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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연구자로서의 고민
종합 닥터리 (2021-01-27)

연구자로서의 고민

© Pixabay


대학원 다니면, 특히 박사과정을 하면 누구나 이렇게 물어본다.

“졸업하면 뭐 할 건데? 교수하려고?

많은 사람들은 박사학위를 받으면 십중팔구 교수가 되는 건가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공통의 목표인 “교수 되기”를 이루지 못하면 뭐 별거 아니네 이런 생각을 많이들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이런 질문을 특히 많이 받았고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는 더 많이 받은 것 같다. 

나도 외국에서 포닥을 하고 들어와 어느 대학에 원서를 내서 조교수 자리를 구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이를 놓고 혼자 해외 포닥을 하러 기약 없이 떠나는 것도, 남편을 놓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공부하는 것도 내가 선택하고 싶지 않은 길이었기에 나는 워킹맘으로 가족들과 딱 붙어 지내면서 국내에서 연구자로 자리매김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도 물론 교수로 지원할 수도 있지만, 교수로서의 삶이 전부인가라는 의구심이 늘 마음 한켠에 있었다.

어떻게 나는 연구자로서 자리매김을 하지? 이 부분이 내 삶에 가장 큰 화두였다.
나는 박사과정 때부터 있던 연구실에서 박사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던 상황이라 어떻게 보면 나의 삶은 그저 박사과정의 삶의 연장선으로 생각되었고, 주변 사람들도 내가 어디 갈 곳이 없어서 아직 연구실에 남아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인식으로 나를 대할 때가 많이 있었다.

“언제까지 이 연구실에 있을 거야?”
“어디 좋은 자리 알아보고 있어?”
심지어는 친정엄마조차 “이제 졸업했으니까 박사학위 가진 사람 뽑는 공무원 자리 있으면 그거 시험 봐서 들어가는 게 어때?” 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졸업해서 뭔가 연구자로서 살아보고 싶은데, 연구를 내려놓고 공무원 시험을 보라는 말씀이신 것이었다.

사실 우리 친정엄마는 박사과정 시절 나에게 자주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너 박사과정 들어간다고 할 때 말렸어야 했는데…” 
“그 고생이면 대학 시험을 다시 봐서 의대를 가서 의사가 충분히 되고도 남았겠다.”

그런데, 이 말을 잘 들어보면 결국 이런 결론이 나온다.

연구자 << 교수 << 의사 or 공무원

참 웃픈 현실이다. 이게 바로 생명과학 연구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인가?

아마 우리 분야 대학원생들이 이 글을 보면 많이 공감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가 연구실 생활은 3D 업종이라 하니 말이다.

• 힘들고 (Difficult) – 실험하고, 논문 쓰고, 과제 쓰고, 연구비 정산하고, 후배 가르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함. 주말이든 새벽이든 세포나 실험동물의 스케줄에 맞추어야 함.
• 더럽고 (Dirty) – 매주 동물실 청소하고, 감염성 폐기물 박스 버려야 하고, 매일 척수손상 준 쥐의 방광마사지 함.
• 위험한 (Dangerous) – 강산, 강염기, 방사선 동위원소, 바이러스 등 위험한 시료를 취급하고, 흡입마취약을 사용하고, 장시간 현미경을 보면서 강한 빛을 눈에 쪼이기도 하고, 동물 실험 시 날카로운 수술 도구 사용, 쥐에 물리는 경우도 있음.

사실 다 맞는 말이다.

그만큼 연구실에서의 삶은 몸과 마음이 고된 일상이 많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기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도 주변 지인들이 엄연히 성격이 다른 “연구자”와 “공무원”과 “의사”를 비교하는 현실을 보면서, 그리고 그런 말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말하는 것에 나 스스로 내가 너무 별 볼일 없는 길을 걷나보다... 이런 맘이 들어 위축된 적이 많이 있었다. 결국 연구자로서 살면서 “교수”가 되지 않는 한, 아니면 KIST 같은 국가기관 연구소의 일원이 되지 않는 한, 사람들의 시선은 늘 자신의 길을 정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인가. 그럼 나는 그 위치를 목표로 살아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걸까? 

나에게는 이 질문이 늘 가슴속에 있었다.

난 아직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 길이 좋은 것이라고, 옳은 길이라고 말해주니까 그 꿈을 꾸어야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사실 박사과정 시절에는 그저 졸업하는 것에 급급했고,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분명 어떤 길이 짜잔~ 하고 나타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실험을 잘하고, 논문 쓰고 졸업할지 이외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고, 이제야 진로에 대한 고민들이 머리를 들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강의 경험을 쌓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들어 시간강사 자리를 알아보았다. 물론 연구는 하면서 주 1회 강의를 나가는 조건을 알아보았고, 운 좋게 대학원 강의 기회가 주어졌다. 

강의 주제는 이명과 난청의 기전 연구 관련한 내용이었다. 척수손상과 뇌졸중 연구를 하던 나에게 귀의 해부학적 구조와 이명/난청 병리기전은 전혀 생소한 내용이라 해부생리학 교과서부터 보기 시작했다. 내게 주어진 강의 미션은 3강까지는 전체적인 이명/난청의 해부학, 분자생물학적 병리기전에 대해 강의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최근 논문을 선별하여 대학원생들이 발표하고 내가 코멘트해 주는 것이었다.

