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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리의 육아일기] 행복한 직장맘이 되기위해
Bio통신원(닥터리)
© Pixabay
대부분의 직장맘은 본인이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아이에게 좀 부족한 엄마라고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나 역시 그러한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특히 아이가 아플 때 하루 푹 쉬게 해주고 싶은데도 약을 먹여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엄마의 마음은 참으로 무겁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첫해에는 아이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말씀드리며 어린이집 선생님께 아이를 맡기고 돌아설 때면 아이와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 때가 많았다. 또한 퇴근 후 아이를 챙기고 집안일을 하다 너무 바빠 깜빡하고 어린이집 알림장을 못 본 날에는 신기하게도 다음날 준비물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직장어린이집이기에 우선 등원시킨 뒤 필요한 것을 부랴부랴 사다가 주기도 했다. 그럴 때도 꼼꼼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는 마음도 들었다.
게다가 우리 딸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말이 좀 늦었다. 친구들이 긴 문장을 재잘재잘 말할 때 우리 딸은 “응”, “아니”, “싫어” 등 짧은 대답이나 “저거” “맘마” 등의 단어 위주로 말을 했다. 그리고 거의 말을 안 하고 가만히 듣기만 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기저귀도 친구들보다 6개월 이상 늦게 떼었다. 이럴 때 나는 괜히 마음이 위축되고, 내가 직장맘이라 그런가? 싶기도 했다.
이런 내 맘을 쿡쿡 쑤시려고 작정을 했는지 가족 모임 때 시고모님께서 주은이가 말이 늦는다며 엄마가 일하느라 아이와 교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맘에 남는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왜 괜히 주눅이 들었을까 싶고, 당당하게 대답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
당시에는 주위의 어른들이 던지는 “우리 OO는 몇 개월에 한글을 읽었었는데.” “내 친구 손주 보니까 딱 얘 만한데도 야무지게 말도 잘하던데...” 이런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가 어렵고 마음에 머물렀다. 특히 당시 내 주변에는 직장맘이 한 명도 없었기에 이런 부분들이 엄마로서의 내 자존감을 자꾸만 끌어내렸다. 내가 직장맘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생각은 천 번도 넘게 해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시선이 바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 또한 자기가 경험한 것을 기반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본인과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내 상황에 맞게 내가 최선을 다한다면 나는 정말 대견한 직장맘이 아닐까?
또한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의 속도가 있다.
걷는 시점, 기저귀를 떼는 시점, 말을 하는 시점, 글을 읽게 되는 시점 모두 같을 수가 없다.
속도와 시점에 대한 기준은 바로 ‘비교’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남과 비교해서 내 상황이 달라지거나 우리 아이의 발육이 빨라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저 내 자존감만 갉아먹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육아에 대해서는 나의 상황을 구구절절 주변 사람에게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저 내 상황에 맞게 내 속도로 가는 것이고, 옆집 아이의 발육상태를 물어보지 않게 되었다. 특별히 장애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내 아이의 성장 속도는 문제 삼을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내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해야 지치지 않고 롱런할 수 있는 직장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금은 맘이 편안해졌다.
비교는 내 아이와 다른 아이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남편’ vs ‘남의 남편’, ‘내 직업’ vs ‘남의 직업’ 등 나도 모르게 비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특히 남편은 박사과정인 나보다 더 집에 늦게 들어올 때가 많을 정도로 회사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부류이고, 연구실에서 시약이나 기구들의 inventory를 정리하듯 남편은 부서가 바뀔 때마다 그 부서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한눈에 알아보게 set up 하는 스타일이다. 또한 술을 하지도 않는데도 회사 동료들과 늦게까지 수다가 가능한 사람이다.
