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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책 편지] 식물, 우리에게도 지능이 있을까요?
Bio통신원(예린)
이과생을 괴롭힐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유사 과학 얘기하기가 있죠. 이미 ‘밈(meme)’화 되어버린 유사 과학 이야기들이 나올 때마다 괴로워하는 친구들을 실제로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그 친구들이 생명과학 전공자라면 ‘모짜르트를 듣고 큰 식물 이야기’ 나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 식물 이야기’를 해 주세요. 다른 유사 과학 이야기를 해 줄 때보다 훨씬 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식물에게 클래식 음악과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더 잘 자란다는 이야기는 어쩌다 세상에 나오게 된 걸까요.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게 된 걸까요? 그건 아마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인간은 분명 귀로 파장의 조합을 듣고, 그 감각을 처리하고, 때로는 감정적인 영향도 받으니까, 인간이 아닌 다른 종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기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결과이겠지요. 식물에게는 귀가 없는데, 식물은 소리를 듣고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스테파노 만쿠소는 ‘식물의 감각과 지성’ 에 대해 연구하는 과학자입니다. 피렌체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고, 각종 저작, TED talk 등을 통해 대중에게 본인의 연구 주제 내용을 나누기도 하지요. 주 연구 주제는 ‘식물지능학’이라는, 아직은 논란에 가득 찬 이름의 분야입니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 는 관련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식물의 감각, 활동, 그리고 지성에 대한 이야기지요.
책에 있는 내용들은 대부분 우리가 배웠던 내용들입니다. 굴성, 원형질연락사, 발아와 생장 등등 귀에 익은 용어와 내용이 가득해 내용 자체가 매우 신선하거나 새롭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가 이미 이만큼이나 많은 내용을 알고 있는데도 우리의 식물에 대한 평가 정도는 크게 편향되어 있다는 것을 짚어 주는 저자의 논조 덕분입니다.
일반생물학 과정이 기억나시나요? 생체 분자에 대한 인트로로 시작해서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을 다루고, 유전과 진화, 분류를 거쳐 동물생리, 식물생리를 다루고 생태로 마무리합니다. 에디션에 따라 순서가 다를 뿐 큰 얼개와 각 단원 별 구성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호르몬, 소화, 감각, 신경, 운동 등으로 세세하게 나뉘어 있는 동물생리학과 다르게 식물생리학 부분의 양은 늘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동물에 비해 밝혀진 내용이 많지 않아서, 라는 이유를 듣고 넘겼지만, 왜 식물에 대해서는 밝혀진 내용이 그렇게 적을까요? 혹시 우리를 기준으로 두고 식물을 파악하려 했던 것이 그 이유 아니었을까요. 책에서 처음부터 명시하는 것처럼, 식물은 특정 기능을 위한 장기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로 기능하는 동물과는 다르게 각 부분이 독립적인 모듈로 기능하는 개체니까요. 동물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식물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큰 차이가 있지요.
