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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나만 이렇게 사는건지
종합 닥터리 (2021-03-18)

나만 이렇게 사는건지

© pixabay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그래도 육아와 집안일은 엄마의 몫이 크다.

맞벌이 집안에서 아이가 아플 때, 어린이집에서 참여 수업이 있거나 부모 상담이 있을 때 사실 아빠는 순간 걱정은 하지만 적극적으로 어떻게 해결할까 주체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적다. 보통은 엄마가 아이를 맡길 사람을 찾아보고, 병원 데려가거나 어린이집에 들를 시간을 쪼개느라 애를 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의 알림장 체크, 음식, 집안일은 기본이고 아플 때, 어린이집 스케줄, 병원 건강검진 모두 엄마인 내 몫이었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 생각하며 지냈다. 주변의 엄마들은 다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둘째가 돌이 막 지났을 때 갑자기 피부 가려움증이 생겼다. 좁쌀보다 작게 몸 여기저기 두드러기같이 났는데, 아토피라고 하기에는 생긴 모양이 달라 동네 병원에서는 바르는 연고와 항 히스타민제를 처방해주고 보습을 잘 해주라고 했다.

울 아들은 여기저기 가려우니 긁느라 잠을 잘 못 잤다. 성격도 예민해졌고, 짜증도 늘어났다.

특히 아이들은 땀이 많은데, 자다가 등에 땀이 좀 배이면 바로 가려움이 심해져 그 작은 손이 닿지 않은 등을 긁지도 못하고 짜증을 낸다. 남편은 아기의 낑낑대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지 잠도 잘 자는데, 신기하게도 내 귀에는 아들이 손으로 피부 긁는 소리가 귓가에 정말 크게 들려 눈이 번쩍 뜨인다.

결국 나는 자다 말고 아이의 등을 쓸어주고, 보습을 해 주고, 등, 허벅지, 배 등을 상처 안 나게 살살 긁어준다. 주변이 시원하면 가려움이 한결 잦아들기에 가려움이 심한 날은 아이를 아기띠에 매고 이불을 덮어 한밤중에 밖으로 나간다. 바깥 날씨가 제법 서늘해진 늦가을 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아무도 없는 아파트 놀이터를 아이를 안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그냥 걸었다. 약간의 흔들림과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탓에 우리 아들은 잠이 폭 든다. 이제는 잠들었겠지 생각하고 집에 들어오면 따뜻한 공기를 느낀 요 녀석은 바로 잠이 깨고 칭얼대 다시 놀이터로 나가는 것을 몇 번 씩 반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밤에 잠을 못 잤다고 해서 엄마와 아이가 낮 시간에 집에서 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린이집에서의 일상을 보내려면 밤에 잠을 잘 재워야 했다. 엄마인 나는 어른이니까 그래도 좀 버틸 수 있겠지 했다. 이런 날이 계속 되다 보니 너무 힘이 들어 결국 대학병원에 데리고 갔고 병원에서는 바로 입원을 시켜 항히스타민을 정맥주사로 맞으며 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아이가 입원하니 하루 이틀은 내가 병원에서 아기를 돌보고 있지만 일주일, 열흘 계속 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남편이 휴가 내기도 하고, 안되는 시간은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고, 밤에는 내가 병원에, 남편은 첫째 딸과 집에서 지내기를 2주간 겪었다.

누가 한 명 입원한 것 만으로도 온 가족의 삶이 함께 뒤흔들렸다. 연구실 일도 잘 안되고, 집안 살림도 돌보지 못하고, 몸은 고단하고, 가려워하는 아기를 보는 것도 안타까웠다. 일상의 고단함은 비할 것도 아니구나 싶었다. 그런데 소아 병동에 있다 보니 수술을 앞두고 있는 아기, 머리, 팔다리 등에 붕대를 감고 있는 아기, 만성 질환으로 지속적인 입퇴원을 반복하는 아기들을 보니 우리 아들은 잘 먹고, 열도 안 나고 겉으로 보기에 너무 멀쩡했기에 다른 아기들의 보호자 눈에는 우리 아이가 얼마나 부러울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내 문제에 매몰되어 내 상황만 바라보면 세상에서 내가 가장 힘든 것 같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지내고 있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일들을 겪는 경우도 많이 있음을 병원 안에서 새삼 알게 되며 입원기간 동안 이만한 게 다행이다라는 감사를 배우는 기회도 되었다.

