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G-WINDOW 처리영역 보기]
즐겨찾기  |  뉴스레터  |  오늘의 정보 회원가입   로그인
BRIC홈 동향
ACROBIOSYSTEMS
배너광고안내
이전
다음
스폰서배너광고 안내  배너1 배너2 배너3 배너4
BioLab 주재열 교수
전체보기 뉴스 Bio통계 BRIC View BRIC이만난사람들 웹진(BioWave)
목록
조회 4228  인쇄하기 주소복사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바이오통신원   
[PCR 돌려놓고 한 장] 스반테 페보 -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종합 이지아 (2021-05-14)

연구를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책에 있었는데, 연구를 하면서부터는 책이 읽히지 않았습니다.

연구실에서 일할 때는 모든 여유 시간을 논문 읽는 시간의 기회비용으로 느꼈습니다. 친구를 만나는 시간도 줄이는 마당에 책을 읽을 엄두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바이오 대학원생이라, 플레이트를 기계에 넣고 나면 잠깐씩은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런 시간에 논문을 읽었겠어요? 죄책감만 안고서 동료들과 매점을 가고 핸드폰을 했습니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점점 지쳐갔습니다.

졸업 후, 학계에 비켜서고 나서야 다시 책 읽을 생각이 났습니다. 과학 책을 읽으며 느끼건대, 저는 여전히 과학을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덧붙여 대학원생 시절 마음의 여유가 얼마나 없었던지도 깨달았습니다. 먼 곳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달려야 했습니다. 적어도 저녁에 PCR 돌리고 잠깐 쉴 때마저 죄책감을 느낄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함께 입학했던 연구실 동료들은 한창 연구 중입니다. 똑똑한 선배들은 벌써 학교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이 들리고요. 저는 운 좋게도 연구하는 사람들 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벤치 앞에 있는 분들을 보면 여전히 동료 같습니다. 이제 그분들께 해줄 수 있는 일은 함께 연구하거나 실험 기법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전환용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지만요. 그래서 PCR 돌려놓고 여유가 나면 잠깐 읽을 책 소개글을 준비했습니다. 책이 재미있어 보인다면 주말에 시간 내서 직접 읽어도 좋을 거예요.

 

이왕 하는 딴짓이라면 건전하게

이왕 하는 딴짓이라면 건전하게!

 

첫 책은, 스반테 페보의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원제: Neanderthal man: in search of lost genomes)>입니다.

책은 스웨덴 진화유전학자 스반테 페보의 연구 자서전입니다. 거창한 아이디어가 어떻게 실현 가능한 형태로 빚어지는지, 사이에 무슨 어려움이 겪었고 어떤 아이디어로 해결하는지 이야기합니다.

upload_image

학생 시절,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꿀 때 우리의 목표는 거창하고 추상적이었어요. ‘의식의 비밀을 풀겠다!’든지, ‘모든 암의 공통점을 찾아 치료하는 약을 만들겠다!’ 따위로요. 그러다 연구를 시작하며 목표가 바뀝니다. 좋게 말하면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하고, 나쁘게 말하면 규모가 줄어든 채로요. 두루뭉술하던 꿈이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가 되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한 사람의 과학자가 태어나는 여정입니다. 하지만 꿈은 꿈대로, 프로젝트는 프로젝트대로 갈라지는 삶에 회의를 느낄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런 분들께 책을 추천합니다. 책의 저자인 스반테 페보는 어릴 적 이집트 미라에 매료되었다가 박사 과정 때 분자생물학 기법을 고고학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30여 년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길을 개척한 끝에, 페보는 ‘고유전학 (paleogenetics)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서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분석에 성공합니다.

 

Svante Pääbo

Svante Pääbo - Wikipedia


책은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분자생물학 전공자라면 페보가 설명하는 실험을 바로 옆 벤치에서도 해볼 수 있을 거예요. 네안데르탈인 뼛조각에 적당한 프라이머를 붙여 PCR에 돌리고 클로닝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고인류 분자생물학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습니다. 만화에도 그렸듯 유전체가 진짜 화석의 유전체인지, 현대의 다른 유전체로 오염된 것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대장균이 증식하고 내놓은 DNA 절편이 네안데르탈인의 뼈에서 나왔는지, 뼈를 발굴한 고고학자의 땀에서 나왔는지, 실험하는 대학원생의 침방울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페보의 연구 일대기는 곧 현대인 DNA에 오염되지 않은 고대 DNA를 찾는 여정입니다. 실험실에서 오염 문제로 골머리를 썩여보았다면 페보의 어려움이 남의 이야기처럼 읽히지는 않을 거예요.

현대 분자생물학 실험 기법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아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저자가 처음으로 이집트 미라의 DNA로 논문을 출판한 시점은 1984년,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논문을 사이언스에 게재한 시점은 2010년이거든요. 그동안 플레이트를 뜨거운 물에서 미지근한 물로 옮겨가며 했던 PCR은 버튼 몇 번 누르고 한두 시간 기다리면 끝나는 실험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페보가 몇 안 되는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DNA를 조금이라도 더 모을 아이디어를 찾으며 알게 된 ‘피로시퀀싱’은 이제는 NGS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은 과학에 있어 연구 바깥의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줍니다. 훌륭한 과학자라고 하면 늦은 밤까지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거나 데이터를 보며 동료와 열띤 디스커션을 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좋은 과학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연구를 팔 줄 알아야 합니다. 연구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설득해야 연구비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특히나 페보의 연구는 고인류 유전체 분석, 돈만 있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 박물관을 다니며 고고학자들이 조심스럽게 발굴한 뼈를 훼손해야만 하는 연구였습니다. 페보는 기자회견을 열어 2년 안에 네안데르탈인 핵 게놈을 알아내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하기도 하고, 자신이 가입한 한림원의 이름을 빌려 한 국가의 여론을 뒤집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며, 자신의 연구 일대기를 자서전으로 낸 것조차 그의 연구 마케팅의 일부라고 느꼈습니다. 논문을 읽지 않은 저조차 이제는 스반테 페보라는 이름과 그의 네안데르탈인 게놈 연구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까요.