연구실에서는 실험과 논문, 과제와 보고서 작성에 빠듯했기에 강의 준비는 집에서만 해야 했다. 1살, 4살 두 아이를 돌보는 엄마로서는 퇴근 후 어린이집에서 픽업하고, 바로 밥 먹이고, 놀고, 책 읽어주고, 씻기고 하다 보면 10시가 넘어간다. 

우리 집 아이들은 체력이 좋아서인지, 엄마 아빠와 더 놀고 싶어서인지 다른 집 아이들처럼 9시면 눈이 감기고 곧 쌔근쌔근 잠드는 아이들이 결코 아니었다. 10시는 기본이고 11시가 훌쩍 넘겨 잠이 드는 날도 꽤 많았다. 특히 둘째인 아들은 몸으로 격하게 놀아주어야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잠이 드는 아이라 늘 저녁 시간에 나의 에너지를 다 끌어다 쓴다. 

내가 잘 아는 분야를 강의하는 것이 아닌 터라 기초부터 공부할 것이 많았고, 적어도 3강까지는 이명과 난청에 대한 최근 논문을 전체 리뷰하고 설명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빨리 재우고 일을 하려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컴퓨터 앞에 10분 이상 앉아 무엇을 한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11시가 넘고, 긴 하루를 보낸 나는 다시 일어나 컴퓨터를 켜는 것이 정말 힘이 들었다. 결국 밤에 하는 것을 포기하고, 깔끔하게 아이들을 재우며 나도 함께 잠을 잤다. 그리고 새벽 4시에 일어나 강의 준비를 했다. 지하철에서 보려고 원서를 사진 찍어서 출퇴근 시간에 읽기도 했고, 강의 연습하는 것을 녹음해서 시간날 때 들으면서 내용을 머리에 정리했다.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하면서 사실 너무 힘이 들기는 했지만, 강의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또한 대학원생들이 연구의 가설을 세우는 것과 이를 증명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부분을 함께 논의하면서 학생의 연구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연구를 디자인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뿌듯한 시간이었다.

그 다음 학기에는 다른 학교에서 학부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인체해부학이었다. 한 학기에 인체해부학 책 한 권을 강의해달라고 요청을 했고, 나는 학교에서 지정해 준 교과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번 강의는 대학원 강의처럼 함께 논의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방적인 강의 형식이었고, 한 주 2시간 강의를 위해서 나는 10시간이 넘게 공부를 해야 했다. 내가 완전히 이해가 가야 강의할 수 있기에 밤 12시에 잠이 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 강의 준비하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 강사로 학교와 계약을 하고, 강의를 몇 학기 해보니 이번 학기에는 이 과목을, 다음 학기에는 저 과목을 맡아 그때마다 새롭게 강의 준비를 해야만 했고, 내가 시간 강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업인 풀 타임 연구가 있기 때문에 특정 과목을 여러 학교에서 강의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실제 강의를 해보면서 느낀 점은 많은 학생들을 상대로 이론 강의를 하는 것보다 같은 주제로 연구하는 연구자들과 심도 있게 실험을 디자인하고 결과를 논하는 것이 내게는 더 적성에 맞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웃픈 현실은 내가 연구하는 것에는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지인들이 시간강사를 맡게 되면서 나를 대견하다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학부생 강의보다 학회 발표장이 더 내게 의미가 있고, 강의 준비 시간에 좀 더 내 연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더 어울리는 옷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약 2년간의 시간 강사의 경험은 추억이 되었다. 

나는 우선 어느 타이틀을 목표로 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연구를 디자인하고, 그것을 증명하고, 세상에 제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연구자로 좀 더 성장하기로 했다. 내가 성장하다 보면 지금 보이지 않는 어떤 길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현재 내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에 좀 더 에너지를 투자하기로 했다.

아직 진로 고민은 끝이 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것은 평생 나의 숙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아직은 햇병아리인 엄마 과학자로서 정체성을 찾기 위한 나의 진로 탐색 여정은 아직 진행 중이다.

  추천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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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 (필명)

신경생물학을 전공하고 현재 연구교수로 척수손상과 척추관협착증 치료제 개발을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본 연재를 통해 박사과정부터 시작된 저의 두 아이 육아 에피소드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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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3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카카오회원 작성글 류윤*  (2021-01-27 11:18)
1
같은 고민을 하는 일하는 엄마로써, 공감하는부분이 있네요.
저는 둘째는 꿈도 못꾸지만,
아이둘을 키우면서 연구자로서의 길을 간다는건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고될지 느낌이 옵니다.
힘내세요.
당당한 엄마연구자의 모습이 대견합니다.
친정어머니께서도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네요.
회원작성글 link94  (2021-01-28 13:59)
2
타이틀을 목표로 하지 않고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한다고 하신다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간과할 수 없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주변에서 얘기하는 것들이 누구나 아는 뻔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사연이 있고 각자 처해있는 환경이 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복잡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해하고 인정해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 또한 위험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양심을 우선하여 연구하고 개척할 수 있다면 정말 뿌듯하겠지만
그 길에 또한 동일한 방해요소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좇는 것과 함께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본인의 길을 꿋꿋이 나아가는 것이 어찌 보면 연구자의 숙명인 것 같습니다.
회원작성글 triangles  (2021-03-18 12:10)
3
이상과 현실의 이격이 큰 만큼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느냐가 어려운 숙제임은 확실한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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