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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 많은 대학원생의 피땀눈물] 안녕하세요, 랩장입니다
오피니언 변서현 (2021-02-02)

연구실 사람들의 엄지척은 랩장을 기분좋게 합니다

(연구실 사람들의 엄지척은 랩장을 기분좋게 합니다. © https://www.labmanager.com/leadership-and-staffing/ask-linda-staff-training-1893)

 

‘랩장’이 된 지 6개월 정도가 된 것 같다. 함께 대학원에 입학한 다른 동기들에 비해 조금 늦게 랩장이 되었다. 연구실 내의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선배들이 모두 2년 가까이 랩장의 일을 마친 후에 그 역할을 물려받았다. 지난 글에서 랩장에 대해 언급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 글에서는 아예 ‘랩장’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아마 ‘랩장’이라는 직위(또는 역할)는 이공계 연구실에만 존재하는 부분일 것이다. 교수와 학생이 일대일로 만나는 경우가 많은 인문사회계 연구와 달리, 한 명의 교수님 아래 여러 학생이 모여 연구실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학생들과 교수님, 그리고 연구실의 삼각형 가운데 놓이는 역할이 랩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보통 중간 연차의 학생이 맡고, 연차 순으로 물려받는다. 박사후연구원이 많은 연구실에서도 대학원생이 랩장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럴 때는 ‘장’이지만 나이가 아주 어린 축에 속하기도 한다.

‘랩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의를 내리기가 애매하다. 학과에서는 ‘대표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역할이 학생회장이나 학내의 학생대표와 같이 대의민주주의적 의미의 ‘대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실에서 랩장이 하는 일을 생각해보니, 생각보다 정말 많고 다양하다. 랩장이 하는 일을 목록으로 작성하는 데에도 한참 동안 고민해야 했다.

랩장이 하는 일 중 제일 중요한 것은 교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규모가 큰 연구실일수록 그 역할이 아주 중요해지고, 작은 연구실이나 교수님이 젊은 경우 교수님과 학생 간의 직접적인 대화가 많다. 구성원이 많으면 모든 사람의 의견을 일일이 듣기 어렵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표 한 사람이 의견을 수합해 전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또 주니어 학생들의 경우 선배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편할 수도 있고 말이다. 연구실 미팅과 행사 등 일정을 정하는 일부터 연구실 예산이나 공간 활용의 문제 등에서 랩장과 교수님이 함께 결정하는 일이 많다.