책의 내용들은 모두 위 논조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동물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식물을 대하느라, 얼마나 식물의 세계를 단순하게 평가해 왔는지요. 저자가 설파하듯 식물은 여러 개의 지휘본부를 보유하고 있는 하나의 네트워크 구조와 같아서, 각 부분이 각각의 인터넷 노드처럼 기능할 수 있고, 이 덕분에 일부를 제거하더라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독특한 구조를 바탕으로 식물은 인간과는 다른 감각 체계를 발달시켰고, 세상에 적응하고, 외부와 의사소통을 하기도 하죠. 기능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이들에게 동물과 동일한 기능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식물은 심장이 없지만 순환계를 갖고, 폐가 없지만 호흡을 할 수 있으며, 입이 없지만 섭식을 하고, 위장이 없지만 소화능력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뇌는 없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또한 타당한 말이겠지요. 우리의 뇌는 신체에서 분리되면 기능할 수 없고, 사고하고 반응하기 위해 인체 다른 부분에서 입력된 감각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식물은 인지기능과 신체기능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세포 안에 존재하는데,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AI 분야에서 말하는 embodied agent와 유사한 개념입니다. 비록 인지를 담당하는 분리된 장기는 없지만, 몸통 전체로 세상과 상호작용하고 있으니까요. 식물세포는 중력, 기온, 전기장, 압력, 진동 등과 같은 우리가 처리할 수 없는 다양한 정보를 받아 처리하고, 다른 데이터처리센터들과 연결되어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적합한 생명 활동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작가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챕터에서 상당히 독자를 겸허하게 만드는 내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식물을 연구하다 보면, 정확히는 식물의 지능을 연구하다 보면, ‘인간이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생물체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게 된다는 부분이지요. 우리 인간은 바로 옆에 진화사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고, 같은 세포 구조를 공유하며, 같은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식물을 두고도 우리와 다른 지능을 상상하지 못하는데, 설사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를 찾아낸들 알아볼 수는 있겠냐고, 이들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진화했을 텐데 같은 의사소통 수단을 쓰고 같은 시스템을 이용할 리 없지 않겠냐고 묻는 작가를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이 생각이 비단 인간이 아닌 종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겠지요. 아, 머릿속을 맴도는 연구 주제를 놓고 봐도 뼈아픈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자기반성을 수반한 깨달음도 좋지만, 흥미로운 사실들이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식물이 클래식에 반응해서 더 잘 자란다는 이야기는 유사과학이지만, 실제로 식물은 땅을 매질로 삼고 음파를 포착해서 ‘소리’에 반응한다고 하네요.1) 음파에 식물이 노출되면 유전자 발현이 촉진된다는 결과는 참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과학자인 저자는 오독을 막기 위해 생장에는 음악의 종류가 아니라 주파수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그리고 특정 Hz의 주파수는 오히려 식물의 생장을 억제한다는 것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누군가 모짜르트 얘기를 하면 음악의 장르가 아니라 주파수가 중요하다고 말해줄 겁니다.) 인간이 혈연 중심으로 관계를 구축하는 것처럼, 식물 또한 모계가 같은 식물들끼리는 지하에서 영토 전쟁을 벌이는 대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남는 에너지를 더 지상부에 투자한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습니다. 벌이 식물의 수분을 돕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벌은 하루 동안 아침에 처음 방문한 종의 꽃만을 계속 방문한다는 ‘장소충실성’ 은 식물의 입장에서 그 이유를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꿀을 획득하는 것만이 벌이 수분을 돕는 유일한 이유라면, 벌이 굳이 꽃의 종을 가려가며 꿀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자연과학 도서들을 읽다 보면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어 즐거운 경우도 있지만, 이 책처럼 관점을 새로이 넓히게 되어 즐거운 경우도 있는데요. 양 쪽 모두 분명히 가치 있는 독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책을 들고,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식물의 입장에서 인간의 관념을 한 번 평가해 보는 건 어떨까요?
ps1. 저자는 TED 등의 대중 강연 역시 진행하며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TED talk을 통해 식물들의 움직임을 ‘인간에게 익숙한 시간 개념’에 맞춰 관찰하다 보면, 책의 내용이 조금 더 직관적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Ps2. 해당 책은 다양한 레퍼런스를 달아 놓았는데요. 해당 논문들을 찾아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지적 탐색이 될 것 같습니다. 레퍼런스 중 식물이 진동 파장에 반응해 생장을 달리한다는 논문은 분량도 짧고, 한 눈에 들어오는 직관적인 figure도 있으니 한번쯤 훑어보셔도 즐거울 것 같습니다. 아래 해당 논문 레퍼런스를 첨부합니다.
Reference
1) Gagliano M, Mancuso S, Robert D. (2012) Towards understanding plant bioacoustics. Trends in Plant Science 17 (6): 323-325.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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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의 힘을 믿는 연구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몸속 도구들이 생명을 만들어내고 삶을 조절하는 것에 매료되어 생명과학 연구의 길을 걷게 됐고, 연구를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어 과학커뮤니케이션에 발을 디딘 사람. 우리가 하는 연구의 본질도 결국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고 이를 전달하는 데 있다고 믿는, 갓 박사를 단 새내기 연구자가 전하는 연구 활동 중 마음에 울림을 준 이야기와 책에 대해 나누는 감상들. 여러분의 곁에는 어떤 책들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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