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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위한 과학 책 산책] 이거, 정말 '병원에 갈 만한' 일일까?
오피니언 조희수 (2020-11-13)

“과학자를 위한 과학 책 산책”은 과학자가 아닌 필자가 과학 책을 읽고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보내는 글입니다. 과학 책에 담긴 지식을 압축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발견하여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사회는 과학에 어떠한 요구를 하고 있고, 과학은 앞으로 사회와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까요? 앞으로의 글을 통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이거, 정말 '병원에 갈 만한' 일일까?

피터 콘래드 지음, 정준호 옮김,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후마니타스, 2018).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몇 년 전쯤 극심한 불안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밥을 먹으려고 해도 밥이 잘 넘어가지 않고, 몸은 늘 긴장한 상태였다. 작은 자극에도 심장이 떨어질 것 같았고, 몸은 축 처지고 팔 어딘가가 저릿저릿했다. 이러다간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결국에는 약을 처방 받기 위해 병원에 찾아갔다. 병원에 들어서서 증상을 설명하자 심리 상태를 자가 검진하는 측정 검사표를 받았다. “신경이 극도로 약해져서 몸과 마음을 가눌 수 없다.” “손에 쥐가 나거나 저려서 고생한다.”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 진단 검사의 문항에 체크하면서 양면적인 감정이 들었다. 내가 지금 병원에 와서 진료를 받고 약을 먹을 정도일까? 꾀병 부리는 엄살쟁이가 된 건 아닐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측정 검사표의 문항들, 병원의 편안한 분위기,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눈길이 나를 위로한다고 느껴졌다. 불안한 마음과 축 처진 몸을 진단명에 기대고 싶었다.

이 주 정도 약을 먹자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었다고 느껴졌고, 더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상태가 좋아진 건 기뻤지만 또 다시 의구심이 들었다. 이렇게 빠르게 좋아질 일이었다면, 내 경우는 '병원에 갈 만한’ 일은 아니었던 걸까? 내가 겪었던 문제는 정말로 의학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어느 정도 약효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건 나의 착각일까? 아니, 병원에 ‘갈 만한’ 정도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현대인들이 자신의 심리 상태를 ‘치료하거나 개선해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병원을 찾는다는 점을 떠올리면, 나의 경험이나 이상의 의문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꽤나 있을 듯하다. 요즘에는 불안이나 우울 외에도 아스퍼거 증후군,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PTSD(외상후스트레스 장애) 등 예전에는 존재조차 잘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병의 이름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전보다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 덕에 나도 병원에 찾아가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도 그러한 변화의 수혜자(또는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주 병원에 가고, 이전에는 병원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병원에서 일어난다. 인간의 생로병사도 그중 하나다. 대부분의 임신부는 임신을 하게 되면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산전 관리를 받고, 태아나 산모의 생존과는 직결되지 않는 태아의 성별이나 기형도 산부인과에서 알 수 있는 문제로 여겨진다. 겉보기에는 건강한 사람도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각종 검사를 받고, 노화를 늦추거나 능력을 증강(enhancement)할 수 있다는 치료를 받기도 한다. 한국인의 대부분은 집이 아닌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한 기사에 따르면 2019년에 사망한 이들의 대부분(76.2%)은 병원이나 요양병원 등의 의료기관에서 사망했고, 가정에서 사망한 비율은 14.3%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1

 

피터 콘래드 지음, 정준호 옮김,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후마니타스, 2018).

피터 콘래드 지음, 정준호 옮김,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후마니타스, 2018).


이렇게 우울이나 불안, 출산이나 피임, 월경, 감정 기복, 노화, 탈모 같은 삶의 일상적인 과정은 물론 섭식 장애, 성/젠더 차이, 학습장애, ADHD, PMS 등의 ‘일탈’ 등, 이전에는 의학의 영역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문제가 새로이 의학적인 문제로 정의되고 의료 전문가나 약물을 통해 치료되는 과정을 “의료화(medicalization)라고 한다.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의 저자인 피터 콘래드는 1970년대부터 의료화라는 주제를 연구하고 가르쳐온 사회학자로, 아동 과잉행동의 의료화, 의료화와 사회 통제 사이의 관계, 유전학과 의료화의 관계 등에 대해 연구해왔다. 콘래드 외에도 많은 사회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 생명윤리학자, 의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의료화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으며, 최근에는 학계뿐만 아니라 언론이나 정치계에서도 의료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어떤 증상이 병원에서 다뤄진다는 것이 그것이 반드시 생물학적인 근거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콘래드가 지적했듯이 ADHD로 진단받은 사람 가운데 일부는 명확하게 신경학적인 이상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러한 이상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불안장애로 진단받을 수 있다. 수많은 과학자가 ADHD의 생물학적인 기작을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ADHD의 진단은 생물학적인 측면만을 기준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뚜렷한 생물학적 근거가 있는 증세가 모두 의학적인 문제로 여겨지는 것도 아니다. 미맹이나 혀 말기, 혈액형의 경우 뚜렷한 유전적 근거가 있지만 그 자체로 의학적인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2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의료화에 대한 초기 연구는 과거에는 사적인 영역이었던 임신이나 출산, 갱년기 등이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치료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와 같은 학자들은 현대 의학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회 전반을 의료화하고 이를 통해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전문 의학 지식을 가진 의료 전문가와 환자들 사이에 위계 관계가 형성되고, 환자들은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해 해석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주체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3 이러한 지적은 의학 지식은 거대한 '권력'으로, 환자는 의사의 진단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피해자'로 바라본다.