교수님을 제외하고 이루어지는 연구실에서의 일들도 랩장이 반드시 투입된다. 교수님이 직접 컨트롤하지 않고 연구실 공간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결정하도록 위임한 내용들을 주로 랩장이 컨트롤해야 한다. 청소 구역이나 구매 담당 정하기 등 연구실 내 구성원이 나누어 하는 맡는 업무를 분배하는 일이나 쓰레기를 버리는 방법, 장비의 배치와 운영, 연구실에서 관리하는 자산이나 재고를 관리하는 일 등이 모두 포함된다. 장비가 고장 났을 때 가장 먼저 랩장에게 공지하고 수리를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하며, 비싼 시약을 구매해야 할 때도 랩장과 상의하곤 한다. 지난 글에서 연구실 대청소를 하는 것도 랩장인 필자가 공간 재배치를 모두 구성하고 지휘했다. 필자의 연구실은 실험동물을 다루니 우리 연구실의 마우스 현황도 랩장이 매주 확인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랩장이 연구실 운영에 대한 결정 권한의 일부를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교수님들도 랩장의 권한을 꽤 많이 인정해주시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연구실의 경우 안에서 발생한 구성원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랩장이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각 구성원의 의견을 듣고, 각각의 의견을 다시 전달하고, 조정된 의견을 또 받고, 결론을 또 전달하는 식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연차가 어느 정도 있어 연구실의 분위기와 작동 방식을 잘 알고 있고, 졸업이나 논문 제출을 앞두지 않아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없는 중간 연차의 학생이 랩장이 되어 ‘조정자’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아무래도 박사가 되는 길에는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추진해 나가는 능력이 가장 필요하겠지만, 책임연구자로서 동료와 공동체 안의 갈등을 조정하고 본인의 소속된 시간과 공간을 ‘관리’하는 능력 또한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기에 학위를 하는 기간 동안 랩장을 한 번씩 맡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랩장이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중재와 조정의 역할을 주로 맡고 실행은 연구실 구성원에게 골고루 분배되어야 랩장의 업무 강도가 과도해지지 않는다. 많은 연구실에서 랩장이 일종의 넘어야 할 산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랩장이 지나치게 많은 일을 직접 처리하기 때문이다. 교수님을 포함한 연구실 구성원들이 랩장의 책임과 권리를 존중하고 신뢰한다면 좀 더 연구실이 부드럽게 운영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반대로 랩장이 과도한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고년차 선배들이나 교수님이 그 권한을 제어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주로 나이나 학번에 의한 위계를 체화하고 있는 사람이 랩장이 되었을 때 그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데, 구성원들의 정신건강이나 연구실의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이런 부분은 반드시 통제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사실 행정적인 부분에서는 ‘대표 학생’으로서 수직적 전달방식의 중간에 끼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 편이다. 연구실 내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분과는 수평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편이지만, 학과 행정팀에서는 학과의 모든 학생에게 전달해야 하는 내용들이나 수집해야 하는 의견들을 랩장들에게 일괄적으로 전달하고 연구실 내 학생들의 의견을 모두 모아오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학과 단체복의 색깔부터 분석프로그램의 수요, 학기마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 등을 직접 수합하지 않고 대표 학생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방학 때마다 있는 학부생 대상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연구실을 소개하고 인턴을 가르치는 일들도 랩장이 다녀와야 한다. 또 학과 자산인 장비를 전수 조사하는 일을 랩장에게 맡기는 바람에 몇 날 며칠을 그 일에만 매달리기도 했다. 덕분에 행정팀 직원분에게 “이건 학과에서 직접 해결하셔야 합니다.”라는 메일을 보낸 적도 있다. (할 말을 해야 하는 성격이라 큰일이다.) 학생들과 교수님의 공동체인 연구실 안에서는 ‘대표’로서의 역할이 있는 것이 맞지만, 학과 행정팀과 학생 간의 관계는 교육 서비스의 제공자와 소비자의 관계이기 때문에 대학이나 학과에서 ‘대표 학생’을 대하는 시선이 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역할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했지만, ‘랩장’이 영어로 어떻게 번역되는지조차 찾아내지 못해 포기했다. 해외 연구실 경험에 대한 한국인들의 글을 몇 가지 찾아보니, ‘랩장’의 개념이 아예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연구실 비서(Secretary 또는 manager)의 역할이 분명하고 전문성을 띄고 있어 랩장의 일을 그 사람들이 전담하고 있는 것 같다. 학생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이 정확하게 나뉘어져 있어 랩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연구실 비서’의 개념이 정의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일을 학생들이 나누어 하다 보니 ‘랩장’이라는 역할이 생긴 것이 아닐까.

랩장을 6개월 정도 경험해보고 나니, 연구실 선후배들이나 교수님과 대화가 늘어난 것이 필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점이다. 막내일 때 고쳐보고 싶었지만 고치지 못했던 규칙이나 관습도 랩장이 되어 바꿀 수 게 된 것도 속이 시원하다. 그동안 랩장이었던 선배들을 보고, 랩장이 된 자신을 관찰하면서 이 작은 사회에서 어떤 ‘대표’여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부드럽고 안전하게 이 공동체를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 역할을 잘하고 못하는 것과 관계없이, 내가 이 역할에 맞는지 생각해보면서 졸업 후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함께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랩장 생활을 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 좀 더 랩장을 할 것 같은데, 크게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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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서현 (포항공과대학교 융합생명공학부 석박사통합과정)
논문으로 이미 출판된 지식이 아닌, 지식이 만들어지는 연구의 과정을 현장의 연구자이자 대학원생인 필자가 경험을 토대로 소개합니다.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 연구자들 간의 대화 등을 소재로 한국의 연구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작은 의견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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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동물연구  (2021-02-02 13:58)
1
랩장이라는 중간 완충제 같은 사람이 있으면 그나마 좋은 연구실이다. 박사와 단둘이 일 하는 곳은
정말 답답하다. 실험초보자가 이런저런 질문을 꼬치꼬치 물어볼 때도 여간 부담스럽다. 면박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다. 전공과 무관한 사람을 채용하면 더욱 그렇다. 비빌 언덕은 고사하고 같이 일할 동료도 없이
일 하려니 차라리 실험동물과 그나마 일 할 때가 그나마 편하다. 인원이 너무 없어도 문제이다.
왜냐하면 나 한테 독박케어나 독박 실험일을 내가 다 하고 내가 욕먹고, 내가 책임져야 하니 스트레스는 보통이 아니다. 실험을 배우러 진행하려는 꿈을 아예 박살내버린다. 그냥 실험이라면 학을 떼고 아예 다른 분야로 취업한다. 업무가 업무로 끝나는게 아니고 스트레스로 계속이어지다 보니. 불면증이 찾아온다.
회원작성글 몽장군  (2021-02-09 23:38)
2
좋은글 읽고 갑니다 랩장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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