병원 퇴원 후에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우리 아들은 3-4년 동안은 이런 원인불명의 알러지성 가려움증으로 종종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있었고 다행히 점점 크면서 증상이 상당히 호전되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입원 뿐 아니라 소소하게 병원에 갈 일이 자주 생긴다. 아이들은 꼭 새벽에 아프기 시작해서 결국은 아침에 병원에 들렀다가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 이런 경우 남편이나 나나 둘 중 한 명은 출근이 늦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우리 남편이 본인의 출근을 조정하려 애쓰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늘 본인은 그냥 당연히 출근을 한다. 공무원이라 반차를 내고 당당히 오후에 출근할 수도 있으련만 반차는커녕 월차, 연차의 개념이 없는 대학 연구실에 있는 나는 오늘도 연구실에 아이 병원 때문에 좀 늦겠다고 연락을 한다. 사실 교수님 다음으로 내가 랩에서 가장 선배이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자꾸만 아이 때문에 늦는다고 연락을 하는 이 상황은 내 마음을 참 불편하게 했다. 누구 하나 대놓고 내게 눈치 주지는 않지만 이렇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나 스스로가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진료받고 출근하려고 나는 이른 아침 동네에서 가장 빨리 여는 병원을 찾아 첫 진료 받으려 병원 문 열기 전부터 아기를 안고 문 앞에 서 있던 적이 많았다. 아픈 아기와 멀쩡한 아기 둘을 챙겨서 출근 준비를 다 하고 문도 열지 않은 병원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며 이미 아이들을 다 키우신 중년의 여자 의사 선생님은 아기 아플 때가 엄마가 젤 힘들다며 토닥여주시곤 했다.

솔직히 그럴 때마다 왜 내가 맨날 병원 데려가야 하냐고 불평 하지는 않았다. 그냥 당연히 이건 내 일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문제로 남편과 투닥거린 경우는 없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때 좀 더 남편이 적극적으로 함께 감당했더라면 한결 편했을 텐데 싶고, 남편도 충분히 함께 감당 할 의향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너무 나 혼자만 짊어지려는 마음이 있어서 상의하지 못하고 맡기지 못해 과거의 나를 내가 더 고생시킨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 남편들이 육아와 가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육아에서의 엄마의 몫은 절대적으로 크다. 내가 많이 떠안고 살아와서 그런지 후배들은 좀 더 남편과 육아의 짐을 나누어져서 좀 더 가뿐하게 직장맘의 삶을 감당했으면 싶다.

연구실에서의 삶은 일반 회사와는 좀 다르다. 출근해서 일정 시간 업무를 보고 퇴근하면 끝이 나는 일정이 아니라 어떤 실험은 시간별로 관찰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실험은 약물 처리하고 3시간 후에 다른 처리를 했다가 5시간 후에 다시 뭔가를 해 주어야 하는 실험도 있다. 척수 손상 동물모델로 치료제 개발을 하는 나는 매일 하루 두 번씩 한 달간 쥐에게 약을 먹여야 하거나, 아침 저녁 쥐 오줌을 누여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6시에 퇴근해 아이들을 픽업하는 일과는 절대로 펑크 내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에 나의 퇴근 시간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했다. 그래서 시간이 길게 걸리는 실험 스케줄이 있는 날은 새벽 6시에 미리 연구실에 가서 실험을 시작해 놓고, 다시 집에 와서 아이들을 챙겨 어린이집 보내기도 했고, 6시에 퇴근을 우선 한 뒤에 8~9시에 실험 스케줄에 맞추어 다시 연구실로 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실제로 내가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용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사실 우리와 같은 연구 관련 직종은 9시-6시라는 시간의 굴레를 지키라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어차피 일의 특성상 밤을 샐 때도 있고, 주말이던 새벽이던 실험 일정에 맞추어 알아서 진행하는 일인데도 지금까지도 우리 연구실은 9시 출근, 6시 퇴근은 당연하고 나머지 extra work은 연구자로서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다. 어제밤을 새웠어도 오늘 9시에는 당연히 연구실에 나타나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내가 가장 먼저 고치고 싶은 부분이다. 또한 논문을 쓸 때는 굳이 연구실이 아니어도 나의 작업 공간에서 writing에 집중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연구실 안에서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공대 연구실에서 만연해 있는 실상이기도 하다. IT 업계처럼 컴퓨터만 있어도 일이 되는 분야가 아닌 동물실과 각종 실험기기가 갖추어진 상황에서 연구하는 나와 같은 연구자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런 만큼 자유로운 시공간의 운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정해진 연차, 월차 등도 없이 일이 있을 때 아쉬운 소리를 하며 연구실을 빠져나와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내가 있는 이 공간은 대학 내 연구실이라 반은 학교, 반은 직장인 개념이기에 훨씬 더 그런 부분에서 보수적인 듯하다. 그리고 같은 건물에 있는 다른 연구실 보다 우리 연구실이 더욱 이런 제약이 심한 편이라 이런 환경이 늘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연구실 멤버들이 아플 때, 무슨 일이 있을 때 편하게 말하고 다녀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려 노력한다. 교수님의 고정관념을 바꾸지는 못해서 나는 당시 힘들게 아쉬운 소리 하며 눈치도 보며 그렇게 생활 했었지만 지금은 내가 허락하면 되는 연구실의 상황이니 그나마 분위기가 더 편안해져서 감사하고, 어느덧 교수님도 그러려니 하는 상황이 되어 지금이나마 조금씩 연구 환경을 더 좋게 바꿀 수 있는 역량이 내게 생겼음이 좋다.

