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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밖 과학읽기] 식물이라는 우주 (안희경 저/ 시공사)
Bio통신원(LabSooniMom)
내가 살고 있는 조지아는 겨울이 그리 춥지 않다. 그래서 가끔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것 같은 1월에 매화꽃이 핀다. 겨울과 봄의 경계가 모호한 이곳에서 ‘아 봄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건 노란 꽃가루 폭풍이 시작될 때이다. 사실 꽃 보다 나무가 너무 많아서 바람만 슬쩍 불어도 20미터가 족히 넘는 나무들이 노란 폭풍을 일으키는 것을 종종 본다. 한국은 일기예보에 미세먼지 농도가 나온다면 이곳은 일기예보에 꽃가루 농도를 이야기한다. 이렇게 식물이 많은 곳에서 식물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음에도 나는 식물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식물이라는 우주>를 쓴 이 식물학자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사실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가 블로그와 SNS를 통해서 식물 하는 과학자의 일상을 공유할 때면 핑크빛 플라스크의 세포와 바이러스가 다인 줄 알았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낯설지만 신기한 세계를 열어준다.
인큐베이터가 아닌 원예실의 화분에 뿌리내리고 자라는 식물들, 플라스크에 세포를 키우거나, 세포에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게 아닌 씨를 뿌리는 실험의 시작, 꽁꽁 얼린 세포를 나누는 것이 아닌 씨를 나누는 식물학자들의 과학은 목적은 비슷하지만 재료와 방법이 나의 그것과 다르다.
식물은 인간의 삶과 밀접하다. 인간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것도 식물이며, 인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해 온 것도 식물이다. 우리가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뜨거운 태양 아래 살아갈 수 있는 것도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것도 다 식물의 역할이다. 멘델의 완두콩이 유전학의 시작이었듯 사실 식물은 자신들의 생애를 통해 유전학의 영감을 불어넣었다. 씨가 땅을 뚫고 나와 싹을 틔우고 중력을 거스르는 생장을 하고 생식을 위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모든 과정에 수많은 유전자의 역할이 있다. 병원균에 대한 면역반응과 식물과 식물 사이의 신호 전달 그리고 온도, 습도, 염분, 빛, 물과 이산화탄소에 이르는 지구를 이루는 환경과 식물의 유전자의 역할은 감정을 표현하고 소리를 낼 수 있는 동물에 못지않게 역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저자는 이러한 식물의 삶을 유전자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길가의 잡초에 지나지 않는 애기장대가 모델식물로 그 수많은 유전자의 실험장이 되었고 식물 유전학의 근본을 바꾸어 놓았다. 저자는 매일 아침 멘델처럼 식물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 액체질소에 식물을 급속 냉동시켜 막자사발로 갈거나 끓여 걸쭉한 녹즙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실 녹즙에서 DNA를 추출하거나 단백질을 분리하면 그다음은 세포를 연구하던, 병원체를 연구하던 다른 생명과학자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
이 책을 읽고 그리고 작가가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글들을 읽고 부러움이 느껴졌다. 푸르름을 간직한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오랜 시간 쌓아온 식물 유전학의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정갈하고 깊이 있게 담아냄이 말이다.
노란 꽃가루들이 폭풍을 일으킬 때면, 화려한 꽃의 봄과 진푸른 여름을 지날 때면, 그리고 진한 가을색의 단풍들을 맞이할 때면 한 식물학자가 쓴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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