 

A Draft Sequence of the Neandertal Genome

A Draft Sequence of the Neandertal Genome | Science (sciencemag.org)

 

잘 모르던 분야의 대가의 자서전은 재밌었습니다. 유전체 서열로부터 고인류 집단의 이동이나 이종교배의 단서를 찾는 부분은 익숙하지 않아 어려웠지만, 나머지 실험 내용은 현장감 있게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생물학 전공자로서 분자생물학으로 고고학에 접근하는 그의 관점이 신선했습니다. 생물학 실험실과 선사시대 유적지는 제 머릿속에서 전혀 다른 범주에 있었으니까요. 페보와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제 글을 읽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이라도 연구는 익숙할망정 스반테 페보라는 과학자 개인의 삶을 읽는 재미를 느낄 겁니다. 저야 페보 한 사람의 목소리만 들었지만, 학계 내부를 잘 아는 분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아실지도요. 그걸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겠지요.


참고문헌

Green, R. E., Krause, J., Briggs, A. W., Maricic, T., Stenzel, U., Kircher, M., ... & Pääbo, S. (2010). A draft sequence of the Neandertal genome. science328(5979), 710-722.

  추천 6
  
인쇄하기 주소복사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이지아 (서경배과학재단)

실험은 기계한테 시키고 우리는 재밌는 이야기나 읽자고요!
오늘도 연구실에서 야근하는 모든 분들을 위한 기분 전환용 책을 소개합니다.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보기 >
[PCR 돌리고 한 장] 정종수 - 나는 연구하고 실험하고 개발하는 과학자입니다
저는 연구 경력이 길지는 않습니다. 학사 졸업 후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잠깐 있다가 진짜 연구를 하고 싶어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박사까지는 하지 않고 책상에서 하는 일이...
[PCR 돌리고 한 장] 스튜어트 리치 - 사이언스 픽션
브릭에 테드 창의 SF 작품집을 소개한 적 있었지요. 오늘 가져온 책도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똑같은 SF지만 SF 소설은 아니고, 과학의 탈을 뒤집어 쓴 픽션에 대한 논픽션입니...
[PCR 돌리고 한 장] 던 필드·닐 데이비스 - 바이오코드
지금으로부터 몇 달 전, 모 어플리케이션에서 무료로 유전자 검사를 해준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매일 선착순으로 신청자를 받아 검사 키트를 보내주는 이벤트였습니다. 개인 유전체 분석...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댓글 3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나들잉  (2021-05-14 22:59)
1
너무 재미있어요! 앞으로의 연재가 기대됩니다
카카오회원 작성글 강새*  (2021-05-18 09:33)
2
지금이야 고고학과 분자생물학이 오히려 밀접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지만 처음 이 융합을 고안한 것은 매우 번뜩이는 아이디어였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글을 읽고나니 책을 읽어보고싶어집니다!
카카오회원 작성글 김경*  (2021-05-22 13:15)
3
연구의 목표가 추상적이었다가 결국 narrow down 되어서 구체화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사실 어느새 너무나도 좁고 특이한 주제 하나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현타가 올 때도 있는데요... 한 개인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들 벽돌을 한 장씩 올리려고 붙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벽돌 하나 올리는 것만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요.
대학원 입학 전에 한 선배가 "연구 인생을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가 뭐냐"고 해서 "없다"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냥 실험이 재밌고, 다른 사람들과 지식을 나누는(때로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즐거워서 교수가 되고 싶었던 것 뿐인데 그랬던 제게 "그런 게 없으면 오래 하기 쉽지 않을 거야"라고 선배는 답했습니다. 결국 선배의 예언대로(?) 이렇게 석사로 탈출을 하긴 했지만 과연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제 친구들은 과연 무슨 목표를 품고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Cyclin은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Tim Hunt와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데, "무슨 목표로 연구를 했냐"고 묻자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cell cycle이 어떻게 조절되는지 너무 궁금했다"고 답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지?'라는 생각이 들만큼 막막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맥스웰의 악마(Maxwell's demon)를 불러내고 싶어집니다. DNA 절편들에게 인터뷰를 할 수도 없고,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구분해내야 할까요. 하지만 결국 치밀한 논리의 그물망을 직조해내어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는 언제나 쾌감을 선사함과 동시에 숭고미마저 느끼게 해줍니다. 요즘 회사에서 NGS 실험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 조상님뻘 되는 시대의 이야기라니 궁금해지네요..!
 
위로가기
동향 홈  |  동향FAQ
 |  BRIC소개  |  이용안내  |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BRIC. All rights reserved.  |  문의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유튜브 유튜브    RSS서비스 RSS
엘앤씨바이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