어느 날 퇴근하고 늦을세라 종종걸음으로 집에 가는데 친구와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여유롭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세상 사람들은 나 빼고 다 여유로운가 보네. 나만 이렇게 여유 없이 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나는 매일 아침 아이 안고 어린이집 데려가면서 어깨에 아이 침 자국이 있는 옷을 입고 출근하는 경우도 많고, 아이 밥 먹일 여유조차 없는 아침에는 어린이집 가면서 입에 주먹밥을 넣어주고, 정작 나는 아침을 굶고 출근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떤 날은 새벽에 아이가 열이 나서 이불에 구토를 했고 출근전 이불을 빨아 널어야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세탁기를 돌렸는데 이불 사이에 있던 핸드폰까지 함께 세탁해버린 적도 있었다. 이렇게 나는 아등바등 살고 있는데, 세상사람들은 어찌나 여유로워 보이던지...

어찌 되었든 두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며 서로 번갈아 아픈 시절의 긴 터널은 지금 생각해도 벅찼던 기억이 많다. 게다가 1년에 두 번 돌아오는 상담과 부모 참여 수업, 각종 행사까지 합하면 한 아이 당 5-6번, 우리 집 아이들은 두 명이니 일 년에 10번 이상 평일 낮에 시간을 내야만 했다. 여름, 겨울 일주일씩 어린이집이 휴원하는 것까지 합하면 아이들이 아프지 않아도 아이들 케어 이슈로 감당해야만 하는 시간이 내게 요구되었다.

나는 선생님과의 상담을 맡고, 남편은 부모 참여 수업 담당하고, 여름, 겨울에는 결국 연구실에 사정해서 휴가를 내고, 그 김에 또 가족 여행도 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상황 되는대로 메꾸며 살아왔던 시간을 돌이켜보니 나를 위해 쉬어본 적이 없구나 싶어 맘이 안 좋기도 하고, 연구실에 휴가 요청할 당시에는 늘 비굴한 기분이 들었더라도 그 덕에 우리 아이들은 엄마와의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었으니 그걸로 족하다며 툭툭 털어버리자는 생각도 든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세상에 불평도 하며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아이들을 키우며 그냥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는 시절도 있는 것이 아닐까? 나만 그런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의 직장맘들은 이렇게 아등바등 자녀를 키우고 있다. 나름 자기의 상황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서 말이다. 이 또한 내가 선택한 인생이니 내 방식으로 잘 감당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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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 (필명)

신경생물학을 전공하고 현재 연구교수로 척수손상과 척추관협착증 치료제 개발을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본 연재를 통해 박사과정부터 시작된 저의 두 아이 육아 에피소드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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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3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카카오회원 작성글 김자*  (2021-03-18 18:48)
1
아이둘 키우면서 실험하는 비정규직 연구원 입장에서 너무 공감 됩니다^^ 우리들도 연차 월차 비굴해 지지않고 미안해 지지않고 당당하게 쓰면 얼마나 좋을까요? 응원합니다~!
회원작성글 woman11  (2021-03-19 08:29)
2
저도 공감해요.
어른께 아이 맡기고 나와야하는데..늘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미안하고
연세드신 어른들께서 점점 나이드시는게 보이는데 정말 죄송할 따름이예요..
아직도 육아휴직도 못쓰는 분위기라..너무 슬프네요
회원작성글 kwisin  (2021-04-19 16:34)
3
정말 제 얘기 하는줄 알았네요. 아이가 실수한 이불과 제 핸드폰을 같이 세탁기에 넣어 돌린것 까지 어쩜 ㅠㅠ 바쁜와중에 AS 센터도 가야하고 정말 너무 서글픈 날들이 많아요... 애가 크면 또 그만큼 더 바빠요. 아이들이 원하는것도 더 많아지고, 늘 뭐가 옳은지 모르겠고 나만 갈아넣음 되는건가 싶고...좀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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