 특이한 모양이지요. 잔치국수 면처럼 길고 가느다란 파스타도 물론 있지만 돌돌 말린 모양, 바큇살 모양, 조개 모양, 심지어는 잎사귀 모양처럼 온갖 모양의 파스타가 있습니다. 이처럼 특이한 모양을 한 파스타는 소스를 듬뿍 머금고 있어서 입에 넣었을 때 좀 더 풍부한 맛이 나는 매력이 있지요.
그런데 위 사진에서처럼 복잡한 모양을 갖춘 파스타는 사실 포장하고 운송하기가 제법 까다롭습니다. 푸실리나 라디아토리처럼 돌돌 말려 있는 파스타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무게에 비해서 부피가 큰 편입니다. 자기들끼리 딱딱 맞아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봉투에 쑤셔 담았다가는 예쁜 모양이 깨져나갈 위험도 크지요. 공장에서 만들고 포장할 때도 수고가 더 들고, 같은 무게의 파스타를 소비했을 때 나오는 포장재 쓰레기의 양도 더 많아지겠지요.
식품공학 연구자 중에는 복잡한 모양을 한 파스타의 생산과 보관, 운송을 더 간편하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는 분들도 제법 있다고 해요. 2021년 5월 5일, 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흥미로운 논문[1]이 한 편 실렸습니다. 카네기멜론 대학 연구진의 작업인데요, 고분자 재료 시뮬레이션에 쓰이는 유한요소법(FEM) 모델링을 이용해서, 평소에 보관할 때는 납작하게 펼쳐져 있지만 물에 넣고 끓이면 비로소 독특한 모양으로 돌돌 말려들어가는 파스타를 디자인한 거예요. 우선 Science 측에서 공개한 소개 영상 한 편을 함께 보실까요?
위 영상의 27초 지점부터 돌려보시면, 분명히 처음에는 플랫하기만 했던 밀가루 반죽이 물에 넣고 끓이자 돌돌 말려서 나선형으로 바뀌는 모습이 관찰됩니다. 냄비 안에 들어 있는 파스타 조각이 전부 동시에 말리는 걸 보면 끓이는 시간에 따라 상당히 예측 가능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도 알 수 있죠. 파스타 봉투에는 보통 '끓는 물로 7분 동안 삶으세요' 같은 식으로 조리법도 적혀 있기 마련이니까 당장 레시피를 만들 수도 있겠네요.
영상을 유심히 보신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돌돌 말리는 파스타의 비결은 밀가루 반죽의 표면에 나 있는 홈 자국입니다. 밀가루 반죽은 글루텐 단백질이 매개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네트워크 구조입니다. 밀가루 반죽을 물에 넣고 삶으면 물과 직접 접하고 있는 표면으로부터 시작해서 물 분자가 네트워크 안쪽으로 점점 확산하고, 물이 들어간 네트워크 부분은 부풀어 오르겠지요. 그런데 납작한 반죽 한쪽에만 홈을 내면, 아래 그림의 오른쪽처럼 반죽이 비대칭으로 부풀게 됩니다.
Sci. Adv. 7, eabf4098 (2021). CC BY-NC 4.0.
물이 섞여서 부풀어 오른 밀가루 반죽과 아직 물이 침투하지 못한 부분은 단단한 정도나 밀도가 당연히 다르겠지요? 이처럼 네트워크 구조를 갖춘 분자 내부에서 기계적 물성이 비대칭적으로 변하면 응력이 축적되는데요, 응력이 한쪽 방향으로만 작용하면서 돌돌 말려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은 여기서 의문점 하나를 품으셨을 수도 있어요. 밀가루 반죽에 물이 비대칭적으로 확산되는 바람에 한쪽으로 돌돌 말린 거라면, 결국 오래 기다려서 밀가루 반죽의 모든 부분에 물이 확산해 들어가면 비대칭 응력도 사라지면서 말린 구조가 풀리지 않을까요? 실제로 실리콘 재료를 이용해서 같은 실험을 진행해 보면, 시간이 지나면 결국 실리콘의 모든 부분이 용매로 채워지면서 구조가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아래 그림처럼요.