그러나 콘래드가 보여주듯이 의료화는 단순히 의사나 의료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며, 의사는 물론 환자들이 의료화를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이 책의 만성피로증후군이나 성인 ADHD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환자 개인이나 그들을 대변하는 단체들이 어떤 증세나 질환에 관해 적극적으로 홍보해 이것이 의료의 범주 내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환자들은 자신의 상태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진단을 찾게 되면 자신의 문제를 정당화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며, 환자로서 공적 정체성을 부여받음으로써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의료적 진단은 개인이 겪는 문제를  '장애'의 범주에 포함함으로써 개인이 국가나 보험 회사로부터 특정 복지 혜택이나 편의를 요청하는 것을 가능케하기 때문에, 환자 개인이나 집단에 의료화 여부는 중요한 문제이다. 저자가 소개한 성인 ADHD의 사례에서 '성인 ADHD의 의료화와 진단 확대'는 학습권이나 미국장애인법/재활법에 따르는 권리 보장에 중요한 쟁점인데, 성인 ADHD의 의료화를 통해 성인 ADHD 환자들은 일상적인 삶의 문제에서 "의학적 핑계"를 통해 이러저러한 잠재적 혜택을 누릴 수"(144쪽)게 되고, 미국장애인법의 보호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또한 환자는 의사의 진단을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로서 약품이나 의료적 시술을 소비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이제 환자들은 먼저 질병에 대한 자가 진단을 내린다. 의사에게 자신이 이러저러한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특정한 약품을 처방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제약회사나 생명공학 회사를 포함한 의료 기업들과 의료 전문가들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수많은 의학적 해결책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의료 시장에 일어난 이러한 변화는 '의료 전문 지식을 가진 의사-환자'라는 관계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물론 소비자로서의 환자가 완벽하게 능동적인 주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전의 일방적인 의사-환자 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이제 개인들은 자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신체적 성과를 증진하기 위한 약물적/수술적 개입과 같은 다양한 방식의 의학적 개입을 통해 생의학적 증강(medical enhancement)을 원하기도 한다. 아이의 키로 고민하는 보호자, 더 나은 기록을 원하는 운동선수, 성형 수술을 통해 더 멋진 얼굴이나 몸을 원하는 사람, 의료적 개입을 통해 노화를 피하려고 하는 사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콘래드는 특히 이러한 생의학적 증강이 유전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유전학적 증강으로 이어질 염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유전학적 증강이 실현된다면 의료화에서 논해지는 문제의 범위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어질 것이다.

피터 콘래드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이 ‘진짜’ 의학적 문제인지를 평가하거나, 사람들이 겪는 의료화의 잠재적 “이익”을 부정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의료화가 분명히 누군가에게는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다 주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의료화가 가져오는 몇 가지 사회적 결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는 의료화를 통해 학습 능력이나 성 기능의 차이, 행동 양식의 차이 등 개개인의 다양성이 병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어떠한 의료적 개입을 통해 이러한 ‘병리 현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겨지면서, 어떤 것이 ‘정상’인지 그 기준을 의학 용어들을 기준으로 정의하게 되고, ‘정상’의 범위가 변화했다는 것은 우려할만하다고 지적한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못하거나 수줍음을 타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어왔지만, 이제 그들의 그러한 특성은 각종 지표를 통해 측정되고 그들은 ‘사회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는 의료화의 이론적인 논의에서 시작해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해 의료화의 진행 과정과 배경을 풍부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원래 학술서로 출간된 책답게 풍부한 설명과 참고 자료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만족스럽지만, 산뜻한 책 표지와는 어쩐지 맞지 않아 보인다. 의료화가 긍정적이라는 건지, 부정적이라는 건지 딱 잘라 결론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누군가에게는 답답한 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의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의료의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지금, ‘더 나은 의료’란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1. 신성식, "사망자 10  1명만 집에서 임종가정사망 역대 최저", 중앙일보, 2019.03.03. https://news.joins.com/article/23400316 (2020.11.10 접속).

  2. 또한 최근의 과학기술학/과학사 연구들은 의학적인 문제를 측정하고 분류하는 기준도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에서 우울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우울증 선별검사 도구’의 역사를 살펴본 김민아에 따르면, 우울증 선별검사 도구가 사용되는 방식에 따라 우울증 환자들의 유병률은 다르게 나타난다. 우울증 선별검사 도구는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기준한 우울 증상의 유무와 존재 기간에 집중하여 측정하는데, 같은 버전의 DSM에 기반하였다고 하더라도 대상자의 연령, 선별검사 도구의 종류, 유병률을  측정한 방법에 따라 환자들의 유병률이 달라질 수 있다. 초음파 검사를 기반으로 한 갑상선암 검진 논쟁을 다룬 김희원은 ‘무엇이 갑상선암인가’를 결정하는 기준 또한 전문가들 사이의 지속적인 연구와 토론을 통해 계속해서 변화하는 지식임을 보여주었다. 초음파 검사를 통해 들여다 본 갑상선 결절이 양성인지 악성인지 결정하는 것은 의사가 초음파 이미지의 어떠한 측면에 주목하는지, 해당 결절이 악성종양으로 발전할 위험을 어느 정도로 상정하는지에 따라 의사의 대처는 달라진다. 김민아, 『선별검사 도구 개발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본 우울을 측정하는 지식의 형성, 1993~2011 한국』(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20); 김희원, 『한국의 초음파 기반 의료사회적 환경과 갑상선암 지식의 공동생산』(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6).

  3. 이반 일리치 지음박홍규 옮김병원이 병을 만든다(미토,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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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수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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