‘공무원은 칼퇴근’이라는 공식은 우리 남편에게 해당하지 않는 듯 밤 10시 넘어 퇴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는 회사 승진 시험 준비 때문에 더욱 바빴다. 딸아이를 만나면 엄청 예뻐하는 딸 바보이지만, 아이가 처음 열이 나던 겨울 새벽, 해열제를 먹이고 아이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집을 시원하게 했는데, 어느새 옆을 보니 남편은 자기 혼자 이불을 돌돌말고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의 육아 온도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되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내 지인의 남편은 의사였는데, 전문의 시험 보는 시점에 아기를 낳아 아내는 출근하고, 본인이 전문의 시험 준비를 집에서 하며 아이를 돌보았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보다 먼저 아빠가 케어한다. 도리어 아기 엄마의 손길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이 분유 먹이기, 기저귀 갈기, 옷 입히기에 능숙했다. 여기까지만 들어봐도 비교를 안 할 수 없지 않을까?
하지만, 계속 비교하는 것이 내 삶에 행복을 주기는커녕 손에 쥐고 있던 소중한 것도 떨어뜨리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편이 본인 일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도 소중한 것임을 안다. 내가 회의 때문에 늦게 들어오거나 실험 때문에 주말에 시도 때도 없이 실험실을 드나들어도, 또한 갑자기 급한 업무를 처리한다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1시간 넘게 핫스팟 연결하여 컴퓨터 작업을 해도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임을 알기에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또한 칼퇴근은 못하지만 다른 직장에 비해 휴가를 낼 수 있는 여건이 잘 되어있어서 급한 상황에서는 본인이 휴가를 내고 아이를 돌볼 수 있다. 또한 창조적, 자발적 육아는 못해도 시키는 것은 군말 없이 해준다. 한밤중에 아이가 토해서 이불을 빨라고 하면 새벽 2시던, 3시던 일어나 정성스레 손빨래를 한다. 설거지, 빨래 널기, 책 읽어주기 등 시키면 다 “오케이” 해준다. 다만 집에 자주 없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시댁과의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고 내 의견대로 조정해 준다. 어쩌면 단점을 돌려보면 장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내 남편인데, 우리의 삶의 패턴에 맞게 조정해가며 서로의 색깔을 인정해야 행복이 머무르는 것 같다.
나는 ‘내 직업’과 ‘남의 직업’도 비교를 많이 해 보았다. 연구실의 삶은 사실 공부, 실험, 논문 쓰기, 과제계획서/보고서 쓰기 등등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 머리도 계속 써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것과 동시에 후배 실험 문제도 해결해 주고, 논문도 검토해 주고, 교수님 프로젝트도 내 것처럼 운영하는 그야말로 초 멀티태스킹의 삶이다.
이렇게 다져진 나의 일상이 집에서도 상당한 진가를 발휘한다. 연구실에서 밥 먹듯이 하는 washing 실력 덕분에 설거지에 대한 내공이 남다르다. 또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어린이집의 일들을 check 하고, 책 읽어주고, 운동하는 다양한 스케줄을 남보다는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박사 과정 중에 교수님께 달달 볶이며 훈련받아서일까? 어쨌든 나는 종종 다른 직장맘에 비해서 조금은 시간 운용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느낀다.
또한 연구실도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있지만, 은행처럼 고객을 만나는 일이나, 의사처럼 진료하는 일이 아니기에 조금은 시공간적 자유가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갑자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 스케줄을 조정하면 되는 상황이 대부분이라 중간에 잠시 어린이집에 들렀다 올 수 있고, 수족구나 독감 등으로 인해 1주일간 등원하지 못하게 될 때 심하게 아픈 날은 친정집에 맡기기도 하지만 증상이 나아지면 함께 출근해서 연구실 내 따로 있는 사무실에서 아이를 돌보며 실험하기도 한다. 이미 어릴 적부터 우리 주은이는 실험실을 자주 드나들어 연구실 식구들도 모두 잘 이해해 주고, 함께 돌봐주어 너무나 감사하다.
남들이 말하는 결점 없는 “꿀 직장”이 과연 있을까?
물론 나보다 좋은 조건에서 육아하는 엄마들도 많이 있을 테지만, 나는 ‘행운을 의미하는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면서 ‘행복을 의미하는 세잎클로버’를 밟고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아 긍정의 안경을 쓰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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