Sci. Adv. 7, eabf4098 (2021). CC BY-NC 4.0.
하지만 밀가루 반죽은 실리콘과는 다릅니다. 파스타 면을 삶을 때도 살살 저어 주지 않으면 면끼리 달라붙어서 떡이 되어버리지 않던가요? 홈이 난 밀가루 반죽은 물에 들어가서 삶기면서 홈 안쪽 부분끼리 먼저 만나게 되는데요, 바로 이때 밀가루 접촉면 사이에서 네트워크가 추가로 형성되면서 고정되기 때문에 오래 삶는다고 돌돌 말린 모양이 풀리지는 않습니다. 이렇게요!
Sci. Adv. 7, eabf4098 (2021). CC BY-NC 4.0.
이번 연구의 특이한 점은 바로 고분자 네트워크 이론을 이용해서 식재료를 모델링했다는 점이에요. 카네기멜론 대학 연구진은 2017년에도 스스로 돌돌 말리는 밀가루 음식을 디자인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시행착오(trial and error) 방식으로 재료를 만드는 바람에 정량적으로 원하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쪽 방향으로만 돌돌 말려서 가우스 곡률(Gaussian curvature)이 0인 밋밋한 구조밖에 만들 수 없던 과거와는 달리, 안장이나 비틀린 구조처럼 좀 더 풍부하고 복잡한 구조도 만들 수 있게 되었지요. 아래 그림의 C처럼요.
Sci. Adv. 7, eabf4098 (2021). CC BY-NC 4.0.
글의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끓였을 때 돌돌 말리는 파스타는 그냥 재밌기만 한 물건은 아니에요. 끓이기 전까지는 플랫한 모양을 유지하기 때문에, 같은 무게의 파스타를 포장해서 운송할 때 훨씬 적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같은 모양의 파스타를 처음부터 만들어서 포장하는 것에 비해 60%~80% 정도 적은 부피가 필요하다고 해요. 포장재 쓰레기가 훨씬 적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겠지요?
이번 연구처럼 어떤 현상의 원리를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그 현상을 설명하는 모델을 만든 다음 원하는 특성이나 구조를 갖는 물건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작업의 흐름을 역설계(inverse design)라고 합니다. 당연하지만 역설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현상에 대한 아주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번 논문에서 보여준 파스타 구조만 해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연구진은 추가 작업을 통해서 좀 더 정교한 밀가루 모델을 만들고 머신러닝 모델도 학습시켜서 좀 더 정밀한 예측 이론을 만들어낼 예정이라고 하네요.
사족 1. 고분자 이론 연구자 중에는 의외로 식품공학 응용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2005년에는 Nature Materials에서도 관련 리뷰논문[2]을 실은 적도 있었으니까요. 꽤 많은 식품이 고분자나 콜로이드처럼 연성물질(soft matter)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이에요.
사족 2. SF에 취미가 있으신 분들은 '원하는 성능을 입력하면 그 성능을 갖는 물건을 설계해 주는 궁극의 인공지능' 같은 개념을 접해보셨을 거예요. AI 연구자 이안 굿펠로(Ian Goodfellow)는 이것을 universal engineering machine (UEM)이라고 부릅니다. 본문 막바지에서 언급한 역설계(inverse design) 연구의 최종적인 지향점이 말하자면 UEM입니다. 역설계 연구는 요즘 꽤 활발하게 진행 중인데요, 눈에 띄는 사례 중에는 내가 원하는 유기화합물을 합성하는 경로와 재료를 알려주는 AI[3]가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Y. Tao et al. (2021). Morphing pasta and beyond, Sci. Adv. 7(19), eabf4098.
[2] R. Mezzenga et al. (2005). Understanding foods as soft materials, Nat. Mater. 4, 729.
[3] S. K. Gottipati et al. (2020). Learning to navigate the synthetically accessible chemical space using reinforcement learning, Proceedings of the 37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Machine Learning, PMLR 119:3668-3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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